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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수련의 견정함에 대하여 감옥의 ‘고험’을 기준으로 할 수 없다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9월 1일〗 나는 사당에게 불법으로 2년간 감금당했으나 감옥에서 그것들에게 그 어떤 형식의 보증서도 쓰지 않았다. 그로 인해 목숨이 곧 끊어질 듯 헐떡거리며 감옥에서 나왔다. 당시 사당의 감옥에는 ‘전화’ 되지 못하면 앞당겨 출옥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 후 내가 파악해보니 ‘삼서(三書)’ 를 감옥의 경찰이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마지막에 출옥할 때 일부 수속은 (보증서를 포함하여) 경찰이 쓴 다음 가족들이 대신하여 서명하게 했다. 그때 나는 이미 감옥에서 나와 속인 병원에 있었기에 자신도 똑똑히 몰랐다.

몇 달 후 나의 신체는 매우 빨리 회복 되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 하에 나는 동수와 연락할 수 있었다. 대략 3년 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기본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정념에 대하여 더욱 알 수 없었다. 사실 나는 당시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으며 동수에게 던진 일부 말과 제기한 건의들을 지금 다시 생각하면 얼굴이 뜨겁다. 만약 수련생이 법 공부를 많이 하라고 깨우쳐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사오의 길로 갔을 것이다.

그때 나는 늘 잠재의식 중에 자신이 감옥에서 매우 견정하고 대단하다고 여겼다. 감옥에서 속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부 고통을 겼었다고 득의양양하며 스스로 즐거워했다. 사실 이것은 모두 낡은 세력의 안배를 인정한 것이었으나 자신은 그래도 깨닫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주먹과 발로 인심을 흔들기 어렵거늘, 강제로 사람의 마음을 개변 못한다.’ (『추풍량』) 라고 말씀 하셨다. 나는 낡은 세력이 혹형으로 괴롭히는 방법, 강제로 감금하는 방법도 수련자로 하여금 속인의 집착을 근본적으로 버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999년 7.20 전의 수련 체득 중에 진정하게 수련하여 집착을 버리는 것은 법 공부를 부단히 해야 하며 속인의 사업, 생활에서 부단히 자신의 부족함을 보아야 하고, 대법에 비추어 부동한 층차에서 수련자에 대한 요구에 따라 자신을 바로 잡고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수련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집착심이 있다. 이 집착심을 때리고 욕하는 방법으로 개변할 수 있겠는가? 절대로 안 된다. 만약 한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이 일의 옳고 그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강제적인 방법으로는 단지 사람의 표면을 복종시킬 수 있으나 마음속의 그 집착하는 마음은 근본 건드리지 못한다. 지금 사회상에서 속인들이 강제적으로 마약을 끊는 것처럼 강제로 인(瘾)을 끊는 방법은 사실 근본적으로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그 안에서 나온 후 마찬가지로 다시 중독된다.

이 점으로부터 보면 낡은 세력의 이런 안배는 사실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그것들이 신성한 대법수련을 과거 그런 소도 소법으로 여긴 것이다. 대법수련자로 하여금 그것들의 방법으로 수련하라고 하는데 정말 그것들이 안배한 길로 간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수련이라고 할 수 없으며 사부님께서도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감옥에서 겪은 그런 고생은 사실 불필요한 것이며 최대한 속인처럼 조그마한 덕으로 전화할 따름이며 공으로는 연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대법 수련에 대한 견정함은 강제적인 방법으로 고험해 낼 수 없으며 진수제자의 대법에 대한 정신(正信)을 혹형과 같은 괴롭히는 방법으로는 근본적으로 개변하지 못한다. 개변된 것은 모두 진수(真修)한 것이 아니며 혹은 개별적 수련생이 수련되지 못한 표면에서 사람의 마음이 아직 매우 중하기에 한 때 어리둥절하여 잘못한 일이다. 여기에서 나는 깊은 체득이 있다.

원래 나는 자신이 견정한 대법제자이고 감옥의 ‘고험’을 통하여 합격되었다고 여겼으며 자신을 ‘상사’에 속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다시 속인의 사업에 참가한 후 그 아름다운 세상에서 나는 점차적으로 정진하는 데로부터 느슨한 상태로 변하여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심지어 1년 가까이 근본적으로 발정념을 하지 않았고 연공도 하지 않았으며 몇 주일에 어쩌다 책 한 권을 보았다. 또 진상을 말하고 탈당을 권하는 일도 잘하지 못했고 명혜망도 1, 2주일에 한번 밖에 보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자신이 이렇게 나간다면 반드시 사로(邪路)로 갈 것이라고 생각되어 나는 반성해 보았다. 7.20 전에 나는 매우 정진하는 대법제자였으며 속인 중에서 매우 좋은 사업 터전도 있었으며 또 사부님의 안배한 수련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층차 돌파가 특별히 빨랐으므로 자신도 스스로 감각할 수 있었다. 매일 『전법륜』을 3강 읽었고 또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들었다. 가부좌 하고 연공할 때 특별히 고생을 겪을 수 있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7.20 후에도 나는 비로소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사악에게 불법 수감 되었다가 나온 후 다시 속인사회로 돌아간 다음 나는 정진하지 못했으며 심성은 거의 속인의 층차로 떨어졌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나를 때리지 않거나 나를 수감하지 않으니 나 자신이 안 되었던 것이다. 이 일로 볼 때 감옥에서의 그 ‘고험’을 인정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이 아니다. 감옥에서 표현은 견정했고 사악에게 보증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합격된 대법제자란 말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낡은 세력의 그런 안배와 ‘고험’은 근본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에야 비로소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으며 최대한 중사에 지나지 않는다.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 낡은 세력의 안배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낡은 세력의 소위 ‘고험’을 승인했다.

나는 사악에게 불법으로 수감되어 감옥의 표현이 어떠하던 지 막론하고 나온 후 우선 시간을 틀어쥐고 법 공부를 많이 해야 하며 절대 급히 일을 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몇 년 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했으며 더욱 자신의 수련은 이미 떨어졌다는 것을 인식했다. 만약 법 공부를 중시하지 않으면 또 이런 일이 나타날 것이다. 더욱 과시심을 지니지 말고 집착심으로 가서 동수와 자신이 감옥에서 사악이 가한 혹형의 괴로움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견정’ (박해 진상을 명혜망에 폭로한 것과는 다르다)했다는 것을 말하면 그것은 낡은 세력의 안배를 인정한 것과 같다. 명백하게 말하면 사악에게 ‘3서’를 쓰지 않은 것은 역시 이 점에서 속인중의 좋은 사람의 표준에 도달할 뿐이다. 고대의 효자들이 자신의 부모를 비방했겠는가? 그러면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사부님과 대법을 보아야 하겠는가?

이전에 나는 늘 자신은 감옥에서 속인들이 믿을 수 없는 고생을 겪었으니 대단하며 자신의 인내력이 매우 강하다고 여겼다. 지금 나는 돌이켜 보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대법제자로서 그것은 소용이 없다. 사부님의 안배한 길을 따라 가며 법 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면서 진상과 발정념을 하는 동시에 심성수련을 중시해야만 집착심과 업력을 닦아 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이 자랄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한다면 반드시 정과를 얻는다고 말한다.”(『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법수련에 견정하고 사부님의 말씀을 잘 들으며 착실하게 수련하고 정진하면서 세 가지 일을 잘해야만 합격된 대법제자가 되며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은 나의 깨달음이므로 일부 어떤 것은 다만 깨달았을 뿐 아직 진정하게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견정하게 오직 사부님의 말씀을 잘 들고 사부님이 안배한 길로 걸어야만 나는 반드시 꼭 잘 할 수 있으며 아울러 자신이 정진하지 않아 조성한 손실을 보충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09년 9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9/1/20751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