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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화 운동’의 고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20년, 중공 정법위는 전국범위에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이른바 ‘제로화 운동’을 실시했다. 어떤 공안국, 파출소는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어떤 이는 주민센터에서 집에 찾아와 ‘삼서’에 서명하라고 협박하고 어떤 이는 기회를 봐서 납치하고 세뇌반에 보낸다.

‘제로화 운동’에 직면해 수련생마다 씬씽(心性)과 심태가 다르고 나오는 반응도 다르며 결과도 모두 다르다. 여기에 사악의 위선적이고 비열함을 언급하지 않고 우리가 마땅히 어떻게 법에서 이번 ‘제로화 운동’을 인식해야 할 것인지 말해보겠다.

1. 수련은 극히 엄숙하다

어떤 수련생은 이미 20년을 수련했는데 지금도 마음대로 ‘삼서’를 쓴다. 이런 사람은 수련이 극히 엄숙하다는 법리를 근본적으로 똑똑히 인식하지 못했고 근본적으로 정념이 없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극히 간고(艱苦)하고 매우 엄숙한 것으로서, 당신이 조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떨어질 수 있으며 하루아침에 망치게 되므로,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1]

“당신들은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엄숙한 수련이다!”[2]

“그러나 당신은 지금 수련하는 사람이다. 어떤 기점(基點)에 입각하여 대법(大法)을 대하는가 하는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로서, 바로 내가 당신에게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수련하는 중에, 나는 모든 방법으로 당신들의 온갖 마음을 폭로하게 하며 뿌리부터 그것을 파낸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갈수록 크다. 수련 중에 사람의 어떠한 것을 섞든지 모두 극히 위험하다.”[3]

수련에서 우리는 법에 동화해야 하고 정법 중에서 우리는 사람을 구도해야 한다. 사악이 협박하고 위협하고 회유하면 당신은 가볍게 ‘삼서’를 쓰는데 이것은 전향이 아닌가? 이것은 수련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명의 대법에 대한 태도는 극히 존중하지 않고 엄숙하지 않다. 만약 이랬다 저랬다하고 거짓을 꾸미고 슬쩍 속이고 고비를 넘으려 한다면 그것은 애들 장난이고 수련이 아니다.

2. 시련 앞에서 당신은 확고한가?

‘제로화 운동’에서 어떤 수련생은 큰 압력을 느낀다. 사실 그런 감옥에서 혹형을 당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시종 반석 같은 수련생은 힘든 나날을 견뎌왔다. 하지만 어떤 수련생은 누가 그녀에게 협박하지도 않고 단지 서명을 하면 이름을 제거해 주고 소란을 피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그녀는 서명한다. 이런 수련생은 매일 법공부를 하고 매일 발정념을 하며 진상을 아무리 많이 알려도 수련이라고 말할 수 없고 진정으로 수련하는 것이 아니고 진수제자가 아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떠한 압력도 모두 불법(佛法)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견정(堅定)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고험하는 것이 아닌가? 근본적으로 법에 대하여 아직 견정하지 않다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4]

‘제로화 운동’은 무엇인가? 소란, 박해인가 아니면 시험인가? 우리의 심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시험하고 우리가 옥처럼 충성스러운가를 시험한다. 아마 아주 중요한 중간고사일 수도 있고 관건적인 큰 고사일 수도 있다. 그러면 사람마다 하는 행동은 자신의 답안지가 아닌가? 당신은 사부님을 어느 위치에 놓았는가? 대법을 어느 위치에 놓았는가? 당신은 일을 어느 위치에 놓았는가? 당신은 미래를 어느 위치에 놓았는가? 이 모든 것은 이번 시험에서 한눈에 다 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그렇게 많은 법을 배웠지만 관건시기가 되면 법을 포기하고 사부님을 배신한다. 우리의 마음은 법에 있는가? 이것은 슬픈 일이 아닌가? 이것은 부끄럽지 않은가? 이런 생명은 사부님과 대법이 구도할 가치가 있는가? 이런 생명은 미래 우주의 왕이 될 수 있는가?

3. 전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이 되는 것은 최저선이 있기에 팔아먹거나 배신해서는 안 된다. 수련은 더더욱 원칙을 지켜야 하고 거짓말과 기만을 하면 안 된다. 전향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는 것이 대법 수련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저 한계선이다. 조상을 배신하고 사부님을 배신한 사람은 속인에서 모두 수치스러운 겁쟁이고 사람에게 버림받을 것이다. 하물며 이것은 우주대법, 창궁지존이잖은가?

자발적인 전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의 천만년 서약을 어긴 것을 의미하고 스스로 서약 위반한 모든 결과를 감당한다는 것이고 모든 감당은 성공을 앞에 두고 실패한 것을 의미한다. 대법의 대립면을 선택한 것이고 우주 중 가장 나쁜 생명이 되고 깊은 심연의 지옥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다. “그런 ‘전화서(轉化書)’에 주동적으로 서명을 했거나 연공하지 않겠다고 서면보증한 사람들은 이른바 ‘원만에 대한 집착을 포기한다.’, ‘인간의 관념을 포기한다.’는 명분으로 진정한 집착을 덮어 감추고 있으며 심지어 대법(大法)을 긍정적으로 보도하는 밍후이왕을 비방한다. 그러한 구세력은, 한 대법(大法) 수련생이 집착 때문에 이 기간에 일단 대법(大法)을 수련하지 않겠다고 서면보증을 했다면 바로 그가 이미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 것으로 인정한다. 만약 내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고 강박으로 쓴 것으로,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 정법(正法) 속으로 들어온다면 마난(魔難)을 크게 하여 관(關)을 넘게 할 것이다. 비록 사부가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일단 반면을 향해 나아간다면 결과는 두려운 것이며 천만 년을 기다린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다. 대법(大法) 수련생이란 명의를 걸고 사오(邪悟)를 퍼뜨리는 그러한 사람은 과거에 수련생이었든 아니었든 모두 대법(大法)을 파괴하는 마(魔)가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5]

“대법이 그에게 좋은 점을 가져다줄 때 그는 왔으며, 대법이 박해를 받을 때 그는 도망쳤다. 좋은 점을 그는 얻었고, 반(反)박해 속에서 그는 대법을 위해 말하려 하지 않으며 법을 실증하려고도 생각하지 않는데 이 생명은, 신의 눈으로 볼 때 바로 제일 나쁘다.”[6]

4. 큰 파도가 모래를 씻어내듯이 무정하다

수련은 모래를 씻어내는 것이고, 큰 파도의 간고한 데서 그런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합격하지 못하고 확고하지 못한 사람은 도태된다. 그러면 ‘제로화 운동’은 모래를 씻어내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금인지 아니면 모래인지는 모두 우리가 스스로 쓴 것이다.

사실 법리는 모두 배웠고 이치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큰 파도가 모래를 이는 시험에서는 절대 무정한 것이다. 단지 약간의 겉모습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고 조금 방황하거나 주저하고, 일념이 순정하지 않거나 바르지 않으면, 사악은 우리의 집착심을 확대시키고 우리의 마성을 강화하며 우리의 확고함을 흔들리게 한다. 오로지 한마음 한뜻으로 법을 향하고 최저선을 지키고 반석같아야 비로소 진짜 금이다.

5. 진수하지 않으면 도태에 직면

같은 시험에 직면해 어떤 사람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한걸음에 넘어가는데 왜 어떤 사람은 순식간에 떨어지는가? 사실 청성(清醒)한가 아니면 흐리멍덩한가, 이성적인가 아니면 감성적인가, 진수인가 하는 문제다.

어떤 수련생도 법공부를 하지만 어려움에 부딪히면 속인으로 돌아가고 법의 표준으로 가늠하지 않는데 다시 말하면 착실한 수련과 진수를 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괴로우면 흔들리고 어떤 사람은 손해를 받으면 불쾌하고, 어떤 사람은 어려우면 두려워한다. 어떤 사람은 여태 안으로 자신을 찾지 않아 관은 갈수록 쌓여 커진다. 어떤 사람은 안일심을 내려놓지 못해 갈수록 심해진다. 이런 사람은 작은 시험도 넘어가지 못하는데 큰 시험은 더욱 철저히 실패한다. 그러므로 평소 반드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매번 모순에 직면하고 매번 마음이 움직이면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법의 표준대로 했는가? 법의 표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진수하고 착실한 수련이며 법 속의 생명이다.

6. 도대체 누가 누구를 두려워하는가

한번은 ‘홍음2’의 ‘두려울 것 뭐냐’를 외웠다. 외우면서 나는 깨달았다. 그렇다, 두려울 것 뭐 있냐? 우리의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지 못해 귀신을 불러온 것이다. 우리가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두려운 것을 극복하고 박해를 제거하고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 우리는 바른 것이고 사악한 것은 바른 것을 억누르지 못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악을 억제하고 선을 칭송해야 하며 우리는 중생구도를 잘해야 한다.

발걸음마다 선택이 있고 시험마다 모두 극히 관건이다. 우리는 사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우리는 사악을 없애야 하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청성’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뿌리를 캐다’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건의’
[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10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26/4141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