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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수련생에게 몇 마디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근년 들어 각지에서 노년 수련생이 세상 뜨는 일이 비교적 많다. 세상 뜬 많은 노년 수련생은 자신의 가족과 주변의 세인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빚어내어, 그들의 구원에 어려움을 가져왔다

많은 노년 수련생은 대법을 수련하였으므로 신체가 건강해져, 평소에도 아주에너지가 넘쳐 난다. 그들은 자신의 많은 시간과 정력을 자식과 자손들에게 소모하고, 무조건 그들을 위해 힘과 마음을 쏟는다.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며, 자신의 고생스러움은 자식의 생활이 아름답고 편안함을 위해서이고, 그들이 고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손자나 외손을 마치 입안에 넣으면 녹을까, 손바닥에 놓으면 날아갈까 애지중지하는데 혈육 정을 자신의 수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수련을 하지 않을지언정 자식이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하려 한다.

많은 노년 수련생은 오늘까지도 어떻게 하는 것이 참다운 수련이고 진수하는 것인지 모른다. 마치 자신이 대법을 수련하는 목적은 가정이 갈수록 좋아지고 잘 살게 하는 것인 듯하고, 사람의 이런 이치를 초월하면 그들은 곧 망연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가족이 모두 구도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오히려 모르고 있다. 가족들이 자신과 이 한 생에 이루어진 연분은 인간의 이른바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한 노년 여 수련생은 두 손자를 데리고 있기 좋아한다. 어떤 때 그의 며느리는 그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때 한번은 며느리가 말했다. “제가 어머님께서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머님께서 수련을 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노년 부인은 깨닫지 못하고 자기 가족의 구원을 책임진 것이 아니라 손자만을 보살피고 있었고, 후에는 심지어 수련을 포기했다. 사실 그녀 며느리의 명백한 일면은 그녀의 구도를 바란 것이었으나, 그녀는 오히려 수련을 포기하여 남도 지체시키고 자기도 해쳤다.

한 사람이 대법을 얻은 것은 보통 생명인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아주 깊고 넓은 일에 연관된 것이다. 자신의 수련 성패는 필연적으로 많은 생명이 가고 남는 것에 연루된다. 왜 어떤 사람은 오늘까지도 이런 일을 법에서 인식하지 못하는가? 왜 머리가 늘 깨어 있지 못하는가? 어떤 노년 수련생은 자신의 가족을 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반대로 그들을 죽음으로 잡아당기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의 수명이 다 되어 죽을지 모르면서도 가족을 포기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들의 구원에 희망을 잃게 한다.

사존께서는 ‘전법륜’에서도 말씀하셨다. “그러나 한 가지 표준이 있는바, 당신이 하늘에서 정한 원래의 생명 노정을 지나 나중에 이어온 생명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연공하는 데 쓰라고 준 것이므로, 당신이 사상적으로 조금이라도 편차(偏差)가 생기면 생명에 위험을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생명 노정은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수련이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며, 대법은 영원히 어느 사람의 염원을 쫓아 당신 사람의 집착을 수호해 주지 않을 것이다. 만약 가족의 구도를 책임지려면 우선 자신의 수련부터 책임져야 한다.

노년 수련생 특히 70세가 넘은 수련생은 가장 좋기는 앞으로 모든 시간을 모두 수련에 쓰고 혈육 정과 세간의 일체를 상관하지 말아야 하며, 전심전력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만이 이지적이고 비로소 자신과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다. 당신이 당신 가족을 사랑한다고 마음속에서 그들을 내려놓지 못하면, 당신이 그들을 위해 소나 말이 되고 그들에게 아무리 많은 재산을 남겨 준다 하더라도 역시 순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으로서. 당신은 오직 그들을 구원해야만 비로소 가장 천만다행인 것이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정법이 결속되는 그 날에 가서야 후회한다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옳지 않은 곳이 있다면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6년 7월 1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14/3313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