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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민중을 향해 현지 사악을 폭로하자’로부터 신사신법을 보다

글/ 헤이룽장(黑龍江)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의 신경문 ‘무엇을 조사정법이라 하는가’를 학습하고 처음 읽었을 때는 아마도 해외 일부 제자들이 잘하지 못하고 사부님의 설법을 에누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보고나서는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 대륙, 우리 지역, 우리 신변에도 사부님의 법을 에누리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단 한 가지 예만 들기로 하자. 2003년 사부님의 ‘현지 민중을 향해 현지 사악을 폭로하자’란 문장의 평어에서 우리들에게 알려주셨다. “악경(惡警)과 나쁜 사람을 폭로하고 사회에서 그 사람의 악행을 공포(公布)하는, 이런 방법은 이성(理性)이 없는 그런 악인에 대하여 두려워 떨게 하는 극대한 작용을 일으켰다. 동시에 또한 현지에서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중에 민중들에게 사악의 박해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폭로와 인식을 불러 일으켰다. 동시에 또 거짓말에 독해되고 기만당한 민중을 구도하는데 있어서 한 가지 좋은 방법이다. 대륙의 전체 대법제자들과 신 수련생들이 모두 이 일을 잘하기를 희망한다.”

8년이 지나갔다. 나는 많은 대법제자들은 우리 지역에서 이 방면의 일을 잘하지 못했다고 깊이 느낀다.

우리 아청(阿城)지역은 99년 7월부터 지금까지,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수십 명이 직접 혹은 간접적인 박해로 사망했으며, 불법 판결을 받은 것이 55회, 그 중 십 몇 명은 12년 10년, 9년, 8년, 7년 등 중형 판결을 받았고, 노동교양이 124회, 불법 규류가 365회, 불법 세뇌를 받은 것이 87회다. 마땅히 우리 지역의 박해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매우 많은 속인들은 현지의 파룬궁 박해가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모른다.(어떤 동수들마저 모른다) 아마도 우리들이 평소 배포한 자료 대다수가 외지 동수들이 박해를 받은 사례이고 현지 동수들의 박해를 받은 자료가 너무나 적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주위 사람과 일을 마음에 둔다. 그러므로 ‘현지 민중을 향해 현지 사악을 폭로하자’를 중시해야 한다. 이 문제에서 가장 큰 장애는 아마도 사악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심리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박해 받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무릇 노동교양을 당했거나 판결을 받은 이들은 당신의 친척과 친구들, 회사 동료 등등이 모두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상세한 상황을 아는 사람이 아주 적고 우리를 동정하는 사람도 매우 적다. 만약 우리들이 선한 마음에 입각하고 구도중생의 소원에 입각해 자신이 무고하게 박해를 받았던 경험을 마치 가족에게 간곡히 말하는 것처럼 써내면 사람들이 본 후 “파룬궁은 억울하게 박해를 받고 있구나. 그들은 모두 법을 지키는 공민인데 다만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한다고 무고하게 각종 비인간적인 고문과 시달림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당신을 박해하는데 참가한 사람들은 당신이 박해를 받은 경험을 본 후 ’그 사람은 나와 어떤 원한도 없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그를 그처럼 처참하게 대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내심에서 후회하게 되며 당신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게 된다. 우리들이 만약 진상자료를 이러한 정도까지 쓰면 누가 당신을 보복하겠는가?

어떤 동수들은 반복적으로 박해를 당하면서 고려하는 것이 매우 많다. 사악을 폭로하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속인의 정의감마저 없다. 사악이 당신을 박해했는데도 당신이 자발적으로 그것을 폭로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이 당신 공간장에서 활동하게 된다. 당신이 장기간 그것들을 청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들을 보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최저한 당신이 그것들을 두려워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악을 폭로하는 것은 사악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매 개인이 자신의 공간장을 모두 깨끗하게 청리한다면 우리 이 지역 공간장이 깨끗하게 청리되어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데 유리할 것이다. 이번 박해는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가 아니라 사람 배후의 사악이 사람을 통제해 감히 대법제자에 대해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서 그런 사악한 요소들은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람의 각도에서 말한다면, 만약 당신이 지갑을 도둑 맞았다고 할 때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도둑을 비도덕적이라고 질책하는데 직접 해를 입은 사람이 오히려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겠는가? 당신의 침묵은 당신을 위해 불공평하다고 소리치는 정의의 목소리를 상쇄시키는 것이 아닌가?

몇 년 전 우리 지역의 한 수련생은 실명으로 사악이 자신을 박해한 문장을 써서 현지에 널리 배포했는데 그 효과가 매우 좋았다. 그 당시 사악은 매우 창궐했으나 그녀는오히려 아무 일도 없이 무사했다. 왜냐하면 법에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원고를 다 쓰고 나니 갑자기 ‘금부처’ 문장이 생각난다. 지금 이 문장을 다시 보고 나니 감수가 더욱 깊다. 박해를 폭로하면 사악이 보복할까 두려워하는 동수들은‘금부처’ 문장을 잘 볼 것을 건의한다, 아마 수확이 있을 것이다.

층차의 제한으로 법에 부합되지 않는 면이 있을 수 있으니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2011년 6월 18일
문장분류: 수련 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6/18/2426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