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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천리길, 드넓은 불은(佛恩)이 가호하다

글/ 간쑤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어려서부터 단순하고 선량하며 근심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자주 기이한 생각이 떠오르곤 했는데 자신이 어떻게 세상에 왔는지? 오기 전에 나는 누구였는지? 이후에는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늘 사람의 생명은 끝이 없다고 느껴졌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번은 교실에서 수업하려는데 갑자기 내 오른쪽 앞 방향에 있는 문밖에서 길이 한 자, 두께 한 치 넘는 나무껍질 달린 몽둥이가 날아들어 오는 것을 보았다. 반응할 사이도 없이 ‘탁’하고 내 머리에 명중하고는 바닥에 떨어졌는데 머리를 만져보니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얼른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막대기가 없었다! 밖을 내다보니 사람이 없었고 내 주위 친구들도 각자 놀이에 빠져 있으면서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갑자기 나는 오리무중에 빠졌고 허황하여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또한, 여러 사건이 모두 나에게 인간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가 있는데 풀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끼게 했다. 이후에 내 꿈에는 늘 하늘에 변화가 발생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런 거대한 항성계가 자리를 바꾸고 천지가 뒤집어지며, 일월성신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졌는데 조마조마하게 보았다. 이런 광경은 아무리 오만한 생명이더라도 더는 오만하지 않게 하도록 충분했다. (법을 얻은 후에야 나는 다른 공간에서는 정말로 붕괴하는 동시에 새로 만들어지며 우주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자신의 한평생이 순풍에 돛 단 듯이 자유를 동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평범하게 지낼 줄로 알았다. 하지만 만약 이 사람의 일생에 우여곡절이나 풍파를 많이 겪는다고 정해졌다면 그는 이러한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소년 시대부터 시련이 닥쳤는데 끊임없이 수술했고 골반, 다리뼈에 하나씩 병변이 나타나 나는 종종 뼛속까지 나빠졌다고 자신을 비웃었다. 불치병에 걸린 고통은 마치 악독한 짐승처럼 미친 듯이 내 마음을 삼켜버렸고 증오와 의기소침함으로만신창이가 됐다. 모두 돌아서면 뭍이라고 말하지만, 나의 ‘뭍’은 어디에 있는가? 이때야 나는 부득불 이전의 꿈을 다시 떠올려 답을 찾고 진리를 찾기 시작했다.

수술 후 의사는 골절될까 봐 많이 걷지 못하게 해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만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나는 각종 기공 중에서 배회했고 각종 서적을 뒤졌다. 어떤 때 책 한 권에서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뿐이었고 나는 자신이 정수라고 느껴지는 부분을 베꼈다.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알 듯 말 듯한 불가 수련 이야기였다는 것을 나중에 발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잡지 한 권을 보게 됐는데 그 중 반쯤 되는 내용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의 신기한 경험과 심성을 향상시킨 사례였다.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 다 읽었고 그 후 강렬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수련할 거야!

‘전법륜’을 다 읽고 나서 마음속의 풀리지 않았던 문제들이 탁 트였고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든 생명을 다 바쳐서라도 찾고자 했던 진리를 드디어 찾게 됐으니 그야말로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는데 그런 감동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그때부터 내 생명에는 질적인 비약이 있었다. 온몸의 세포까지도 유쾌하고 기뻤으며 모든 것은 그렇듯 간단하고 명백하며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떠한 근심 걱정도 없이 내심 편안하고 행복하며 순수했으며 아무런 마음의 장벽이 없이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있었는데 매일 거대한 불은(佛恩)에 흠뻑 빠졌다.

힘든 이별

그러나 행복은 짧디짧은 몇 개월뿐이었고 사악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이 광적으로 박해를 시작했다. 천지를 뒤덮는 기세로 유언비어를 날조해 중상했는데 그 슬픔과 압력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드디어 어느 날, 나는 마음속 족쇄와 속박을 뿌리치고 처음으로 베이징으로 대법을 수호하러 떠났다. 4박 4일의 경험은 나에게 커다란 진동을 주었고 수많은 대법제자가 서로 잇달아 걸어 나왔다. 돌아온 후 다급히 수련생들을 찾아내 감정과 경험을 교류하면서 “저는 또 갈 거예요. 돈이 없으면 걸어서라도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뜻밖에 즉시 두 수련생이 나와 동행하겠다고 나섰고 수련생 즈롄(紫蓮)은 나를 격려했다. “안심하고 걸어가! 걷다가 발뼈가 튀어나와도 상관하지 말고 지금의 이 일념을 굳게 지켜.” 하지만 내가 막 집에 왔는데 또 간다면 부모님께서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TV에서의 대법에 대한 비방과 모함에 마음이 타들어갔고 하루라도 더 있으면 마음속에 죄책감이 더 생겼다.

갑자기 어느 날, 언니(수련생이 아님)가 나에게 새 신발을 사주면서 말했다. “이 신발을 신으면 길 걸을 때 발이 아프지 않을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깜짝 놀랐다. ‘떠날 때가 됐구나.’ 평소 언니는 내 수련을 매우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그녀의 명백한 일면이 대법을 수호하는 일이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 잘 알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다 됐고 더는 주저해서는 안 된다,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수련생이 아님)는 내가 또 떠나려는 것을 보고 울면서 만류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것은 내 생명이 까마득히 먼 오래전에 한 맹세라고 알려주면서 평온하게 말했다, “제 생명은 사부님께서 주신 거예요. 제가 생생세세 고생하면서 기다린 것이 바로 이 대법인데 지금 아무리 어려워도 나는 대수롭지 않아요. 이것 또한 나의 숙원을 이루는 것이기도 해요.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만약 필요하면 정말 내 생명을 바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아요.” 방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울었다. 중공의 사악을 알고 있었지만 어떠한 박해가 나를 기다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일단 진리와 생명존재의 진정한 의의를 알았을 때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쳐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 하지만 마음속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음침함은 공중으로 퍼져 마치 생이별처럼 ‘바람은 소슬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風蕭蕭兮易水寒,壯士一去兮不複還)’의 비장함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몇 년 후에도 ‘어머니, 아들의 말 한마디 들어보세요’라는 노래가사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생명의 극한

보름 후, 즉 2000년 7월 중순 어느 날 새벽 3시, 나는 ‘전법륜’을 외우면서 ‘나의 온 생명으로 대법을 수호하리라’라는 마음을 안고 또다시 길을 나섰다. 집 문을 나서는 순간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을 태연히 버렸음을 느꼈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질병 때문에 어려서부터 과잉보호를 받았고 은둔하여 오랫동안 먼 길을 걷지 않았기에 몇 년이 지나도 신발 하나 망가지지 않았다. 문을 나서자마자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는데 마당 철문이 잠겨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사부님, 저는 반드시 나가야 해요’ 안간힘을 써서 기어 올라갔는데 정말로 넘어갔다. 거리에 나서자 갑자기 아버지가 뒤에서 쫓아오면서 나의 아명을 불렀다.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몰라, 누가 와도 소용없어.’ 한참 걷다 되돌아보니 거리는 조용하고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수련생 아주머니와 언니랑 약속한 곳에 가서 그들과 만난 후 함께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생명의 한계에 부딪혔는데 당시는 더위가 한창 심할 때여서 길가에 인가라곤 없었다. 입이 마르고 혀가 아픈데다 또 더워서 쉼 없이 땀이 나고 온몸에 힘이 빠져 더는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수련생 아주머니가 말했다. “후회되니? 너의 엄마 아빠가 네가 이렇게 고생하는 걸 보면 분명히 마음이 아플 텐데.”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수련은 저 자신의 일입니다.” 그녀는 “맞아.”하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점차 날이 어두워졌고 내 두 다리는 천근처럼 무거워져서 걷는 것이 아니라 끌고 가는 것 같았다. 정말 걸을 수 없자 나는 그들보고 먼저 가라고 하면서 그들을 지체해서는 안 되기에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겠다고 했다. 수련생 아주머니는 살짝 나무라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거니? 가자!”하고는 내 팔을 당기고 걷기 시작했다. 온종일 걸어서 쉬지 못한 탓에 오장육부가 다 마른 것 같은데도 몸에서는 여전히 땀이 대량으로 흘러내렸다. 옷은 진작 흠뻑 젖었고 솔솔 부는 밤바람도 나의 땀을 식히지 못했다. 이렇게 나는 수련생 아주머니가 팔을 부축해주어 날이 밝을 때까지 걸었다. 나에게 실오라기 같은 힘만 좀 남았을 뿐 다리는 거의 스스로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나는 자신의 생명이 다한 것을 느꼈고 수시로 죽을 것만 같았다. 수련생에게 누를 끼칠까 봐 재차 거절하려 할 때 자그마한 시장에 도착했고 아주머니는 나에게 토마토 두 개를 사 주었다. 나는 남몰래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다시 살아났다.’

가혹한 고험

길에서 우리 셋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홍음’을 외우면서 걸었다. 며칠 후 수련생 아주머니와 수련생 언니네 고향에 도착했다. 그녀들은 친척이었는데 가족들은 만나서 매우 기뻐했고, 수련생 아주머니는 너무 힘들었으니 한 이틀 쉬고 떠나자고 했다. 그런데 이튿날 수련생 아주머니의 아들과 수련생 언니의 남편이 소식을 듣고 차를 타고 달려왔고 친척들도 잇달아 그녀들을 에워싸고 공격하며 욕하면서 꾸짖었다.

우리는 살며시 어떻게 도주할 것인가 논의했다. 저녁에 우리는 두 집에 나눠 자게 됐고 나와 수련생 아주머니가 같이 있었다. 졸다가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수련생 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빈펀(繽紛), 어서 가자.” 그녀는 나와 10여 미터 떨어져 있었는데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고 유독 그녀만 똑똑히 보였다. 벌떡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3시가 넘었다. 나는 얼른 수련생 아주머니를 깨워 살그머니 마당에 나왔는데 대문은 잠겨 있었고 담장도 아주 높았다. 우리는 조심스레 돼지우리 흙담을 밟고 올라갔다. 흙담에서는 흙이 주룩주룩 떨어졌고 돼지가 꿀꿀대고 있었다. 우리가 가까스로 지붕에 올라가 보니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수련생 아주머니는 나보고 먼저 뛰어내리라고 소곤거렸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뛰어내렸는데 머리가 ‘윙’하면서 마치 터지는 것 같았고 허리가 먼저 땅에 닿았다. 수련생 아주머니가 어떻게 됐냐고 묻자 나는 허리의 통증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후닥닥 일어나서 말했다. “아무 일도 없어요!” 그녀가 뛰어내리려는 것을 보고 얼른 제지시켰다. “잠깐 뛰어내리지 말아요.” 마침 집 옆에 전봇대가 하나 있어 말했다. “전봇대를 안으세요.” 그리고 내 어깨를 밟게 한 후 나는 천천히 웅크리고 앉았다. 그녀가 안정되게 착지한 후 우리는 재빨리 수련생 언니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수련생 언니 남편이 발견하고는 우리를 쫓아왔다.

다시 집에 돌아간 후 나는 허리가 에는 듯 아팠는데 주위로 확산하기 시작하면서 온몸이 다 아팠다. 수련생 아주머니는 말했다. “이제 우리 둘은 갈 수 없어. 너의 집에서는 사람이 오지 않았으니 너는 갈 수 있다만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안 되겠어. 아니면 우리 함께 돌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기회를 찾는 게 어때?” 이 시각 나는 자신이 생사존망의 대목에 서 있다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요, 저 혼자 가겠습니다.”

이때 날은 이미 다 밝았고 수련생 언니 남편은 나를 한참 데려다 주면서 설득했다. “너 혼자서 얼마나 위험하냐? 이렇게 먼데다가 돈도 없이 어떻게 걸어갈 수 있겠어? 너는 아직 이렇게 젊은데 그냥 돌아가거라.” 나는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에게 관심가져 주셔서 하시는 말씀이지만 제가 선택한 길은 변하지 않아요. 걸어 나왔으면 반드시 끝까지 걸어갈 겁니다.” 그는 말없이 내가 멀리 떠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을 잘못 가지 않기 위해 나는 철도를 찾아서 나의 큰 방향 – 베이징을 향해 출발했다. 대략 반 시간 후, 수련생 아주머니의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쫓아와서 말했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아무것도 없이 길에서 어떻게 자고 뭘 먹어요?”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문제없어요, 나는 아무렇게 해도 다 됩니다.” 그는 또 소리쳤다. “당신 정말 돌아가지 않으려면 후회하지 말아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당신을 말리지 않았다고 나무라지 말고, 우리 어머니가 당신을 데리고 나왔다고 나무라지도 말아요.” 나는 돌아서서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이것은 제 개인적인 행위로서 절대로 누군가를 연루시키지 않아요.” 그러자 그는 돌아갔다.

나는 사존께서 닦아 버리기 힘든 나의 많은 사람 마음을 폐쇄해 주셨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든 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저녁에 어디까지 갔으면 그곳에서 잤는데 더러운 것과 더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배고픔과 미각이 없었으며 힘들면 앉아서 법공부를 했다. 잠잘 때 개미, 벌레, 쥐 등이 몸 위에서 기어 다녔고 옆에서 기차가 덜커덩거려도 시끄러워하지 않았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내 얼굴에는 언제나 소금이 한 층 뒤덮였고 땀은 머리카락을 따라 흘러내렸다. 40일 넘게 내 옷과 머리카락은 마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바람이 불면 또 아주 추웠는데 내 몸에 있던 단추, 핀 등 철로 된 모든 물건은 전부 녹슬었고, 노란 녹은 피부 속까지 스며들었다.

기찻길 양옆은 모두 계란만큼 큰 돌멩이여서 신발 바닥이 아주 쉽게 문질러져서 금방 구멍이 났다. 아플 때는 땅을 딛지 못했고 두 새끼발가락 발톱도 떨어졌다. 괴로울 때는 위장 속에 있는 것이 음식물이 아니라 이상하게 생긴 큰 돌멩이 같았다. 나는 고통스러워 소화가 안 됐고 한 달 넘는 동안에 매일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침에 금방 일어설 때면 나의 발의 힘줄은 마치 절단된 것처럼 아파서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10여 분을 움직여서야 좀 나아지지만 잠깐 앉고 나면 또 매우 아프다. 허리가 아파서 누우면 꼼짝하지 못하고 발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을 때면 나는 수련생 즈롄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을 격려한다. “마음 놓고 걸어가라! 걸어서 발뼈가 튀어나와도 아랑곳하지 말고 지금의 이 일념을 확고하게 지켜야 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좋아, 너는 아파라. 나는 전혀 너를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대법은 이미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를 깊숙이 내려 칼 숲과 불바다도 감히 지날 수 있으려니 하물며 요만한 고통쯤이야.” 이렇게 하니 차츰 아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걸을수록 가벼워졌고 마치 다리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이것은 인간세상의 고생이 아니고 한 사람이 고생을 좀 겪는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구세력은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해 장애물과 마난을 설치해놓고는 나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일분일초마다 죽음이 바로 내 주변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마귀는 이를 갈면서 수시로 내가 건너가지 못할 죽을 고비를 만들어 나로 하여금 시시각각 위험의 변두리에 처해있게 했다.

내가 돌아왔을 때 수련생들은 놀라면서 나에게 과정을 물었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냐고 물었다. 나는 자신이 무슨 고생을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마치 금방 사라져 버리는 구름처럼 내 마음은 광활하고 자유로우며 확 트였다. 유일하게 똑똑한 것은 사존께서 극진한 자비로 가호해 주셨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정말 하늘을 종이로 삼고 사해를 먹으로 삼아도 다 쓰지 못한다.

기적이 나와 함께하다

혼자 걷다 보니 빨리 가려는 조급한 마음이 생겼다. ‘빨리 가야지.’ 하지만 허리 통증은 한시도 멈추지 않아서 허리를 구부정하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갔는지 모를 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마침 흙집 한 채가 보여 잠깐 휴식하려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앉는 것이 서 있는 것보다 더 아파서 질식할 것 같아 안간힘을 다해 일어섰다. 금방 몇 분을 걸었을 때 갑자기 누군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빈펀, 어서 가자!” 내려다보니 아래 도로 위에 차 한 대가 급정거하고 있었고 수련생 언니가 차 문에 서서 나를 보고 손을 젓고 있었다. 나는 멍해졌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꿈에 이미 이 장면을 나에게 점화해 주셨던 것이다. 나는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고 아픔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달려 내려갔다. 차에 앉으니 수련생은 내가 혼자서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베이징까지 가려면 얼마나 어려울까? 라는 생각에 몰래 나와서 급히 몇 위안 하는 차를 타고 곳곳에서 나를 찾았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자 자연스러움에 맡기자고 생각하고는 무의식중에 창밖을 내다보니 마침 내가 철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때서야 나는 철길과 도로가 이렇듯 가까운 것을 발견했다. 만약 철길과 도로가 평행되지 않거나 만약 그녀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면, 만약 내가 작은 흙집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면, 만약 내가 조금 일찍이 혹은 조금 늦게……. 사존께서 제자에 대한 크나큰 자비를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었다.

한번은 해가 졌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길을 다그치고 있었다. 둥그런 큰 받침대 옆에 갔을 때 길이 좁은 데다 잘 보이지 않아서 더듬어 걷고 있었다. 앞에서 걷던 언니 손에 비닐봉지가 만져져서 무엇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떡이 두 개 담겨 있었고 아직도 온기가 있었다. 거기는 허허벌판인데 말이다. (우리가 온종일 걸었지만, 전혀 사람을 보지 못했다)! “사부님이시다…….” 우리는 울먹이면서 말을 잇지 못했고 눈물과 함께 조용히 먹었다. 우리는 자주 길에서 음식을 주웠는데 수박, 계란, 심지어 포장을 뜯지 않은 빵도 있었다. 나는 거의 매일 큰 뭉치의 구름 혹은 안개 같은 물질이 가슴에서 서서히 주입해 들어가는 것을 느꼈는데 매우 신성하고 미묘했으며 설령 잠을 잘 때도 느낄 수 있었다. 길에서 우리는 아주 적게 먹었지만 나는 한 번도 배고픈 느낌이 없었다. 그리고 내 허리와 발은 줄곧 아팠는데 사존께서 끊임없이 나의 신체를 조절해주시고 정화해 주심을 시시각각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꿈에 특별히 추웠는데 누군가 나에게 옷을 가볍게 덮어 주어 단번에 따뜻해졌고 길을 걷다가 갑자기 만두가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웃으면서 ‘정말 황당하구나. 어찌 이런 생각을 하지’라고 생각했다. 점심때가 되어 우리는 마을에서 마음씨 고운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만두 한 시루를 내오면서 “우리 아이는 밥할 줄 몰라요. 이것은 아이가 스스로 배우면서 찐 것인데 꺼려하지 말고 여기에서 앉아 먹어요. 남은 것은 다 갖고 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옷과 바지를 한 더미 찾아내어 우리에게 억지로 주면서 말했다. “날씨가 추운데 당신들이 너무 얇게 입었어요. 아직도 길이 멀어요.” 이런 것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쓰렸다. 내가 스치고 지난 생각마저 사존께서는 모두 안배해 주셨던 것이다.

걷다 보면 기차 굴이 아주 많은데 굴이 깊은 곳은 대낮에도 새까맣다. 안은 울퉁불퉁하고 큰 구덩이가 아주 많아 주의하지 않으면 구덩이에 떨어진다. 손을 내밀어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눈을 감은 것과 마찬가지여서 우리 둘은 손에 손을 잡고 침목 하나하나 감각으로,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해 걸어 나왔다.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백 프로의 확고함과 믿음이 있어야만 발자국마다 평온하게 침목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우면 헛디디면서 넘어지고 그러면 일어선 후에도 단번에 잘 서지 못한다. 우리 둘은 자주 넘어지는데 일어나는 그 순간에 기차가 귓전에서 길게 울리며 지나가 정말 아슬아슬했다.

우리가 온갖 고생 끝에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을 때 한 여경이 즉시 다가오더니 기세등등하게 우리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들이 맞지요?” 우리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녀가 손을 흔들자 옆에 서 있던 이베코 차량이 신속히 다가오더니 악독한 경찰 몇 명이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우리 둘을 야만스럽게 밀고 당기고 하면서 차 안에 밀어 넣고 떠났다. 천안문 광장은 이미 사악이 거리낌 없이 광적으로 사람을 붙잡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파출소에 감금됐고 두 경찰이 한 참을 물어보고 욕하더니 아무런 수확이 없자 나가서 여 수련생 한 명을 데려오고는 또 나갔다. 우리는 얼른 교류했다. 우리가 간쑤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즉시 5백 위안(약 8,700원)을 꺼내면서 말했다. “나는 당신들 같은 이런 수련생이 올 줄 알고는 특별히 돈을 갖고 왔어요. 생각밖에 정말로 당신들을 만났네요.” 나는완강히 거절했는데 왜냐하면 계속 걸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래도 수련생 언니에게 넣어 주었다. 이때 경찰 한 명이 들어오더니 그녀를 불러서 나가버렸다. 우리가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사존께서는 우리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차비를 마련해 주셨던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수련생이여, 당신은 아직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는가?

몇 시간 후 사무실 사람은 나보고 가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수련생 언니를 어디에 가뒀냐고 물으면서 우리는 함께 왔기에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건 상관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보고 가라고 하면 그냥 가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처지가 아주 걱정됐다. ‘그녀는 어디로 보내졌을까,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고 내가 가게를 지날 때 갑자기 누군가 “빈펀”하고 외치는 것을 들었다. 놀라서 두발 짝 뒤로 물러서 보니 그녀는 이 가게 다른 한 편을 지나고 있었다. 이렇게 큰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거리에서 헤어진 지 몇 시간 만에 우리가 또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마음속의 쓰림을 억제하지 못했다. 사존의 고심한 안배 하에 우리는 재차 기적적으로 만나게 됐다.

길에서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다

도보로 베이징을 향해 걸어갈 때 사람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거지가 아닌 것을 알았다. 그들은 아주 순박했는데 우리가 도보로 베이징에 간다고 하자 모두 모여와서 우리의 행동에 대해 매우 놀랐다. 그들은 아주 동정하면서 선의로 설득하던가 아니면 만류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려 주면서 천고의 억울함을 알려주었다. 톈수이(天水)에 왔을 때 우리는 한 울안에 들어갔는데 이 집 식구들은 순박하고 선량했다, 우리를 보고 아주 기뻐하면서 수박을 잘라 우리를 초대했다. 식사 때 우리와 함께 신앙과 수련의 문제에 대해 탐구해서야 나는 그에게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바로 대법수련자라는 것을 알았다. 단지 그들은 어떤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에 우리의 언행을 통해 그들에게 다른 각도에서 대법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기연을 주었다. 그들은 우리 둘을 친척처럼 아주 열정적으로 대했다. 수련생 언니는 그들의 바늘과 실을 빌려 주어온 섬유 주머니를 재단해 큰 사각형으로 기워서는 우리 둘이 휴식할 때 사용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오전 우리는 한 사람에게 길을 묻는 동시에 이 여행의 원인과 목적을 알려주었다. 그는 놀라고 감탄하면서 “세상에 아직도 당신들 같은 사람이 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부님이 위대하다고 알려주었다. 우리가 멀리 간 후에도 그는 자전거를 타고 쫓아와서는 우리의 말을 더 듣고 싶다고, 당신들은 너무 좋다고, 당신들 같은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거듭 말했다. 우리가 끊임없이 그에게 돌아가라고 타일렀지만, 그는 서너 번 갔다가 다시 또 왔다. 이때 갑자기 큰 비가 퍼붓기 시작해서야 그는 떠났다. 우리는 낡고 두세 사람 밖에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막에 들어가 아무거나 찾아서 여기저기 막았다. 비가 새지 않게 되자 우리 둘은 법공부를 했다. 그런데 그는 다시 와서 우리를 찾았다. 수시로 손가락으로 내 팔에 무엇인가를 그렸는데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읽었다. 한참 후 그는 나가서 빗속에 서 있었다. 우리는 그를 동정해서 만두를 꺼내 주면서 진심으로 말했다. “당신이 우리를 이렇게 오랫동안 따라다녔는데 밥도 안 먹고, 배고프지요? 사람들이 우리에게 만두를 많이 주었어요. 맛있어요. 드세요.” 그는 연이어 거절했고 한나절 후 길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 너무 선량하고 너무 자비롭습니다. 저는 갑니다, 이번에는 정말 갑니다, 더는이상 당신들을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빗소리와 함께 자전거는 망망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번은 아마 산시(陝西)였던 것 같은데 우리가 한창 길을 다그치고 있을 때 뒤에서 한 젊은 남성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쫓아왔다. 우리에게 품삯을 줄 테니 산초나무 열매를 좀 뜯어 달라고 했는데 보니 커다란 산초나무 밭이었다. 우리는 진지하게 그에게 현재 우리는 중임을 지고 있기에 노정을 지체할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온 얼굴이 경악으로 가득 찼다. 나를 보면서 수련생에게 물었다. “그럼 이 분은 장래에 가정을 이루지 않아요?” 나는 대답했다. “당연히 아니지요. 하지만 우리 사부님과 대법이 사악에게 비방당하고 명예를 훼손당하고 있는데 어찌 안심하고 집에 있을 수 있나요?” 그의 마음이 강렬하게 진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당신들에게 책이 있나요? 나도 좀 봅시다. 안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당신들이 이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무엇이든 다 버릴 수 있고, 일전 한 푼 없이 몇천 리 길을 걸어서 수호하다니.” 나는 ‘전법륜’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고 이때 해가 불처럼 뜨거운데도 그는 철길에 쪼그리고 앉아서 보기 시작했다. 잇따라 그는 조급해하면서 “이 책을 나는 단숨에 다 보지 못해요.”라고 말하면서 우리보고 한 이틀만 묵어서 그가 다 본 후 갈 수 없느냐고 재삼 간청했다. 그가 법을 얻으려는 마음을 보고 나는 가까스로 눈물을 억제하면서 말했다. “당신은 부처와 인연 있는 사람입니다. 얼른 가서 찾아보세요. 대법제자는 어디에든 다 있으니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꼭 잘 읽어 보세요!” 떠날 때가 임박해 우리는 그에게 현지 대법제자를 찾아가라고 재삼 당부했다. 그는 못내 아쉬워하면서 우리가 멀리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돌아온 후 나는 깊은 후회와 괴로움에 빠졌는데 나의 이기심 때문이었다. 나는 왜 ‘전법륜’을 그에게 주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쓰고 내심 죄책감이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면서 합장했다. 그가 이미 확고한 대법제자가 됐기를 바라면서, 당시 나의 이기적인 행위가 그에게 천고의 유감을 남기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한번은 길가에서 아주 깨끗하고 말쑥한 거주 구역을 발견했다. 한 집에 들어가 보니 7, 8십 세 된 할머니 한 분이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계셨다. 나를 보더니 안쪽에 대고 소리치면서 “우리 얼른 이 여자애를 머물게 해요, 얼마나 착하게 생겼어요.” 나는 대법제자에게서 보이는 선량하고 정의적인 면이 세인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헤어지기 아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주 많은 인가에서 나를 머물게 하려 했다. “가지 말아요, 당신에게….” 나는 몰래 웃었다. 이건 서유기의 삼장법사와 얼마나 비슷한가.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서 만난 형형색색의 고험과 유혹들 말이다.

우리가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까지 갔을 때 정거장 직원이 우리를 불렀다. 그녀는 우리가 여기로 가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간쑤에서 왔다고 하자 그녀는 크게 소리치면서 “불가능해요. 당신들 신발이 다 닳아서 없어지지 않으면 이상하지요.”라고 말하면서 우리를 계속 건너가지 못하게 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정거장에서 나와 도로로 갔다. 한참 가는데 20여 세 되는 젊은이 두 명이 우리 옆으로 지나갔다. 우리는 관심이 없었는데 우리가 한 다리 밑에 갔을 때 그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서라, 어딜 가는 거야?” 나는 강도를 만났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사실을 알려 주었고 그들은 경멸하듯 크게 웃었다. “베이징까지 걸어간다고, 거짓말하지 마.” 내 가방을 빼앗더니 마구 뒤지면서 왜 돈이 없느냐고 말했다. 수련생은 말했다. “바로 돈이 없어서 걸어서 가는 거예요.” 우리는 대법의 아름다움과 박해 진상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이 책을 꺼내 사존의 사진을 보자 나는 이는 우리의 사부님이라고 말하면서 이 책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우리는 매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가방을 받고는 말했다. “됐어요, 우리는 갑니다.” “아, 잠깐만, 우리 같이 가요, 당신들 따라 베이징에 갈 거예요.”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말했다. “당신들이 베이징에 왜 가요?” “우리도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하지요, 당신들과 함께 억울함을 외쳐야죠.” 비록 농담이지만 그들의 본성의 일면이 깨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요, 함께 가요.” 우리는 걸으면서 사람의 선악과 수련의 이념을 말해 주고는 그들에게 정당한 직업을 찾아 좋은 사람이 되라고 충고했다.

무더운 더위에 도저히 참을 수 없자 그들은 음료수를 사서 정중하게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그들의 유쾌한 모습에는 이미 그러한 사악한 염두는 보이지 않았다. 대법제자의 순정한 마당은 일체 정확하지 않은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 몇 시간 걷자 그들은 발이 아프다면서 발에 껍질이 벗겨졌다고, 우리 둘보고 대단한 정신력이라고 칭찬했다. 겨우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한 정거장에 왔을 때 그들은 가지 않고 즉시 살그머니 대기실에 들어가서 긴 의자에 누워 잤다. 우리는 바깥 시멘트 바닥에서 휴식했는데 전후 대략 열 시간이었다. 새벽 4시에 우리는 깨어났고 따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속으로 그들이 무슨 신분이든, 무슨 원인이든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 이렇게 멀리 걸을 수 있는 데는 반드시 어느 생에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마치자. 이것은 그들 인생 여정의 한 단락의 기이한 인연이며 인생의 전환점이 되리라.’

베이징주재 산둥사무소에서 나와 수련생 언니는 따로 감금되어 있었다. 나는 계단 손잡이에 채워져 있었는데 두 명 호텔 웨이터가 나와 얘기하라는 지시를 받고 우리의 주소를 알아내려 시도했다. 나는 그녀들이 매우 선량하다는 것을 보고는 내가 어떻게 대법수련에 들어왔는지, 대법이 나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어떻게 철저히 개변하고 사악이 어떻게 대법제자를 박해했는지 알려 주었다. “우리 수련인은 진선인(眞善忍)을 말하지요. 당신들 생각을 나는 알아요. 하지만 내가 만약 당신들에게 알려 준다면 당신들에게 악행을 하게 해서 큰 죄를 범하게 하는데 그럼 정말로 당신들을 해치는 것이죠.” 그녀들은 침묵했고 그 중 하나는 가볍게 물었다. “당신은 진수하는 대법제자입니까?” 내가 정중하게 머리를 끄덕이자 그녀는 한 대법제자가 그녀에게 진수하는 불가 제자에게 소밥을 한 그릇 주면 공덕이 무량한 일이라고 알려주었다고 말했다. “당신이 말한 것을 나는 모두 믿어요.” 잠시 후 그녀는 나에게 만두와 반찬 한 접시 가져다주었다.

하루는 꿈에 산속의 작은 길을 걷고 있는데 자그마한 도랑을 보고 가볍게 뛰어넘어갔다. 무의식중에 머리를 돌려 보고 깜짝 놀랐다. 그건 뜻밖에도 절벽이었고 만장(萬丈) 심연이었다! 사존께서 나를 제도하는 과정을 나는 감히 상상하지 못하겠다. 얼마나 많은 수련의 길에서의 어려움과 장애물을 사존께서는 모두 평온하게 만들어 주셨는지, 얼마나 많은 거칠고 사나운 파도를 애써 바로 잡으셨는지 알 수 없다. 사존의 보호와 거대한 감당이 없으시면 나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가볍게 지나오게 됐다. 당시 일부 수련생들이 도보로 간 것을 알고 있는데 이렇게 흰 구름과 동행하고 구름과 함께 잠이 드는 고행 스님 같은 날들은 대법제자로 말하면 단지 실지 단련과 성숙되는 과정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도량이 크고 두려움이 없게 만든다. 사부님에 대해, 법에 대해 얼마나 믿을수록 얼마나 큰 기적이 나타난다는 것을 나는 체험했고, 생각이 조금이라도 비뚤기만 하면 돌이킬 수 없는 마난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로 사존께서는 우리의 일체를 모두 다 안배해주셨고 길을 다 닦아 놓으셨다. 우리는 단지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어떤 때는 보기에 안돼 보이지만 당신이 가시를 헤집고 지나고 보면 의외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2]

주 :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 – 나의 약간의 소감’[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법해’

문장발표: 2014년 10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0/1/2982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