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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인 중의 좋은 사람은 수련인과 다르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4년 7월 ‘파룬궁’이라는 책을 사무실에서 돌려 보고 있었다. 어느 날 나도 다행히 ‘파룬궁’ 책을 보았다. 한번 보고 나자 계속 보고 싶어 사부님의 ‘전법륜’이 출판될 때까지 나는 책을 넘겨주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이미 대법 수련에 들어서 있었다. 처음에는 무엇이 수련인지도 몰랐고 신불에 대한 개념조차도 모호했다. 단지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즐거운 일이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진정한 삶의 보람이라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법 공부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에서 심성이 제고되자 점차 수련의 목적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사람의 마음도 계속해서 제거되었지만, 늘 깨끗하게 제거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일에 부딪히면 나의 일념은 사람의 생각이었다. 사부님은 경문 ‘원만을 향해 걸어가자’에서 말씀하셨다. “집착하고 법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하지만 수련 중에서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점차 인식하여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집착인가?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관념을 양성했으며, 관념에 이끌려 동경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인연에 따라 인생의 길과 인생 중의 득실(得失)이 결정되는데, 어찌 사람의 관념으로 인생의 매 과정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런 이른바 아름다운 동경과 소원 역시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고통스럽게 집착하는 추구가 되었다.” [1]

근본적인 나의 집착은 무엇인가? 수련 초기에는 사부님의 대법 책 중에서 가장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였다. 좋은 사람이 되는 이것이 나의 근본적인 집착이었다. 관을 넘기지 못하고 잘 넘기지 못하는 관은 다 근본적인 나의 집착이 작용한 것임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2001년 3월에 나는 사악한 세뇌반에 납치당했다. 안에서 누가 나를 때리고 욕하는 사람이 없었다. 경찰과 사오(邪悟) 자들 모두는 다 위선적이었다. 그들은 내가 마지막으로 ‘전향’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세뇌반이 해체되지 못하고, 그들도 집에 돌아갈 수 없다. 밤낮없이 나를 돌봐야 하므로 그들의 부모님과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고 했다. 마치 그들의 정상적인 생활에 내가 영향을 미친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지 못하고 ‘전향’하면 사악한 것이라고만 알렸다. 그들은 듣지 않고 한 무리의 사람이 매일 나를 괴롭혔다. 사오 자의 언행은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정념이 부족하여 마음이 너무 괴로웠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중에 견지하지 못하고 타협했다.

박해 초기에 법리가 분명하지 않아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에 사악이 틈을 타 손해가 컸다. 이후 2003년 가을, 경찰은 610을 데리고 나를 찾아와서 협박하며 수련하지 말라고 했다. 돌아갈 때 내가 그들을 보내며 예의를 지키려고 그들에게 ‘다시 만나요!’ 두 글자를 말하려 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나자는 것은 그들이 계속 대법제자를 교란하는 것을 허용한 것이 아닌가? 나는 그들에게 큰소리로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그들은 듣고 멍했다. 나는 “당신들이 다시 나를 교란하면 환영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나의 수련을 교란하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지 않고 풀이 죽어 돌아가고 다시는 오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 되는 이른바 ‘예의’를 내려놓고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不再見).’ 세 글자를 말하자 정수리에서 한줄기 강대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박해 이후 다른 공간에서 호시탐탐 나를 노리던 사악의 요소와 두려운 마음도 단번에 제거되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집착심을 내려놓을 때 사부님께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똑바로 바로 잡아주심을 깊이 체험했다.

나는 최근 아주 이기적이고 지나치게 야박해 직원을 괴롭히는 개인회사 사장 두 사람을 해고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속인도 좋은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면 어찌 되겠는가?

지금 세상은 기풍이 나날이 떨어지고 도덕이 부패하고 속인은 다 조류를 따라 간다. 그들은 우리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고 구도할 중생이다. 그런데 내가 어찌 속인과 섞일 수 있겠는가? 대법제자는 중생을 구도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는가?

자신의 근본 집착심의 뿌리는 무엇인가? 자신의 명리정(名利情)이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다. 이런 집착심의 근본은 어려서부터 형성된 관념이다. 체면을 중시하고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고 좋은 일을 하고 칭찬받으려는 허영심이었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을 넘기지 못할 때는 근본적인 집착심이 작용한다. 다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것임을 찾은 후 나는 기분이 상쾌해졌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련 중에서 좋은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셨고 더욱 높은 경지의 좋은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셨다. 무사 무아(無私無我)의 대법 제자는 절대 속인 중의 좋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중생을 구도해야 할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3가지 일을 잘해야 하고 사람을 더 많이 구해야 하며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를 저버리지 않고 사전 서약을 실행해야 한다.

약간의 체험이며 적합하지 않은 것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문장발표: 2013년 8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8/15/2780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