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먹는 것에 대한 집착심을 버린 체득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대법을 수련해 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에서 ‘살생 문제’와 ‘육식 문제’에 대해 각각 설법하셨습니다. 또한 수련생들의 교류 중에서 어떤 수련생이 집안 요리를 담당하면서 살생 문제에 주의하지 않아 구세력에게 틈을 주어 박해받은 사례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죽이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는다”[전법륜법해-광저우(廣州) 설법 문답풀이]는 원칙을 지켜 왔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왔고, 평소에 고기를 자주 먹지 않았으며 살아 있는 가금류 등을 사는 일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이 문제가 저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설 명절에 겪은 일을 통해 살생 문제와 육식 문제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먹는 것’ 뒤에는 많은 사람 마음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올해 설 명절에 고모가 저희를 찾아오신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고모는 해안도시 출신으로 요리 솜씨가 아주 좋습니다. 큰아버지가 보기 드문 대어 두 마리를 보내주셨는데, 집에 도착했을 때 상자가 반 사람 키보다 더 길었고, 한 마리는 일곱여덟 살 아이만큼 컸습니다. 두 마리 모두 살아 있었습니다. 물고기가 때때로 퍼덕이며 몸부림치는 소리를 듣고 저는 몹시 무서웠습니다. 할머니는 물고기를 자루에 넣어 두고 스스로 생명이 다할 때까지 두자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생하지 않고 물고기가 스스로 생명의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자는 뜻이었습니다.

설 전날이 가까워지자 고모는 신선한 해산물을 사야 한다며 반드시 살아 있는 것이어야 좋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살아 있는 새우 한 봉지를 사 왔고, 저는 활발히 뛰던 새우가 우리집에서 목숨을 잃는 것을 또 목격했습니다. 보통 사람들 눈에는 설 명절에 풍성하게 먹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집은 평소 소박한 음식으로도 제가 자라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팔십이 넘으셨지만 여전히 건강하시고 정신도 아주 맑으십니다.

국물 끓는 냄새가 사방에 퍼졌고 평소에 접하기 힘든 대어와 고기는 저에게 상당히 큰 유혹이었습니다. 게다가 고모는 식사 후 남은 음식을 모두 버리셨는데 우리는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이라도 덜 버리려고 매 끼니 배불리 먹었는데, 거의 평소 식사량의 두 배였습니다.

고모가 섣달그믐 전후로 집에 계셨던 며칠 동안, 저는 매일 밤 배가 불러서 앉지도 눕지도 못했지만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미 식탐의 집착심이 발동됐고 위장조차 저에게 경고를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먹을 때마다 그저 생선탕이 맛있고 영양이 좋다고만 생각했고, 재료가 살아 있을 때 마지막으로 몸부림치던 모습을 조금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직접 물고기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물고기는 우리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사실 두 마리를 다 먹을 수 없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아예 먹지 않거나 적게 먹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먹지 않고 버리면 낭비이고 그것이야말로 물고기의 생명을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는 핑계를 대며 알아차리기 어려운 사람 마음의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곧 ‘이렇게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식탐의 배후에는 이익심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단지 고기뿐만 아니라 귀한 음식과 평범한 음식 중에서 더 귀한 것을 우선 선택하는 것, 이는 근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식탐 또한 이익심의 한 표현입니다.

더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정(情)’에 이끌려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것, 이는 단지 배를 채우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속인들도 편식이 영양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특정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혹은 적게 먹는 것은 모두 옳지 않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당시 제자들과 탁발을 나갔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주든 그것을 드셨습니다. 제공도 또한 어떠한 음식에도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사부님(憶師恩)’을 들으면, 사부님을 따라 법을 전하던 수련생들이 말하기를, 사부님께서는 음식이 좋고 나쁘다고 전혀 불평하신 적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사부님께서 수련생이 남긴 컵라면을 드시기도 하셨습니다. 또 어떤 수련생이 가져온 만두에 곰팡이가 피었을 때 먹을까 말까 망설였는데, 사부님께서는 손으로 만두의 곰팡이를 털어내고 평상시처럼 드셨고, 그래서 모두 사부님을 따라 만두의 곰팡이를 털어내고 먹었다고 합니다.

많은 수련생들은 식탐의 관을 법을 막 접했을 때부터 이미 넘어섰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가 작은 허점을 주의하지 않아서, 집안에서는 원래 먹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때로는 마음속으로 남의 집 음식이 맛있는 것을 부러워하면서, 작은 것이라 집착으로 발전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여긴 관념이 거대한 난관으로 변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정월 초닷새에야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습니다. 그날 이모 댁에서 식사를 했는데, 이모는 요리를 특별히 잘하시고 요리의 기준도 매우 높으셨습니다. 이모께서 어머니가 섣달그믐날 가져간 찜닭을 일부분만 드시고 절반은 지금까지 남겨두셨다며 제가 못 먹을까 봐 걱정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너무 감동했습니다. 이모와 어머니가 오전 내내 이렇게 많은 풍성한 음식을 준비하시는 것을 보며 울고 싶었고, 동시에 그 집에서 매일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우리집은 평소에 이렇게 맛있는 것을 어디서 먹을 수 있겠습니까? 순간 식탐이 일었고 동시에 감사한 마음도 있어서 점심을 과식했습니다. 저녁때까지도 배가 불러 마치 누가 찌르면 토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저녁 식사를 할 때 저는 당연히 먹을 수 없었고 물조차 한 모금도 삼킬 수 없었으며, 점점 더 배가 불렀습니다. 저는 서 있거나 앉아 있어도 토할 것 같아 괴로웠지만 토하지는 못했고, 몇 차례 시도하다가 계속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집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극도로 괴로웠습니다. 딸꾹질 때문에 숨을 들이쉴 수 없었고 내뱉는 것만 가능했으며, 배는 여전히 불렀습니다. 가족들은 저를 보고 병원에 데려가려 했지만 저는 괜찮다고 말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길가의 여러 진료소들도 새해 기간이라 일찍 문을 닫아 결국 집으로 데려다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 거의 다 와서야 조금 나아졌습니다. 어머니는 소화제를 먹으라고 당부하셨지만 저는 집에 약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갔을 때 할머니께서는 발정념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힘겹게 방금 얼마나 괴롭고 위험했는지를 말씀드렸으나 할머니는 듣기를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스스로 《전법륜》 제7강을 보며 ‘육식 문제’ 부분을 자세히 읽었고, 앉아서도 계속 구역질이 나와 결국 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까지 계속 구역질만 했고 아무것도 토하지는 못했지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괴로웠으나 의식은 여전히 또렷했습니다.

저는 수련인으로서 오늘 정말 형편없이 행동했음을 알았습니다. 고기를 처음 본 것도 아니고 며칠을 굶은 것도 아닌데, 속인들이 잘 먹는 것을 부러워하며 마치 자신이 불쌍한 것처럼 여겼습니다. 부러움의 배후에는 여전히 ‘나’라는 관념이 있었고, 이기적인 가짜 나가 존재했습니다. 원래 식성이 좋지도 않은데 음식 앞에서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것은 ‘인(忍)’을 실천하지 못한 것 아닙니까? 이렇게 안으로 찾다가 잠이 들어서야 괴로움을 느끼지 않게 됐습니다.

정월대보름 전까지 저는 다른 친척 집에 가서 식사하지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집에서 명절 동안 쌓인 각종 식재료들을 처리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아무런 불편함도 없었습니다. 대보름 무렵 먼 친척이 저희 지역으로 여행을 와서 제가 그 가족을 하루 종일 안내해 드렸는데 밤에 매우 피곤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끓여주신 좁쌀죽을 먹었는데, 별다른 주식을 먹지 않고 제 그릇에 후추 등 양념을 조금 넣으니 맛있게 느껴져 많이 마셨습니다. 잠시 후 배가 또 지난번처럼 불러오기 시작했고 밤까지 구역질을 했습니다. 12시에 잠시 발정념을 한 후 결국 참지 못하고 와락 토하기 시작했는데, 토한 것은 물뿐이었고 머리가 어지러워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수십 차례 토했습니다. 처음 몇 번은 물이었고 나중에는 쓰디쓴 액체를 토했는데 아마도 담즙인 듯했고, 더 나중에는 토하는 액체의 쓴맛도 옅어졌습니다. 할머니께서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하시며 제가 새벽까지 토하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다음 날 할머니께서 쓰레기를 버려주실 때, 한 통 가득 물 같은 연한 색의 담즙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온몸은 어디 하나 아프지 않았고, 단지 속이 텅 빈 듯했습니다. 그 뒤 이틀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셋째 날에 국 한 그릇을 마셨으며, 넷째 날부터는 정상적으로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전혀 불편함도 없었고 배고픔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가 먹은 좋지 않은 것을 제거해 주시고, 식탐의 집착심을 없애도록 도와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로는 완전히 정상적으로 식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깊은 교훈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는 목적은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함임을 스스로 상기시킬 것입니다. 맛이 없거나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대할 때에도 모든 음식은 하늘이 내려주신 것이며, 똑같이 우리를 배불리 해주려고 온 것이니 편식해서는 안 됩니다.

이상은 제가 ‘먹는 것’에 대한 집착심을 체득한 일부분입니다. 그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이익심, 정(情)에 끌린 마음, 이기심, 그리고 닦아내지 못한 자비심과 선(善)과 인(忍)을 실천했는지를 반성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에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인 층차가 한정되어 있어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9/13/49275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9/13/492754.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