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예전에 나는 신체적인 마난을 겪었다. 그 후 정념이 부족하다고 느껴졌고 마음이 약해졌다. 어느 날 나는 수련인인 가족에게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수련생인 가족이 발정념으로 많이 도와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말 속에는 의지하려는 마음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약간의 원망도 있었다. 말을 하면서 잘못이 느껴졌고, 어찌하여 자신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위치에 놓는가, 나는 뭘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즉시 고쳐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요, 나는 마땅히 다른 사람을 도우러 온 것입니다.”
뜻밖에도 정말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홍음 2-두려울 것 뭐냐)로 됐다. 갑자기 몇 초 사이에 즉시 정념이 생겼고 각종 바르지 않은 심태와 상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중에 깨달았는데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생각을 할 수 있음은 일종 정념이며, 우리의 정념이 족하면 일부 문제에서 새로운 우주의 표준에 도달해 사부님께서 즉시 그런 나를 박해하고 교란하는 사악과 패물을 청리해주셨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미 존재할 어떠한 이유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교란하는 그런 사상을 똑똑히 분간하지 못하고, 그것을 승인하거나 그것에 따라간다면 그럼 효과는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건 한 생명의 진실한 심성의 체현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타인을 위하는 생명이다. 이기적인 마음은 구 우주 법리의 통제를 받고 있어 구세력이 틈을 탈 수 있어 일념지차로 결과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현재 법을 실증하는 수련 중에서 타인 돕기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타인의 도움에 의지하느냐는 사실 위타인지 위사인지에 대한 선택으로서 결과는 우리가 선택한데 따라 변화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두 형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다음 생에 무엇이 될지를 선택했다. 선량한 형은 일생동안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역할을 선택했고, 타인 돕기를 싫어하고 이기적인 동생은 다음 생에 타인이 자신을 돕게 하는 역할을 선택했다. 결과 형은 부자로 태어나 많은 재물이 있어 타인을 돕게 됐고, 동생은 거지가 돼 늘 타인의 도움과 시주가 필요했다. 결과는 두 형제가 애초에 선택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들 심성의 진실한 체현이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진심을 타인을 돕는 위치에 놓는다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타인을 돕는데 필요한 능력과 편리한 조건을 주실 것이며 많은 구세력의 배치는 곧 부정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법 실증에서 가진 일체 능력은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가 사람을 구도하는 소원에 따라 배치하고 주신 것이다. 문화가 차하고 연령이 많은 수련생이 최후에 ‘고과학기술’을 장악하여 속인이 믿기 어려운 기적을 창조했는데 모두가 중생구도하고 타인을 도우려는 책임과 순정한 마음에서 내원한 게 아니겠는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한 일체 휘황 역시 우리가 오늘 지불한 것에 따라 얻은 것이며, 단지 우리가 그렇게 작은 것을 지불했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과분하게도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다.
그 외 정법 수련 중에서 왜 많은 수련생은 매우 빨리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할 수 있으나, 왜 적잖은 수련생은 장기적으로 구세력의 각종 마난 중에서 돌파할 수 없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놓는가가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다.
중생구도를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기는 수련생은 마난이 올 때 안으로 찾은 뒤 생각하게 되는 것은 중생이며, 자신의 중생구도 책임으로서 가능하게 한순간에 사악은 해체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늘 자신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위치에 놓는다면 우리는 구세력이 만들어낸 끝없는 마난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자신의 선택이고 마난은 자신이 스스로 구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주변에 있는 많은 수련생은 각종 개인의 마난 중에서 오직 자아를 내려놓고 정체 혹은 기타 마난 중에서 혹은 어려움에 처한 수련생에게 협조하고 혹은 여전히 중생구도를 한다면 그의 난은 단번에 소실되었다. 이런 사례는 너무나 많았다.
예를 들면 밍후이왕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한 수련생은 구세력이 목숨을 앗아갈 생사고비에서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아직 많은 인연 있는 사람이 구도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견결히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소박하고 순정한 일념으로 사부님께서는 그의 원신을 다시 육신으로 돌아오게 하셨고 생사의 큰 고비를 넘겼다. 이런 사례는 매우 많다.
법공부하면서 나는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는 대충 어느 생명이 될 수 있는 게 아님을 인식했다. 대법제자마다 무량의 중생을 구도할 거대한 사명과 책임을 짊어지고 있으며 무수한 세상 사람과 중생이 우리의 구도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서약이 있고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사실 모든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모두 ‘타인을 도우러’ 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장기적으로 마난을 돌파할 수 없고 우울한 상태를 돌파할 수 없을 때는 아마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놓지 못한 탓이며, 당연히 그런 사명과 책임감이 나올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상태에 처한 수련생에게 건의한다. 발정념할 때 마땅히 겨냥성있게 우리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교란하고 장애하는 일체 사악한 패괴된 물질을 깨끗이 제거하기 바란다. 동시에 우리 사상 중에 반영되는 의지하는 마음, 기다림, 열등감, 퇴폐함, 실망, 절망 등 불량한 마음 상태를 똑똑히 분별하여 정념으로 그것들을 견결히 깨끗이 제거하길 바란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하루빨리 우울한 ‘진흙구덩이’에서 헤어 나올 수 있고 자아를 내려놓고 사부님께서 배치한 세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14년 5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5/7/2910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