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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하라, 안일심으로 훼멸되지 않도록!

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안일한 마음은 수련인을 놓고 말하면 마치 천리 제방이 개미굴로 무너지는 것과 같다.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련인의 의지를 잠식하며, 부처 수련하여 선을 향하는 귀중한 시간을 소모시켜 수련인으로 하여금 정진하지 못하게 한다. 어떤 수련생들은 안일심에 의해 훼멸되고 아래로 떨어지는데 사부님께서 몹시 가슴 아파하신다.

무엇을 안일심이라고 하는가? 자전을 찾아보면 안(安)은 평온하고 안정하다는 뜻이고, 일(逸)은 편안하고 한가롭고 안락하다는 뜻이다. 자전에서 ‘안일’이란 단어에 대한 해석은 ‘안일하고 한가로우며 편안하다’이다. 이것이 어찌 수련인의 상태라고 할 수 있으며 이렇게 되서야 어찌 수련할 수 있겠는가? 간단하게 말하면 안일심은 곧 향락심이다. 인간 세상에는 두 가지 향락이 있다. 일종 감각 자극을 추구하는 물질적 향락이 있으며, 다른 하나는 안일하고 한가로우며 욕심 없고 편안하며 평정하고 안정 속에서 생활을 맛보는 즐거움이다. 전자는 물질적으로 편향하며, 후자는 정신적으로 편향된다. 우리 수련인은 물질과 정신이 일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보통 후자는 전자에 비해 더욱 고상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일종이든지 막론하고 사람이 세상에서 살면 황제로부터 평민백성에 이르기까지, 혹은 많게 혹은 적게 모두 안일심이 있으며 모두 이 안일을 누리는 것을 추구한다. 안일심은 속인에 속하는 것이지 수련인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수련인이 버려야 할 마음이다. 그것은 기타 집착심처럼 그렇게 머리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며 쉽게 사람들에게 발견되거나 붙잡히지도 않는 것으로 극히 은폐적이고 조용하며 수련인들의 주의하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그것의 피해는 매우 크며 사람을 해쳐도 흔적을 볼 수 없다.(정진해야만 비로소 그것들의 ‘흔적’을 볼 수 있음.)

수련은 한 개 방면으로는 고생하는 것이고 다른 한 방면은 깨닫는 것이다. 안일심은 수련인으로 하여금 고생을 하지 못하게 하며 깨닫지 못하게 한다. 믿지 못하면 우리 함께 찾아보기로 하자. 보증하고 매우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면 고생하는 방면이다. ‘오늘은 일을 하고 나니 매우 힘들어 연공하지 않을거야’, ‘오늘은 왜 이렇게 졸리지. 법공부를 안하겠어. 왜냐하면 봐도 헛보게 되니까’, ‘아직도 2분이나 남았네. 좀 누워 있자…다시 시계를 보니 10분이 지나버렸네(결국 정념을 발하지 못함)’, ‘아직 5분 후에야 단체 연공시간이 되니 조금만 누워 있자(결국 자버림)’, ‘눈이 오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몹시 불면 진상하러 나가지 않을거야’, ‘병업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니 차라리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병원에 입원하자. 수술도 할 수 있다(이것은 고통에만 연루되는 것이 아니라 오성 문제가 있다)’, ‘나는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용감히 진상을 알리지 못하고 삼퇴를 권하지 못하는데 신고당할까 봐 무섭고 감옥살이의 고통을 당할 수 없다(요소가 매우 많은데 마찬가지로 오성 문제가 있다)’, ‘확실히 7.20 이후 박해는 참혹했고 환경은 험악하다(특히 베이징 이 사악의 중심이다)’….이 모두가 수련인들에게 거대한 심리적 압력을 조성했는데 그 마음은 정말 고통스럽다. 나는 일찍이 한 동수에게 말했다. “7.20 이후 내 마음은 진정으로 느슨해본 적이 없고 즐거워 하는 때가 매우 적다. 웃는다 하더라도 그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씁쓸하고 떫다.(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 비로소 이 말에는 과거 안일한 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됐다.)

어떤 동수들은 아무런 박해도 받지 않았으나 이러한 고통을 참지 못해 수련을 포기하거나 다른 종교로 전향했다(그 중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음), 여기에서 다만 그 중 보편성을 띄는 것을 조금 예를 들었을 뿐이다. 수련인의 이러한 표현은 모두 안일심으로 촉성되는 것으로 그것들은 배후에 숨어서 작용을 일으킨다. 깨닫는 방면, ‘이렇게 어려운데 몇 사람이나 수련해 올라가겠는가’(자신이 정진하지 않음에 구실을 찾으면서 안일한 생활 상태를 개변하려 하지 않는다), ‘보세요, 아무아무개는 그렇게 잘 했는데도 사망하지 않았습니까’(법리 인식이 똑똑치 못한 문제). 한 수련생은 박해를 받고 돌아온 후 세 가지 중에 다만 두 가지만 했다. 집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발정념만 했다. 이후 병업 박해를 참지 못해 병원에 입원해 모 기관 절제 수술을 했다. 퇴원 후 그는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깨닫지 않고 반대로 이렇게 오래도록 수련했는데(십 몇 년) 수련했다는 것이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주 소침해 했는데 하마터면 수련을 포기할 뻔했다.

돈을 사용하는 문제 상에서 한 수련생은 집을 사고 가전제품을 사며 손님을 청해 식당으로 드나드는 등 속인의 예의상 왕래 및 아이들을 위한 돈은 아끼지 않고 쓰지만 대법을 실증함에 사용하는 돈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다. 평소 자신이 사용하는 mp3플레이어, USB, 컴퓨터까지 모두 동수들이 장기적으로 제공한 것을 사용한다. 또 어떤 동수들은 돈 계산에 유달리 똑똑하다. 거래 시 흥정하는데 손해를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소나마 이득을 보고 그 상황을 곳곳에서 자랑한다.(정당한 거래를 견지해 대법 자금을 낭비하지 않았다며) 또 몇 십전 때문에 몇몇 가게를 드나드는데 심지어는 며칠이나 이렇게 한다.(정법하고 사람을 구도하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 또 어떤 수련생은 본래 자신과 다른 가족들이 모두 퇴직금이 있어 기초 생활에 문제가 없는데도 외부에서 오는 돈과 물건을 거절하지 않고 모두 집으로 가져가 수련 혹은 사람을 구도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생활을 개선하는데 쓴다.(사실 역시 안일심이 촉성한 것으로 돈이 많으면 생활이 개선된다는 마음, 또 기타 마음도 있음)

혈육 간의 정을 대하는 면에서 특히 노년 동수들은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들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수련에 영향을 주고 있다. 며칠 아이들을 보지 못하면 보고 싶어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모두 아이를 달래고 아이들과 놀아주는데 사용한다. 어떤 동수들은 아예 자식 집에 이사 가서는 아이들이 모두 유치원에 갔는데도 몸을 빼지 않는다.(물론 여기에는 자신이 원하는 면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음) 아이의 면목을 봐서 자식들도 유달리 부모님께 효도하는데 며칠이 멀다하고 맛있는 음식과 옷을 사온다. 또 자식들은 늘 부모님을 모시고 쇼핑하러 가고 평소 가정 일은 보모가 한다. 처음에는 조금 습관되지 않았고 수련을 지체한다고 조급해도 했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안일심이 일어나 점차 수련을 멀리하게 되면서 더는 자책하지 않게 됐다. 사실은 안일심이 가로 막아 우리들로 하여금 법에서 깨닫지 못하게 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깨닫게 되면 수련인은 법리로 자신을 귀정하게 되며 정념의 작용 하에 안일심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집착을 즉시 보아내고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더욱 정진하지 못하게 한다.

이상에서 볼 수 있는바 안일심은 우리 수련인들이 고생을 하지 못하게 하고 안일 중에서 의지를 소모시켜 정진하지 못하게 한다. 안일심은 또 깨닫지 못하게 하며 우리 수련인들로 하여금 정념을 잃게 해서 속인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사악은 곧 안일심으로 우리들을 끌어 당겨 없애 버리고는 우리들이 수련하지 못하게 한다. 특히는 베이징에서는 생활 수준이 외지 보다 높고 조건도 좋으며 대부분 모두 부유한데 먹고 쓰고 노는 각양각색의 것이 전부 있다. 게다가 각종 특혜 대우가 있어 각종 방면에서 시시각각 모두 유혹과 고험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조금만 정신을 팔면 안일심에게 포로되어 속인과 혼동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안일심에 대해 시시각각 경계해야 하며 일단 발견했다면 즉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 수련인들의 이전 공로를 모두 저버리게 해서 자멸하고도 알지 못하게 한다. 그것들은 우리들의 생활 중, 수련 중, 각종 방면에 숨어 있으면서 우리들이 아직 수련해 버리지 못한 모든 사람 마음, 집착과 함께 감겨져 있으면서 우리들을 아래도 끌어내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그것들을 수련해 제거해 버려야 한다.

최후일수록 안일심도 더욱 크게 작용하므로 우리는 더욱 경계하고 더욱 엄숙하게 수련을 대하고, 더욱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야 하며 추호의 느슨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는 베이징에서 생활하는 대법제자와 외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친척을 찾아 베이징에 온 대법제자는 더욱 유의해야 한다. 외지 동수들은 베이징을 큰 염색항아리라고 한다. 매우 많은 동수들이 베이징에 와서 한 시기 지나면 곧 떨어져 버리고 다만 죽도록 돈만 벌고 모으려 할뿐 더는 정진하지 않고 어떤 이들은 수련을 포기한다고 말한다.(사실 열심히 돈을 번 것도 이후의 안일한 생활을 위해 기초를 닦기 위한 것으로 여전히 안일심이 작용한 것) 다행히도 우리 대법제자는 법이 있고 사부님이 계시기에 오직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르고 대법 표준으로 자신을 대조하며 가늠하고 자신을 요구한다면 반드시 안일심을 제거해 버릴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정진할 수 있으며 반드시 사부님이 안배한 정법 수련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사람이 수련하고 있고, 또 속인사회 중에서 사람마다 모두 안일심이 있는데 그 많고 적은 정도가 다를 뿐이다. 안일심이 있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관건은 우리들이 어떻게 청성하게 인식하고 억제하며 이겨내고 제거해 버리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이 문장을 쓰는 것은 절대 내가 어떻게 잘했고 인식이 어떻게 높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반대로 내가 잘하지 못했으나 잘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 자신이 직접 격은 것, 본 것, 들은 것을 쓰게 됐다. 그중에는 내 몸에서 발생한 것, 동수 몸에서 나타난 것 등이 있다. 신변의 어떤 수련생이 안일심에 의해 훼멸되는 것이 눈에 보이기에 마음은 조급하고 괴롭다 보니 그 느낌을 발표하려고 이 문장을 써서 자신과 동수들이 경계하고 인식해 이로부터 안일심을 제거하려는 생각이다.

합당하지 못한 데 대해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2011년 2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15/2362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