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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와 비교하여 4.25 사건을 말해보자

—‘4·25 청원’ 26주년을 기념하며

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어떤 사람은 ‘4·25 청원’에 대해 장쩌민, 뤄간 일당이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파놓은 함정이었다고 말하는데, 확실히 ‘수호지’에 나오는 ‘임충(林沖)이 백호당(白虎堂)에 잘못 들어간 이야기’와 조금 비슷하다. 이 이야기에서 간신 고구(高俅)는 양아들이 장군 임충의 아내를 차지하려고 하자, 임충을 출입 금지된 백호당으로 유인한 후 모함하여 유배 보냈다. 이는 장쩌민과 뤄간 일당이 파룬궁수련자들을 중난하이(中南海:중공 고위층 집무실이 있는 곳)라는 민감한 구역에 집결하도록 유인한 것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임충은 고구가 보검을 보여달라고 해서 백호당에 갔던 것이고, 파룬궁수련자들은 자신과 대중의 신앙자유를 지키기 위해 중난하이 앞으로 간 것이었다. 또 임충은 얼떨떨하게 악인의 계략에 빠졌지만 파룬궁수련자들은 악인이 판 함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당하게 올바른 일을 하러 갔다.

1. 중난하이는 어떤 곳인가

중난하이 담장 너머에는 정부 기관인 국무원, 중국공산당 기관인 중앙서기처와 중앙판공청이 있다. 국무원 산하 신방판공실(청원사무실)도 그 안에 있다. 또 중난하이에는 여러 곳에 대문이 있는데, 각기 다른 집무실과 연결되어 있어 찾아간 위치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일반 중국인들은 ‘중난하이’와 ‘중앙 정부’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당시 수련자들이 민원실 담장 밖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두고 “정부를 포위했다”라고 하면 오해할 수밖에 없고, 중공의 속임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중난하이에는 왜 갔나? 정부에 말썽을 부리러 간 게 아닌가?”라고 비난한다.

​중공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신방판공실의 기능은 다음과 같다. (1) 청원인의 서신과 전화 응대를 담당하고, 당과 정부 지도자에게 중요한 내용을 보고하며,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2) 지도자가 지시한 청원 사건의 해결을 감독하고, 지도자가 맡긴 청원 정책을 수행한다. (3) 청원 문제와 관련해 지역 간, 부처 간 조율을 담당한다.

다시 말해, 국무원 청원실은 지방 청원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접수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중공은 청원인을 ‘골칫거리’로 생각하고 있지만, 청원실에 찾아가는 모든 국민을 말썽을 일으키는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지방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베이징에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중앙 신방판공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도와줄 리는 없다.

그러므로 ‘4·25 청원’은 함정이라 하기 어렵다. 당시 파룬궁수련자들은 자발적이고 이성적으로 청원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톈진(天津)에서 경찰이 수련자를 폭행하고 체포한 사건과 전국 연공장에서 벌어지는 방해, 파룬궁 서적 출판 금지 등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베이징 민원실을 갔기 때문에, 계략에 빠져 ‘백호당에 잘못 들어간’ 임충과는 다르다.

배후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수련자들을 모함하려는 시도가 있었을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는 수련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아간 것이지, 임충처럼 모르고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파룬궁수련자들의 ‘평화 청원’은 절대 ‘정부 포위’가 아니었다. 수련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던 장소는 중앙 신방판공실 담장 바깥이었다. 게다가 중난하이의 담장은 대나무 울타리가 아니고 시멘트 담장이라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따라서 ‘정부를 포위했다’라는 죄명은 성립되지 않는다.

2. 서방 사회의 찬사를 받은 파룬궁수련자들

1999년 4월 25일, 당시 봄을 맞은 베이징은 날씨가 매우 좋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국무원 신방판공실 붉은 담장 바깥에 조용히 모인 1만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이날 저녁 그들은 문제가 적절하게 해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즉시 조용히 자리를 떴는데, 머물렀던 자리에 종이 한 조각도 남기지 않았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서방 언론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중국 현대 문명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줬다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왜 그토록 특별했을까? 왜 서방 사회의 찬사를 받았을까?

중공은 권력을 찬탈한 후 중국에서 토지개혁, 진반(鎭反), 숙반(肅反)에서부터 삼반·오반(三反·五反), 반우파, 문화대혁명 등 정치운동을 쉴 새 없이 벌였는데 모두 ‘위대한 지도자’가 구호를 외치고, 당 기관지가 여론을 조성한 후 전 국민을 가담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중국인들은 매번 꼭두각시처럼 중공에게 끌려다녔고, 적극 참여한 사람들도 악령에게 사로잡혀 이성을 잃고 무지하게 따라갔다. 이들은 스스로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올바른 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4·25 청원’은 전혀 달랐다. 조직하거나 동원하는 사람이 없었고, 언론 선전도 없었으며, 구호나 현수막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파룬궁 수련으로 건강해지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동참했을 뿐이었다. 또 아무런 정치적 요구와 이익에 대한 요구가 없이, 파룬궁 서적 출판 허용, 수련 환경 회복, 톈진에서 체포된 수련생 석방이라는 세 가지 합리적인 요구만 있었다.

또한 ‘4·25 청원’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사회 주류였다. 그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젊은이가 아니라, 문화대혁명 등 수많은 정치운동을 겪었고, 1989년 천안문 유혈 탄압까지 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산당의 사악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베이징에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파룬궁 수련을 통해 실제로 몸이 건강해지는 혜택을 보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만성질환과 난치병에서 회복되었고, 심지어 불치병에 걸린 사람도 새 생명을 얻었다. 특히 ‘진선인’의 법리에 따라 수련하여 도덕성이 회복되고 가정이 화목해졌으며, 인간관계가 좋아지고 삶이 즐거워졌다. 누구나 아름답고 선한 것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 파룬궁수련자들은 수련을 통해 파룬궁이 진정한 불법(佛法)이며, 생명의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고덕대법(高德大法)임을 깨달았다.

이는 진정한 정신적인 각성이며, 인간으로서 가장 선한 일면-불성(佛性)이 깨어난 것이다. 진선인을 수련하여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된 근본적인 목적이며, 이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폭력적인 독재 정권 앞에서 두려움 없이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나선 것은, 대법이 가르치는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경지에 부합한다.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고, 자발적으로 대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1억 파룬궁수련자들의 마음은 아무리 강대한 독재 정권이라 해도 막을 수 없었다.

맺음말: 정신적 각성이자 신성한 빛

‘4·25 청원’은 매우 위대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심에서 비롯되고, 불성에서 비롯됐으며, 중국인들의 정신적 각성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인류 역사에 도덕적 기념비를 세웠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주 최고 특성인 진선인을 수호한 행동이며, 우주 특성인 진선인에 부합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19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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