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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에서의 수련 심득

글/ 북미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매체 수련생들과 함께 1인 미디어(역주: 주로 유튜브 플랫폼을 이용한 개인 방송)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수련한 체험을 사부님과 여러 매체 수련생에게 보고하려 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부터 저는 모든 일은 우연하지 않고 우리의 매 한 걸음은 모두 사부님의 보호를 떠날 수 없으며 사부님께선 우리 곁을 떠나신 적이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지개벽에도 우주정법의 홍대한 천상(天象)이 없었고, 천지개벽에도 대법제자는 있어본 적이 없다. 사부가 이 휘황(輝煌)을 개창했는데, 당신들을 이런 역사적인 시각으로 이끌어 주었다. 당신들 자신을 잘 수련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당신들 자신을 한껏 펼쳐 보이고, 더욱 잘하라!”[1]

처음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본 후 저는 크나큰 격려를 느꼈고 속으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 중생을 구하는 데 발휘할 수 있는 이렇게 큰 무대를 주신 게 얼마나 훌륭하고 은혜로운 행운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다음 단계의 안배가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재와 방송국의 다른 선배들이 저와 몇몇 매체 수련생을 찾아와 우리에게 1인 미디어를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은 정말 모두 우연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1인 미디어를 했을 때 좀 흥분되기도 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기도 했습니다. 너무 많은 소재와 수많은 방식이 있어 자신에게 어떤 것이 적합한지, 어떤 것으로 채널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을지 모두 미지수였기에 하는 과정에서 테스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당시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는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시기여서 곧바로 방향을 확정했습니다. 모든 것이 배치가 있었고 프로그램을 시작한 시기마저 보기에 이렇게 순서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보면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는 전 세계가 중국공산당(중공)에 대한 ‘대각성’ 운동입니다. 잇따라 유사한 장면이 끊임없이 상연됐습니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중공 바이러스, 미국 대선, 미얀마 쿠데타입니다. 지금 중공의 대만에 대한 문화 공격과 군사적 협박은 매 사건이 모두 매우 중대한 뉴스입니다. 매 사건이 모두 중공과 관련되며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세간에서 어찌됐든지, 모두 신이 장악하고 있으며, 모두 질서가 있다. 혼란하다면 역시 신이 그것을 혼란하게 한 것이며, 이 또한 무질서 중에 질서가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없으면 당신들이 자세하게 이 일체를 관찰해 보라. 그러나 이곳의 주역은 대법제자이고, 중생은 모두 당신들이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당신들에게 수련환경을 제공해주는 동시에 당신들이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2]

오늘날 우리가 ‘1인 미디어’ 이런 형식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는 것도 이미 다 안배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전의 많은 일은 모두 사존께서 오묘하게 안배하셔서 오늘날 1인 미디어를 운영하기 위해 기초를 다진 작용을 했고 모두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오면서 자연스럽게 보이나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전공을 배운 배경에서부터 나중에 매체에서 배운 각종 재능은 모두 오늘날 1인 미디어를 운영하기 위한 기초가 됐습니다.

그래서 1인 미디어 운영 초기에 글쓰기부터 편집, 인터뷰, 프로그램 섬네일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혼자 할 수 있어 프로그램을 빨리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당시 인력이 부족했기에 혼자 다방면으로 할 줄 모르면 다른 사람이 도와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시간을 지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일이 적지 않고 대부분 시간은 정신을 집중해야 하고 조금도 지연해서는 안 됩니다. 이로써 저는 방송국의 다른 한 수련생이 이전에 1인 미디어를 할 때 제가 찾아가면 그가 왜 한편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바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저와 얘기했는지 갑자기 이해했습니다. 그는 정말 시간이 촉박했기에 고개를 돌리는 그 몇 초마저 그에게는 1년처럼 길었던 겁니다. 그러나 그는 매번 프로그램을 마치고는 다른 일을 도와줬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1인 미디어를 운영한 후에야 이 시간의 긴박함을 느꼈으며 긴장하고 바쁠 때 고개를 한 번 돌려서 말하는 것이 ‘1년이 지난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우리 팀 조율을 책임진 수련생은 제 작업량 문제를 염려했습니다. 그녀들은 제가 너무 힘들까 봐 적극적으로 일손을 찾아 작업량을 분담했습니다. 가장 간단한 건 ‘자막 넣기’였습니다. 예를 들면 초기 단계에는 자막을 모두 저 혼자 넣었는데 우리 팀 조율을 책임진 수련생은 저를 도와 이 부분을 분담하려 했습니다. 그녀 손에는 몇 개 프로그램을 혼자 편집하고 디자인해야 했고 조율도 해야 했기에 매우 바빴습니다. 또 다른 한 수련생도 모두 혼자 하고 있었는데 일손을 찾기 전에 그녀 둘은 직접 번갈아 가며 자막 넣는 일을 도와줬습니다. 저녁에 모두 집에 돌아갈 시간인데도 그녀들은 여전히 남아서 이 프로그램을 도와줬습니다. 그 장면을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프로그램 완성 시간은 비교적 늦은 시간입니다. 완성 시간에 대해 팀 협조인 수련생은 아무 원망이 없었고 오히려 묵묵히 협조했습니다. 차례로 저에게 뉴욕과 ‘시차’가 있는 편집인 두 명을 찾아줬습니다. 한 명은 미국 중부 시간대에 있는 분인데 뉴욕보다 1시간 늦었고 다른 한 분은 미국 서부 수련생이었는데 뉴욕보다 3시간 늦었습니다. 동시에 제 프로그램은 그날 완성하고 그날 방송해야 했기에 편집인은 반드시 솜씨가 빨라야 해서 사람 찾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수련생은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고 조율을 통해서야 사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때로 다른 사람이 배후에서 얼마나 묵묵히 노력했는지 모르기에 때로는 ‘불만족’한 사람 마음이 드러났고 질투, 불공평 등 표현이 있었으며 무언가 충분한 도움과 중시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면서 실제로 각 수련생 팀원이 묵묵히 부족한 점을 보완했기에 프로그램이 각 방면에서 점점 완벽해졌던 겁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저는 겸손과 소중함을 더 잘 알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자신은 어쨌든 대법 일을 했다고 여기는데,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 당신은 단지 형식에만 치우쳤을 뿐, 그런 마땅히 구해야 할 사람을 구도하지 못했고, 여러분이 공동으로 협력해서 작용을 일으켜야 하는 그 일에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절대로 이래서는 안 된다.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하고, 진정으로 대법제자답게, 대법제자가 문제를 보는 각도에서 문제를 처리하고, 서로 협력해야만, 비로소 잘할 수 있다.”[2]

저는 사부님께서 거듭 강조하신 우리가 함께 일할 때 어떻게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어떻게 모순 속에서 다른 사람을 수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수련하며 자신의 심성을 제고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정당당하게 협력을 잘하라. 누구의 생각도 가장 좋을 수 없으며, 그의 생각이 좋지 못하고, 전면적이지 못하더라도, 당신 스스로 묵묵히 그것을 잘 보충한다! 전면적으로 한다! 신은 비로소 당신이 대단하다고 보는데, 게다가 묵묵히 한 것이다! 관건은 누가 내놓은 아이디어인가에 있지 않으며, 이 과정 중에서 누가 자신을 연마(煉)해냈는가에 있는바, 누가 자신을 수련하면 누가 제고해 올라온다.”[1]

한번은 팀원 중 편집인과의 심성관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프로그램을 잘하기 위해 한 세부적인 부분을 매우 고집했는데 그 당시 저는 속인 마음이 올라와 독선적인 방식으로 “이건 내 프로그램입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걸 간섭하지 말라고 알려준 겁니다. 그 당시 대화로 기분 나쁘게 헤어졌습니다. 결국 이튿날 아침 그녀가 자발적으로 제게 메시지를 보내 매우 예의 있게 말했습니다. “제가 정중히 사과드릴게요. 저는 이런 점을 잘하지 못한 것 같으니 마음에 두지 마세요.” 저는 미안해서 그녀에게 제 부족한 점을 말했습니다. 이렇게 이번 모순은 해결됐습니다. 그날 비가 그치자마자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대법의 위덕입니다. 우리는 협력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족한 점을 닦고 사람 마음을 제거했으며 대법의 제련 속에서 평온하게 앞으로 나갔습니다. 보기에 모두 작은 일인 것 같지만 심성은 은연중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속인 중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을 당신에게 모두 내려놓게 해야 한다. 어떠한 집착심이든 당신에게 있기만 하면, 각종 환경 중에서 그것을 닳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그 중에서 도(道)를 깨닫게 하는데, 바로 이렇게 수련해 온 것이다.”[3]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신체 방면의 교란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동안 프로그램을 녹음 제작할 때 말하기가 불편했고 발음이 종종 잘못됐습니다. 갑자기 어느 날 사부님께서 저에게 많은 것을 제거해주셔서 음성 녹음이 갑자기 매우 매끄러워졌고 몸도 매우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에 감사드립니다.

1인 미디어가 제게 준 가장 큰 시험은 조회 수와 구독에서 표현됐습니다. 특히 미국 대선 이후 유튜브에서 프로그램 광고를 중단하고 우리 1인 미디어에 관련된 조회 수도 ‘억제’된 상황이었으며 구독도 비정상이었습니다. 한동안 매일 얼마씩 증가하던 데서 잇따라 얼마씩 감소하고 구독량이 올라가지 못하고 항상 거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것은 가장 안타깝고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조회 수와 구독 수는 전 세계에서 모두 보고 있기에 조회 수가 좋지 않으면 더 많은 중생이 진상을 보는 데 영향을 미칠 거로 여긴 외에 ‘체면을 중히 여기는’ 제 사람 마음도 건드려졌습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기공사가 병 치료한 예를 든 것과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병을 고쳤다고 여기는데 다른 사람이 당신을 기공사라고 부르면, 당신은 기뻐서 득의양양해하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것은 집착심이 아닌가? 병을 잘 고치지 못하면 풀이 죽어 의기소침해지는데, 이것은 명리심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3]

이것이 사람 마음임을 알았지만 정말 괴로웠습니다. 때로 저는 온밤 조회 수를 지켜봤는데 조회 수가 좋지 않으면 잘 자지 못하고 잘 먹지 못했습니다. 매일 이런 유사한 ‘시청률’의 고험을 겪었는데,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정말 괴로웠습니다. 비교해보면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고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장 큰 압력과 좌절감은 프로그램 조회 수가 좋지 않은 데서 왔습니다. 이 명리심이 얼마나 심한지 보아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오직 수련에서 인식이 좀 제고됐을 때야 기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두 가지 들겠습니다. 한번은 조회 수가 좋지 않은 걸 보고 오늘 법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서 무슨 조회 수고 아니고를 생각하지 않고 앉아서 법을 배웠습니다. 결국 그 프로그램은 마지막에 괜찮았습니다. 또 한번은 발정념입니다. 저는 ‘유튜브 플랫폼은 마땅히 우리가 사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그것이 인간 세상에 존재하게 된 건 우리를 협조해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우리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에 부정적인 기제가 있다면 대법제자의 정념 하에 작용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유튜브 배후의 교란 작용을 일으키는 기제를 제거하는 발정념을 했습니다. 결국 발정념을 마친 후 프로그램 표현은 정말 달랐습니다.

이건 조회 수를 위해 법공부하고 발정념하는 게 아닙니까? 그건 제가 당시에 수련에서 인식이 올라와 좀 제고되어 저에게 정진하고 좋은 수련 상태를 유지하라고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신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사실 좋은 수련 상태를 유지하는 건 정말 매우 중요합니다. 제 수련 상태가 비교적 좋을 때 공간장이 매우 깨끗하고 맑은 것을 느꼈고 내심 깊은 곳에서 매우 확고한 ‘자신감’이 올라왔으며 불안정한 요소가 없이 마음이 평온하고 침착해졌으며 편안했습니다. 프로그램도 흔히 매우 좋게 표현됐습니다. 그러나 제 수련 상태가 좋지 않으면 마음에 각종 불안정한 요소가 있었고 따라서 프로그램의 표현에도 흔들림이 나타났습니다.

중공 바이러스가 우한에서 처음 출현했을 때 팀의 공동 노력으로 프로그램은 연속 11일 매일 백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보았고 동시에 그 기간 제 수련 상태는 저를 놓고 말하면 상대적으로 비교적 좋았습니다. 연공, 법공부도 예전보다 많이 했습니다. 당시 다른 수련생이 저에게 전화해 조회 수가 향상된 경험을 물었을 때 생각하지 않고 기술과 관련 없는 말을 했습니다. “가부좌를 많이 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조회 수는 수련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이치는 다른 업무와 마찬가지로 정말 수련 상태가 좋은 수련생은 프로젝트에서 흔히 잘할 수 있습니다.

2020년 미국 대선이 수많은 혼란 끝에 결과가 나온 후 저는 개인적으로 유튜브 플랫폼에서 확실히 우리의 일부 1인 미디어를 억제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이때 많이 평온해졌고 잠자기 어려운 상황이 없었으며 더 이지적으로 직면한 어려움을 대했습니다. 이는 이 방면의 ‘명리심’이 장기간의 1인 미디어 수련 중에서 차츰 많이 닳아 약해졌음을 설명합니다. 저는 조회 수이든 구독 수이든 프로그램 표현 자체는 각종 요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단일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저는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좋은 1인 미디어인가? 조회 수가 많고 구독자가 많으면 꼭 좋은가?’ 저는 이는 가늠하는 요소일 뿐 절대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더 중요한 건 무엇일까? 저는 션윈을 생각했습니다. 션윈이 왜 그렇게 성공했을까를 생각했을 때 여기에서 계발을 받고 사존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가르침으로 차츰 무엇이 성공한 1인 미디어인지에 대해 개인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1인 미디어는 마땅히 명확한 ‘포지셔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포지셔닝’을 바탕으로 많은 프로그램 내용, 관련된 상품, 다양한 색션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품질성에서 ‘요구가 높아야’ 하고 각 세부 방면을 중시해 그것을 성숙한 상품으로 제작해 프로그램이 언제든지 더 많은 시청자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데, 참여자의 수련 상태도 매우 중요합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저는 저에게 자주 물었습니다. ‘프로그램이 각 방면에서 백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백만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품질로 만들 준비가 됐는가?’ 나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도 격차가 있습니다. 일부 프로그램은 백만 조회 수에 도달했지만 그것은 사부님의 가지와 격려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저는 일부 1인 미디어 조회 수와 구독자가 그렇게 많지 않지만 포지셔닝이 매우 명확하며 제작이 매우 정교하고 우수해 조금의 빈틈이 없음을 관찰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지금 ‘시청자’가 제한되어 있지만 그런 점이 있고 그런 품질을 갖고 있기에 어떤 계기가 있어 그것을 열기만 하면 히트가 될 겁니다.

따라서 저는 지금 과분하게 조회 수와 구독을 중시하기보다는 자신의 수련 상태를 보증해야 함을 포함해 프로그램의 각 방면 세부를 꾸준히 개선해야 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래야 다음 ‘천시(天時)’가 시작되면 비교적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현재 전적으로 유튜브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고 있습니다. 이 플랫폼이 모든 방면에서 차츰 완비되어 가면 우리의 길은 더 넓어질 겁니다.

사존의 보호와 대법의 제련으로 우리 프로그램 팀은 줄곧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과정 중에 진상을 전달하고 많은 중생을 접촉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1인 미디어를 본 후 우리를 매우 신뢰하는 사람으로 여겼고 우리에게 악당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았으며 중공 악당을 폭로했습니다. 또 어떤 시청자는 자율적으로 어떻게 탈당하는지 물어봤습니다.

2020년 상반기 중공 바이러스 전염병 기간에 어떤 속인 시청자는 우리 1인 미디어를 통해 ‘9자 진언’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알았는데 전염병에 걸린 육친에게 외우라고 해서 정말 완쾌됐다고 했습니다. 다음 이 시청자는 에포크타임스 인터뷰를 받을 때 대법의 신기함에 감탄했습니다. 또 한 시청자는 프로그램을 본 후 차츰 대법을 접촉하기 시작해 대법제자가 됐으며 나중에 우리 매체에 들어와 우리의 일원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고생을 느꼈고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매일 이렇게 원고를 쓰고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날을 아직도 얼마나 해야 하나?’라고 물었고, 심지어 어떤 수련생들이 어느 시기면 이 시기가 끝나 법정인간으로 진입할 거라고 논의하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듣고 나서 시간의 긴박함을 느낌과 동시에 속으로 ‘그럼 그 이후에는 원고를 쓰지 않아도 될까?’라고 생각했는데 좀 기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좀 느슨해져서 제가 운전하는 차가 단기간에 바퀴가 두 번이나 바람이 빠져 카센터에 가서 때웠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바퀴에서 바람이 새는 것은 태만하다는 뜻이 아닌가!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해이하지 말라고 일깨워주신 것이다.’ 특히 우리에게 간절한 기대를 하신 사부님을 생각하면 더는 해이해질 이유가 없습니다.

어느 한번, 낮에 진상을 알려야 할 중요한 일을 보러 나가야 하는 날 아침에 비몽사몽 중에 또렷한 ‘꿈’이 나타났습니다. 사부님께서 문 앞에서 저와 함께 나가려는 몇몇 수련생을 기다리시는 걸 보았습니다. 우리가 나가는 데 필요한 물건을 다 준비하시고 정연하게 문 앞에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 자비로우신 장면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아이를 대하듯이 매 사항을 돌보고 계십니다. 게다가 모든 것을 다 준비해두시고 우리가 가서 하기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한 순간은 천금(千金)보다 값지며 만금(萬金)보다 값지다. 이 한 기간 길을 잘 걷는 그것이야말로 바로 가장 대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한 기간 시간에 비록 여러분이 시간이 바쁘고 아주 피로하며 휴식할 시간이 적음에도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잘할 수 있었는데, 사부는 보고 아주 기쁘게 생각하며 위안이 된다. 이 때문에 나는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4]

제 교류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적절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사존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7-시카고시법회 설법’

(2021년 따지웬 씬탕런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21년 5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26/4262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