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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의 위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발정념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중의 하나로서 그것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해 동안의 발정념에 관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정념에는 효과가 있는가? 위력이 얼마나 큰가? 얼마나 큰 작용을 일으켰는가? 갑자기 이렇게 물으니 자신도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자신이 발정념할 때 매우 많은 문제가 존재했는데 그러면 정념의 위력도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또한 문제점들이 현지 단체 발정념 할 때 더욱 체현됐다.

우선 발정념할 때 흔히 기점을 바로잡지 못했다.

일부 수련생들은 단체 법 학습에 참가하지 않는데 개인수련 상태에 빠져 혼자서 수련하고 고달프게만 수련한다. 이는 낡은 세력이 안배한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이고 낡은 우주의 이치에 부합되는 것이지 파룬따파 수련이 아니다. 정법수련을 이탈했고 정체 수련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지 않았다. 발정념의 기점이 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각도에만 있어 대법의 방향에서 빗나갔으니 당연히 효과가 좋지 않을 것이다.

법 학습을 잘 해야 한다는 것에 관해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강조하셨다. 만약 발정념 효과가 좋지 못하다면 분명히 법 학습 상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법 학습 소조는 사부님께서 긍정하신 한 가지 법 학습 형식이지만 현실 중에서 적지 않은 수련생들이 법 학습 소조에 참가하지 않는다. 늘 이런저런 핑계를 이유로 삼아 자신의 사람 마음을 덮어 감추는데 의심, 두려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마음 등등에 불과하다. 단체 법 학습에 참가하지 않는 수련생들은 수련과정 중에서 늘 관과 난이 끝없거나 혹은 어느 관을 장기간 넘지 못해 아주 고달프고 힘들게 수련한다. 특히 병업의 교란이 제일 흔한데 비록 발정념을 해도 효과가 없다. 이러한 수련생들은 정말로 청성해져야 한다. 정법노정은 이미 전면적으로 장쩌민을 고소하는 단계까지 왔고 정법의 형세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둘째는 발정념할 때 신사신법 정도가 부족하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1]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많은 수련생들이 발정념을 하기 전에 이미 인위적으로 감소시켰다. 자신한테 집착이 있기에 천목이 열리지 않아 정념의 위력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보지 못하니 믿지 않는 속인의 이치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어떤 수련생들은 믿어도 신심이 족하지 않고 마음속에 의문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발정념을 하니 위력은 당연히 감소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사상업방면의 문제도 있고 기타 사람마음과 집착심이 작용을 일으켜 교란하기도 한다. 관건은 여전히 신사신법 정도가 부족한 것이다.

이 문제에서 많은 수련생들은 모두 발정념할 때 자신을 높게 보아야지 자신의 위치를 낮게 놓거나 사악과 낡은 세력을 높게 보지 말라고 말한다. 사실 관건적인 문제는 누가 높고 누가 낮은가가 아니라 신사신법 정도이다. 자신을 낮게 보는 수련생들은 자신을 높은 곳에 놓기만 하면 되겠는가? 물론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을 높게 본다고 해서 당신이 신사신법한다는 것을 대표할 수 없는데 그것은 다만 한 방면일 뿐이다. 션윈 시작 프로그램에는 늘 사부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정법하는 웅장한 장면이 있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들도 교류문장에서 늘 사부님께서 우리를 거느리고 불법신통을 발휘하여 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전 세계 정각 발정념이든 현지 단체 발정념이든 모두 전체 대법제자가 사부님 법력의 가지 하에 사부님께 불법신통을 빌리고, 사부님 법의 보호 하에 정체로 행동하여 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고 조사정법하는 것이다. 관을 넘는 과정에서 설사 개인적인 발정념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부님의 불법신통을 빌려 가지 받고 동시에 뭇 호법신들이 힘을 합치며 기타 바른 신, 고급생명들이 참여하고 도와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발정념 자체에 대한 바른 믿음과 깨달음이다.

어떤 수련생은 직접 대법의 위력을 목격했고 확실히 자신에게 공능, 신통이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 그건 정말로 모두 당신 것인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어떤 것은 당신 것이고, 어떤 것은 아니다. 당신 것이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이미 상응되는 층차에 도달해 정상적인 정황에서 사부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공능, 신통을 열어주셔서 당신으로 하여금 정념을 바르게, 착하게 사용하여 악을 제거하도록 하신 것이다. 설사 당신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건 당신이 법의 기점에 서서 대법의 표준에 부합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비로소 당신에게 자물쇠를 열어주셨고 당신더러 사용하도록 하신 것이다. 사람 속에서 수련하는 우리에게 사부님이 안 계시다면 우리의 정념은 곧 사람마음으로서 마치 한 가닥 연기처럼 흩날리고 아무 것도 아니다. 어디에 위력이 있단 말인가? 자신의 일체는 모두 사부님과 대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정황은 그때의 공능과 신통이 당신 것이 아닌 것이다. 산처럼 큰 거대한 난이 당신을 향해 왔을 때, 당신의 감당능력과 참는 정도를 훨씬 초과했을 때, 생사에 관련되는 거대한 난일 때 당신은 어떻게 넘겠는가? 당신 스스로는 전혀 넘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사부님이 계신다. 사부님께 빌고 자신을 완전히 사부님께 맡기며 생사거취를 사부님이 결정하도록 하면 이때 당신은 충분히 관을 넘을 수 있다. 자신의 공능, 신통이 작용을 발휘했다고 착각하지 말라. 사실 이것은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이다. 또한 사부님께서 당신이 법에 있는 것을 보시고 당신을 앞으로 밀어줌으로서 당신이 공능, 신통을 느끼기 전에 관과 난은 이미 구름같이 깨끗이 사라져버렸을 수도 있다.

다음으로 일정한 정도에서 우리의 발정념은 이미 본말이 전도됐다.

자신한테 묻는다. 대법제자의 발정념은 무엇을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해 발정념을 하는가? 당신은 대법제자가 발정념 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고 세인을 구도하며, 악당을 해체하고, 박해를 결속 지으며, 조사정법하고, 법정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정각 발정념 내용을 보자. ‘대법을 파괴하는 일체 사악을 제거한다…’ 여기에 위에서 언급한 단어가 하나도 없다. 이는 무엇을 설명하는가? 개인적인 깨달음이지만 무엇을 하든 모두 문제의 근본을 해결해야 하고, 뿌리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악이 인간세상에서 표현할 수 있는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 물론 낡은 세력이고 사악한 요소로서 그들은 다른(더욱 높은) 공간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정념, 신통을 사용해 그것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문제가 생기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뿌리이다. 하지만 우리 지역 단체 발정념 내용을 돌이켜보자. ‘즉시 610사악한 조직을 해체한다.’, ‘즉시 모모모 세뇌반을 해체한다.’, ‘모모가 즉시 업보를 받도록 한다.’, ‘우체국 직원들이 장쩌민 고소장을 차단 억류하는 것을 즉시 제지한다.’ 작용을 일으켰는가? 효과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기대했던 목적에 도달하기 어렵다. 사실 일정한 정도에서 우리는 본말을 전도한 것이 아닌가? 발정념할 때 자신이 발정념하여 도달하려는 목적을 지나치게 추구하다보니 직접 그 이른바 목표를 강조했다. 여기에는 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가. 이것은 ‘밖으로 향해 찾는 것이 아닌가?’ 아주 깊이 감춰진 내재적인 근본문제를 소홀히 했고, 정념의 내용과 과정을 소홀히 했으니 그래도 ‘안으로 찾았단 말인가?’ 수련자의 ‘법보(法寶)’를 잃은 것이 아닌가? 이러한 정념의 위력에는 당연히 제한이 있을 것이고 정념의 효과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물론 발정념할 때 목표가 명확하고 목적성을 가지고 해야 한다. 특히 상황이 긴급할 때, 위험이 나타났을 때, 구체적인 박해, 어느 사건, 어느 악인을 겨냥해 정념과 신념(神念)을 내보낸다면 그 일념으로 능히 사악을 멈추게 하고 그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제지할 수 있다. 관건은 신념(神念)을 사용해야지 사람마음이나 사람 생각이면 안 된다. 염두가 바르고 마음이 바르다면 일념만 내보내도 그들 배후의 결정적인 요소를 즉시 제거할 수 있다. 이때 표면적인 것들은 저절로 사악해지지 못할 것이다.

그 외에 발정념할 때 자신에게 구하는 마음이 없는지, 생각이 순정한지도 아주 중요하다.

직업 때문에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직장에서 하는 국기게양식에 참가해야 한다. 예전에는 이것을 아주 배척했고 국기를 올릴 때마다 발정념하여 혈기를 멈추게 하거나 깃대를 끊어버리라는 신통을 내보냈다. 하지만 종래로 이런 결과가 나타난 적이 없었다. 후에 밍후이 교류문장에서 수련생은 주동적으로 출격하여 사악을 제거해야지 수동적으로 기다리지만 말라고 말했다. 나는 아주 계발을 받았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더 이상 인위적으로 배척한 것이 아니라 관념을 개변하여 정기적으로 참가하는 혈기 게양식을 주동적으로 사악을 제거하는 기회로 삼았다. 평소에는 찾고 싶어도 찾지 못하는데 오거라. 마침 너희들을 제거하겠다. 동시에 발정념할 때 더 이상 무슨 효과를 추구하지 않았는데 그냥 조용히 발정념을 하면서 배후 사악의 요소를 제거했다. 기적은 바로 이렇게 욕심과 구하는 마음이 없는 정념 중에서 발생했다.

한번은 발정념할 때 갑자기 옆에 동료가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들렸다. “보세요. 보세요. 국기가 올라가지 못하네요.” 이렇게 몇 분 동안이나 중간에 걸려버렸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고 보지도 않은 채 여전히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다. 또 한 번은 국기게양식 때 발정념을 했는데 깃대 꼭대기까지 거의 왔을 때 갑자기 동료가 말했다. “끊어졌네. 끊어졌어.” 알고 보니 기를 게양할 때 사용하는 가는 밧줄철사가 끊어졌고 혈기가 땅바닥에 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자신이 이 점에서 제대로 깨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천목이 열리지 않은 것을 사부님께서는 알고 계시는데 이렇게 인간세상에서 나로 하여금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하게 하셨고 확실하게 발정념의 거대한 위력을 느끼게 됐다. 이것은 모두 사부님의 점화와 깨우침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유심연공(有心煉功), 무심득공(無心得功)’[2]을 말씀하셨는데 이 역시 발정념에 적용된다. 목적을 가지고 하지만 어떠한 결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염력을 어느 한 가지 목적에 집중하여 조용하고 자비로우며 평온하게 해야 한다. 화를 내거나 무턱대고 힘을 쓰거나 보복, 투쟁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 마음이고 모두 사람 속의 정이다. 사악을 해체하고 악인이 업보를 받게 하는 것은 발정념의 최종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사람 중에서 인과응보의 체현으로서 여전히 속인 층차 중의 것이다. 세인구도와 박해를 해체하는 것을 통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 대법의 법리를 원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근본이다. 사람 속의 정, 사람 속의 선(善)은 모두 우리가 닦아내야 할 것들이다. 정을 수련해 없애야만 비로소 자비가 나올 수 있고 불법(佛法)은 자비와 위엄이 동시에 존재한다. 자비야말로 비로소 위력이 비할 바 없는 것이다. 당신이 대법이 요구한 표준에 도달했을 때 불법의 위엄 때문에 사악은 스스로 제거될 것인데 이유는 대법의 법리가 그것을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여기는 중국대륙의 작은 현성이다. 정법노정의 변화와 현지 정법형세 발전의 수요에 따라 현지 발정념 내용은 늘 바뀐다. 어떤 때에는 도시와 협력해 조절도 하는데 결과를 보면 많은 경우 우리 지역 단체 발정념 효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여기에서 발정념하는 방면에 있어 수련생들이 모두 안으로 자신한테 어느 방면의 누락, 부족점이 있는지 찾아보기 바란다. 기점을 바르게 하고 자신을 순정하게 하며 사람마음과 집착을 제거하여 자신의 정념이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2 – 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5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27/3131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