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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념으로 동수의 부족한 점을 보는 것이 정체를 형성하는 관건

【명혜망 2009년 9월 14일】박해가 시작된 이래 우리는 광풍폭우 속에서 십 년을 지나 왔기에 응당 단련 성숙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동수들은 협조와 합작에서 의연히 아주 많은 문제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거대한 정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항목에서 협조인과 협조인 지간에, 동수와 협조인 지간에, 동수와 동수 지간에 서로 협조하지 않고 당신이 옳다면 내가 의견이 있고 내가 옳다면 당신이 의견이 있다. 사부님의 또 한 차례 설법 추동으로 이런 조합이 단기간 내에 좀 완화되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원래의 상태에 되돌아갔다. 그리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면에서 더욱 큰 돌파가 없다.

사실, 이런 문제는 주요하게 동수들이 수련에서 정념이 부족하고 심태가 단정하지 못한데서 조성한 것이다. 내 본인이 보고, 듣고, 봉착한 일과 사람을 분석해 보면 최대의 관건은 바로 동수지간에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과 결점을 관용하지 못하고 선의로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다. 금방 시작에는 다른 사람의 부족함과 결점을 듣거나 보기만 하면 즉시 다른 사람이 여하 여하하게 잘못했고 어떻게 정진하지 못한다고 질책했는데 이때 질책 받는 사람도 질책하는 사람의 부족함과 결점으로 대꾸했다. 어떤 때에는 떠들썩거려 아주 불쾌하며 이로부터 두 사람 마음에 매듭이 생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동수들은 상호지간에 응당 모순이 없어야 하고, 될 수 있는 한 상호지간의 질책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전보다 많이 평정되었다. 그러나 내심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견해를 철저히 놓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단 일에 봉착하면 늘 폭발하고 특히 사악이 교란할 때 아주 뚜렷하게 폭로 된다.

이런 상호 질책하는 문제를 장기간 해결하지 못한다면 동수들이 안으로 찾지 못함을 조성한다. 왜 속인이 우리의 이익을 침범할 때 우리는 웃고 지날 수 있는데 동수에게 부족함이 있을 때 도리어 너그럽지 못한가? 혹 속인과 우리는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넘어야 할 고비이고 접수해야 할 고험이다. 그럼 동수의 부족함을 우리에게 폭로한 것은 우리가 넘어야 할 관이고 우리가 겪어야 할 고험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제자지간의 모순은 사부님께서 우리의 집착을 수련하는 데 쓰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가 존재함은 우리의 수련이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아직도 시시각각 안으로 찾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가 대선지심으로 수련생을 대하지 못하며, 우리의 심경이 아직도 너그럽지 못하며, 우리의 심성이 아직도 높지 못함을 표현한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며 정법은 머지 않아 결속된다. 다시 더 협력하지 않고 협조하지 않아 하나의 정체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겠다던 소망이 소실된다면 어찌하겠는가? 그러면 우리가 사부님의 정법을 저애하는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개인이 인식하건대 동수지간에 모순이 있다 해도 마음속에 경계가 있어서는 안 되며 마음의 문을 열고 교류하여 선념으로 수련생을 대해야 한다. 자신의 내심으로부터 문제의 근원을 찾고 자신의 잘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진정한 정체수련 환경을 원용해야 한다. 동수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거대하고 강대한 정체를 형성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가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 더 잘 할 수 있으며 중생을 더욱 많이 구도 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09년 9월 14일

문장분류:【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9/14/20822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