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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중에서 안으로 찾은 몇 가지 일

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얼마 전 우리 몇 명 수련생은 을 수련생 집에서 법공부를 했다. 을 수련생의 아내는 수련하지 않지만, 을이 대법 수련하는 것을 매우 지지한다. 그들 부부는 모두 성격이 비교적 드세다. 을이 속인 마음으로 부부사이의 충돌을 대하면서 관(關)을 넘지 못했으며 속인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기에 모순은 늘 발생했다.

갑 수련생은 을의 아내가 너무 드세서 을 수련생의 수련을 교란한다고 여겨 을의 아내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기를 바랐다. 을 수련생은 두 차례나 갑 수련생이 어떻다고 말해 타인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갑의 집착심을 건드렸다. 그러나 갑 수련생은 자신의 집착심이 폭로되었고 심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어느 날 저녁 법공부를 하기 전에 갑이 을의 아내에게 “예전에 당신 집에서 스웨터를 짜던 노동자가 당신이 욕을 잘한다고 말했어요.”라고 했다. 을의 아내가 “누가 말했어요?”라고 물었다. 갑 수련생은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당시 놀랐고 매우 좋지 않은 물질이 들어 온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갑이 을의 아내가 말하는 것을 달갑지 않아 하고 복수를 하고 시비를 부추기는 것을 느꼈다.

법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갑에게 “왜 말을 그렇게 악의적으로 했나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했나요?”라고 물었다. 갑 수련생은 “나는 을의 아내가 너무 드세서 늘 을을 번거롭게 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반성하라고 말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것은 을의 아내가 그를 도와 심성제고를 해 주는 것이며 번거롭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녀는 속인이에요. 설령 그렇게 말해도 그녀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아도 그것은 을이 제고할 좋은 기회에요. 당신이 이러는 것은 보복하는 것이고 시비를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요?”라고 했다. 갑 수련생은 “나는 보복할 생각이 없어요. 다음에는 말하지 않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즉시 자신을 찾지 않았다가 보름 정도 지난 후 갑 수련생과 소통을 했다. 그녀는 나에게 “그날 당신이 나에게 악의적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정말 불편했어요. 나는 당신을 제일 가까운 사람으로 여겼는데 당신이 나를 악의적이라고 말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당신이 사과하기를 기다렸어요. 나는 을에게 이 일을 말했어요. 을은 연공인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만한 일도 지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 고 했어요. 내가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옳기에 마음을 천천히 내려놓았어요. 지금은 화가 나지 않아요.”라고 했다. 나는 즉시 해명했다. “당신이 한 말이 악의적이라는 것이지 당신을 지칭한 것이 아니에요. 당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고려하지 않았기에 이 일은 내가 잘못했어요.”

저녁에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다가 사상 중에 악한 것을 증오하는 사람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마음은 나를 쉽게 충동하게 만들어 말을 할 때 타인의 감수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만나면 마음이 평온치 않아 증오의 물질에 좌우된다. 더 깊이 찾아보니 갑 수련생이 ‘악의적(惡毒)’이라고 말한 것도 이 속인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 보니 이 두 글자는 정말 사람을 다치게 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기까지 쓰자 진심으로 부끄럽고 갑 수련생의 믿음에 부끄러웠다. 더 근원을 찾아 생각해 보니 자신을 충격해 마음이 불편한 모순을 만나면 첫 번째 일념은 먼저 자신을 찾고 냉정하게 어떤 집착이 불러온 것인지 생각하고 재빨리 발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하는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의 상태이다.

한때 갑 수련생은 문제에 부딪혀 관을 넘지 못하면 나를 찾아와 소통했다. 나는 자신의 경지에서 깨달은 법리로 그녀에게 문제가 어디에 나타났으며 어떻게 해야만 해결할 수 있고 사부님은 이런 문제에 대해 어디에서 어떤 법을 말씀하셨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분명히 말했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우리의 사유는 같이 있지 않고 우리 사이에 어떤 물질적 간격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 자신도 모르게 원망했다. 자신의 시련을 장기간 지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말을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원망할수록 내려놓지 못했고 갈수록 그녀가 한 많은 일이 법에 부합되지 않고 모두 집착인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의 이런 상태가 문제가 있으며 심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러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부님의 ‘2019년 뉴욕법회 설법’ 중의 한 단락 설법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내가 그 가장 나쁜 녀석을 붙잡았을 때, 가장 높은 그것을 붙잡았을 때, 그것은 말했다. ‘나 이곳은 바로 가장 좋은 것이고, 나도 당신을 돕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무수한 생명을 훼멸하였고, 우주 중의 무량무계(無量無計)한 중생을 훼멸하였다.”[1] 나는 사존께서 정법하는 이 일에 구세력이 자신이 제일 좋다고 여기는 그 한 세트의 것을 강요하고 사부님과 대법제자가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제일 좋은 방식으로 사존의 정법을 돕고 대법제자의 제고를 돕는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중에서 우주 중의 무수한 중생을 해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행위는 구세력과 얼마나 비슷한가. 독선적으로 자신이 법에 대한 인식을 수련생에게 강요하고 덮어놓고 어떤 문제는 그녀보다 인식이 높다고 생각하고 그녀가 오성이 차하다고 원망했으며 자신의 정확한 인식이 그녀를 시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인식했다. 또 법공부를 할 때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지 않고 그녀를 대조했다. 사실 사부님께서 매 제자에게 배치한 수련의 길은 다르며 각 개인이 깨달은 법리도 같을 수 없는데 내가 깨달은 법리가 어찌 수련생을 지도할 수 있겠는가? 단지 우연히 참고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매 대법제자는 오직 대법 중에서 착실히 수련해야만 비로소 원만한다. 이렇게 강한 자아를 실증하는 과시심, 독선적인 사람마음이 무엇을 변하게 하겠는가? 갑 수련생이 정진하지 않은 상태는 나를 보라고 한 것이 아닌가? 나를 제고하라고 한 것이 아닌가? 나는 도리어 정진하지 않는다고 원망했는데 이것이 수련인가? 나는 강대한 정념으로 자신의 사상과 공간 중의 독선적이고 자아를 실증하는 패괴된 물질을 소멸하고 그것이 틈 탈 기회를 주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남편과 한담을 하다가 말했다. “한 번은 시누이가 말벌에 쏘여 많이 부었는데 여러 날 지나서야 없어졌어요. 나는 말벌에 쏘였을 때 하루 이틀 사이에 좋아졌어요. 나의 저항력은 그녀보다 훨씬 강해요!” 이틀 후 밤에 나는 무엇에게 엉덩이가 물렸는데 그 자리에 큰 혹이 났고 남편도 물려 큰 혹 두 개가 생겼다. 나는 수련인이 만난 일은 우연한 것이 없으며 내가 또 법에 부합되지 않은 곳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으니 그저께 저녁 남편에게 말벌에 쏘인 일을 말한 것이 생각났다. 나는 당시 과시심이 없었고 단지 사실을 말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지? 나는 며칠 전 밍후이 라디오를 들은 기억이 났는데 한 수련생의 수련체득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당시 나는 깨달았다. 수련인이 관을 잘 넘은 것은 법의 위력의 체득이지 자신이 수련을 잘한 것이 아니다. 나는 평소에 내가 한 가지 일을 잘하면 ‘내’가 법을 실증한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이런 인식은 자아를 실증하는 사람마음이다. 나는 자신의 저항력이 강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수련을 얼마나 잘했다고 실증하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실제는 법의 위력의 체현이다. 몸의 혹은 5일 후 사라졌다. 그 후 나는 이 과시심이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돼 의식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이 일을 통해 나를 점화하셨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나는 수련생들이 자신의 심득체득을 교류해 그 차이를 보게 한데 감사드린다. 사부님의 고심어린 배치에 감사드립니다.

올해 6월, 나와 남편 그리고 한마을에 사는 둘째 동서와 함께 옥수수를 심었다. 옥수수를 심다가 남편은 내가 게을러 밭에 적게 온다고 말하다가 좀 지나자 또 나의 이것이 좋지 않다고 말하고 좀 지나자 또 나의 저것이 나쁘다고 말했다.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이것은 그가 나의 심성을 제고하게 도와주는 것이며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끊임없이 나를 말했다. 나는 좀 언짢았지만 생각했다. 화를 내서는 안 된다. 말을 하고 싶으면 해야지! 그는 좀 지나자 말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당신은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당신의 心性(씬씽)이 올라오면 당신의 공도 올라온 것이 아닌가? 일거사득(一擧四得)이다. 당신은 어찌 그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은 마음속으로 정말 그에게 톡톡히 감사드려야 하는데, 확실히 이렇다.”[2] 그러나 나는 속이 갑갑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 심성을 제고하면 마땅히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나는 왜 진심으로 감사드리지 못하는가? 단지 마땅히 감사드려야 한다는 이치만 알고 있다. 자신이 착실히 수련하지 못하고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눈으로 직접 본 것만이 사실이라는 관념이 나를 가로막은 것인가?

이상은 자신이 수련 중에서 만난 몇 가지 사례다. 깨달은 것이 옳지 않으면 수련생께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0년 10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31/4136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