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법률을 응용하여 반박해하는 인식 중 잘못된 부분에 대한 분석(1)

글/ 대륙 대법제자 춘츄이(春秋义)

[밍후이왕] 최근 법률을 이용하여 진상을 알리고 반박해하며 중생을 구도하는데 관한 교류문장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이런 교류문장 중 특히 근기의 《반박해 수첩(反迫害法律手册)》중에서 나는 대다수 대륙 대법제자들이 법률을 이용하여 반박해 하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무죄변호의 인식에 머물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로써 응당 법률을 이용하여 반박해하는 것이 정체적인 인식에서 크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대법제자는 근본적으로 변호와 무죄 변호 문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하여 본인은 이미 과거의 교류 문장에서 제기한 적이 있다. 오늘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제기하여 무죄변호로 존재하는 문제를 여러분들과 교류하려한다. 합당치 못한 곳에 대해 동수들의 자비한 지적이 있기를 희망 한다.

제1부분 : 대법제자들에게는 속인식의 변호와 무죄변호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에 관한 교류

대법제자들에게는 변호와 무죄변호가 존재하는가하는 문제를 본인은 일찍 2010년 10월《법률을 이용하여 반박해하는데 있어서의 두 가지 기본 문제(利用法律反迫害的两个基本问题)》문장을 밍후이왕에 발표하였다. 그 문장에서 나는 명확하게 대법제자를 변호하거나 무죄변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을 제기하였다.

어떤 동수들은 사부님께서 『밍후이왕 10주년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변호사를 청하는 문제를 이미 긍정적인 개시를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확실히 사부님은 이 문제에 대하여 긍정적인 개시를 하셨다. 그러나 어떤 법은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너무 명백하게 말씀하실 수 없다. 너무 명확하면 우리제자들이 수련할 것이 없게 된다. 사부님은 우리를 자비하셔 다만 우리들의 접수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말씀하신다. 많은 일, 많은 도리는 다만 우리 자신에 의거하여 법 중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대법제자들은 변호와 무죄 변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아래 몇 가지 방면에서 이 문제를 인식하자.

1. 2008년 11월 22일, 밍후이왕에는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합법적이고, 진상을 알리는 것도 합법적이다ㅡㅡㅡ 한 변호사가 대법제자 가족에게 보내는 공개편지》가 등재 되었다. 편지의 첫 머리에 밍후이 편집수련생이 주석을 달았다: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합법적이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합법적이다》 이 문장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죄가 없으며, 진상을 알리는 것도 죄가 없다(修炼大法无罪, 讲清真相无罪)》의 수정판이다. 무엇 때문에 ‘무죄’를 ‘합법’으로 고쳤는가? 왜냐하면 ‘무죄’는 악당이 중국인에게 주입한 법률 개념 중에서 가볍게 법을 위반했다는 뜻으로서 경미한 위법은 범죄와 죄가 있는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무죄’의 개념은 무형 중에 우리는 비록 범죄는 없으나 경미한 위법에는 속한다는 것이다! 밍후이 편집부는 ‘무죄’의 개념에는 박해를 승인하는 요소가 존재하나 ‘합법’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층면에서 철저히 박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내 생각에 밍후이 편집부의 주석은 무죄와 합법의 개념을 규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건은 당시 이미 전국 범위 내에서 점차 형성되고 있는 무죄변호의 흐름에 대하여 응당 이성규정의 작용을 일으켜야 했다. 만약 당시 우리가 정체 상에서 ‘무죄’는 박해를 승인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관념상에서 합법으로 고친 심각한 함의를 인식하였더라면 우리는 변호와 무죄변호를 너무 집착하지 않았을 것 이다.

가장 간단한 원리이다. 대법을 수련하는 것이 합법적인 이상 진상을 알리는 것도 합법적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대법제자들의 상술한 합법 행위에 대한 제한과 핍박과 압력이 곧 인권을 침범하는 것이며 곧바로 범죄다. 우리들이 박해를 받고 있고, 우리 믿음과 자유, 언론 자유, 인신자유 등이 합법적인 권리인 이상 우리가 장쩌민 정치 유망집단 및 그 하수인들의 불법 침해를 받는 것이다.

대법제자인 우리는 반드시 떳떳하게 이러한 불법 침해에 대하여 고소를 제기해야하는 것으로서 무슨 변호와 무죄 변호를 근본적으로 담론할 여지도 없다. 변호와 무죄변호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2. 1999년 8월 11일, 다시 말하여 사악의 박해가 시작된 지 20일 되던 날 밍후이왕 에는 비중이 매우 큰 문장을 발표하였다: :《법에 용납 되지도 않고 도리도 통하지 않다ㅡㅡㅡ법률 업무자가 중국 정부의 파룬궁 취소를 명함을 평론》 이 긴 문장은 몇 가지 면에서 파룬궁의 취소를 명한 것은 사실 근거가 부족하고; 법률적 의거가 부족하며; 국가의 한 법률을 위반했으며; 국민의 합법적인 권리를 침범했는가를 설명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중대한 문제는 밍후이왕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이 중대한 문제인가? 이처럼 방향을 제시하는 문장이 중대한 문제가 아닌가? 이 문장의 내용은 무죄 변호하여 무죄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법률 자료를 제공한 것이 절대 아니라, 정념 정행하여 사악을 고소하며 사악이 법제를 제지하기 위해 제공한 절대적인 법률증거이다!

사악이 박해를 시작한 20일 되던 날 밍후이왕에서 이런 문장을 발표한 것은 사부님께서 밍후이문장을 빌어 우리들을 위하여 법률을 이용하여 반박해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나는 후에야 깨달았다. 우리들의 오성이 너무나 낮은 것이다!

심지어 정법이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른 오늘에도 우리는 아직도 사악의 수하인과 우리들에게 죄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문제에서 맴돌고 있다!

3. 법률을 이용하여 반박해 하는 방면에서 해외 대법제자들로 부터는 무죄 변호한다는 말을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다. 해외 대법제자들은 줄곧 정념정행하면서 반박해하였다: 장쩌민 심사대연맹을 건립하였고, ‘전 세계 장쩌민 기소’를 하였으며, 대법을 박해한 중공 악당의 원흉, 장쩌민, 뤄간, 리란칭, 우관정, 류징, 제우 융캉, 보시라이 등 삼십 여명이 십여 개 국가에 기소되어 법정에 오르게 되었다…….

특히 2009년 11월 스페인 법원에서 장쩌민, 뤄간 등 대법을 박해한 원흉들에 대하여 처음으로 유죄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해외 대법제자들이 법률을 이용하여 반박해한 것이 큰 성공을 이룬 것으로서 사악을 뒤흔들어 두려워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대륙 동수들과 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거대한 격려가 되었다!

만약 2009년 말, 대법을 박해한 원흉들이 죄를 인정하기 전에 우리들이 사악과 그들의 하수인과 우리에게 죄가 있는가, 없는가하는 문제를 흥정하면서 무죄 변론을 했다면 그것은 어떤 변명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을 박해한 우두머리가 이미 죄가 있다고 인정된 후에도, 만약 우리들이 여전히 그 상황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념정행하여 사악을 기소하고 범죄를 제지하고 박해를 해체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수련이 매우 차하고, 오성이 너무 낮으며, 정념이 부족하다는 외에 더는 어떤 변명도 할을 수 없다!

4. 대법제자들이 변호와 무죄변호는 모종의 의미에서 의연히 사악의 명령, 요구와 지시에 협조하는 것이다. 사악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법관이 우리들에게 어느 시간, 어느 지점의 법정에 나와 변호하라고 요구한 것은, 비록 우리들에게 변호사를 청하여 변호할 것을 허용한 것이지만, 만약 우리들이 그들의 요구에 따라 했다면 그것은 사악의 명령, 요구와 지시에 협조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또 사람의 염두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우리는 고소하기 위한 고소를 하는 것이 아니며, 반박해 하기 위해 반박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법률을 이용하여 반박해하는데, 정념정행하여 고소하는 이런 형식을 통하여 더욱 힘 있게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폭로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또 누구를 기소하여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간주하는 것이다. 우리는 명백해야 한다 : 우리가 법률을 이용하여 반박해하면서 박해에 참여한 경찰, 법관, 감옥 경찰, 정부관원 등을 기소하는데, 우리와 이러한 사람들의 관계는 모두 구도하는 것과 구도받는 관계이다. 우리는 다만 진상으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몫뿐이다.

앞에서 그렇게 많은 대법제자들에게는 변호와 무죄변호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런 사악들을 떳떳하게 기소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 원인은 정체적으로 박해를 철저하게 부정해야 한다는 정념이 부족한 탓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법제자가 법률을 이용하여 반박해하는 중 철저히 박해를 부정하는 정념인가? 이것은 법리, 법률적으로 똑똑히 말할 수 있다: 파룬따파는 사람들을 교육하여 선을 향하게 하는 정법이지 사람들이 행사작악(行邪作恶)하게 하는 사교가 아니다; 중공악당이야 말로 공산사악 주의사교 이론을 봉행(奉行)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행사작악( 行邪作恶)하게 하고, 천리를 비방하고, 전통도덕 문화를 손상시키며, 중화를 화란(祸乱)시키는 진정한 사교조직이다; 믿음이 있고, 수련하고, 파룬따파의 “쩐,싼,런(真善忍)에 동화되며, 대법을 수호하기 위해 진상을 알리며, 사악박해의 일체 행위를 폭로하는 것은 모두 합법적이다. 반대로 파룬따파와 대법제자에 대한 일체 박해행위는 모두 우주의 진리를 비방하고 인류세상의 도덕 원칙을 비방하며, 악을 처벌하고 선을 칭찬하는 법률을 마구 파괴하며 법을 위반하고 죄를 짓는 것이다. 이것이 곧 법률을 이용하여 반박해하는 중 대법제자 정체가 응당 갖추어야 할 철저하게 박해를 부정하는 정념이다.

속인들도 떳떳해야함을 말한다. 이치가 맞으면 기개(氣槪)가 드높은데, 우리들에게서는 법리가 명확하고 정념이 충족한 것으로 표현 된다.이러한 정념이 있으면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사악을 기소할 수 있는 것으로 피동적인 변호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정념이 있으면 우리야말로 진정한 원고이며, 우리야 말로 원고가 피고의 기소에 대하여 고소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될 것이다. 다만 법률 소송 중의 피고야만이 비로서 자신의 죄책을 면하기 위해 변호할 권리를 향수할 수 있다. 우리는 위법과 범죄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며, 피고로 되어야한다는 문제도 존재하지 않기에 어찌 무슨 변호하며 무죄변호를 담론할 수 있겠는가?

물론 현실 생활 중에서 아직도 무고당하고, 억울한 죄명을 쓰고 피고로 되는 현상이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피고”는 다만 형식적으로 ‘피고’일뿐, 실제는 그가 바로 진정한 ‘원고’이다. 이 관계를 명확히 한다면 이런 ‘형식상의 피고’가 ‘변호’역시 더는 변호가 아니라, 사실은 진상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억울함을 씻은 기초 상에서 무고자에 대한 ‘맞고소’와 고발이다!

구체적으로 우리 대법제자를 놓고 말하면 사악이 국가 형법 제 300조 “사교 조직을 이용하여 국가 법률 집행을 파괴하다”를 남용(濫用)하여 우리들에게 각종 박해를 가하였고, 검찰 기관의 모함으로 ‘피고’로 된 등 상황을 마주하고, 우리는 반드시 “우리에게는 범죄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법을 박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범죄”라는 정념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다만 비법적으로 대법제자를 납치하고, 모함 등 형식으로 죄를 지은 공안국보대, 6.10 조직과 검찰기관을 소송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념이 있었다면 우리는 이미 철저하게 반박해를 부정하는 기제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박해가 발생하면 즉시 박해를 부정하는 반박해기제를 작동하여 박해를 맹아 상태에서 박해를 제지하고 억제하여 박해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여 되도록 중생(검찰, 법원과 감옥, 노교소)이 적게 혹은 참여하지 않아 대법에 죄를 짓지 않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반드시 반박해기제를 가동해야 함도 아니다, 다만 우리들이 철저하게 박해를 부정하는 일념이 있다면 사악의 박해는 무형으로 해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박해를 부정하고 아울러 정체가 이러한 정념을 구비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이어짐)

문장완성: 2011년 3월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23/用法律反迫害在认识上存在的误区分析(一)-2412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