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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여전히 관여하신다는 일념 덕분에 시련에서 걸어 나왔다

글/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대법제자

[밍후이왕] 몇 년 전 어느 여름날, 저는 화학 공장에서 28일간 일한 뒤 몸 상태가 나빠져 사직했습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온몸이 무기력하고 잇몸에서 계속 피가 났는데, 잇몸에 피가 응고돼 붙어있어서 뱉어내면 출혈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대법제자인데 파룬따파를 수련하시면서 모든 병이 나았기 때문에 저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 일어나면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었고 나머지 시간에는 누워서 쉬었습니다. 일주일 후 열이 나자 가족들이 저를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중증 재생 불능성 빈혈’이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골수에서 피를 만들지 못해 항목별 혈액 지표가 놀라울 정도로 낮았는데, 혈소판 수치가 1000(정상인의 혈소판 최저기준은 12만 이상)밖에 되지 않아 사실상 0에 가까웠기 때문에 출혈이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의사는 한사코 입원하라며 저를 살리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입원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매우 걱정하며 가지 못하게 말려서 못 이기는 척 입원했습니다. 나중에 의료 계열에 종사하는 친구가 가족들에게 이 ‘병’은 매우 심각하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들은 인맥을 동원해 저를 톈진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가족들은 어머니(수련생)가 좀 괜찮은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제 뒤에서 자주 눈물을 훔쳤습니다.

저는 안저 출혈이 멈추지 않고 혈액이 자동으로 흡수되지 않아 눈이 매우 흐릿해져 이미 사람을 똑똑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두렵지 않았으며 사존께서 여전히 저를 관여하고 계신다는 점을 확고히 믿었습니다.

병원을 옮긴 뒤 한 달 됐을 무렵, 저의 ‘병세’가 매우 심각하다는 이유로 가족들은 또 인맥을 통해 저를 병원에 몇 개뿐인 무균병실로 보냈습니다. 거기서 끊임없이 주사와 링거를 맞았습니다. 저는 매일 MP3로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이후, 밤에 링거를 맞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잠들었을 때 저는 화장실(화장실만 모니터링되지 않음)에 들어가 연공했습니다. 기운이 없어 자주 넘어졌고 매번 연공 하면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으며 어머니는 제게 ‘홍음(洪吟)’을 외우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신체적 증상을 ‘병’으로 여긴 적 없이 이것은 단지 제가 건너가야 할 하나의 관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시험을 건너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며 평소에 너무 태만해 늘 게임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지어 액수는 크지 않지만, 회사에서 동료와 몰래 두 번이나 도박도 했습니다. 저는 향락을 탐닉한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반드시 법에서 제고되어 올라와야 이 관(關)을 지나갈 수 있습니다.

입원한 동안, 통상 있다는 각종 합병증 및 약물 부작용이 제 몸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혈소판이 없는 사람은 몸에 큰 자색 버짐이 있어야 하지만 제 몸에는 출혈 반점만 몇 개 있었습니다. 약을 투여한 후 거의 모든 사람이 고열, 식욕부진 심지어 위장이 짓무르는 등 현상이 나타나지만 제 몸에는 나타나지 않아 의사조차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법 공부를 통해 저는 갈수록 마땅히 약을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며 사존께서 저를 관여하고 계시기 때문에 약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주사가 맞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면 맞지 않을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주사를 맞기 싫어요. 맞으면 불편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뜻밖에도 다음날 다시 이 주사를 맞았을 때, 검사결과 부정맥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존께서 저를 도와주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어서 저는 몰래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매일 제가 먹는 약은 수십 가지였고 이런 약은 수백 위안(약 수만 원)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땅히 정정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해 직접 약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들은 후 말이 아닐 정도로 초조해지셨고 언니가 먼 데서 전화를 걸어 의사와 주임 의사가 번갈아 가며 저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저는 끝내 먹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몸은 제가 알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들도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투약을 멈추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걱정했고 의사도 “약을 먹지 않으면 완치율이 많이 떨어질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확고하게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대법을 수련하니 대법제자다. 나는 입원해있지 말아야 한다. 나는 퇴원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엄마,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여쭸습니다. 어머니는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하면 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즉시 “퇴원할래요!”라고 말했습니다. 뜻밖에 어머니도 동의하지 않고 “그건 안 되지. 이제 막 조금 안정됐을 뿐이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하면 된다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은 분명 사존께서 어머니의 입을 빌려서 제게 알려주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우 확고한 태도로 퇴원하려 했습니다. 저는 가족이 저를 걱정할까 봐 두려워할 수 없고, 이 육친 정에 이끌릴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RH-혈액형이므로 집에 돌아가면 혈액은행에 제게 맞는 혈액이 없어 스스로 조혈을 못 하면 생존이 어렵습니다(정상적으로 양호한 경우라면 1년 이후 회복 조짐을 보여야 수혈하지 않아도 됨). 저는 “집에 돌아가면 회복될지도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존께서 저를 관여하고 계시니 분명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첫 번째 혈액 검사에서 저는 회복 조짐을 보였습니다. 6개월 뒤, 지표가 거의 정상을 회복했습니다. 아버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저를 데리고 톈진에 가서 재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와 주임 의사는 모두 저를 보러 와서 “정말 약을 먹지 않았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복용하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그러면 복용하지 말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또 “정말 기적이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아버지는 비로소 마음을 놓으셨습니다.

제가 입원해있는 2개월 동안 제가 있던 무균병실의 ‘동료 환자’는 잇따라 몇 사람이나 세상을 떠났습니다. 병원에서는 대외적으로 완치율이 60% 이상이라고 말하지만 제가 스스로 병실을 걸어 나온 것 외에 완치되어 퇴원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사존의 자비로우신 보호 아래 저의 이 큰 병업관은 이처럼 놀라움은 있어도 아무 위험 없이 지나왔습니다.

저는 예전에 줄곧 그다지 정진하지 않았지만 늘 자신은 대법제자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번 병업의 시련에서 저는 사존께서 저를 관여하고 계시며 분명 아무 일 없을 것이라는 점을 확고히 믿었습니다. 아마 이 일념이 매우 올바르고, 시련을 건너는 과정에서 제가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기 때문에 사존의 자비로우신 보호 속에 순조롭게 생사관을 넘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0년 2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2/2/4193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