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협조 일을 할 때의 기점은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밍후이왕 2009년 12월 9일】사존님의 설법 중에는 늘 우리에게 ‘법을 스승으로 모시라’고 강조하신 게 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누구나 모두 대법을 실증해야 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수련의 길을 잘 걸어감으로써 그 가운데서 자신의 위덕을 수립하고 원만으로 나아가야 한다. 개인 인식으로, 이상의 매 한 보를 잘 걸을 수 있는 근본적인 보장은 바로 진정으로 법을 스승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본다.

협조인은 일을 할 때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스승으로 모시는 데로 인도해야 함을 중시해야 한다. 여러 사람에게 수련을 잘 했거나 정진하는 것 같은 표현을 하는 동수만을 따라 배우게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어느 누가 어느 방면에서 수련을 잘했거나 표현이 좋은 것은 그(그녀)가 대법중에서 그(그녀)가 있는 층차에서 증오(证悟)한 법리에 따라 했기 때문에 그(그녀)에 대한 일부분 법의 요구 표준에 도달한 것이다.(법 보다 더 잘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매개인의 수련의 길은 서로 다르므로 동수간에 참조하기는 아주 어려우며, 간단하게 표면 형식을 모방할 수는 더욱 없다. 법을 스승으로 삼고 진정으로 심성을 제고하는 것만이 비로소 관건이다. 협조인은 간단하게 여러 사람더러 어느 한 지역이나 어느 한 사람을 따라 배우라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수련을 잘한 동수라 해도 원만하기 전에는 역시 매우 많은 사람 마음을 닦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법 공부 팀이거나 어느 개인을 따라 배우라고 제안한다면 찬양받는 동수로 하여금 쉽사리 환희심, 자만심과 동수 위에 있다는 마음 등이 생기게 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만나는 일체 고뇌는 다 고비를 넘는 것이고, 만나는 일체 표창(表彰)은 다 고험이다.” (《정진요지》 〈수련자는 자연히 그 중에 있다〉)동수로서의 우리는 우리의 수련생을 고험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과분한 찬양은 찬양받는 동수에게 아주 큰 고험을 조성해 줄 것이다. 이 한 관은 사부님께서 동수의 제고를 위해 안배하신 게 아닐 것이며, 남을 찬양하는 동수나 협조인의 수련이 성숙하지 못해 조성된 것으로, 이는 찬양받는 동수의 이후 수련 제고에 나타나지 말아야 할 적지 않은 난이도를 가져다 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법 공부가 깊지 못한 일부 신수련생으로 하여금 찬양받는 동수에 대한 개인숭배심이 생겨나게 한다면 사람을 따라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정법 수련에 파동을 가져오게 될 것이고, 현지의 법 실증, 중생구도에 손해를 빚어 낼 것이다.

협조인 일을 하기란 아주 어렵다. 특히 대륙에서 협조인 역할을 하려면 아주 큰 역사사명을 감당해야 하며, 수련생을 도와 우리의 중생구도의 사전대원을 보다 훌륭히 완수해야 한다. 오로지 여러 사람을 인도하여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잘 하며, 구체적으로 일 할 때엔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대법을 좇아 일을 하여, 우리가 있는 층차에서 대법의 요구표준에 도달하는 것만이 협조인의 사업을 잘 할 수 있는 근본 보장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은 개인의 작은 인식으로서 층차가 제한돼 있으므로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9년 12월 19 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2/19/2146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