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질투심을 층층이 제거하다

글/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나는1993년에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정말 행운으로 나는 사부님 설법 전수반에 두 번 참가했다.여기서 나는 자신이 질투심을 버린 심리 변화 과정을 말하려 한다.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질투심 문제를 특별히 언급하셨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1]또,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1]라고 명확하게 요구하셨다.

수련하기 전에 자신에게 질투심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수련한 후 질투심을 인식했지만 말하기 부끄러웠는데 그 후 그것을 정시하고 점차 질투심을 버렸다.이것은 내가 질투심을 버린 과정이다.

처음 이 마음이 건드려진 것은1996년의 어느 날이었다.동료 친구가 사부님 설법 테이프를 빌려 집으로 가져가 듣겠다고 했는데, 나는 그때“너의 남편이 이해하지 못하니 나한테 와서 들어.”라고 하면서 친구에게 주지 않았다.

친구가 떠난 후 나는 무언가를 잘못한 것을 느꼈다.나의 말은 변명일 뿐 내심은 친구가 가져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했다.나는 자신에게 왜인지를 물었다.깊이 파보니 나의 진실한 마음은‘내가 많은 대가를 치러서야 얻은 것을 다른 사람은 노력도 들이지 않고 공유하고 쉽게 얻는 것이 달갑지 않다. 그러니 친구가 내게 와서 듣게 해서 그녀도 고생을 좀 하게 해야지.’자신의 진실한 생각을 의식했을 때 자신도 깜짝 놀랐다.어떻게 이렇게 나쁜 생각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법 공부하면서 나는 수련은 안으로 찾고 뿌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그리하여 그날 저녁 자전거를 타고 연공장으로 가는 길에 나는 이 일념 뒤에 무슨 마음이 있는지를 생각했다.무슨 마음이 떠오르면 끄집어내 보았다.쟁투심인가?아니다.과시심인가?아니다.재물을 탐하는 마음인가?아니었다.질투심을 끄집어낸 순간,온몸이‘쏴’하고 몸과 마음이 홀가분했다.바로 질투심,나는 정확히 찾았음을 알았다.

그날 저녁,파룬좡파(法輪樁法)터우딩빠오룬(頭頂抱輪)을 연마할 때 정수리에서 아래로 한 층 두꺼운 껍질이 벗겨지는 것을 느꼈고 안에서 대머리의 몸이 나타났다.나는 이 질투심을 찾은 것은 다른 공간에서는 정말 한 층의 사람 껍질이 벗겨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연공을 마치고 나는 수련생과 낮에 있었던 일과 안으로 찾은 과정 및 연공할 때 나타났던 상태를 교류했다.그러나 나는 좋지 않은 마음을 찾았다고만 말했지 무슨 마음인지는 말하지 않았다.그때 생각으로는 질투심을 말하면 곧 이 사람의 도덕성이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느꼈기에 질투심 이 세 글자를 입 밖으로 내는 것이 부끄러웠다.두 달 후 방학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수련생)와 이번에 안으로 찾은 과정을 말하면서 처음으로 질투심이란 이 세 글자를 말했다.

그 후 수련 중에서 질투심에 주의를 기울였기에 많은 시간에 뚜렷한 질투심이 있는 것을 느끼지 않았다.오늘 질투심을 다시 언급하게 된 것은 며칠 전에 일어났던 사소한 일 때문이다.정말로 사소한 일이지만 아직 닦아 버리지 못한 질투심의 이 큰 문제가 반영되었다.

10여 일 전 인터넷에서 수련생이 가부좌하는 사진을 보게 됐는데 허리를 곧게 펴고 목이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나는 가부좌할 때 처음에는 두 다리가‘y’자 형이던 데에서 다리를 틀고 가부좌할 수 있었는데 정말 오랜 기간의 소업과 마음 닦는 과정(약20년)을 거쳤기에 수련생의 가부좌 자세에 인상이 깊었다.그 후 어느 날,아침 연공에서 가부좌할 때 금방 다리를 올렸는데 그 사진이 생각났다.나는, 그 수련생은 시작했을 때 자세이지 뒤에 가서는 이 자세를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때 나는 바로 이 일념을 잡고 자신에게 물었다.왜 이렇게 생각하지,무슨 마음일까?이것은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한사코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찾아야 자기 마음이 평형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이것이 바로 질투심이 아닌가?!정말 부끄러웠다.

연이어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첫 번째는초등학교 때 나는 착한 학생이었다.일부 동급생이 나의 숙제를 베끼면 그 학생도100점 맞고 칭찬받게 되었는데, 매번 그에게 베끼게 했지만마음은 늘 불쾌했다.이때 나는 나의 불쾌함은 내 지불한 것에 비해 그가 너무 쉽게 칭찬받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었다.어릴 때부터 그 질투심이 그렇게 강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두 번째,그것은70년대 일이다.버스에 사람이 많았기에 사람들이 먼저 탄 후 매표원이 앞에서 뒤로 가면서 방금 버스 탄 사람의 표를 끊었다.매표원이 금방 버스 탄 모든 사람을 다 기억할 수 없었기에 일부 사람은 능동적으로 표를 사지 않고 무임승차하려 했다.이런 사람을 보았을 때 나는 매표원에게 저 사람도 금방 버스를 탄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물론 이런 것은 단지 나의 심리적인 활동이었다.지금 나는 이것도 질투심인 것을 알게 되었다.왜냐하면 도덕적으로 나쁜 행동이지만, 그들이 이득 보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여전히 그렇게 강했다.

또 어떤 면에서 남보다 뛰어난 사람을 보면 나는 칭찬을 잘하지 않는다.특히 상대방이 과시하려 할 때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이건 쟁투심 이외에 나에게 더 많이 보인 것은‘질투심’이다.

또 나는 늘‘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의 역할을 했다.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부족한 점을 자주 보았다.밖에서 한 줄 광고를 보더라도 나는 그것의 옳고 그름에 대해 조목조목 말했다.나와 얘기를 나누면 제고할 수 있기에 도움이 필요할 때 나와 얘기 나누길 좋아한다고 말한 사람이 여러 번 있었다.그러나 일반적인 상황에서 나와 함께 있으면 나의 강세 때문에 압력을 느끼게 되고 내가 무슨 잘못을 들춰낼까 봐 두렵다고 했다.이때 나는 내가 평소에는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에‘주목하는’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의식했다.

뛰쳐나와 방관자 각도에 서서 이런 행위를 보면, 타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밖을 향해 보는 것이고,자신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타인의‘잘못’으로 자신이‘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남을 헐뜯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며,자신을 높은 도덕적 위치에 놓은 것이다.이때 나는‘잘못을 지적’하는 배후의 그 매우 강한 질투심을 보았다.이렇게 나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관용과 선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내가 이 단어를 입력할 때 나는 자신의 지금 이 층차에서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마음가짐을 알게 되었다.다른 사람에게 드러난 문제에서 자신에게도 반드시 이 문제가 있는지를 보아야 하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당신이 방금 했던 말에서 나는 자신의 어떤 문제를 보아냈다고 말하든가,말하는 방법(하는 방법)을 바꾸면 더 좋지 않을까?다른 사람의‘잘못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원용(圓容)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안으로 찾는 이번 과정에서 돌이켜보면,나는 이 집착심이 또 한 층 제거된 것을 알았다.미래 수련의 길에서 내가 좀 더 착실하게 걸어 한층 씩 각종 사람 마음과 후천적 관념을 닦아 버리고 끊임없이 우주의 진선인(真∙善∙忍)특성에 동화하여 한 걸음씩 진정한 자아로 돌아가길 희망한다.

27년의 반본귀진의 길을 돌이켜보면 정말 환골탈태,생명의 다시 태어남이다.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무한히 감사드립니다!사부님 감사합니다!

주:
[1]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0 6 11
문장분류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11/4068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