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늘 다른 수련생에게 이끌려가던 손을 내려놓자

글/ 베이징(北京) 대법제자 칭처(淸澈)

[밍후이왕] 나는 1999년 5월에 법을 얻었다. 그러나 줄곧 수련하는 둥 마는 둥 했고 무엇이 수련인지 몰랐다. 이후에는 매일 전법륜(轉法輪)만 약간 보았다.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반나절이나 보아도 표면 법리밖에 알 수 없었다. 비록 심층 법리를 보지 못했지만 매일 보았고 간혹 보지 못하면 마음이 괴로웠다. 그때는 기본적으로 다른 수련생을 접촉하지 못했다. 단지 사부님께서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신 것을 기억했기에 비바람 속에서도 계속 견지했다.

2010년 6월 어느 며칠간, 마음속에 늘 일종 느낌과 염원이 꿈틀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련생과 연락을 취하게 됐다.

당시 우리 여기에는 한창 MP3로 사부님 설법과 ‘밍후이주간’을 듣는 것이 유행했다. 그러나 이 방면의 기술수련생이 부족해 일부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빨리 배워 다른 사람을 도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까?’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 일념이 매우 순수했기에 사부님께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수련생을 배치해 나를 데리고 많은 수련생과 접촉하게 하셨다. 그때 나는 속인과 거의 구별이 없었고 유일하게 다른 것은 마음속에 이미 법을 담았다는 것이다. 기술을 배우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몇 명 수련생이 표현한 사상경지에 나는 큰 감동을 했고 사상도 천천히 변화가 발생했다.

하지만 법 공부를 너무 적게 했기에 사상경지가 매우 낮았고 심성(心性)에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있으면 다른 수련생을 찾아가 전부 털어놓기를 원했다. 한 수련생 언니는 나에게 도움이 매우 컸다. 늘 내가 말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귀찮아하지 않고 나를 도와 분석하고 법리로 일깨워줬다. 대부분 나는 즉시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했다. 언니는 또 늘 나에게 사부님 말씀대로 ‘책을 많이 읽고 법을 많이 배우라’ [1] 고 격려했다. 그러나 나는 법 공부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고 소홀히 했다.

나는 점차 이러면 정말 좋다고 느꼈다. 늘 수련생과 함께하고 또 제고도 매우 빨랐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녀와 다른 수련생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나는 일부 문제는 법리로 가늠했지만 대부분 사람의 정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런 것에 주의하지 않았다. 이후에 나는 매번 심성관을 넘을 때, 만약 수련생 언니와 말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꼈고 마치 그녀와 말하지 않으면 이 관을 넘지 못할 것 같았다. 언니는 선의로 나를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스스로 원인을 찾는 것이 귀찮았다. 간혹 그녀를 찾지 못하면 다른 수련생을 찾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몽땅 쏟아냈다. 이렇게 관, 난이 올 때 먼저 스스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늘 깊이 생각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다른 수련생이 나를 이끌게 했다. 이것은 수련에서 지름길을 찾는 것과 같다. 자신이 착실히 제고해 올라오지 못했기에 관이나 난을 넘을 때 철저히 넘지 못하고 간혹 여러 번 반복하거나 매우 긴 시간을 끌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은 지름길이 없으며 모순이 생기면 자신을 찾고 스스로 수련하고 스스로 깨달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올라오자마자 방향을 잘못 걸었다.

아래의 한 가지 일로 나는 진정하게 자신의 바르지 않은 상태를 인식했다.

나와 남편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지만, 하늘은 우리를 함께 묶어 놓았다. 그의 평범하고 소박하며 둔한 모습에 나는 괴로웠다. 그러나 시종 법리에서 명백히 알게 된, 수련인은 이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굳게 지켰다. 나는 그에게 매우 까다롭게 굴었다. 비록 한동안의 수련으로 개선이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나에 대해 많은 불만이 있었다. 남편은 선량하고 말을 잘하지 못하기에 나에 대한 불만을 평소에 분출하지 못했다. 새해 연휴 어느 날, 밤 10시경에 그는 접대하고 돌아와 반쯤 취한 술기운을 빌어 나를 욕하기 시작하더니 많은 사악한 말을 했다. 그가 술을 많이 마신 것을 보고 나는 비교적 냉정하게 마음속으로 묵묵히 발정념을 했다. 그러나 크게 효과가 없었다. 나는 심태가 평온하지 않아 잠깐 사람의 염두로 이웃이 들을까 봐 두려웠고 또 그가 이성을 잃을까 봐 두려워 참기만 했다. 하지만 곧 그것은 진정한 그가 아니며 그가 다시는 사부님에 대해, 대법에 대해 불경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또 발정념으로 그의 배후의 사악, 난귀(爛鬼)를 해체했다.

내 심성이 도달하지 못했기에 그는 욕하면서 두 시간 동안 소란을 피웠다. ‘왜 효과가 없지?’ 나는 의혹에 휩싸였다. 줄곧 자정까지 발정념을 해서야 그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때 나는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정말 효과가 없었다면 그가 무슨 특별한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소파에서 자면서 억울하고 원망스러워 더는 살 수 없다는 염두가 전부 용솟음쳤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니 더는 집에 있고 싶지 않았고 더는 그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직장으로 가기를 결심했다. 직장에 가면 법 공부할 수 있었고 다른 수련생과 만나 내 고민을 빨리 쏟아버리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누구와 만날 것인지 생각했다. 명절을 쇠는데 누가 시간이 내어 함께 할 수 있겠는가. 수련생 언니를 찾으니 연락할 수 없었고 갑 수련생을 찾으니 그녀의 남편이 집에 있어 몸을 뺄 수 없었으며 수련생 이모를 찾자니 그녀는 연세가 많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누구를 찾겠는가? 공허함이 서서히 엄습했다. ‘그래, 을 수련생을 찾자. 그녀는 시간이 비교적 한가하고 게다가 그녀는 나의 심중을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확실히 나를 도와줄 것이다.’ 급히 전화하니 을 수련생은 오늘 일이 있어 갈 수 없다고 했다. 전화를 채 내려놓기 전부터 나는 오열했다. 억울함을 참다가 눈물이 단번에 흘러내렸다. 이렇게 견딜 수 없는 일을 만나도 말할 사람도 없다니. 혼자서 의지할 데가 하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꼈다.

나는 의기소침해서 직장으로 갔다. 혼자 있고 조용하니 마음이 편했다. 혼자서 또 쓸쓸하고 울적했다. 다행히 법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전법륜을 펼치고 묵묵히 봤다. 보고 또 보니, 책 속의 법리가 단번에 나를 점오했다.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이번에 수련생을 찾지 못해 속 시원히 마음속 말을 하지 못한 까닭은 사부님께서 나 스스로 제고하라고 하신 것이구나! 이렇게 장기간 동안 나는 줄곧 수련생에게 전부 털어놓는 것을 교류로 여기고 또 맞는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교류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늘 빨리 손을 내밀어 위안과 일깨워 줌을 찾고 또 이것이 맞는다고 인식했다. 사부님께서 서로 도와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은 자신이 수련해야 하고 자신이 깨달아야 하는데, 모두 내가 말한다면 당신이 수련할 것이 없다.” [2]를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너무 우둔하다. 나는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듯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을 배치해 나를 도와 초기 단계를 지나게 하셨다. 그러나 나는 늘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래, 늘 다른 수련생에게 이끌려 가던 손을 놓을 때가 됐다. 지금은 마땅히 스스로 길 걷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는 스스로 명백히 제고하고 자신의 수련의 길을 걸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을 사부로 삼아야 한다고 요구하셨다. 그래, 법이 있는데 이후의 길을 잘 걷지 못할까 봐 두려운가? 나는 반드시 할 수 있다.

또 많은 시련과 고험을 겪었다. 지금의 나는 이성적이고 성숙해졌다. 관, 난에 직면할 때 마음이 다시는 당황하지 않고 많을 때 먼저 법을 생각하고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책에 어떻게 쓰였는가를 생각한다. 안으로 찾는 것을 알았고 자신이 어디 잘하지 못했는지 찾았다. 집착과 더러운 사람 마음을 찾은 후 그것을 부정하고 배척하며 해체하도록 노력했다. 이때 그 관과 난은 그리 크지 않고 쉽게 지나갔다.

끝없는 심성 제고에 따라 마음속에 일종 초연한 느낌, 일종 승화한 후의 기쁨이 넘쳤으며 얼굴에도 넘쳐흘렀다. 나는 무엇이 수련이고 무엇이 착실한 수련인지 깨달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토론하고 연구할 때 나도 관을 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심태가 이미 달라졌다. 수련생은 나의 변화를 보고 기뻐했다. 이것이야말로 교류다. 비록 많은 경우 아직도 잘하지 못하지만 나는 앞으로 마땅히 어떻게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 깊이 알았다.

여기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고도(苦度)에 머리를 조아려 감사드리고 수련생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린다.

희망하건대 유사한 상황의 수련생은 늘 다른 수련생이 이끌어 가는 손을 내려놓고 기다리고 의지하고 요구하는 마음을 제거하며 자신의 수련의 길을 잘 걷고 바르게 걷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문장발표: 2013년 7월 3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3hui.org/mh/articles/2013/7/30/2773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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