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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 속의 말 ‘파룬따파는 좋다’

글/치랜

[밍후이왕]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여 많은 이익을 얻은 나는 자신의 수련 체험을 글로 써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모두에게 알리고자 한다. 심성(心性)이 제고됨에 따라 그러한 정(情)중에서의 상처와 난 중에서의 박해자에 대한 원망이 자비와 책임감으로 대체되었다. 큰 난이 오기 전에 여전히 미혹 중에 있는 중생을 구도하기에 조급하다. 그들을 일깨우는 것이 우리가 사전에 사부님과 맺은 큰 염원이다.

파룬따파 수련자는 모두 비바람 속의 11년이란 경력이 있다. 모두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는데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 중의 체험은 오직 수련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몸에 푹 배인 여러 가지 집착을 버리려고 할 때, 중국 공산 악당의 경찰차가 부르짖는 소리와 흑운이 온 하늘을 뒤덮을 듯한 공포, 불법 납치를 당한 수련생이 고문에 시달려도 하소연 할 곳이 없는 그 고통, 많은 대법제자들이 납치되어 불법적 판결을 당할 위험도 무릅쓰고 여전히 선의로 진상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대 자비심, 정말로 감탄스럽다. 그러나 나의 내심의 심령 깊은 곳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한 마디는 바로 “사부님 안녕 하십니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는 것이다.

방황하다 법을 얻다

나는 전문대학 졸업생으로서 문학을 즐겼으며 노래하기 좋아했고 또 남의 일에 쉽게 감명 받는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 나는 직업, 가정, 모두가 내 뜻에 맞지 않아 생활에서 아주 힘들다 보니 그만 지쳐 버렸다. 부친, 조부, 고모 이 세 사람은 100일 안에 모두 잇따라 돌아 가셨다. 부친이 돌아가신 백일째 날이 바로 고모의 장례식 날이었다. 그 나날들은 거의 장의사에게로 뛰어 다니다시피 하였다. 유독 나에게 잘 대해주시던 부친이 돌아가신 후 나의 마음은 하루라도 효도할 기회를 주지 않은데 대해 너무나 괴로웠다. 100일에 친인 3분이 돌아 가시니 마음 속 고통은 극도에 달했다. 나는 화장터 굴뚝 위로 올라가는 검은 연기를 바라 보면서 하늘을 향하여 탄식했다. “하늘이여! 사람은 무엇 때문에 죽어야 하는가! 죽어야 한다면 아예 태어나지도 못하게 하든지, 일단 태어나게 했으면 죽게 하지 말든지!”.

마음이 극도로 타락되어 정말로 이만큼 살았으면 됐다는 느낌이었다. 자신은 능력이 있는데 마땅한 직업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아름다운 옥이란 소설을 즐겨보는 나는 폭력적이고, 욕하고, 훈계만 하는 남편을 만났다. 일체는 모두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리하여 나와 동료는 해외로 나가려고 상의하였다. 이렇게 사람을 질식시키는 환경과 폭력적인 남편을 떠나 자유롭게 행복을 찾아 가고 싶었다. 그리고 친정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동의하든 안 하든 나는 가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주었다. 마침 남동생도 집에 있었는데 나의 결정을 듣더니 “둘째 누나, 나에게 마침 좋은 책 하나 있는데 보세요, 본 다음 그래도 가겠으면 바로 가도록 해요”하고 말했다. 나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그 책을 받았다. 속으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내가 이미 결정한 것은 개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책을 보니 『전법륜』이었다. 푸른색 표지를 보니 눈이 맑아졌다. 보면 볼수록 아주 좋았다. 그날 저녁에 집에도 가지 않고 단숨에 책을 전부 다 보았다. 당시 어디도 가지 않고 수련하려고 다짐했다.

나는 본래 아주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완고하기로 남편에게 맞을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할말은 끝까지 하는 성미였다. 절대로 참고 양보하지 않았으며 용서한다는 말을 할 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이 결정한 일은 절대로 쉽게 개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법은 바로 이와 같이 초상적이었다. 『전법륜』을 한 번 밖에 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쉽게 오래 동안 계획했던 일을 개변 할 수 있었다. 나로 하여금 무겁던 마음이 단번에 가벼워졌으며 마치 창문 하나 열어 놓은 것 같이 서서히 따뜻한 바람이 스며들어 오래 동안 마음에 쌓였던 먼지를 촉촉하게 적시는 것 같았다. 나의 마음과 정신적인 데에서 구도를 얻게 되어 내가 조만간 떠나면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야 할 집이 보존되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 또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대법은 나에게 행운이며 나를 행복하게 하였다. 대법은 나에게 사람됨의 도리와 인생의 진실한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 나의 몸과 마음이 대법 중에 용해되어 고생을 늘 낙으로 삼았다.

법 공부, 수련의 신기(神奇)

나는 87년 9월부터 수련하기 시작했다. 금방 법을 얻었을 때에는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다급히 집으로 향했다. 저녁 먹고 아들과 함께 법 공부 하러 학습반에 갔다. 아침에도 아들과 함께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였다. 연공장은 집에서 약 30분 걸렸다. 그때 아들은 겨우 10살이었다. 신기한 것은 아들은 나에게 자기를 깨우지 말라고 하였다. 내가 자기를 데리고 가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내가 아침에 침대에서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을 때면 아이도 저쪽에서 살살 일어나서 옷을 입는 것이었다. 동북의 겨울은 아주 추웠다. 게다가 우리는 또 하나의 작은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때 나와 아이는 정말로 별을 지고 달을 이고 법공부와 연공을 하러 다녔다. 그 시기 신체적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지만 마음만은 아주 충실하여 행복했다.

어느 날, 우리 둘이 저녁 법공부하러 막 작은 다리까지 왔는데 아이가 “엄마, 봐요 저렇게 많은 별들이 모두 우리를 향해 오고 있어요!” 라고 했다. 나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공간 마당의 표현 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이것은 사부님께서 너를 격려한 것이다”라고 알려 주었다. 바로 마치 내가 제일 처음으로 언니, 남동생과 함께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러 갔을 때와 비슷하였다. 아파트 구역까지 갔는데 어느 단지인지 잘 몰라서 헤매고 있었다. 언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고 하였다. 내가 앞으로 물어보러 가고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도리어 마치 구운 빵처럼 그렇게 큰 하나의 파룬이 나의 눈앞에서 돌고 있었는데 녹색이었다. 그런데 파룬은 돌면서 앞으로 천천히 가고 있었다. 나는 흥분한 나머지 “언니 나 파룬을 보았어!” 빨리 파룬을 따라 가자고 재촉했다. 언니와 남동생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파룬을 따라 가고 그들 둘은 나를 따라 왔다. 줄곧 걸어서 다른 한 아파트까지 왔을 때 사람들이 삼삼오오 어느 단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찾았다고 기뻐하였는데 파룬이 금새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이 설법 비디오를 다 본 후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작은 거리에 서 있었는데 나는 또 파룬을 보았다. 나는 거기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파룬을 보고 감격되어 “사부님 나에게 속인들이 볼 수 없는 신기한 것을 보여주어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언니와 남동생은 그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났다. 이 한 막의 영상은 아직도 여전히 나의 눈앞에 또렷하게 보였다. ‘7.20’ 이후 순간 흐리멍덩했다. 나는 파룬을 생각하고 아주 빨리 미혹 속에서 걸어 나왔으며 견정하게 법을 실증하는 거센 흐름 속으로 진입했다.

아들도 아주 정진하였는데 정말로 대법과 연분이 있었다. 어느 한번 연공할 때 약간 비가 내렸다. 누군가가 가서 비를 피하자고 하였는데 아들과 나는 움직이지 않고 계속 연공을 끝까지 하였다. 또 한 번은 법공부 끝난 후 정공을 하는데 가부좌한 다리가 떨고 있었는데도 아들은 한 시간 끝까지 견지했다. 그때 겨우 9살 밖에 되지 않았다. 한 수련생이 말하기를 본래 자기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내려 놓으려고 하였는데 앞에 어린 아이가 모두 참고 견지하는데 차마 부끄러워서 내려놓지 못하고 견지하였다고 하였다. 또 한 번은 우리 법 학습반이 한 초등학교 교실에 세 들었었다. 법학습 중간 휴식 시간에 나는 화장실에 갔다. 이때 60세인 최 노인이 생리가 와서 생리대를 가지러 왔었다. 그녀는 머리가 이미 모두 하얗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야기 하셨듯이 “그뿐만 아니라 노년 부녀자들은 또 생리가 올 것인데, 성명쌍수 공법에서는 당신의 명(命)을 닦는 데에 경혈지기(經血之氣)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짜로 보고나니 또 아주 놀란 나머지 할머니에게 “정말로 생리가 온 거 맞아요?” 하고 물었더니 노인은 “그럼 정말이 아니고 거짓이겠어!”하고 대답했다.

어느 한번 나와 남동생이 주말에 친정 집으로 갔다. 오늘은 주말이니 남동생과 함께 있으면서 밖에 나가 연공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 연공할 시간이 되었을 때 귀에서 연공 음악이 들렸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연공하라고 경종을 울려 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즉각 따뜻한 이불 밑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마침 남동생도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는 정공 음악을 들었다고 하였다. 우리 둘은 감격했다. 야! 사부님께서 정말로 우리 신변에 계시는구나! 게으름을 부릴 생각을 하지 말고 빨리 연공 하러 가자고 하였다. 나와 남동생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행복 속에서 연공하러 갔다. 그때부터 우리는 연공함에 더는 하루도 감히 꾀를 부리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신체를 청리하여 주시는데…… 수련 10여 년을 하였지만 누가 사부님의 넓은 은혜에 보답을 다 할 수 있겠는가? 어느 제자라도 모두 보답할 수 없다. 오직 정진이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우리의 생명을 아끼고 있다!

3개월 동안 법을 배운 후 나는 법을 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경영학을 배웠다. 문과에 속했는데 외우는 것이 비교적 많았다. 나는 속인의 책을 모두 많이 외웠는데 이렇게 좋은 대법은 더욱 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바로 98년부터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법을 외우는 것과 속인의 책을 외우는 것은 정말로 같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나는 우리 반에서 잘 외운다는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법을 외우는 면에서 줄곧 오늘까지도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비록 외우기 힘들지만 역시 줄곧 견지했다. 나의 목적은 거꾸로 외워도 유창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좋은 법을 나는 매 하나의 글자 모두 마음에 새기려고 하였다. 이 역시 나의 일생에서 제일 가치가 있는 일이다.

대법이 난을 당하다

바로 나와 아들이 법공부, 연공하여 심성 수련에서 부단히 자신의 도덕을 제고하고 명리심, 쟁투심, 질투심 등 여러 가지 속인의 마음을 버리고 있을 때 99년 7.20에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은 파룬궁에 대해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모함하면서 참혹하게 박해를 시작하는데 대해 나는 너무나 얼떨떨했다. 그 후 여러 방면에서 압력이 가해졌다. 모든 매체가 판에 박은 것처럼 하늘땅을 뒤덮을 듯 거짓말로 아득한 중생을 기만했다.

우리집도 난장판이 되었다. 언니는 회사의 당 지부서기였다. 정치에 대한 민감함이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초등학교 때부터 간부로 있었는데 지금까지 줄곧 간부였다. 연공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지! 좋고 나쁜 건 마음속으로 알면 된다. 변덕스럽게 오늘은 당신을 하늘처럼 떠 받들다가 내일은 또 1억만 민중을 딛고 올라서는 이것은 아주 정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언니는 공산당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그 녀를 찾아가 이야기 하면 그 녀는 연공하지 말라면 하지 않으면 되지. 태도는 아주 명랑하였다. 그러나 그 녀는 대법책을 모두 바치지 않았으며 잘 보관하였다. 나와 남동생에게 “너희 둘은 누구도 움직이면 안 된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나와 연관이 없다. 파룬궁은 좋은가 나쁜가, 물론 좋다. 무릇 연공하여 모두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집에서 조용히 연공하고 집에 조용히 있어야 한다…… “고 당부했다.

어머니도 대법에서 친히 많은 수혜를 받았다. 연공하여 이 몇 년 동안 주사 한 대 맞지 않았으며,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 (수련하기 전에는 매년 몇 번의 링거를 맞아야 했고 약은 늘 복용하였다) 몇 십 년 동안 즐겨 태우던 담배도 모두 끊었다. 쇼핑하러 5-6시간 갔다 오면 우리도 힘든데 70의 고령인 어머니는 힘들어 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누가 대법이 어떠어떠 하다고 말해도 어머니는 믿지 않았다. 어머니는 천목으로 일부 물건들을 보았다. 어머니는 가만히 연공하였다. 어머니는 “이 가세(架势)를 보아 또 무슨 정치 운동이 올 것 같구나. 나 이 나이에 정치운동 경력만도 얼마인지 모른다. 너희들 언니 말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될 거 아니야, 너희들 외삼촌처럼 전 가족이 따라서 고생하지 말기를 부탁하였다. (외삼촌은 일찍이 반혁명 분자다. 외삼촌 네 전 가족 7명이 함께 유배되어 헤이룽장 시골로 내려갔다. 47세에 빈곤해지고, 우울해졌으며, 화로 인하여 원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떴다. 죄상(罪狀)은 바로 모xx의 머리 한 장 그리고 아래에 몇 그루의 청송을 그려 모xx가 죽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리고 너 시아버지처럼 공산당을 진심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시아버지는 학교 교장이었다. 문화 대혁명 시기 어떤 사람의 모해로 한 교육가가 하나의 실업자로 변했다. 20여 년 동안 일전 한 푼의 월급도 없었지만 시아버지의 인격의 존엄은 무너지지 않았다. 학자의 바른 기풍은 빈털터리라도 품격만은 무너지지 않았다. 문화 혁명시기 집이 수색 당하고 시골로 내려 보내도 그의 사람 됨됨이의 원칙은 꺾을 수 없었다.)

나는 이 한 시기에 회사에서 남편, 어머니, 언니 등에 대한 중공의 거대한 압력을 조용히 사고해 보았다. 생각해 볼 때 내가 법을 얻기 전후의 변화가 특히 정신적, 내심에서 거대한 수혜를 받았다. 대법은 나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힘을 주었다. (7이 정신이고 3이 병이다.) 이 도리는 속인도 모두 알고 있다. 정신이 좋으면 심태가 바르고 내심이 평온하여 쉽게 병에 걸리지 않는다. (현재 사람들은 생활에서 목표를 잃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 대법은 나를 구했으며, 우리 전 가족을 구하였다. 나와 동료간의 긴장된 관계도 개선되었고, 장기간 시어머니와 왕래하지 않았는데 작은 고모가 견고한 얼음을 깨뜨려 새롭게 왕래하게 되었다. 어머니에 대한 20년이란 원망도 해체되었다. 더욱이 남편이 때리고 욕해도 맞받아 대응하지 않고 묵묵히 눈물만 흘렸다. 가슴에 손을 얻고 뼈저리게 안에서 잘못을 찾았지만 이치를 따지면서 양보하지 않았다. 말할 때면 인색한 나로서 아주 많은 일, 사건에서 특히 힘들었다. 당시 내가 이미 법을 외운지 1년이 넘었다. 이것은 나에게 견정한 정신(正信)에서 양호한 기초를 닦아 놓았다. 내가 파룬을 두 번 본 것을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많이 직접 목격한 신기한 일들이 있었으며, 모두 대법이 없으면 나의 오늘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짧은 시간의 생각 끝에 나는 향후 수련의 길에서 얼마나 힘들고 험난해도 모두 끝까지 수련할 것을 다짐했다.

진상하여 세인을 구도

정법형세의 추진에 따라 현재 나는 주로 화폐를 사용하여 진상을 하고 선을 믿어야 한다는 글을 써서 우편으로 보내고, 션윈 CD를 전달하고, 대면하여 진상을 하고 있다.

(1)진상을 이해한 세인들이 나를 도와 진상을 하다

이 몇 년간, 나의 남편의 한 친구와 그의 아내는 내가 박해로 구치소, 수감소에 또 불법으로 납치되어 3년 판결을 당하여 마샨쟈(馬三家) 노동수용소에 감금되었을 때에도 그들 부부와 우리는 비바람 속에서 한 배를 탔다. 정신적, 경제적으로 모두 나의 남편과 아들에게 사심없이 성심성의로 도와 주었다. 더욱이 남편은 문화혁명 시기 심한 충격을 받은 탓으로(그때 8살의 어린 나이에 집이 수색 당하는 비참한 장면을 목격)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99년 10월 내가 베이징으로 두 번째 법을 수호하러 갔다가 불법으로 납치되어 현지 구치소에 압송되어 15일 감금되었을 때 남편은 거의 음식을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면서 몇 마디 하는 소리 “우리는 왜 정치에 젖지 못하는가! 어찌 ××당과 대응할 수 있는가?”는 말 뿐이었다. 이 험난한 15일 동안 모두 그 친구가 그를 대동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아주 이 난을 넘기 힘들었을 것이다.

2002년, 나는 진상 전단지 스티커를 붙이다가 진상을 잘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불법적으로 3년 판결을 당하여 마산쟈 노동수용소에 감금 되었다. 남편은 이혼하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학교에 가거나 또는 군 입대 등 앞날에 영향이 미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국보대대에서 또 그의 회사에 찾아가서 그를 조사하였는데 그에 대한 압력은 더욱 컸다. 나중에 그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이혼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다.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가야 하는데 밖에는 찬 바람이 뼈까지 스며들 듯 추웠다. 내심은 쓸쓸하고 밖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또 자유를 잃고 감금된 아내를 생각하니, 하늘도 어둡고 땅도 캄캄하여 솟아날 구멍이 없는 듯 하였다. 집으로 가기 싫었고, 밥 짓기도 싫어졌다. 그런데 아이를 생각하니 내가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바로 잘못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그 친구 부부에게서 아이를 데리고 가라는 전화가 왔다. 아이는 저녁밥을 먹고, 지금 소파에 누워 있다고 하였다. 남편은 아주 온화한 느낌에서 그날은 이 3년 중에서 제일 달콤하게 잠을 잘 잔 하루였다.”고 하였다.

사람을 대면하여 진상함에 따라 나는 그 친구 부부를 구해야 한다는 마음은 갈수록 긴박했다. 그런데 나의 마음에는 장애가 있었다. 이 몇 년간, 나와 우리 가족이 박해당한 상황을 그들은 모두 뚜렷이 알고 있으므로 3퇴를 권함이 아주 쉽지 않았다. 시험해 볼 생각으로 어느 날 그 녀에게 진상하여 3퇴를 권했더니 그 녀는 “그래요 나 탈퇴할께요. 그런데 절대로 밖에 나가 말하면 안되고 또 오빠한테도 말하면 안돼요. 그렇게 못하면 탈퇴가 불가능해요.” 하고 대답했다. 나도 그녀가 탈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진상을 하지 않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오빠의 모친이 세상을 떴다. 장례를 치르며 출관식과 밥먹는 시간을 이용하여 나는 진상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경야(守灵)시에 있는 큰 오빠의 네 형제를 모두 탈퇴시켰다. 내가 마침 그들의 아내들한테 진상하려고 하는데 뜻밖에 뒷방으로 걸어가던 큰 오빠가 나도 탈퇴시켜줘! 하고 말했다. 당시 나는 정말로 아주 격동되고 감격했다! 자신이 늘 사람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법을 실증하려고 한 것을 혹시 사부님께서 바로 이 오빠를 통하여 나의 관념을 타파하게끔 도와 준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이렇게 자신이 모두 탈퇴하지 않을 거라고 인정 했던 이 관념이 사람들이 모두 말을 꺼내기도 전에 주동적으로 탈퇴하겠다고 하는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우리의 법을 실증하는데 큰 장애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렇게 11명에게 탈퇴시켰다. 나중에 그들 중 한 동창의 모친이 또 돌아가셨다. 이상한 것은 남편이 나에게 가 보라고 하면서 자기는 안 간다고 하였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다시 나에게 가서 사람을 구도하라고 안배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만약 남편이 가면 나에 대한 교란이 아주 클 것이다). 술자리에서, 나는 한 남자에게 진상하였다. 그는 자기의 한 친척이 그에게 나처럼 이렇게 말하였는데 자기는 탈퇴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 부부는 모두 “탈퇴하자, 탈퇴하자!”고 계속 말했다. “당신이 봐요 우리 이 자리에서 모두 탈퇴 할거예요”하고 그가 말하자 다를 모두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이 남자는 “좋아 그러면 바로 탈퇴하자!” “감사해요!” 모두들 웃었다. 이때 아주머니가 나한테 와서 “빨리 저 쪽에 가봐 두 사람이 지금 기다리고 있어요!” 하고 말하여 나는 다가가서 그 두 명에게도 탈퇴시켰다. 또 10여 명이 구도 되었다. 오직 당신이 마음만 있으면 일체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하고 계신다. 그들은 모두 일반적인 사람(큰 오빠가 말하기를 예전에 그는 일찍이 꿈에서 용이 그의 회사의 상공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아주머니도 그가 꿈에 미륵부처가 그 녀를 보고 웃었다고 하였다)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나의 생각에 이들은 모두 꼭 연분 있는 사람들이다.

(2) 청순한 마음 유유하다

나의 집의 동쪽에는 한 초등학교가 있다. 원촨(汶川) 지진에서 그렇게 많은 학생들을 잃은 것을 보면 나는 가슴이 아팠다. 이 방면의 중생은 더욱 미룰 수 없어, 가서 구도해야 하였다. 더욱이 아이들, 나는 바로 그들의 하교 시간에 학교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 가서 기다렸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독해를 너무 깊이 받았으므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이 또 깨닫지 못한 방면이 있었다. 그때 마침 학교에서 백신예방 주사를 놓고 있었다. 나는 이 기회에 학생들에게 진상하였다. “앞으로 한차례 큰 전염병이 올 것이니 예방주사 맞아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때 가면 세균이 병으로 변하는데 또 한대 더 맞는다 해도 그것은 또 병으로 변할 것인데 이것이 반복되면 예방약도 제공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또 백신 자체가 새로운 제품이므로 안전한가 안전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학생들은 모두 “그러면 어떻게 해요?” 하고 물었다. 그 다음 나는 ‘3퇴(공산당 관련조직에서 탈퇴)는 짐승의 기호를 지워 버릴 수 있다’는 등등을 알려주면 대다수 학생들이 모두 쉽게 받아 들였다. 한 번은 한 여자 아이가 소년선봉대에서 탈퇴했다. 내가 몸을 돌려 가려고 하는데 그 아이는 아주머니 하고 불렀다. 나는 그 아이의 가냘픈 눈길을 보고 “또 무슨 일이 있어?”하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나의 어머니 할머니는 어떻게 해요?” 하고 물었다. 나는 몸을 돌려 가볍게 껴안아 주면서 순수하고 선량한 아이에게 말했다. 그들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좋습니다, 진선인(眞善忍)은 좋습니다”를 기억하게 하면 꼭 평안할 것이라고 알려줬더니 아이의 우울하던 표정이 웃음으로 활짝 피었다. 여자 아이는 낭랑한 목소리로 “아주머니 고마워요!”하고 말하고는 몸을 돌려 가 버렸다. 멀어져 가는 어린 몸의 그림자를 보면서 나는 진상 호신부와 션윈 CD를 가지고 오지 않았던 자신을 질책했다.

그때부터 나는 만약 학교 교장이 진상을 알게 되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나는 방법을 생각하여 내가 있는 지역의 정부기관, 회사, 학교 등 책임자의 성명을 알아내어 진상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현재 이미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손으로 쓰고 복사하는 식으로 3등분으로 나누어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기간에 또 기타 지역의 현 시에 보내려고 쓰고 있다). 동창생, 동료. 채소시장, 우리 집에 와서 일하는 사람, 알건 모르건 모두에게 진상하였다.

문장이 순조롭지 못하지만 이것은 나의 성의이다. 사부님께서는 중생구도의 이런 영광스러운 임무를 나에게 주셨는데 나는 마땅히 많은 중생을 구도하여 유감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약속한 서약을 위하여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고 사부님을 바싹 따라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자.

수준이 제한되어 있으니 틀린 곳이 있으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한다.

문장발표: 2010년 8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27/2288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