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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이 천목으로 보는 것에 대해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천목(天目)이 열린 수련생과 열리지 않은 수련생은 단지 천목의 이 한 문제에서 수련 상태가 다를 뿐이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천목으로 보는 것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천목이 열리지 않은 수련생이 다른 수련생이 천목으로 보는 것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 모두 각자 마주할 시련이 있고 닦아야 할 부분이 있다. 관건은 시시각각, 매사에 안으로 찾고 마음을 닦아 집착을 버리며 제고해 올라올 수 있는가이다.

1.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보통 자신이 보는 것에 대해 믿게 된다. 그럼 보게 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아래 몇 가지 상황이 있다고 본다.

한 가지 상황은 진실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어떠어떠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단지 현 층차에서 보여진 마땅히 봐야 할 진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수련하는 사람은 더욱 자신이 있는 층차의 ‘한계’를 잘 인지해야 하며 함부로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또한 수련하는 사람이 수구(修口)하는 한 층의 내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무엇이든 어떤 것을 예언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며 닦아야 하는 부분을 점화(點化)해주거나 수련을 격려해주는 것에 있다. 수련은 모두 우리 자신을 수련하고 제고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상황은 자신의 집착 때문에 구세력에게 틈을 줬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에 집착하든 구세력은 그것을 강화하고 명확하게 보며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바로 당신을 더 집착하게 만들어 당신의 수련을 망가뜨리는 것에 목적이 있다.

또 다른 상황은 당신이 보는 것은 가짜이고 생각을 움직여 수심이화(隨心而化)한 것이다. 사부님은 설법에서 이 문제를 따로 언급하시면서 수련인에 대한 해악을 말씀하셨다. “당신이 천목으로 볼 때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보면 진실한 것이나, 조금이라도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보는 것은 모두 가짜로서, 이것이 바로 자심생마(自心生魔)이며, 수심이화(隨心而化)라고도 한다.”[1] 나타나기 쉬운 문제이기에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 이 문제에서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개개인이 천목으로 보는 것은 어떤 상황에 속하는가? 진짜와 가짜는 미혹 속에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천목으로 보는 것 중에 자신의 집착을 점화해 주고 수련에 정진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것에 대해 잘 깨달아야 하고 사부님이 자비하신 점오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세간의 일과 시간에 대해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개인적인 이해로 모든 것은 사부님의 선택이고 정법(正法)의 시간과 실제 상황은 정법의 수요에 따라 연출되고 사부님께서 아직 정법하지 않으신 부분은 대응하는 미래도 아직 없는 것이다.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왜 이것을 보게 하는가, 사람 마음이 불러온 환각이 아닌가?’ 제때 마음을 바로잡고 시시각각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무슨 불(佛), 무슨 도(道), 무슨 신(神), 무슨 마(魔)이든, 모두 나의 마음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말라. 이렇게 하면 꼭 성공할 것이다.”[1]

2. 천목이 열리지 않은 수련생에게

천목이 열리지 않은 수련생은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무엇을 듣고 싶어 할 때 다음과 같은 집착심이 있는지 생각해보았는가. 호기심, 참견하기 좋아하는 마음, 구하려는 마음, 말하는 일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 공능(천목)에 대한 집착과 신사신법을 못한 마음(최소한 이 문제에서 법을 스승으로 삼지 않고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듣고 싶어 하는 것) 등이다. ‘듣고 싶다’는 일념을 붙잡고 제때 멈춘다면, 당신은 자발적으로 수련하고 있는 것이며, 수련에서 정말로 크게 제고될 수 있다.

한 가지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다. 1998년 어느 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전법륜(轉法輪)’을 베껴 쓰고 있었는데 문밖 복도에서 동료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에 이 동료는 박사가 되고 싶어 부서에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나는 이 동료에게 대법을 소개한 적이 있고 그도 ‘전법륜’을 한번 읽어봤기에 나는 이 동료 일에 대해 좀 관심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그에게 일이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려고 서둘러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바로 인식하고 자신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마음인가? 호기심이구나!’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앉아!’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이어서 법을 베껴 썼다.

이후 나는 정말로 어떤 호기심도 거의 느끼지 못했다. 나에게 말하지 않는 한, 잘 들리지 않거나 명확하게 들리지 않은 경우, 나는 다시 묻거나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거의 없었다. 나는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은 알게 될 것이고 알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알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때때로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홀로 ‘들어도 듣지 않는’ 심경을 가질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앉아!’라고 말했을 당시 사부님께서 내 호기심을 없애 버리셨을지도 모른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정념을 확고히 할 때, 당신이 그것을 배척할 수 있을 때, 나는 조금씩 당신에게서 떼어 내 준다. 당신이 얼마만큼 해낼 수 있으면, 나는 당신에게 그만큼 떼어 내고 당신에게 그만큼 제거해 준다.”[2]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했을 때 자주 자문해 봐야 한다. 왜 그렇게 말했고, 왜 그렇게 했는가? 이는 자발적으로 수련하는 것이고(문제가 많이 쌓이고 관을 넘지 못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안으로 찾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수련이 매우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음) 언행 배후에 있는 집착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면 끊임없이 제고될 수 있다.

3. 몇 가지 과거 이야기들

첫 번째 이야기: 1996년 당시 많은 수련생이 법에 대해 아직 감정적인 인식을 품고 공능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단체 아침 연공이 끝난 어느 날, 한 연로한 수련생이 내게 말했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있는 곳에 갔다 왔는데 자리에 있는 십여 명 수련생을 모두 봐줬어요. 언제 당신을 데려가서 그녀가 봐주도록 할게요.” 그 당시 나는 말했다.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런 호기심이 없고 그녀가 과시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도와주지 않겠습니다.”

몇 년 전에 한 수련생과 이 일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수련생은 말했다. “저라면 갔을 겁니다.” 그렇다. 시험과 유혹은 항상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1999년 10월 어느 날, 나는 길거리에서 전 연공장의 보도원을 만났는데 그녀는 사부님의 신경문이 나와서 수련생들에게 갖다주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자전거 바구니에 있는 가방 속에 종이를 펼쳐 신속히 한번 읽어보았는데 내용으로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수련생에게 물었다. “사부님께서 쓰신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녀는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진짜인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나는 곧 말했다. “이것을 그만 전하세요. 진짜 경문이 아닐 겁니다. 사부님께서 이런 방식(천목이 열린 수련생으로 진위를 확인하는 것)으로 경문을 발표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 난리가 나지 않겠습니까? 사부님께선 반드시 한 가지 확실하고 틀림없는, 신뢰할 방법으로 경문을 발표하실 겁니다.” 이후 2000년 1월 19일, 밍후이왕에서 ‘1999년 7월 20일 이후 李洪志(리훙쯔)사부님께서 뉴욕을 떠나 산중에서 조용히 세간을 바라보고 계시다’는 사진을 발표했고 이후부터 사부님의 설법이 발표됐다.

수련에서 시련은 정말 때때로 있고 때로는 아주 엄격할 수 있는데, 잘 파악하지 못하면 ‘좋은 마음으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2002년 7월 어느 날, 수련생으로부터 시 한 편을 받았는데 사부님의 신경문이라고 했다. 다음 날 다른 곳에 있는 부모님 댁에 가려고 해서 떠나기 전에 인쇄해서 수련생들에게 보내려고 한 수련생 집에 갔다. 컴퓨터에서 타이핑하고 줄을 바꿀 때 ‘엔터’를 누르기만 하면 이전에 입력한 글자가 전부 지워졌는데 몇 번이나 그랬다. 실수로 그런 줄 알고 수련생의 딸에게 한번 해 보라고 했다. 결과는 같았고 똑같이 지워졌다. 나는 즉시 깨달았다. ‘타이핑을 그만 멈추자. 이 시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부모님 댁에 가면 그 지역의 수련생에게 확인해야겠다.’ 그것이 실제로 가짜 경문이라는 것이 나중에 확인됐다. 가짜 경문을 전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무서웠다. 동시에 사부님께서 수시로 제자를 돌봐주고 계시고 무심코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도와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존께 감사드린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잘하며 마음에 법을 품어야 시련 앞에서 미혹되지 않을 수 있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3]

개인의 작은 생각이고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층차가 한계가 있고 일방적일 수 있으며 여러 수련생의 지적을 진심으로 바란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각지 설법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5/12/4248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