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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소박함

글/ 청위(誠宇)

[밍후이왕] 내가 대법 수련에 들어섰을 때 한 친구가 산둥성 관현(冠縣)에 있는 파룬궁 수련생 친척을 만나고 왔다. 친구는 돌아와서 나에게 사부님을 따라 사처로 다닌 파룬궁 수련생이 사부님에 관해 보고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는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글로 적어 동수들과 함께 고무격려하고 싶어서이다.

한번은 사부님께서 설법을 마치고 수련생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전수반을 따라 다닌 관현 파룬궁 수련생들과 함께 식사하시겠다고 했다. 십 몇 명 관현 수련생은 사부님과 함께 앉았다. 모두들 아주 격동됐다. 그날 먹은 것은 만두였다. 만두 소가 조금 짜서 몇 명 수련생은 조금 먹고 수저를 놓았다. 사부님께서는 자신의 것을 다 드시고 가까이에 있는 수련생이 남긴 만두를 자신의 그릇에 담아 드시기 시작했다. 다른 채 먹지 않은 수련생들은 이 장면을 보고 묵묵히 수저를 다시 들었다.

또 한 번은 관현 파룬궁 보도소 인원이 베이징 파룬따파 연구회에 일을 보러 갔었다. 여러 사람은 식당에 가서 수타면을 먹자고 했다. 그런데 식당주인이 들고 나온 것은 기계로 누른 국수였다. 관현 수련생이 말했다. “잘못 가져왔군요. 우리가 요구한 것은 수타면인데요.” 말하고 나서 식당 주인을 찾아가 따지고 들었다. 그러나 연구회의 그 몇 명 수련생은 아무런 내색 없이 먹었다. 그가 돌아와서 이 정황을 보고 즉시 자신과 다른 수련생 간의 차이를 발견했다.

그때는 개인수련 시기여서 모두들 수련은 바로 자신의 일상생활 자그마한 일부터 시작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천하려면 일정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 두 작은 이야기는 사부님께서 몸소 몸으로 제자를 가르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제자는 물론 사부님의 행위를 보고 자신의 수련과 대조했다. 그때 나는 사부님께서 그렇게 하심은 의식적으로 제자에게 뭘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사부님의 사상경지의 체현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동수들이 사부님과 함께 하면서 몸소 가르침을 받은 것을 써낸 것을 보고 나는 더욱 감개무량했다.

그 당시 사부님을 따라 각지 전수반을 꾸리는데 협조했던 베이징 수련생이 말했다. “연속 몇 년간 사부님께선 기차에서 라면만 드셨다. 전수반에서 저녁에 설법하실 때 사부님은 종래로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다. 설법하시고 여관에 돌아오시면 8, 9시가 됐다. 여관에서는 이미 식사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사부님께서는 밖에 나가 식사하시지도 않으셨다. 늘 라면을 드셨다. 우리도 사부님을 따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때는 큰 주머니를 들고 가서 라면을 도매가격으로 사와서 며칠씩 먹었다. 그 몇 년간은 정말 느끼해서 라면 냄새만 나도 속이 불편했다.”

한 충칭 파룬궁 수련생이 회상하며 말했다. “사부님의 식사는 아주 간단했다. 종래로 물고기나 고기를 드시지 않으셨고 어떤 때는 국수 한사발만 드셨다. 충칭사람은 매운 고추를 즐겨 먹는다. 어느 한번 사부님께서 점심 식사 때 국수를 드시게 됐다. 가게주인은 사부님이 북방인이여서 매운 것을 드시지 않는 것을 모르고 국수에 많은 고추를 넣었다. 사부님은 너무 매워 얼굴에 땀이 가득했으나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국수를 다 드셨다. 한번은 사부님께서 작은 음식점에서 식사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사발에 담긴 한 알의 기장 껍질을 벗겨내고 드셨다. 그때 많은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한 알의 곡식도 낭비하시지 않는 것을 보고 사람마다 더이상 남은 밥을 버리지 않았다.”

금년에 81세 되는 파룬궁 수련생은 그녀가 당시 사부님께서 꾸린 제1기 파룬궁 전수반에 참가한 일을 말했다. “사부님은 강당에서 강의하시고 메이거(美歌)는 교실 밖에서 놀았다. 나도 손자를 데리고 갔는데 메이거와 함께 놀았다. 한 번은 내가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서 손자와 메이거에게 하나씩 주었다. 메이거는 아무리 말해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는 사저사매이므로 받으라고 했다. 메이거는 다 먹고 나서 사부님 옷자락을 살그머니 당기면서 돈을 달라고 해서는 또 한 개를 사서 내 손자에게 주었다. 사부님의 딸은 아주 철이 들었었다.”

절대 다수의 파룬궁 수련생은 사부님을 뵙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사부님에 대한 일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은 원인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眞ㆍ善ㆍ忍을 수련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한 말은 모두 眞ㆍ善ㆍ忍 표준에 따라 말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 직접 파룬궁의 신기함을 체험하지 않았고 자신의 사부의 위대함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중공이 이같이 박해하는 정황에서 그들이 대법을 확고히 수련할 수 있었겠는가? 또 다른 한 면에서 보면 그들이 비록 사부님을 뵙지 못했어도 대법 법리의 지도하에 그들은 이렇게 수련해 왔다. 바로 각종 사람 마음의 집착을 버리고 오늘까지 걸어온 것이다. 그들 높은 경지의 사상으로 형성된 좋은 생활습관에는 곡물을 아끼고 타인을 관용하며 일체는 모두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등이 포함된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음은 바로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무슨 이유로 자신의 사부가 그렇게 좋으심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어찌 그들뿐이겠는가. 파룬궁 수련자와 만났던 모든 민중은 파룬궁 수련생의 일상생활에서도 대법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느끼지 않았던가?

물론 우리도 마땅히 소박함은 도덕이 고상한 사람의 자연적인 표현임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도덕이 고상한 사람은 마땅히 존귀함의 대우를 향수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인간세상의 바른 이치가 아니겠는가.

문장발표: 2010년 6월 3일

문장분류: 사부님의 은혜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6/3/2246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