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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5.13] 우한 신문사 주임 “이들은 최고 경지의 사람들이다”

글/ 우한 대법제자

[밍후이왕] 불광이 중원 대지를 널리 비춘 1993년은 우한(武漢) 사람들이 성연(聖緣)을 맺은 행운을 지닌 한 해였다. 그 해 봄부터 가을까지 리훙쯔 사부님께서 우한에서 모두 5회에 걸친 학습반을 진행하셨는데 그 때부터眞·善·忍(쩐·싼·런)은 한 무리, 또 한 무리의 파룬따파 수련자를 응집하기 시작했다.

그 한 단락 시간을 회상해 보면 그야말로 감개가 무량하다! ‘장강(長江)경제방송국’과 ‘장강일보’에 보도했던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바로 아주 훌륭한 증거다.

1993년 4월 6일 오전 9시경, 장강경제방송국 기자는 ‘건강고문’이란 특별 프로그램에서 말했다. “최근 저는 한 기공 학습반에 참가했습니다. 이 학습반에는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희귀한 일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아래에 여러 분들께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 가지는 어떤 수련생은 우리 성의 아주 먼 외진 곳에서 차를 타거나 배를 타고 왔으며, 수많은 곳을 전전하면서 우한으로 왔는데 그것은 이 학습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학습반에서 일부 수련생은 오랫동안 치료되지 않던 병들이 기공사의 한 마디 말, 하나의 동작, 혹은 한 차례의 보고로 곧 나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기공 학습반에 참가했는데 역시 수많은 뚜렷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 저는 목이 몹시 아팠는데요, 대사(大師)님께서 제 곁에 서계시니 즉시 나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리(李) 대사님을 우리의 생방송실로 모셔왔습니다. 이 분이 바로 중국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 대사님입니다!”

장강경제방송국 전화 생중계 방송은 우한의 수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리훙쯔 사부님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리훙쯔 사부님은 청중의 자문에 대답을 해주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즉석에서 혜택을 입고 어떤 환자는 곧바로 병이 나았다.

네 식구가 살고 있는 한 가정은 모두 집에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사부님께서 청중들께 해답해 주시는 문제를 듣고 있었다. 이 가족 중 한 명이 전화를 걸어왔다. “리 대사이십니까?” 사부님께서 “예, 제가 바로 리훙쯔입니다.”청중이 말했다. “대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장기간 비염을 앓고 있는데요. 장기간 코로 숨을 쉬지 못하고 입으로 호흡한 까닭에 두통이 생기고 어지럽고 후두가 아픕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콧병만 있는 청중, 혹은 콧병은 없으나 다른 병이 있는 청중은 당신 자신의 병을 생각하십시오. 그런 다음 전신을 느슨히 하고 제 말에 주목하십시오.” 사부님은 방송국에서 공을 발하셨다. 1분쯤 지난 것 같았는데 비염이 있는 이 청중이 아주 격동해서 말했다. “아이고, 제 코가 뚫렸습니다. 전신이 정말 시원합니다! 리 대사님 감사합니다. 전 어떻게 하면 당신을 찾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당신에게 감사드리면 됩니까!” 사부님께서 아주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저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한 기공협회에서 파룬궁 학습반을준비를 하고 있으니 흥미가 있으시다면 그들과 연락을 취하셔서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이 집 가족들은 너무도 신기하다고 느끼고는 도처로 파룬궁을 수소문했다. 이후에 온 집이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해 사부님 설법을 들었다.

대법이 널리 전해지니 수련자가 날마다 늘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친척에서 친척으로, 파룬궁 수련자는 우한의 각 공원, 광장, 학교 운동장마다에 펴졌을 뿐만 아니라 주변 농촌까지 전해졌다. 각종 직업, 여러 연령대 파룬궁 수련생은 심성 수련을 첫 자리에 놓았고 도덕이 제고됐으며 몸이 건강해 졌다. 수련생 가족, 이웃과 직장은 모두 파룬궁은 사회에 유리하고 국가에 유리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1998년 4월, ‘장강일보’ 산하 ‘문화보’에서 파룬궁에 대해 근거 없는 비방을 해서 극히 나쁜 영향을 조성했다. 사건 발생 후, 일부 수련생은 사실을 존중하고 매체를 애호하는 생각에 입각해 기자 및‘문화보’ 책임자와 소통을 진행했다. 하지만 ‘문화보’는 파룬궁수련생이 제기한 “기자를 파견해 연공하는 군중 속에 들어와 직접 취재해볼 것’과, ‘사죄하고 아울러 다시 보도할 것’ 등 정당한 요구에 대해 답변이 없었다. 우한 수련생은 이 상황을 알게 된 후 자발적으로 ‘장강일보’ 민원부서, 신문사 지도부에 찾아가서 진실한 상황을 설명하고 아울러 국무원 ‘3불(不)’정책 원칙(기공에 대해 선전, 비판, 논쟁하지 않음)에 따라 사실을 분명히 밝힐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신문사에서 마련한 홀 바닥에 앉아서 조용히 기다렸다. 신문사 주임이 와서 말했다. “신문사 총 편집위원회에서 나를 전권대표로 위임했으니 무슨 문제가 있거나 요구가 있다면 제기하십시오. 해답할 수 있는 것이면 즉시 해답해 드리고 해답할 수 없는 것이면 지도부에 보고하겠습니다. 신문사 사무회에서 단체로 연구 결정할 일이면 이후 다시 답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련생은 진상을 설명하려는 태도를 품고 상냥한 어투로 신문사에 파룬궁을 수련해 병을 제거하고 몸이 건강해진 좋은 효과, 그리고 수련자의 도덕성이 제고된 사회적 효능을 반영하면서 대량의 사실로 파룬궁은 훌륭한 공법임을 증명했다.

모두들 앞 다투어 가며 말했다.

한 수련생은 여러 해 동안 하지정맥류를 앓아 길을 걷기 어려웠고 수없이 치료해도 낫지 않다가 수련을 한 후 한 푼 돈도 쓰지 않고 병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다른 한 수련생은 말했다. 그녀는 자궁근종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수술 준비까지 다 했는데 연공을 며칠 했더니 저절로 없어져 의사도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른 한 남자 청년이 말했다. 그는 백혈병에 걸렸는데 몇 십만 위안의 치료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돈이 없어 그저 퇴원해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공한 후 약도 먹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았는데 아주 빨리 건강이 회복됐다. 그 중 한 여성은 4개월 된 아기를 업고 여기에 와서 그녀가 겪은 경험을 진술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는데, 여름에 찬물에 조금만 닿아도 뼈가 아팠고 찬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감기에 걸렸으며, 겨울이면 옷을 여섯 벌이나 감싸도 여전히 추웠다. 결혼 첫날밤에도 영양 주사를 맞았는데 이튿날에 체력이 지탱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결혼 후 줄곧 임신이 되지 않아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뜻밖에도 뇌종양이라고 했다. 이건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수술을 하지 않고 보존 치료를 해보기로 하고 약을 먹었다. 그 약은 먹기만 하면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힘이 없었다. 바로 이때에 그녀는 대법을 만났고, 파룬궁을 연마한지 얼마 안 되어 몸이 튼튼해지고 가벼워졌으며 창백했던 얼굴색도 발그레하고 빛이 났다. 사부님께서 한 번 또 한 번 몸을 정화해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으로 무엇이 무병하여 온몸이 가벼운지 느끼게 됐다. 연공한지 8달이 되어 그녀가 진정으로 연공하여 애를 낳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곧바로 임신하게 됐다. 그녀는 사부님 말씀은 매 한마디 모두가 정말임을 진정으로 깨닫게 됐다. “구함이 없으면 스스로 얻게 된다”는 천만 번 정확한 것이다. 임신 전 과정에 아주 건강했고 겨울인데도 냉수 목욕을 할 수 있었는데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서도 아주 건강하고 총명하며 귀여웠다. 이 모든 경험은 그녀 머릿속에 ‘전법륜’ 속의 ‘논어’의 한 마디를 깊이 새겨 넣게 했다. ‘불법(佛法)’은 가장 정심(精深)하며, 그는 세계 모든 학설 중에서 가장 현오(玄奧)하고 초상(超常)적인 과학이다.”

또 어떤 수련생은 우한시 대형 홍수 시기의 대법제자의 감동적인 행위를 말했다. 장강 홍수가 시민의 생명재산 안전을 위협하고 있을 때 각 직장 대법제자들은 선뜻 나섰고, 어떤 이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홍수 구제 제1선에 나가 터진 제방을 막았으며 시간이나 보수를 따지지 않았고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많은 대법제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헌납하면서 이름을 남기지 않고 단지 ‘파룬따파제자 기부’라고만 남겼다. 우한시 TV방송국에서 방송한 기부자 명단에는 파룬궁 수련생이 나타난 것이 가장 많았고 금액 역시 가장 높아 어떤 수련생은 1만 위안에 달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방송국 직원들은 잊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말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한 수련생은 공원 입구에서 6백 위안의 돈을 주었는데 스스로 공원 관리부에 교부하고는 이름을 남기지 않고 떠났다. 대법 수련자는 정말로 명예를 위하지 않고 이익을 따지지 않으면서 사심 없이 이런 일을 했던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자신이 수련을 하지 않았을 때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에서 조화롭지 못했고, 부부 사이가 틀어지는 등 가정모순이 몹시 첨예했다고 했다. 파룬궁을 배운 후 자신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진선인(眞善忍) 법리에 좇아 엄격히 자신을 요구했고 무릇 일에서는 자신을 먼저 검사해 보고, 일마다 남편, 시어머니를 배려해 주었더니 가정 모순은 재빨리 완화되고 가정이 화목해졌다.

수련생은 돌아가며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말했는데 어떤 수련생은 눈물을 흘렸다. 수련생의 대량적인 사실은 한 가지 진상을 말해 주었다. 파룬궁은 사람들의 도덕 수준을 승화시켜 주었고 이 공법은 전반 사회에 대해 모두 적극적인 의의가 있는 것으로 절대 신문사에서 보도한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말하는 과정에 나는 그 사무실 주임이 감동해 여러 번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면담이 끝난 후 사무실 주임은 깊이 감동하면서 말했다. “나는 원래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모두 우매하고 무지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인 줄로 알았는데 모두 지식 있고 학력 있는 연공인일 줄은 몰랐습니다. 당신들은 예절 있고 조용하며 친절하고 하는 말에 이치와 증거가 있으며, 사상경지가 무척 높아 나로 하여금 괄목상대하게 했습니다. 오늘 나는 참으로 한 무리 높은 소질, 높은 경지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같이 신기하고도 사람을 감동시키는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파룬궁은 진정으로 초상적인 과학임을 인식하게 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말했다. “이 일은 아주 중대합니다. 단체 토론을 해야만 답변할 수 있습니다. 내일 당신들은 소식을 들을 겁니다.”

이튿날, 대법제자는 첫날 약속한대로 또 ‘장강일보’ 홀에 갔다. 사무실 주임이 접대를 하면서 많은 객관적인 원인을 말했다. 보도 중에 책임지지 못할 평론에 대해 사죄함을 밝히면서 신문에서 당신들에게 알릴 것이니 양해를 바란다고 했다.

이번 소통을 통해 1998년 6월 상순, ‘장강일보’는 드디어 관련 부문 책임자와 여러 명 기자를 파견해 수련생 대표와 한 차례 정식 좌담회를 열었다. 좌담회에서 수련생 대표는 병을 제거하고 몸을 튼튼히 하는 데로부터 심성을 제고하고 사회 정신문명을 촉진하는 등 방면에서 각자의 수련 심득체험을 이야기했다. 회의 후 수련생 대표는 신문사 총편집장에게 ‘정황반영’이란 서면 자료를 제공하면서 신문사에 파룬궁 연공장을 다시 취재해 진실하고도 공정하게 파룬궁을 보도할 것을 촉구했다.

좌담회 후 얼마 안 되어 ‘장강일보’에 ‘공고’를 실었는데 ‘문화보’의 대법에 대한 보도는 진실하지 못하며, 파룬궁 수련인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것을 시인하고 아울러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우한 수련생의 한 차례 장엄하고도 성스러우며 진상을 되찾아 오는 호법(護法)운동은 여기에서 원만한 성공을 이루었다.

문장발표: 2011년 5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13/2406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