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천진대법제자 오명
[명혜망 2008년 5월 15일] 나는 올해 60세이며 1994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다. 사부님의 생신과 세계 파룬따파의 날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사부님의 제자로서 나는 충심으로 사부님의 생신을 축하하고 파룬따파이 전 세계의 더욱 많은 나라와 지역에 홍전되기를 바란다!
요즘 나는 국내의 노(老)제자와 같이 사부님의 은혜를 무척 그리워하면서, 자주 사부님께서 당년에 천진팔일예당에서 법을 전수하시던 무한히 아름다운 기억속에 잠기고는 한다. 대법은 나의 심신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으며 나도 불은호탕속에 잠겼다.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신지 16주년이 되는 이 시각에 나는 아름다운 기억을 써내어 동수들과 함께 향수하려고 한다.
1994년 3월 14일. 나는 친구의 소개로 행운스럽게 사부님의 천진팔일예당 제2기 파룬궁학습반에 참가하여 사부님의 설법을 듣게 되었다. 그전에 나는 그 어떤 기공도 연마한 적이 없었으며 무엇이 불(佛)인지, 도(道)인지 몰랐으며 수련이란 더욱 몰랐다. 그러나 사부님의 첫 날 설법을 듣고 나의 대뇌는 마치 막혔던 것을 열어놓은 것 같았다. 자신이 이전에 아무리 생각을 짜내어도 해결하지 못하던, 알고싶었던 문제들을 알게 되었으며 인생의 진정한 의의와 사람이 되는 목적을 알게 되었으며 확실히 나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매우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보았다. 사부님께서 매일 설법하실 때면 윗옷 호주머니에서 백지 한장을 꺼내었다. 이 종이가 바로 사부님의 강의원고이다. 나는 당시 좀 궁금하였다. 사부님께서는 그렇게 많이 강의하시고 내용이 풍부하고 내포가 높고 깊은데 왜 한 장의 백지밖에 없는가? 후에 나는 부단히 법공부하고 수련해서야 알게 되었다. 대법은 사부님의 것이다. 법은 바로 사부님의 마음속에 담고 계신다. 사부님의 마음속에는 무량한 지혜가 있다.
학습반에서 나는 첫줄에 앉아서 사부님을 매우 똑똑하게 보았다. 사부님은 보기에 30세 좌우가 되어 보였는데 키도 크고 웅장한 신체였으며 풍채가 당당하며 기질이 비범하였다. 학습반을 꾸리는 기간에 사부님은 10일간 수업을 진행하셨다. 그러나 종래로 사부님께서 물 한모금 마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사부님은 말재주가 매우 좋으셨으며 발음도 매우 똑똑하였다. 사부님의 설법을 귀담아들을 때 한줄기의 뜨거운 것이 부단히 나의 온몸을 통해 스며들며 흘러가는 것을 느꼈으며 매우 따뜻하고 행복하였다.
이튿날 강의시간에 사부님께서 설법하시기 시작할 때 나의 머리는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으며 두 눈을 뜰 수 없어서 잠을 잤다. 후에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의 대뇌를 조절해주셨으며 신체를 정화시키기 위해 배치하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자주 머리가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다. 사부님께서 조절해주신 후에는 머리가 어지럽거나 아픈 이런 병이 없어졌으며 증상이 완전히 없어졌다.
나는 어려서부터 신체가 약하고 병이 많아 일곱 살 되던 해에 뇌막염에 걸렸으며 열 한 살때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고혈압, 심장병이 있어서 고압은 160, 저압은 110이었다. 평소에 잠잘 때에 얼굴은 위로 향하여 똑바로 누워야 했다. 혈액의 점도가 높아서 매일 머리가 어지럽고 온 몸에 힘이 없었으며 계속 잠자고 싶고 일년 사계절 약을 떠날 수 없었다. 사부님의 설법반에 참가한 후 고혈압과 심장병은 모두 좋아졌다. 혈압도 정상이 되었으며 온 몸이 가뿐하였을 뿐만 아니라 길을 걸어도 온 몸이 가벼웠다.
법을 배운 후 법에 대한 이해와 심성이 부단히 제고됨에 따라 나는 나와 사부님은 연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나의 생생세세에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셨다.
1957년 내가 일곱 살때 뇌막염에 걸렸다. 당시 한 노인이 말하였다. 뇌막염에 걸리면 십중팔구는 죽는다. 살더라도 바보가 된다고 하였다. 나는 기적적으로 살았다. 그리고 바보가 되지도 않았다. 11세 되었을 때 나는 중이염에 걸렸다. 당시 의료조건은 좋지 못하였고 6월의 날씨는 매우 더웠다. 수술 후 각종 원인으로 인해 귀에 염증이 생겨 고름이 나와 대뇌를 감염시켰다. 머리수술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의사는 감히 하지 못했다. 나의 부모님이 간절히 애원하자 의사는 말하였다. “오직 죽은 말을 산 말인 셈치고 치료한다. 생사는 보장할 수 없다.” 나의 부친은 떨면서 계약에 사인했으며, 하늘의 뜻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의사는 나를 시험하였다. 수술한 후 1주일이 지나자 1주일간 인사불성이 되었다. 오관의 위치가 모두 옮겨졌으며 눈알의 검은 자위가 보이지 않았다. 한 달 후 땅바닥에 내려와 아이들이 걸음을 배우듯이 걸었다. 나는 또 기적처럼 살았다.
1967년에 나는 18세였다. 한번은 부친 동료분의 집에 계신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 부친은 나에게 가서 도와주라고 하였다. 이튿날 오후에 일을 끝내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다. 그때 나는 이제 막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워 잘 타지 못하였다. 매우 힘든데다가 하천 둑제방에 이르러 긴장하자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제방옆에 부딪쳤다. 제방에서 강물까지 두 장 높이가 된다. 물은 얼마나 깊은지 몰랐다. 내가 곧 떨어지려는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끝장이다. 넘어지면 죽는것이 틀림없다. 순간 누군가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 결과 넘어지지 않았다.
수련한 후 나는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한번 또 한번 나를 구해주셨다.”는 사실을.
1968년 여름, 당시 감숙에서는 생산건설병사단 작업을 하였다. 점심 휴식할 때 우리 몇 명은 지붕에 올라가는 연습을 하였다. 방법은 내가 참대의 한 끝을 쥐고 다른 몇 사람은 참대의 다른 한 끝을 밀고 벽에서 직접 지붕위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당시 나의 두 발은 이미 지붕 끝을 밟았는데 몸은 아직 곧게 서지 못했다. 아래에서는 몇 사람이 장난하느라고 참대를 치워버렸다. 이렇게 되자 나는 3미터가 넘는 지붕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마침 나무구덩이의 튀어나온 끝에 넘어졌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누군가 나의 허리를 받쳐주는 것을 느꼈다. 아니면 머리가 바닥으로 향하게 되면 부딪쳐 죽는 것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몸에 묻은 흙을 털었다. 어디도 아프지 않았다. 당시 자신의 명이 길다고 생각했다. 수련한 후에야 사부님께서 또 나를 보호해주신 것을 알았다.
정말로 사부님의 은혜는 갚기 어렵다!
나로 하여금 잊지 못하게 한 것은 사부님의 설법 일곱째 날이었다. 그날 날씨는 맑았다. 제자들은 사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어 기념을 남기려 하였다. 이때 우리는 모두 가까운 거리에서 사부님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눈을 돌리지 않고 사부님을 보았다. 사부님은 그토록 친절하였다. 만면에 웃음을 담고 얼굴은 특별히 불그스레하고 피부는 특별히 반들반들하고 부드러웠으며 일반사람들과 달랐다. 온 몸에는 일종 특별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백이 스며 있었다. 나와 다른 두 수련생은 매우 행운스럽게 사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부님의 오른쪽에 서고 바로 옆에는 사부님 – 이것은 내 일생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잊을 수 없는 시각이었다! 사부님과 함께 찍은 사진 이 사진은 비할바 없이 진귀하다. 온 오전 동안 사부님은 수련생들에게 요청받고 사진을 찍었지만 사부님은 특별히 인내심이 많으셨다.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담고 그렇게 상서롭게 제자들의 소원을 양해하여 들어주셨다.
사부님께서 강의하시던 마지막날, 그날의 정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며 잊을 수가 없다. 각 지역의 보도원과 수련생들은 모두 사부님께 우승기를 드리며 제자의 사부님께 대한 비할바없는 경의를 전달하였다. 그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부자(父子)가 사부님께서 태원에서 공을 전수하고 설법하시는 반에 참가하였다. 이 집의 아들은 백혈병에 걸린 상태였다. 부자간에 돈을 적지 않게 써서 전국 여러 병원에 가보았지만 모두 치료할 수 없었다. 사부님의 태원 9일학습반에 참가한 후 아들의 백혈병이 기적처럼 나았다. 사부님께서 천진에서 학습반을 연다는 말을 듣고 산서에서 모처럼 와서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사부님께 우승기를 한 폭 드렸다. 이것은 내가 직접 눈으로 본 것이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 부지기수이다.
사부님은 우리를 떠나게 되었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마치 아이가 부모님을 떠날 때의 심정처럼 아쉬웠다. 사부님이 세 번 퇴장하자 제자들은 열렬하게 박수를 쳤으며 박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또 세 번 나오셨을 때 매 번 모두 큰 파룬을 돌리셨으며 제자들의 신체를 정화하셨다. 매번 이 아름답고 재미있던 날들을 기억하면 비할바없이 수승하고 미묘하고 행복하다. 동시에 나도 눈물이 볼을 적신다.
14년 간의 수련을 회고해보면 정말로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구도하신 것이다. 어떤 때 나는 무엇이 수련이며 나는 무엇을 수련하였는가? 를 생각한다. 나는 단지 대법을 배우고 집착심을 제거하고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였다. 나의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 “수련은 자신에게 있고 공은 사부님에게 있다.” 우리가 수련하는 과정, 하고 있는 일체는 모두 우리 자신을 위해 한 것이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 고생스러운 구도, 원용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까지 걸어올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가 하는 것은 영원히 알지 못한다.
나는 꼭 정법수련의 만고의 기연을 배로 소중히 여겨, 제한된 시간내에 용맹정진하려 한다.
문장완성 : 2008년 4월 19일
문장발표 : 2008년 5월 15일
문장수정 : 2008년 5월 15일 10:15:19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5/15/17849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