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9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며 몸과 마음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부님의 대법은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던 신증후군 환자인 저에게 건강을 되찾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자신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좋은 사람, 선량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인연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1. 세파에 휩쓸리다
수련 전, 저는 버스 차장이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버스는 적고 사람은 많았는데, 승객들은 버스에 올라타 표를 사고 내릴 때 제시해야 했습니다. 승객이 많아 미리 돈을 준비해 내릴 때 바로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차장이 돈을 받고도 표를 주지 않은 채 횡령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모두가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을 알았지만, 소심하고 체면을 중시해 횡령하다가 회사에 들켜 망신당할까 봐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돈을 받으면 정상적으로 표를 끊어줬고 매일 성실히 일했기 때문에 퇴근 후 정산할 때마다 제가 회사에 내는 돈이 가장 많았습니다.
당시 버스 차장의 횡령은 모두가 아는 일이었고, 심지어 운전사와 차장이 함께 부패를 저지른 후 횡령한 돈을 나눠 가졌습니다. 소심해서 감히 횡령하지 못했던 저는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없었으므로 모두가 저와 함께 일하려 하지 않았고 저를 따돌렸습니다. 90년대 우리 월급은 고작 몇십 위안에 불과했습니다. 평소 횡령하던 동료들이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식당에 가며 수백 위안짜리 운동화를 아무렇지 않게 사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도 부러웠습니다. 그때 신발 한 켤레를 사려면 월급을 두 달이나 모아야 했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의 한 부하였던 버스 운전사가 제가 따돌림을 당하고 수입이 적은 것을 딱하게 여겨 자신의 버스에 저를 차장으로 태우고, 다른 차장과 제가 함께 돈을 횡령한 후 셋이서 나눌 것을 제안했습니다. 저는 안전하게 돈도 나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을 실행한 후, 저는 버스에 오를 때마다 까닭 없이 긴장됐고 예전의 편안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잃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부패를 저지른 뒤에야 내막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두가 횡령을 위해 자신만의 수법을 연마했는데, 눈과 귀로 주위를 살피며 손과 생각까지 빨라져야 했습니다.
그때는 횡령을 막기 위해 시찰관이 수시로 버스에 올라 불시 점검을 했습니다. 돈과 표가 일치하지 않으면 몸수색을 당했는데, 차장은 돈을 소지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적발되면 가볍게는 몇 배의 벌금을 물리고, 심하면 버스 탑승이 금지되어 비상근직으로 돌려졌습니다(차장이 임시로 휴가를 내면 대신 일하는 것). 그러나 윗사람에게 정책이 있으면 아랫사람에게도 대책이 있었습니다. 횡령하다 잡히지 않기 위해 차장은 운전사와 공모했고, 우리 버스도 그 예였습니다. 저와 같은 버스에 탄 차장은 돈을 횡령하는 일을 담당하고, 저는 망을 보며 시찰관이 있는지 살폈습니다. 시찰관을 발견하면 그녀는 횡령한 돈을 운전사에게 넘기고 표와 일치하는 돈만 남겼습니다.
횡령에 가담한 후 경제 사정이 나아져 동료들처럼 마음껏 돈을 쓰며 욕망을 채울 수 있었지만,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했기에 항상 발각될까 봐 극도로 긴장하며 살았습니다. 또한 동북 지역의 겨울은 매우 추운데 휴게실도 없었고 버스 안에서 오랜 시간 화장실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시찰관이 갑자기 버스에 올라와 표를 확인하려 하자, 저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워 거의 혼절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병원으로 옮겨져 신장염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임신하면서 신장에 부담이 가중됐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신증후군이 나타났습니다. 남편은 저를 데리고 전국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신증후군은 난치병으로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없었고, 의사들도 신장 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동충하초 같은 값비싼 약만 처방할 수 있었습니다. 약 한 재에 저와 남편의 두 달치 월급이 들어갔습니다. 우리 집 저축은 바닥났지만, 제 병은 낫지 않고 오히려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매우 절망적이었습니다. ‘스무 살이 갓 넘은 나이에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니, 아이는 아직 어린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2. 새 삶을 얻다
우리 집에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친척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파룬궁은 병을 없애고 건강을 회복하는 놀라운 기적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계기로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해 주셨습니다. 저는 솜뭉치처럼 딱딱한 이물질을 토해냈고, 오염된 물질도 몸 밖으로 배출되었습니다. 몇 차례의 신체 정화를 거친 뒤, 제 신증후군은 약을 전혀 쓰지 않고도 완전히 나았습니다. 저는 감격을 금할 수 없었고, 진심으로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신 것에 감사드렸습니다. 그래서 대법을 끝까지 굳건히 수련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남편과 가족들은 저의 기적 같은 변화를 직접 보고 모두 저의 수련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저는 병에서 벗어나 몸이 가벼워졌을 뿐 아니라, 대법의 법리는 제 마음까지 정화해 주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사는 목적이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데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선에는 선의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의 응보가 있으며, 잃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는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대법은 과거 버스 차장으로 일하던 시절의 잘못된 행동이 덕을 깎는 일이었음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저는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으로 올곧은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수련으로 건강을 되찾고 기쁨을 누리고 있을 때, 중국공산당은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장쩌민은 파룬따파 수련자에 대해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시킨다”는 말살 정책을 내렸습니다. 경찰이 우리 집에 들이닥쳐 ‘수련 포기 각서’를 쓰라고 요구했지만, 저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경찰은 이틀에 한 번꼴로 찾아와 각서를 강요하며, 쓰지 않으면 회사에서 해고시키고 불법적으로 노동수용소에 보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제 직장에까지 찾아와 방해했습니다. 회사는 어쩔 수 없이 제 인사 관계만 유지하고, 월급은 지급하지 않은 채 집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결국 저는 생계 수단을 잃게 되었습니다.
경찰은 제가 뜻을 굽히지 않자 남편의 회사에까지 찾아가, 상사에게 압력을 넣어 남편이 저와 이혼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들에게 이렇게 따졌습니다. “제 아내는 대법을 배우고 더 좋은 사람이 됐습니다. 무슨 잘못이 있다는 겁니까? 왜 수련을 못 하게 막는 겁니까?” 남편은 본사에서 품위 있는 업무를 맡고 있었으며,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해 상사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남편의 상사는 제가 대법 수련을 통해 신증후군을 고쳤지만,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 집이 경찰의 교란과 납치로 평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 회사의 상사는 경찰의 방해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저를 보호하고 남편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저를 회사 임시직으로 채용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앙은 개인의 문제이며, 생명이 가장 중요합니다. 경찰이 회사에 와서 사람을 잡으려 한다면 우리가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두 번째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3. 진선인의 기준으로 사람이 되다
남편 회사에서 일하게 되자, 상사는 저에게 비교적 여유 있는 사무용품 관리 업무를 맡겼습니다. 저는 어렵게 얻은 이 직장을 소중히 여기며,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성실히 일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일은 원래 한 운전사가 겸해서 관리하던 일이었습니다. 부서에는 수십 명의 직원이 있었고 복사기도 여러 대 있었습니다. 기관 특성상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며 복사를 요청했는데, 복사기가 늘 고장이 나 직원들의 업무에 큰 지장을 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확인해 보니 기계 자체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종이만 넣으면 자꾸 걸렸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문제는 종이였습니다. 이전 관리자가 업체와 결탁해 불필요하게 많은 종이를 들여왔고, 그 종이가 습기를 머금어 기계 작동에 문제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저는 부서의 월간 종이 사용량을 계산한 뒤, 필요한 만큼만 들여와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창고에 쌓여 있던 종이는 위층으로 옮겨 평평하게 펴서 말렸습니다. 새 종이와 헌 종이를 교대로 사용하자 복사기는 거의 고장 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종이가 걸리면 모두 기계 문제라고 생각해 새 복사기를 계속 들여왔는데, 그 과정에서 관리자가 뒷돈을 챙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자, 복사기는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았고 새 기계를 들여올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사무용품을 관리하는 자리 자체가 사실상 ‘노다지’였습니다. 무엇이 부족하다고 하면 얼마든지 들여올 수 있었고, 사용량을 통계 내기 어렵다 보니 관리자와 업체는 서로 결탁해 횡령하며 사적 이익을 챙겼습니다.
제가 일을 맡은 뒤, 복사기 수리 기사가 찾아와 수천 위안의 이익을 제안하며 빈 영수증에 서명해 달라고 했지만, 저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종이 판매업체 직원 역시 “당신이 관리한 후로 우리 할당량이 줄었다”며 더 많이 들여오라는 압력을 넣었지만, 저는 한 달치만 상징적으로 늘려 그 관계를 무마했습니다. 저는 정직하게 관리했고 횡령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회사는 큰 비용을 절약했습니다. 연말에 상사는 “1년 동안 이 정도밖에 안 썼다고요?! 당신이 맡은 뒤로 비용이 훨씬 절약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업무가 비교적 한가하다 보니, 동료들이 복사할 일이 있을 때면 자주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저는 기꺼이 도와주었고, 점차 수십 명의 동료들이 모두 저를 찾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상사가 회의 자료를 맡기면 점심시간을 아껴서라도 제때 다 복사해 주었습니다. 저는 늘 진선인의 기준으로 저를 단속하며, 사사로운 이익을 따지지 않고 주변을 도왔습니다. 그 결과 상사와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고, 상사는 제 월급을 올려주었을 뿐 아니라 보험과 각종 복지 혜택까지 챙겨주었습니다. 원래 임시직은 받을 수 없는 혜택이었지만, 저는 매년 남편과 함께 상당한 액수의 상여금과 복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동료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렸고, 모두가 잘 받아들였습니다. 저를 도와준 상사 역시 복을 받아 회사의 고위 간부로 승진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선에는 선의 보답이 있다”는 법리를 깨닫게 해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과거를 돌아보니, 개인의 이익을 위해 표를 횡령하고 매일 불안 속에 살다가 온몸에 병을 얻었고, 집안 저축까지 탕진했으며, 목숨까지 위태로웠습니다. 그러나 대법을 배우고 나서는 사사로운 이익을 내려놓고 정직하게 일한 덕분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맺는말
과거를 돌이켜보면 감개무량합니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혼미하게 살아가며 작은 이익에 집착하고, 사소한 일로 다투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이미 중병으로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사부님의 대법은 제 목숨을 구해주셨을 뿐 아니라, 제 마음을 정화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사부님과 대법은 저를 새롭게 빚어 주셨습니다.
자비로운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5/10/4910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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