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예전 수련생을 되 찾아오는 문제에서 생각과 깨달음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2월 4일】1999년 ‘7.20’ 은 이미 10년이 지났다. 박해가 시작되자 어떤 사람들은 수련을 포기 하였고, 남은 수련생은 개인 수련도 법공부도 모두 부족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이처럼 법리가 미흡한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직 자신의 원만만을 위한 마음을 지니고 상경, 상방 하였으며, 그들이 돌아온 후 많은 사람들이 납치당하고 노동교양 등 박해 당했다. 이 동수들은 노동수용소에서 구타, 잠 안 재우기, 전기 고문 등 비안간적 참혹한 고문과 쇠뇌로 어떤 사람들은 이른바 ‘전화’ 되었고, 이들 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청성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대법은 정법이며, 좋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또 다시 박해 당할까봐 두려워 수련을 포기한 것이며, 또 일부는 가족 친지들이 그로 인하여 박해 당할 것이 두려워 연공하지 못하게 제지 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또 어떤 수련생은 대법을 포기하지 않고 집에서 남 몰래 연공과 법 공부는 하고 있으나 감히 밖으로 나와 동수들과 접촉하거나 교류를 하지 못 하고 있다. 그들은 비록 사부님 후기 설법은 볼 수는 있겠지만 ‘밍후이왕’ 문장은 보지 못 한 채 봉폐된 개인 수련 상태에서 장기간 동안 걸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부분 동수들은 기본상 가혹한 박해를 받은 적이 없지만, 박해 받은 다른 동수들의 경우를 보고는 극도로 사악의 위협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매우 중한 상태다.

– 예전 동수들이 직면 하고있는 이런 위중한 상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을 찾아올 것인가, 아니면 자기 수련만 잘하면서 상관하지 않을 것인가? 누가 수련하면 누가 얻을 것일 터인데,‧‧‧. –

나는 그때, 아주 모순 된 심성이었다.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 내가 남보다 높다는 과시심 등, 이런 마음이 나 자신을 엄중하게 교란하고 있었다. 자비와 선념으로 그들을 대하지 못 했고, 늘 남의 부족과 결점만을 들추어 생각 하였다. ‘아이참, 왜 이다지도 제 구실을 못할까’ ‘사부님과 대법에 먹칠을 하면서 조금도 됨됨이가 돼 있지 않는 거야’ ‘바로 이런 사람들이 정법의 뒷다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거야’ ‘역시 이런 사람들이 타협하기 때문에 대법제자에 대한 사악의 박해가 더 가중 되는 것이야’ 등등,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으니, 그들 예전 동수와는 마음속 깊이 따뜻한 교류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내겐 전혀 없었던 것이다.

2001년 나는 노동수용소에서 나온 후, 이런 좋지 못한 사상이 나를 강렬하게 교란하여 몇 번씩 밖으로 뛰쳐 나오 곤 하였다. 그리고는 제대로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 박해를 이유로 마음을 어기고 보증서를 쓴 동수들과 교류할 때, 나 자신의 과시심, 환희심, 명예심을 구하는 마음이 일어나, 말 하는 것은 모두 나 자신을 실증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좋지 못 한 마음의 벽이 쌓여 동수들과 아주 큰 간격을 형성 했던 것이다.

이런 좋지 못 한 나의 사상은 정법수련에 엄중한 교란을 조성 하였다. 그래서 동수들은 나와 교류 할 때, “당신이 한 말은 사람을 감동 시킬 수는 있지만, 사람을 움직이게는 못 한다.”라고 말 했는데, 그 때 나는 속으로 그 말에 불복 했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 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런 과시심, 명예심과 심지어 나 스스로를 법 앞에 놓았으니 이는 지극히 위험하지 않은가. 정법이 시작되기 전 몇 년 사이 줄곧 사악에게 교란당하고 박해 당한 주요 원인 중의 하나다.

10년의 수련 중 근래 몇 년간, 사부님 후기 설법을 읽고, 또 각지 동수들의 수련체험 문장을 읽고서야, 비로소 나 자신의 수련의 큰 격차와 부족함을 인식 할 수 있었으며, 그 당시 내가 동수들에게 한 말이 완전히 법속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 하게 되었다.

그런 동수들을 만났을 때는 마땅히 ‘내가 어떻게 확고한 마음으로 사악과 협력하지 않고, 어떻게 생사를 내려놓았는가’ 하는 점과 ‘대법 중에서 수련 해 낸 정념과 사부님 보호 아래 살아서 당당히 지옥의 문을 나오게 됐다’ 는 말로 동수들에게 대법을 실증했어야 옳은 것이다.

그후 법공부를 열심히 하여, 진정으로 안에서 자신을 찾을 줄 알게 됐고, 나 자신을 조금씩 법속에 용해시키게 되어서야 비로소 그런 좋지 못한 마음과 집착은, 모두 자아를 수호하고 자아를 실증한 것으로서 그것은 수련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스스로 이해했다고 생각한 정법도 구세력의 위사위아(爲私爲我)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따라 걸었던 것이다. 자신이 일시 바르게 하게 된 것은 그 때 법에 섰으므로 바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법은 끝없는 것인데 어찌 자신의 일시적 표현을 영원히 정확한 것이라 볼 수 있겠는가. 그 과시심의 배후는 동수더러 찬미하고 칭찬하라는 것이 아닌가. 이는 악자와 무슨 구별이 있는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사고(思考)한 후에야 자신의 좋지 못한 사상은 바로 우리 현지에서 정체(整體)를 이루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심지어 무의식간에 대법제자에 대한 사악의 이른바 ‘고험’을 승인하였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정체를 이루라고 하셨는데 이 정체에는 잘하지 못한 그런 사람, 아직 걸어 나오 지 않아 대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지 못한 예전 수련생이 포함된다. 수련생이 정법 수련을 포기하게 된 것은 이번 사악의 박해로 조성된 것이다. 아울러 이런 수련생은 모두 ‘7.20’전에 법을 얻은, 대법과 아주 큰 인연을 가진 사람들로서 역시 모두 아주 높은 층 차의 왕과 주이며, 조사정법, 중생구도의 사명을 지니고 인간에로 내려온 것 이다. 가령 이런 사람들이 모두 정법 수련 중에서 걸어 나와 자신의 작용을 발휘한다면 그들과 인연을 맺은 그런 세인들이 구원될 희망이 있을 것이다. 오직 이래야만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백분의 7, 80 동포를 구원하는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부님 정법형세는 쾌속으로, 앞으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정체를 형성하여 조사정법 하는 것은 더 뚜렷하게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상을 알리어 세인을 구도할 때, 예전 수련생을 찾아오는 것을 절대로 소홀(疎忽)히 취급하지 말아야 하며, 이는 이미 걸어 나와 정진하고 있는 동수마다 정법수련 중에서 반드시 잘해야 할 것이다. 예전 수련생을 찾아오는 것은 사부님께서 요구 하신 것을 원용하는 것이고, 구세력의 사악한 배치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예전 수련생을 찾아오는 과정은 위사위아를 닦아버리는 수련 과정이다. 나 개인 체득이라면, 수련생을 찾아오는 과정에 자신의 허다한 집착심을 폭로하게 되었고, 또한 법에 대한 자신의 책임, 동수에 대해 책임지는 마음을 닦아내게 되었다. 남만 개변시키려 하고 자신을 개변하려는 마음을 잃는다면 수련생을 찾아올 수 없다. 오직 홍대한 마음, 자비한 마음을 품고 법에서 동수와 교류해야만 비로소 대열에서 떨어진 수련생을 깨우쳐 줄 수 있다. 수련생을 고무격려하고 동수의 잘 수련된 일면을 긍정해 주고, 안에서 찾는 중에 동수더러 자신의 부족을 보게 해야지, 질책하지 말아야 하고, 더욱이는 사부님 법으로 수련생을 ‘위협’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 방면에서 침통한 교훈이 있다. 자신이 잘 하지 못하고서도 도리어 대법에 대한 동수의 오해를 빚어내게 하여 오래도록 질질 끌면서 정법수련의 정체 속으로 바로 잡지 못하여 우리가 정체를 형성하는데 일정한 정도의 손해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생각하면 그야말로 땀이 내 솟는다.

오늘 자신이 예전 수련생을 찾아오는 방법가운데서 폭로된 일부 문제와 법 공부 중에서 제고된 후 인식하게 된 부족을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하고 토의하려 하는바, 내 생각에 이와 비슷한 문제가 부동한 지역의 부동한 동수들에게도 역시 존재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우리 교류를 통해 그런 나쁜 물질을 버리고 순정한 심태로 아직도 미혹 속에 있는 그런 수련생을 찾아와 함께 우리의 사전 대원을 완수하여 최후의 길에서 조사정법하면서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자.

문장발표 : 2010년 2월 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2/4/2175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