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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 수련의 참뜻을 깨닫다 (2007 미국중부법회 발언원고)

글 / 시카고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9월24일] 존경하는 사부님, 동수 여러분,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나는 시카고 대법제자인데 2004년 말부터 시카고 현지 매체에서 일해오고 있다. 그때 나는 오직 열정 하나로 이 항목을 선택했다. 이 항목은 속인적인 기능이 높아야 할 뿐만 아니라 폭넓게 속인을 접촉해야 하는 어려움도 많으며, 또한 하는 사람도 적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이 항목을 선택했다. 지나온 몇 년 동안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이것을 하나의 속인의 일로 여기고 수련의 기준을 속인중의 하나의 좋은 사람 기준으로 낮췄다. 예컨데 속인의 일에 대한 열정, 일하는 능력, 헌신정신, 여러 가지 실전경험 등등이 모두 속인의 기준이었다.

이러한 퇴보는 자신도 모르게 이어졌다. 수련중에서 진정으로 제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많은 현상에 나는 곤혹을 느꼈고, 따라서 진정한 수련인의 상태로 맡은 일을 잘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겉으로는 아주 바쁘게 보내는 것 같았고 노력도 아주 많이 했지만 이 한 층차 중에 표현되어 나오는 것은 오히려 아주 낮은 효율이었다. 최근 1년 전부터서야 나는 비로소 점차 이 곤혹스러운 상태에서 걸어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만 바쁜 일정에서 진정으로 수련할 수 있을 지 점차 깨닫게 되었다. 아래에 나는 나의 심득을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 법공부를 잘하는 것은 일을 잘할 수 있는 기초이다

시카코에서 처음 신당인 갈라공연을 준비할 때 나는 거의 갈라 모든 파트에 참여했다. 찬조금, 매체, 정부관리, 매표 등등, 모두였다. 하지만 어느 한 항목에서도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되돌아 보면 그때 제일 두드러진 표현은 바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어디에 중점을 두고 일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어떤 일을 할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가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또 저 일을 누가 잘하는 것을 보면 또 저 일을 모방해서 하려 하면서, 결국은 안한 일이 없었는데, 어떠한 일도 철저하게 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보기에는 아주 바쁘고 정신 없이 보내는 것 같았다.

갈라공연이 끝나고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점검해 보았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가장 소홀히 하였던 것은 진정으로 법학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매일 《전법륜》 세 강의를 읽어야 한다고 스스로 정해놓고, 또 요 몇 년동안에는 비교적 잘 해왔지만, 갈라공연 준비가 시작된 후부터는 아주 바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원래의 계획을 매일 신경문만 읽는 것으로 대체했다. 이러한 법공부는 사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모두 부족한 수준이었다.

시카코의 두 번째 갈라공연을 원만히 개최하기 위해 나는 스스로에게 법학습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하였다. 1회 갈라공연이 끝한 후부터 나는 이 다짐을 엄수하기 시작했다. 매일 법을 읽기 시작해서 매일 법을 암기하고, 법을 베껴 썼다. 물론 처음 시작할 때 한 동안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곤란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하면서 고비를 넘기고 나면, 내심으로 법학습에 대한 갈망을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다. 특히 바쁘고 긴장해서 하루를 마치고 사상과 체력이 모두 피곤해 있을 때 내가 제일 바라는 것은 바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전법륜》을 들고 보는 것이었다. 나는 늘 자정이 지나서야 책을 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데 그 때 나는 자신이 마치 강대한 에너지 마당에서 목욕하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물론 너무 피곤해서 기계적으로 자신이 규정한 임무를 완성할 때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법을 암기하고 베끼는 것을 줄곧 2007년 갈라가 열리는 전날까지 견지했다.

법을 외우는 것에서부터, 한 글자 한 글자씩 써내려 가는 데는 정력(定力)이 아주 필요하다. 무형속에 나는 바쁜 업무를 보면서도 정력은 더욱 깊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조리있게 주변 일을 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 다른 일을 또한 할 수 있었다. 갈라는 하나의 방대한 공정이라고 우리는 본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매 한 가지 일의 세세한 부분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전화하는 과정에 우리의 정신상태는 집중되고 충실한지, 서면자료를 준비할 때 우리의 사유는 명석하고 단어의 활용은 적절한지, 사람들과 담화할 때 마음에 거리낌 없이 순발력이 있는지, 대량의 정보를 처리할 때 조리 있고 이치에 부합하는지, 돌발사건이 있을 때 과단성 있고 침착하게 처리하는지, 수련인의 침착하고 이지적인 심태는 시시각각 이러한 구체적인 일의 곳곳마다 체현된다.

2. 사람의 테두리에서 걸어나오다

2007년 신당인 갈라 때 매스컴 협찬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나는 우리가 점점 많은 주류매체의 협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끊임없이 자신의 관념을 타파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협찬 마케팅 파트에서 일하기 전에 나는 잘할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성공한 지역에서는 물론 가서 하기만 하면 길을 개척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작년 갈라공연때 주류매체에 관한 생각을 하면 아직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로 인해 강한 관념이 생겼는지, 속인의 그러한 인맥이 없이 통로를 열고 고비를 돌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시도해보고자 하는 생각에 나는 전화와 메일 보내는 작업을 열심히 하였지만 직접 우리의 자료를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만은 하지도 않고 있었다. 사실 생각을 못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마음속의 어떤 장애가 내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 막았을 뿐이다. 어떤 수련자가 나의 이러한 마음속 저애를 알아내고, 자기 혼자서 자료를 가지고 한 곳 한 곳 문을 두드렸다. 차츰 일부 매체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길은 열렸다.

마지막에 우리는 현지 TV와 라디오 방송국, 신문, 이 3개 영역의 제일 주류인 매체의 협찬을 받았다. 겉으로는 특별한 요령이 없고, 단지 속인의 형식으로 전화를 걸고, 메일을 보내고 때로는 찾아가 면담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강해지는 자신의 정념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으며 일을 하면 할수록 서서히 잘 풀려나갔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자신의 자신감 부족으로 상대방의 반응 하나도 나를 며칠 동안 불안하게 만들었고, 조마조마한 마음이 나를 계속 따라 다녔다. 그러면서 한번 거절을 당하거나 며칠 동안 소식이 없으면 혼자서 ‘주변에 있는 중국인 친구가 뭐라고 했나? 나의 어떤 말이 잘못 되었나? 우리가 어떤 면에 부족했나?” 등등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추측해 보았다.

점차적으로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나의 머리속에서 사라졌다. 만약 상대방이 거절했으면 나는 예의를 갖추어 거절한 이유를 문의했고, 반응이 없으면 계속하여 그들과 연락을 유지했다. 예를 들어 명절 때가 되면 짧은 문자로 안부를 전하면서 이 기회를 빌려 우리 각 지역의 공연 소식과 함께 우리의 매표 상황에 대해 알려준다든가, 그 외에도 나는 또 매 한 번의 접촉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주동적으로 상대방에게 정면적 정보(갈라에 대한)를 강화시켜 주는 것을 배웠고, 또한 자연스럽고 예의를 갖춘 어투로 연락을 취하는 것도 배움으로써, 우리의 이념을 일방적으로 주입시켜주면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그러한 방법을 취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사유는 매일의 법학습과 법암기를 통하여 더욱 명석하게 변했고, 지혜도 점점 커졌으며 정념 또한 점점 순정해 졌다.

이러한 정념의 강화는 절대 외부 환경의 변화로 조성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와는 반대되는 과정이다. 그것은 정념이 강화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외부의 환경이 바른 방향으로 개변되는 것이다. 음악회를 한 달 앞두고 우리의 문의전화는 중공에 의하여 계속 교란을 받았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고 매체친구들에게 대대적으로 메일을 보냈다. 편지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갈라공연의 매표 상황은 아주 낙관적입니다. 이미 4천장이 팔려나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갑자기 중공의 교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왜 우리들에게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는지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중국의 순정한 문화예술을 공연하기 때문이고, 진정으로 전통의 가치와 이념을 회복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당문화는 이 행렬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나는 전혀 받아보지 못했던 여러 매체 고위 간부들의 회신을 받았다. 그들은 나에 대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갈라 공연의 속인매체 협찬 측에 나는 역시 업무 외의 그들과의 개인 연락을 유지했다. 예컨대 크리스마스 때 그들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내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든가 하는 것이었다. 편지내용에는 “한 명문대 공과대학을 졸업한 내게 있어 매체는 내 전공분야가 아닙니다. ‘6,4’때(중국 천안문 민주화 운동) 나는 미국의 소리방송에서 우연히 총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중공이 정말로 학생들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또한 미국이 중국에 대한 모함이겠지 라고 생각했죠. 파룬궁을 박해할 때도 마찬가지로 나는 파룬궁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그가 파룬궁으로 인해 정신이 이상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내가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은 나 자신이 중공의 통치하에서 20여 년 동안 받았던 교육이 모두 가짜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희망의 소리와 신당인 갈라 일을 선택하게 된 이유입니다. 나는 하나의 공정한 매체로 그러한 나처럼 기만 당한 중국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편지가 발송되고 나서 매체 협찬단체는 모두 감동을 받았다. 후에 중공이 직접 그러한 매체를 교란할 때에도 나와 연락을 한 사람은 모두 강한 정념을 보여주었다. 갈라공연이 열리는 날 그들은 나에게 짧은 글을 써서 보내주었다. “우리의 합작은 매우 유쾌했습니다.”

우리 일의 본질은 수련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일부 가상들도 연화되어서 우리의 심성을 고험한다. 어떤 주류매체와 처음 만나기 시작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상대편은 명확하게 이런 요구를 했는데, 즉 협찬을 하는 조건은 그들의 주요 앵커가 갈라공연에서 사회자를 맡게 하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이미 전반 음악회에 속인이 섞인다는 것은 음악회의 규정상 불허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요구는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당시 시카코 불학회와 갈라 협찬팀은 충분한 교류를 하였다. 우리는 속인 매체 측과의 회담에서 우리 갈라공연의 의의와 영향 면을 놓고 볼 때 주류매체의 인정과 지지를 받는 것이 왜 중요하고, 프로그램 배정상 임시로 사회자를 바꾼다는 것이 왜 적합하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조건을 주장한다해도 우리의 원칙을 개변시킬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결국 쌍방 회담에서 일은 생각 밖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들은 끝까지 우리의 발언을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우리를 이해하여 주었다. 결국 이 TV방송국은 음악회의 독자 협찬단체가 되었다.

그때 우리는 “2007년의 갈라공연은 사부님의 정법”이라는 인식이 부족해 방송국과 약간의 타협도 있었는데, 바로 그들의 사회자가 갈라 개막과 폐막 때만 무대에 잠깐 출연하는 것이었다. 후에 총부의 요구가 점점 엄격해지면서 최종적으로는 절대 속인의 참여를 불허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때는 이미 갈라 공연날짜와 너무 가까워졌으므로 사실상 이미 이 방송국과 다시 협찬변동 조건을 얘기할 시간은 없었다. 그때 우리의 압력은 매우 컸다. 어떻게 속인과 이러한 변동을 이해시키겠는가?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것은 나에 대한 직접적인 고험이기에 여기서 내가 능히 사람에서 걸어나올 수 있는가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온 밤을 생각하면서 나는 끝내 이 사회자와 방송국 연락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갈라공연은 세계 각 지역에서 매우 큰 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총부에서도 그 완벽함에 도달하기 위해, 그리고 진정 세계적인 공연으로 만들기 위해, 그 제작과 그 요구는 아주 엄격합니다. 그것은 또한 정체적인 하나로 만들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공연의 전체 질을 보장하기 위해 총부는 지부가 함부로 공연내용을 삽입하는 것을 불허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지부는 아주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귀하의 방송국에 통지하는 바입니다. 당신들의 사회자가 갈라 공연에 참여할 수 없음을. 하지만 우리의 공연수준이 귀 방송국의 명성의 높이에 맞출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우리의 합작은 그야말로 “강강연합(强强联盟)”입니다.’

온밤을 세웠기 때문에 나는 이튿날 아침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때 사무실의 전화가 왔다. 방송국의 연락인이 나를 찾는 전화였다. 나는 이는 바로 메일로 인한 전화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몹시 긴장했고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다. 나는 머리를 이불속에 파묻었다. 나는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팠다. 다른 동수들의 재촉하에 나는 염치불문하고 그 연락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에 그녀는 단지 내가 그 사회자에게 선의적으로 이러한 변동상황을 전화로 말해줄 것을 건의했다. 한 통의 메일은 좀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와 첫 만남을 가졌을 때도 외부인을 참여시키고 싶지 않아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면서 이런 변동은 자기로 하여금 그리 의외로 생각되지 않았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난 후 나는 마치 마음속의 큰 돌을 하나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그 한동안의 작업을 되돌아 보면 나는 정말 많은 감개가 있었다. 우리가 한 일은 겉보기에는 속인의 일과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만약 사람의 관념으로 대한다면 우리는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독 사부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져야만 비로소 걸어나올 수 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이 수련에서 성숙되어야만 비로소 속인의 이 표면형식을 원용시킬 수 있다.

3. 정체의 힘

사부님을 따라 정법하는 과정에서 나는 제자들이 한데로 융합되어 이루어낸 정체의 힘을 점점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시카고 갈라 준비팀에 관해 어떤 동수의 말을 빌리자면 “한 사람의 역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 뜻인 즉 누구도 한 사람이 전체 몫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 중에 누구 하나라도 서양 주류사회에서 종합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매 한 명의 수련자는 모두 장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수련생은 사업적 두뇌가 특히 민첩하고, 어떤 수련생은 전화하는 재주가 뛰어나며, 어떤 수련생은 회담에서 분위기를 진전시키고 화기애애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또 어떤 수련생은 문장능력이 매우 돌출하고, 또 어떤 수련생은 정보 수집방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재능을 발휘하면서 정제적으로 앞으로 밀고 나간다.

매체 일을 할 때 나는 정보수집을 잘하는 수련자를 찾아 더욱 많은 매체와 연락인을 찾아내고, 사업적 두뇌가 있는 동수와는 어떻게 하면 증상에 맞는 약 처방을 내릴 지 분석하고, 전화를 잘 하는 동수에게서는 말하는 말투나 어조를 배운다. 그리고 회담을 잘하는 동수하고는 함께 사람을 만나러 간다. 사실 기타 수련자도 일을 할 때 역시 이렇게 협조한다. 그러므로 매 사람이 얻은 성과는 그야말로 “정체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정체 협조 중에서 내가 깨달은 바는 바로 일의 본질은 수련이라는 것이다. 일하는 중에 반드시 자신의 주견이 들어있어야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그대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명령을 집행하는 기계에 불과하고, 각자의 정념정각을 수련해낼 수 없다.

올해 1월 갈라공연의 매표 전화는 중공의 대대적인 전화 교란을 받았다. 동시에 우리의 협찬회사도 중국 영사관의 교란을 받았다. 그때 우리는 일주일 내에 기자회견을 열어 이러한 일들을 폭로하고자 했다. 3일전에 뉴욕 총부에서도 이와 같은 기자회견를 열어 갈라 공연을 소개하고 중공의 교란을 폭로했다. 뉴욕은 이미 기자회견의 진행과정을 모두 녹화하여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예전 같으면 우리가 할 일은 아주 간단하여 단지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만 보면 되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뉴욕의 발언을 찬찬히 보고 나서 내부적으로 매우 진지한 교류를 했다. 그들과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영어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못한 이유로 우리는 뉴욕 수련생들처럼 그런 사건의 복잡한 배경을 정교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었고, 또한 현지 속인매체와 뉴욕매체가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다를 수도 있고, 자원과 규모 모두 뉴욕과 같지 않다는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여 우리는 갈라의 소개에서부터 파룬궁과 갈라 공연 등등의 문제를 시카코의 현상황에 결합하여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일이 끝나고 증명했듯이 기자회견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속인매체는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아주 정확하게 포착했다.

미국 중부 기타지역에서도 내년에 갈라 공연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한 마디 덧붙이겠다. 다른 지역의 좋은 경험을 참고로 삼을 수 있으나 반드시 그 지역의 상황에 결합하여 이성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4. ‘나’에서 걸어 나오다

갈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수련상태가 비교적 좋다고 느낀 나는 자기도 모르게 다른 동수들에 대해 까다로워져 그들이 하는 일을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갈라가 끝나고 한동안 나는 다른 동수들과 함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속인식의 언행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러한 ‘자신이 최고’라는 마음은 이미 아주 강하게 변했다. 수련을 시작해서부터 나는 뼛속까지 깊이 박힌 강한 승부욕이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것은 환경과 때에 따라 표출되어 나오는데 이번 갈라 이후처럼 이렇게 맹렬하고도 지속되게 나온 적은 없었다.

속으로 나는 이러한 강한 승부욕이 진정한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의 교란을 나는 배척할 수가 없었으며 도리어 강한 자책감으로 인한 괴로움에 빠졌다. 자신이 하는 매 한 마디 말은 모두 질책과 남의 결점을 찾아내는 요소가 강한 것 같았고, 움직이는 매 한 염두가 모두 바르지 못하고 순정하지 못함이 느껴졌다. 나의 이런 잘난척하고 교만하는 마음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고, 또 작업 중에서도 많은 손질을 가져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에 대한 자책으로 나는 동수들과의 접촉도 꺼려했고 공개장소에서도 얼굴을 드러내기 싫어졌다. 속인의 표현에서 나 역시 예전에 제일 경시하던 그러한 상태가 나타났는데 즉 무슨 일을 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말을 함에 있어 마음을 두지 않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한 동안 나 역시 법학습과 법암기에 노력했지만 그것은 마치 진흙 땅에서 걸음을 걷는 기분이었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모두 많은 감당을 해야만 했다. 어느 날 나는 무의식 중에 2003년 명혜망에 발표된 “금부처”라는 수련자 교류문장을 읽게 되었다. 사부님은 이 문장에 대한 평주를 이와 같이 달아주셨다. “대법제자 모두 이 문장을 한 번 볼 것을 건의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 내용에는 외모가 평범하고 출중한 곳이 없었던 한 수련자가 어떤 작은 일을 참지 못해 자살했는데, 이 사람이 죽고 나서 사람들이 배를 갈라 보니 안에는 금빛이 번쩍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으며 이 사람에 대해 아쉬워했다고 한다. 외모는 평범했지만 금옥이 속에 들어 있는 그가 스스로 들인 공이 헛되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아쉬워했을 뿐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자주 동수들의 결점만 보아내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아마 내게 이러한 정진하지 못한 상태가 일어났을 것이고, 나로 하여금 탈피하고 싶어도 탈피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했을 것이다.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주변사람으로써 어찌 동수의 진실한 수련 상태를 볼 수 있겠는가? 이전에 내가 동수에 대한 관용과 이해는 사실 모두 인위적이었고 얕은 층차의 것이었으며 낡은 세력의 속박을 벗어나지 못한 진수제자를 보고 계시는 각자(覺者)의 그러한 자비스러운 마음이 아니었다.

스스로 갈라 항목에서의 수련을 되돌아 보면 지난 2회에 걸친 갈라 공연때 나에게는 여전히 순정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속에는 내가 책임지는 일에서 어떤 성과를 보겠다는 마음과, 자신의 어떤 것을 실증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들어있었다. 만약 약 반 년 동안의 갈라 준비작업을 거치지 않았다면 나는 자신의 이러한 근본적인 집착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곧 다가오는 2008년 갈라 공연 때 내가 할 일은 바로 어떻게 더욱 순정한 심태로 자신의 사명을 이행할 것인가 이다.

(2007년 미국중부법회 발언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