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린(吉林) 대법제자 일심(一心)
[밍후이왕] 나는 1995년 11월에 법을 얻었으며 현재 70여세다. 집은 농촌에 있고 무슨 지식이 없으며 글도 다 알지 못한다. 법을 얻기 전에 몸이 허약하고 잔병이 많아 일 년 내내 약을 먹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매우 많은 도시를 다니고 양방, 한방 의학을 배워도 호전이 없었다. 하지만 법을 얻은 후 온몸의 질병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백내장으로 좋지 않던 시력도 회복됐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다만 법에서만 얻을 수 없으며 마땅히 홍법(洪法)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집에서 법공부 장소를 만들었는데 처음에 시작할 때에는 5~6명이었는데 이후에 사람들이 서로 전해 5~60명으로 증가됐다. 집이 좁아서 나는 법공부하고 연공하는데 쓰는 방이 두 칸 있는 집을 지었다. 수련생들은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고 누구도 뒤지기 싫어했다. 매주 모두 걸어서 25리 밖 향진에 가서 홍법을 했다. 70세가 다 되어가는 나는 젊은이들처럼 함께 가도 지치는 느낌을 몰랐다.
1999년 ‘7.20’박해가 시작되자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전국 상하 텔레비전에서 밤낮 가짜 소식을 만들어 대법에 먹칠하며 사부님을 모함했고 도처에서 모두 대법제자를 박해했다. 우리 집은 사람을 파견해 지키고 자유롭게 외출하지 못하게 했으며 수련생 사이에도 왕래하지 못하게 했다. 이전의 정상적인 법공부와 연공을 교란하자 나는 갑자기 부모를 잃은 고아처럼 마음이 정말 괴롭고 막막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2001년, 어떤 수련생이 베이징에 법을 실증하러 가서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며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와 수련생은 현수막을 지니고 밤낮 길을 재촉해 베이징에 가서 직접 천안문 광장에 갔다. 그러나 나는 아직 현수막을 펼치지도 못했는데 사악에게 납치돼 서쪽교외 감옥에 들어갔다. 악독한 경찰은 나를 호되게 때리고 마구 욕하며 질책하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했다. 이튿날 경찰이 떠나자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홍법했으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텔레비전에서 말한 것은 모두 가짜이며 파룬궁을 먹칠하고 모함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파룬궁은 사람들이 ‘진선인(眞善忍)’을 배워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데 어떻게 삿되게 될 수 있겠는가? 내가 있던 방에는 20여명 있었는데 그들은 돌아간 다음 대법책을 잘 배우겠다고 했다.
7일째가 되자 사부님께서는 나를 병이 있는 가상을 만들어 온몸이 노랗게 되어 혈변을 보았다. 저녁 8시, 악독한 경찰은 나를 병원에 보내 대(大)자형으로 침대에 12시간 채웠고 이튿날 아침 8시 반 나를 석방했는데 이렇게 나는 사부님의 보호 하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2005년 사부님께서는 또 나를 새로운 환경에 배치해 농촌에서 중급 규모의 도시로 이사했다. 나는 계속 자료를 배포하며 중생을 구도했다. 2008년 자료점은 파괴당해 자료 출처가 끊어졌다.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서 ‘내가 만약 병음 타자를 칠 수 있고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스스로 자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생각했다. ‘이것은 망상이 아닌가? 아무것도 모르고 컴퓨터도 백지인데 어떻게 자료를 만든다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니 사부님께서 또 나에게 배치하셨다.
3일 후 한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왔는데 나는 그에게 진상자료를 좀 갖게 연계해 달라고 부탁하니 그는 당신 자신이 만들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님께 달렸다”(전법륜)며 당신 마음에 사부님이 있고 결심이 있다면 글자를 몰라도 알 수 있다며 도와준다고 했다.
이틀이 지나 그는 기술을 아는 수련생을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집 컴퓨터에 시스템을 설치하고 나에게 조금씩 가르쳐 주었다. 아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 소란을 피우고 극력 제지하며 자료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내 사상은 매우 확고해 아이들이 어떻게 소란을 피우든지 절대로 생각을 개변하지 않고 사부님의 배치대로 하며 가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이들은 컴퓨터를 부쉈다. 나는 정념으로 그들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사부님과 도와 달라고 청했다. 수련생이 아주 빨리 컴퓨터를 수리해 계속 인터넷에 접속해 인쇄하고 진상자료를 제작했다.
어려운 과정을 걸쳐 나는 끝내 알지 못하던 데로부터 할 줄 알고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 한번 프린터 잉크를 주입하려다가 조심하지 않아 먹물이 온 얼굴과 몸, 침대, 바닥에 흘렸는데 이러한 일은 매우 많았다.
마침내 나는 아주 숙련되게 각종 진상자료를 만들 수 있어서 자신의 수요를 만족시키고 또 다른 수련생에게 자료를 제공했다. 나가서 대면하여 진상을 알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진상용 어음전화를 구입해 사람을 구하는데 썼다.
마지막으로 수련생과 사부님의 보호 하에 나타난 신기한 일을 함께 나누겠다. 어느 날 나는 법공부 장소에 가서 법공부하다가 주의하지 않아 몸에 지닌 보자기와 신분증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 나는 매우 조급했다. 신분증을 재발급하려 해도 고향인 농촌이라 처리하려면 오가는 노정이 비교적 멀고 시간을 많이 지체한다.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또 수련생에게 제때에 진상자료를 만들어주어 사람을 구해야 된다고 사부님께 청했다. 사부님께서 신분증을 가져 오실 수 있을까? 며칠 후 나는 침대 밑에서 돈을 꺼내려고 했는데 신분증이 돈과 같이 있었다! 이는 다만 매우 많은 신기한 일 중 하나이며 다른 것도 매우 많은데 많이 말하지 않겠다.
이상은 나의 수련의 길에서 약간의 경험인데 십 몇 년 수련 경험을 어찌 몇 장의 종이에 담을 수 있겠는가. 이전에 문장을 쓰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자신이 학력이 낮다고 여겨 사람 마음이 수련을 장애했다. 나는 학력이 높든지 낮든지를 막론하고 똑똑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부님을 실망시켜 드릴 수 없으며 사부님께 답안을 바치려고 한다! 십 몇 년 수련 중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비바람 속에서 고생을 낙으로 삼았으며 땀과 눈물을 흘린 것을 수련생과 함께 나누고 싶다. 내가 한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 대한 요구와 거리가 아직 멀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준 것은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나는 신사신법(信師信法)하여 최후의 길을 잘 걷겠다!
층차의 제한으로 부족한 점은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2/2648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