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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5박 5일

글/ 중국 대법제자 구이전

[밍후이왕] 1999년 7월 20일부 터 공산 사령(共產邪靈)과 장쩌민 깡패집단은 서로 결탁하여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기 시작하여 전국이 공포에 휩싸였다. 수많은 대법제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베이징으로 서둘러 달려가 전 세계에 마음속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이다!”를 외쳤다.

당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던 많은 수련생이 말하길 “각 지역의 역, 공항, 교통 길목에 사람이 있어 밤낮으로 매우 엄격하게 단속했어요.” 2000년 12월 10일, 현수막을 몸에 지니고 생수 한 병과 라면을 가지고 베이징 가는 차비만 챙겨 한 남자 수련생과 같이 차를 타고 외지로 갔다. 그곳에서 열차를 타고 베이징 위톈(玉田)현에 간 후 차를 타고 천안문광장으로 갔다. 차에서 내린 후 남자 수련생과 헤어지고 광장에 도착한 것은 이미 11일 정오였다.

정오에 가까운 천안문광장은 매우 조용했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어 나는 현수막을 펼쳐 광장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장쩌민을 고소하러 가려고 생각했다. 현수막을 펼친 후 나는 달리면서 외쳤다. “파룬따파하오! 우리 사부님께 결백을 돌려달라!”

절반 이상 돌았을 때, 멀리서 경찰 한 명이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와 나의 다리를 걷어차 쓰러뜨렸다. 그는 현수막을 빼앗고 나를 다시 일으켜 한쪽 팔로 목을 조이며 멀리서 다가오는 경찰차를 향해 끌고 갔다. 나는 가면서“파룬따파하오”를 외쳤고 그는 걸으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이때 광장에는 많은 대법제자들이 모였고, 경찰차도 여러 대 세워져 있었으며, 각 경찰차에서 많은 경찰이 내려 대법제자들을 이베코(봉고 버스)차량으로 잡아끌면서 끌고, 잡아당기고, 욕하고, 발로 걷어찼다. 대법제자들은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우리 사부님께 결백을 돌려달라! 파룬따파 결백을 돌려달라!”고 외쳤다.

모두가 광장 파출소로 보내져 각각 철창 속에 갇혔고,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는 큰 버스로 베이징의 모 구치소로 끌려갔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음으로 인해 나는 한 지프에 태워졌고, 운전자까지 포함해 경찰 네 명이 탔다. 나를 뒷좌석에 앉히고 양옆에 경찰이 앉았으며. 그들은 나를 주시하며 내가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지나 차는 새로 지어진 정원에 정차했다. 집 안의 불빛을 빌려 보니 정원 바닥이 채 깔리지 않았고, 정원에 개집이 하나 있었는데 목에 긴 쇠사슬이 매여 있는 티벳탄 마스티프(사자개) 두 마리가 엎드려있었으며, 나무 몇 그루와 지름이 8인치 좌우의 높이 3~4m인 철제 기둥이 있었으며 실외 화장실이 하나 더 있었다. 그들은 나를 큰 방으로 데려갔다. 방의 한쪽 구석에는 주변의 교통 상황을 보여주는 큰 스크린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걸상이 하나 있었고, 나를 그 걸상에 앉게 했으며, 두 사람을 남겨두어 당직을 서게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휴식을 취했다. 이 두 사람은 방 안에서 쉴새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졸리면 세수하고 손을 씻었다. 나는 그들에게 몇 시인지 물어보았고 그들은 11시가 조금 넘었다고 말했다.

밤 11시부터 이튿날(12일) 아침까지 그들은 나를 먹고 마시지 못하게 했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으며, 화장실을 못 가게 했다. 이튿날 아침 출근한 한 무리의 경찰들이 나를 에워싸고 나의 배낭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런 개인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고, 배낭을 생수, 라면과 함께 버렸다. 그들은 나를 정원으로 끌고 갔으며 총 11명의 경찰이 조사했다. 그들은 티벳탄 마스티프 두 마리를 불러 나를 물게 했고, 두 마리의 개는 큰 쇠사슬을 걸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두려워서 한 경찰 뒤에 숨었고, 그들은 개에게 잡아 먹어버리게 하겠다며 주소를 빨리 말하라고 했다. 나는 듣자마자 얼른 한쪽으로 걸어갔고 그들 네댓 명이 나를 심하게 때리면서 주소를 말하라고 했다. 나는 말하지 않고 “파룬따파하오, 경찰이 좋은 사람을 때린다!”라고 외쳤다.

그 후 그들은 2인 1조로 7~8명이 교대로 나를 혹독하게 구타했다. 주먹으로 때리고, 손으로 뺨을 때리고, 때려 넘어뜨린 뒤 발로 걷어차기도 했으며 그중에 주 모와 팡 모가 가장 악랄했다. 그들 둘은 나를 때릴 때마다 솜옷을 못 입게 했으며, 내 솜옷을 세차게 끌어 내려 때린 다음 입게 했다. 매일 아침 그들이 출근하고, 밤 10시가 넘도록 2인 1조로 번갈아 협박하면서 캐묻고 심하게 구타했다. 매번 한밤중에 나를 지킬 때는 맞지 않았다. 한 번은 주 모와 팡 모가 나를 쓰러뜨린 후 두 사람이 내 옷을 잡아당기면서 정원에 주차된 지프에 세차게 부딪혔고, 그 힘에 차마저 밀려 나가 두 사람이 얼마나 힘을 썼는지 짐작이 갔다. 주 모와 팡 모는 “네가 감히 장주석을 반대하다니, 오늘 너를 때려죽이고 여기에 묻어도 아무도 모르고 개를 풀어 물어 죽여도 누구도 모른다.”라며 기고만장하게 말했다. 내가 하늘이 안다고 말하자 그들은 의식적으로 하늘을 쳐다보고는 말이 없었다.

매일 밤 11시 이후에 나는 밖에 있는 나무나 철 기둥에 묶였고, 쇠사슬로 두 수갑을 연결하여 채웠으며, 두 마리의 큰 개가 나를 지키게 했다. 한 번은 그들 두 사람이 큰 개를 풀어 나를 물게 했고, 개가 내 앞에 거의 다가왔을 때 정념이 생겨 마음속으로 개에게 말했다.‘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한다. 너희들이 감히 나를 물어?’두 마리의 개는 풀이 죽어 되돌아갔고, 이후로 다시는 나에게 사납게 한 적이 없다.

16일 밤, 그들이 나를 심하게 때린 후 수갑을 채워 쇠기둥에 묶었고, 11시에 호적원과 그 보좌진을 남겨 나를 감시하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또 택시로 대법제자들이 청원하러 오지 않는지 조사하러 갔다. 나는 그날 밤 떠나기로 했다. 대법제자로서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사부님께 가지 해 주시길 청을 드렸다. 그들이 밤에 당직을 서는데, 밖이 추우므로 그들은 집안에서 왔다 갔다 하며 간혹 밖을 내다보았으며, 개가 지키고 있으니 내가 도망갈 수 없으며, 도망간다 해도 집에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수갑이 손에 부딪힌 느낌을 느꼈고, 사부님께서 도와주신다고 생각하니 기뻤으며 천천히 수갑에서 한 손을 빼내었다. 이때 집안에서 나를 지키던 사람이 물 한 그릇을 들고나와 먹여주었고, 몇 시인가를 물으니 11시가 넘었다고 말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얼굴이 집안을 향한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속하게 입구로 달려갔고, 두 마리의 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나는 손쉽게 몇 미터 높이의 담장에 올랐으며, 내려다보니 몹시 높아서 망설였는데 어느새 솜뭉치처럼 가볍게 땅에 착지했다.

입구의 불빛을 통해 보니 문 옆에 다싱(大興)현반비뎬(半壁店)향 이라고 쓰여 있었으며, 정원으로부터 나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밭쪽으로 달려갔다. 곡식을 거둔 밭은 얼어붙었으며 밭고랑은 걷기 어려웠다. 대지를 지나고 묘지를 지났으며 또 황무지를 지났다. 5박 5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잠자지도 않고 매일 그들에게 아침부터 밤까지 매를 맞은 데다 너무 먼 길 달려 몹시 힘들어 앉아 휴식한 후 또 달렸다.

험난한 길을 지나 마침내 도로변에 이르렀다. 길옆에 있는 나무 뒤에 숨어서 오가는 차량 중 의심스러운 차량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길옆을 따라 걸으며 오랫동안 걸어서 동틀 무렵 나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온 한 여성을 만나 그녀에게 몇 시인지를 물으니 7시라고 했다. 문을 연 가게가 없어서 그 여성에게 역을 물어보니 직접 역까지 데려다주었다. 때마침 베이징(北京) 남부역으로 가는 열차가 지나고 있어 플랫폼에서 한 할아버지가 나를 밀고 끌어당기면서 도와주어 열차에 올랐다.

열차에 올라 몇 걸음 못 가서 나는 정신을 잃었다. 열차가 흔들려 깨어나 보니 많은 사람이 구경하고 있었고, 그 당시 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에 때가 꾀죄죄한 모습이 매우 난처했다. 승무원은 내가 차표를 사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파출소에서 매일 신경이 곤두서 있었으므로 긴장이 풀리니 힘들고, 피곤하고, 배가 고파 갈증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도 많은 사람의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춤에서 천천히 100위안(약 만7천 원)을 꺼내어 베이징 남부역 가는 표를 샀다.

베이징 남부역에 도착해서 한시도 머물지 않고 바로 베이징 위톈현으로 가는 표를 샀고, 위톈현에 도착한 후 집으로 가는 열차표를 사서 막, 차에 올라탔다. 맞은편에 앉은 소녀가 과자와 물을 주어 사양했으나 소녀는 아예 과자 포장을 뜯고 생수병을 따서 나에게 주어 사양하지 못했다. 소녀를 보면서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확실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서 먹기 시작했고, 돈을 주니 소녀는 받지 않았다. 나는 베이징으로 대법을 실증하러 간 것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열차에 오르자마자 알아보았다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중생에게 감사를 전했다. 가는 도중에 차를 두 번 더 갈아타서야 집에 도착했으며 가족이 나를 도와 수갑을 풀어주었다.

지나간 5박 5일을 돌이켜보면, 매일 매를 맞았지만, 몸엔 상처 없이 아프지도 않았고, 밖에 묶여 있었지만 춥지도, 얼지도 않았으며, 손, 발, 얼굴에 동상이 없었다. 모두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하셨다.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하게 믿으면 넘지 못할 화염산이 없다!

 

원문발표: 2020519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5/19/4025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