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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의사의 수련이야기

글/ 시난(西南) 대법제자

[밍후이망] 우리 진(鎭)에 60세 되는 의사 수련생이 있다.(이하 간단히 ‘동수’라고 함) 매번 명절이나 휴가 때 고향에 돌아갈 때 그를 뵙곤 했다. 그는 나에게 몇 년 사이 자신의 수련이야기와 인생경력을 들려줬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나로 하여금 수련 격차와 수련은 긴박하며 사람을 구하는 것은 조급하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아래는 그의 경험과 대법에서의 수련이야기이다.

1. 이 생은 법을 위해 왔다.

이 수련생은 8살 때부터 의학을 배웠다. 그때 의사 사부는 70세 노인으로 문화대혁명 때 사당에 박해를 받아 ‘외양간’에 갇혔던 적이 있다. 이 사부는 의술이 타고났고 기문둔갑술, 무술 등도 능했다. 사부는 그에게 의술을 가르쳐주고 또 무술과 기문둔갑도 가르쳐줬다.

동수 젊을 때 한 손의 세 손가락만으로 팔굽혀펴기를 100여개 할 수 있고 한발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80여번이나 할 수 있다. 의학을 배운 후부터 조명이 없이 캄캄한 밤 시골길에서도 쉽게 다닐 수 있다.(보통 시골의사는 늘 밤에 치료하러 다닌다) 이후에 의사의 사부는 동수에게 둔갑술을 가르쳐주려 했다. 그러나 수련생은 나이는 어려도 이런 둔갑술은 대법대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끝내 배우지 않았다.

수련생이 젊을 때 한 친척은 공무원인데 그에게 단원, 당원에 가입하라고 추천해 주었다. 가입하면 정부기관에 와서 간부를 할 수 있으며 이후에 더욱 높은 데로 추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수련생은 끝내 당에 가입하지 않고 사당의 간부도 되지 않았다.

70년대 의사의 사부가 동수에게 1997년까지 살 수 있다고 알려줬다. 88년, 수련생은 임파암에 걸려 성(省)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는데 의사 교수는 9년을 더 살수 있다고 했다. 바로 1997년까지다.

1992년, 만고에도 만나기 힘든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신주(神州) 대지에서 전하기 시작했다. 5년 후 1997년 수련생은 법을 얻었다. 이후로 중생이 오랜 세월을 기다렸던 대법수련 귀진(歸眞)의 길을 걷게 됐다.

10여년이 지났다. 수련생은 전신이 환골탈태하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전에 병원에서 판정한 불치병은 모두 사라졌다. 비록 60세 나이지만 눈이 내리는 겨울에 일반 바지를 입고 몸에 와이셔츠 하나에 겉옷만 걸치면 된다.

2. 정념정행

2000년 봄, 수련생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갈 때 베이징기차역에서 왕복 6번이나 신분증을 검사 했는데 그 앞뒤 있는 사람은 다 검사했고 그를 데리로 온 사람도 검사를 다 받았지만 경찰은 오직 그만은 검사하지 않았다. 수련생은 “당시 마음속으로 나를 검사하지 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략 2005년, 동수의 작은 아들이 벌에 쏘였다. 순식간에 얼굴이 찐빵처럼 부어올랐다. 동수의 부인는 당시 수련을 하지 않았는데 매우 조급했다. 수련생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은 아들에게 ‘불전천수법(佛展千手法)’을 가르쳐줬다. 두 번째 할 때 얼굴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앞뒤 몇 분 사이에 기적이 일어났다. 아내는 아들 얼굴의 변화를 보고 대법의 초상(超常)함 보았다. 지금 부인도 수련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수련생이 진상을 알릴 때 악인의 모함에 빠졌다. 진(鎭) 경찰서에서 그는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경찰서에 오는 사람과 공무원들에게 대법의 신성함을 알려줬다. 그리고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이 조작되었음을 알려주고 장쩌민과 공산사당이 서로 결탁해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하는 진상을 알렸다. 전에 수련생은 대부분 경찰과 공무원에게 진상을 알려 모두 ‘삼퇴’를 시켰다. 다른 사람은 묵묵히 앉아 있는데 오직 치안주임만이 고함지르며 “오늘 여기서 내가 책임진다. 나갈 생각조차 하지 말라. 너를 구치소에 보낼거야”라고 말했다. 수련생은 웃으며 “나는 대법제자다. 네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내가 책임진다. 오늘 나는 집에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그 치안주임은 경찰서 전화를 걸어 수련생을 구치소에 보내겠다고 했다. 결과 그날 전화를 여러 번 걸었는데 걸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 수련생은 발정념을 해서 박해를 부정하고 자제시켰다. 그리고 오가는 사람에게 모두 진상을 알렸다.

오후 진(鎭) 서기가 와서 수련생을 보더니 “집에 돌아가세요”라고 말했다. 수련생은 가기 전에 치안주임을 보고 웃으며 “보세요, 내가 책임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다. 안에 있던 모든 경찰과 공무원들은 킬킬 웃었다.

3. 세 가지 일을 잘해 서약을 지키자

수련생은 1999년 7월 대법이 박해 당한 후 10여년 동안 매일 4시간의 수면을 유지하고 매일 전세계대법제자 단체연공 시간에 맞춰 연공했다. 매일 점심에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며 진상을 알리고 평온하게 오늘까지 왔다. 동수 직업은 의사다. 병을 보러 오는 사람에게 모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와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다)”를 알려주며 삼퇴를 권했다. 몇 년 동안 그는 인연 있는 사람에 진상을 알리고 그들에게 대법의 복음을 가져다주었다. 3년 전 수련생은 말했다. “한 달에 100여명을 퇴출시키고 많을 때는 2,3백 명이 된다”고 말했다. 몇 년 동안 수련생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원했을까?

그 중 50세 되는 불치병에 걸린 한 환자가 수련생을 만났을 때 병원에서 며칠 남지 않았다고 했다. 수련생은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라고 했다. 환자는 기뻐하며 이후에 진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계속 염했다. 한달 후 그 환자를 보니 몸이 완전 회복됐다. 그리고 밭에 가서 일도 할 수 있었다.(몇 년 동안 밭에 가서 일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후 불치병에 걸렸던 환자는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이 같은 사례는 아주 많다.

전에 대법제자를 박해했던 경찰서 간부가 수련생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대법진상을 알고 친히 대법의 ‘선악은 보응이 있다’것을 증명했다, (그가 대법제자를 박해한 후 오토바이를 타다 다리가 부러졌다. 이후에 수련생이 그를 도와 치료해 회복됐다.) 동수의 순진하고 선량한 마음을 보고, 대법의 초상함을 보고 자발적으로 동수와 의형제를 맺자고 했다. 수련생은 말했다. “의형제를 맺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대법제자를 박해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대법제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경찰은 기뻐서 응하고 의형제를 맺은 후에 박해당한 대법제자를 도와 자유를 얻게 해 동수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는 결국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않고 대법제자를 보호해 주었다.

문장발표: 2011년 4월 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4/4/2384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