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길을 걸으며 자신을 잘 수련해 사람을 많이 구하다

글/ 쓰촨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 9월 말에 대법을 얻었고 올해 73세로, 노(老)대법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대법이 내 심신을 바꾸다

수련하기 전에 저는 남을 봐주지 않는 성격이었고, 남들이 억울한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따져 묻고 논쟁하며 반드시 일을 명확히 해야만 직성이 풀렸습니다. 집안에서는 독단적이었고 뒤에서는 남의 장단점을 얘기하기를 좋아했으며, 머릿속에는 온통 공산당 당문화(黨文化) 독소가 가득해 매우 억셌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해 주셔서 십여 가지 병이 모두 나았고 머리가 어지럽지 않았으며 안색에 홍조를 띠었습니다. 지금 저는 걸음을 걸을 때 바람이 이는 듯 가볍습니다. 예전에 제가 50여 세였을 때 남들이 70세가 되지 않았냐고 물었었는데, 지금 제가 70여 세가 되자 남들은 저를 60대 정도의 사람으로 봅니다. 또래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고 활력이 넘칩니다.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연공을 하면서 제 성격도 온화해졌고, 매사에 남을 먼저 생각하며 다투거나 싸우지 않게 됐습니다. 말할 때 남의 숨을 막히게 하지 않고 평이하게 대할 수 있게 돼서, 남들이 모두 저와 어울리기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대법의 위력이고 사존의 크나큰 은혜이니,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2. 수련은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 나아가지 않으면 뒷걸음친다

처음 제5장 공법을 연마할 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반가부좌를 할 때조차 무척 아파서, 옷에 대는 어깨 패드 스펀지를 빼내어 왼쪽 발 바깥쪽 복사뼈에 대고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이려 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반가부좌를 고작 30분이나 40분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점차 반가부좌 시간을 1시간으로 늘렸습니다.

1999년 8월의 어느 날, 결가부좌를 하고 싶어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게 가지(加持)해 주셔서 다리를 올려 결가부좌를 3분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저는 힘을 내어 왼쪽 다리를 올렸고 단숨에 결가부좌를 20여 분 동안 했습니다. 속으로 무척 기뻤고 사부님의 가지에 감사드렸습니다! 이렇게 저는 매일 1분씩 늘려갔고, 때로는 같은 층차에 머물기도 하면서 2005년까지 견지해 마침내 결가부좌를 2시간 동안 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08년 2월의 어느 날, 한 수련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손녀를 돌보고 계신데 법공부와 연공을 따라갈 수 있나요?” 제가 말했습니다. “할 수 있어요. 가부좌도 2시간 동안 할 수 있는걸요.” 그녀는 자신들은 겨우 1시간 동안 가부좌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손녀까지 돌보고 있으니, 나도 1시간만 하면 되겠구나.’ 제가 가부좌 시간을 줄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체에 문제가 생겨 자주 감기에 걸리고 기침을 했으며, 꽤 오랜 시간을 끌었습니다. 나중에는 가부좌 1시간조차 버텨내지 못했고 게다가 뼈를 찌르듯 아팠습니다. 다시 반가부좌로 바꿨지만 이 역시 너무 아팠고, 평좌로 바꿨더니 더 아팠습니다.

꿈속에서 사부님께서 제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수련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 나아가지 않으면 뒷걸음칩니다. 대법 수련은 너무나 엄숙해 조금의 거짓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꿈속에서 사부님께서 다시 일깨움을 주셨습니다. 제가 천천히 위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한참을 걸어서야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깨어난 후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가부좌 시간을 단축해 층차가 낮아진 것이 아닐까? 에너지가 와서 가지해 주지 않고 게다가 법공부도 따라가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이후 저는 다시 결가부좌를 견지했습니다. 처음에는 30분만 앉아 있어도 몹시 아팠기에, 속으로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전법륜)라고 외우며 매번 가부좌를 할 때마다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마치 처음 연공을 시작했을 때의 상태처럼 1분 1초를 버텨냈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결가부좌를 1시간 동안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진상을 알리며 자료를 배포해 세 가지 일을 따라잡았고, 결가부좌 시간도 조금씩 위로 늘려갔습니다. 저는 고생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겼고, 고생하는 것은 소업이며 좋은 일이라 여겼습니다. 1년이 지나자 저는 다시 결가부좌를 2시간 동안 하는 상태로 회복됐습니다. 사부님의 일깨움에 감사드리고 사부님의 가지에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깊은 교훈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나태해져서는 안 됩니다. 명혜망에 1시간짜리 포륜 음악이 발표된 이후, 저는 매일 1시간 반 동안 동공을 연마했습니다. 저는 ‘전법륜’을 여러 번 암기했고, ‘홍음’부터 ‘홍음6’까지 암기했습니다. 비록 다 외우지는 못했지만 외운 것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더욱 노력해 사부님께서 제게 안배해 주신 모든 수련의 길을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3. 자료점을 세워 바른 수련의 길을 걷다

2013년 4월, 기술 수련생의 도움으로 저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작은 꽃’(가정 자료 제작소) 한 송이를 피워낼 수 있었습니다. 한 수련생 언니가 제게 낡은 PC 한 대를 가져다주며 간단한 조작법을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학력이 높지 않았고 예전에 마우스라곤 만져본 적이 없었기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두 달을 연습한 후, 저는 제 돈으로 새 PC와 프린터를 샀고 소모품도 들여놓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다른 기술 수련생과 연락이 닿았는데, 그는 못 하는 것이 없었고 프린터 수리도 할 줄 알아 지금까지 계속 저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의존심이 있어서, 기술 수련생이 제 옆에 앉아서 가르쳐줘야만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기술 수련생은 직장인이라서 처음엔 휴일을 이용해 왔는데 온전히 그에게 반나절을 지체하게 했습니다. 두 번째는 저녁 7시경에 차를 직접 몰고 왔고, 세 번째는 내리 사흘 밤을 찾아와 매번 2시간가량 가르쳐줬습니다. 아, 제가 너무 아둔해 속으로 몹시 미안했습니다. 세 번째 밤에 저는 수련생에게 조작 순서를 적어달라고 부탁한 후 혼자서 천천히 더듬어 익혔습니다. 저는 그날 밤새 눈을 붙이지 못한 채 마음을 써서 그 순서들을 익혔고, 이를 통해 수련생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주었습니다. 나중에는 기술 수련생이 오는 횟수가 좀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고 세 개 팀 수련생들의 자료를 공급해야 했습니다. 안전을 위해 제가 만든다는 것을 어떤 수련생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복사용지는 전부 상자째로 샀고 제가 직접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져왔으며, 자료를 다 만든 후 그녀들에게 가져다줬습니다. 제가 평안하게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진상 지폐를 만들 때, 저는 직접 돈을 구하고 깨끗이 씻어서 평평하게 펴 인쇄했습니다. 글씨체가 선명하고 깨끗하게 나오도록 했고, 만약 먹물 자국이 묻은 돈이 있으면 소독액에 담갔다가 맑은 물에 헹궈서 제 손으로 직접 사용했습니다. 진상 지폐를 다 인쇄한 후에는 왁스칠을 했고, 돈을 종류별로 잘 맞췄습니다. 매 100위안씩 한 묶음으로 포장했는데(각 묶음 안에는 20위안짜리 2장, 10위안짜리 4장, 5위안짜리 2장, 1위안짜리 10장이 들어 있음), 금액이 정확하고 오차가 없었기에 수련생들이 모두 무척 좋아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제 월급은 매달 1020위안밖에 되지 않아 생활이 아주 검소했습니다. 이 10여 년 동안 프린터를 몇 대나 바꿨지만, 저는 수련생들에게 기부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선물을 받은 적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몇 년 전에 한 수련생이 단오절에 제게 쭝쯔 6개를 가져다줬는데 거절할 수 없어 받았지만, 나중에 저는 모두 답례를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절대 선물을 주지 말라고 당부했고, 나중에는 그들도 제가 선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보내지 않았습니다.

4.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니 사부님은 우리 곁에 계시다

우리 지역에서는 거의 저 혼자 자료를 만들고 저 혼자 배포합니다. 명혜망에 설정된 스티커를 저는 전부 다운로드해 보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인쇄해 전부 붙였습니다. 7월에 설정된 2합 1, 4합 1, 8합 1도 전부 인쇄해 붙였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저는 또 인쇄해 장소를 바꿔가며 붙이고, 집에는 자료를 쌓아두지 않습니다. 9월 5일에 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2합 1 스티커가 올라와서 저는 이미 인쇄해 붙였습니다. 명혜망 편집 수련생들이 설정한 것이 갈수록 좋아지고 너무나 정교해서, 우리는 그저 기성품을 다운로드할 뿐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명혜망 편집 수련생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이는가 하면, 저녁 6시에 발정념을 마치고 7시쯤 시내버스를 타러 갑니다. 유명 브랜드의 간식 포장지를 사용하는데, 이런 봉지는 속이 잘 비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우유 한 팩, 과자 두 개를 넣고, 다시 화장품 브랜드의 작은 봉지도 잘 비치지 않아 그곳에 자료와 스티커를 넣습니다. 가방을 메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하며, 밝은색 옷을 입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 마치 마트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합니다. 매일 밤마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꼴로 나갑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내린 뒤 잠시 서성이면 날이 어두워져 사람을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그때부터 비닐 코팅된 자료를 주거지 문 옆 벽에 붙이고, 다시 적당한 장소를 찾아 스티커를 붙입니다.

제 자료는 전부 비닐 팩에 포장돼 있습니다. 매일 오전에 나가 진상을 알리는데 가방에는 고작 10부, 8부의 자료와 몇 개의 호신부(護身符)만 넣습니다. 만약 많이 넣으면 가방이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아파트에 가서 자료를 문 옆 벽에 붙인 뒤에, 다시 나와 진상을 알립니다. 저는 진상을 알릴 때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말을 붙일 수 있으면 모두 알립니다.

어느 날 공원 밖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사실 저는 인연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 옆에 어떤 남자가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을 붙였는데, 그가 꽤 말을 잘하고 말투가 겸손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평범한 노동자 같지 않기에, 어느 직장에서 정년퇴직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성 공안청이라고 했습니다. 속으로 걱정이 조금 들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진상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에라, 그래도 용기를 내서 알려주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도 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보아하니 당원이시겠네요.” 그가 그렇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하고 평안을 지킨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조직에 탈퇴서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신에게 탈퇴하는 것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가명 하나를 지어드릴 테니 탈퇴하세요.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는 진심으로 당신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탈퇴하겠다고 승낙했습니다. 제가 또 말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시면 복을 받습니다.” 그도 동의를 표했습니다. 이때 차가 와서 그는 제게 작별 인사를 하고 기분 좋게 떠났습니다. 저도 속으로 매우 기뻤습니다. 하마터면 진상을 알릴 엄두를 내지 못할 뻔했던 한 생명이 마침내 구원받은 것입니다.

지난달 저는 문구점에 가서 공책을 사서 ‘전법륜’을 필사하려 했습니다. 60대 여성이 제게 무엇을 쓰려고 사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불경을 필사하려고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사교(邪敎)만 아니면 돼요.” 제가 그녀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직원 교육 강사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실례지만 ‘진선인(眞·善·忍)’이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그녀가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사부님은 저희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되며, 매사에 남을 더 생각하라고 가르치십니다. 파룬궁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는 데 기적 같은 효과가 있고, 전파하는 진선인이 너무 올바르기에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장쩌민(江澤民)은 자신의 정권에 위협이 될까 봐 두려워 파룬궁을 박해했고, 심지어 2001년 섣달그믐에 ‘천안문 분신’이라는 조작 사건을 일으켜 파룬궁에 누명을 씌움으로써,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파룬궁을 원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파룬궁은 현재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파됐고, 우리 사부님은 많은 표창을 받으셨습니다. 오직 중공만이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으며, 공산당이 거짓·악·투쟁(假·惡·鬪)을 일삼는 것입니다. 공안부가 정한 14가지 사교 중에 파룬궁은 없으며, 파룬궁을 박해하라는 정식 문서도 없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바르고 누가 사악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다른 사람이 물건을 사러 오자 그녀는 떠났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아직 삼퇴를 시켜주지 못했습니다. 그녀도 진상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두 달 전, 우연히 채소를 사는 노부인을 만났고 그녀와 함께 걸으며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말을 할 때는 그녀도 잘 받아들였고 대화도 꽤 잘 통했습니다. 제가 화제를 돌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또 삼퇴를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묻자, 그녀는 즉시 얼굴빛을 바꾸더니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 파룬궁이지!” 그녀는 돌아서서 남편에게 외쳤습니다. “이 사람 파룬궁이야!” 그곳은 지하상가를 공사 중이라 지나가는 행인이 아주 많았고 보안 요원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할까 봐 겁이 난 듯 큰소리로 떠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그녀를 구해주셔서 그녀가 대법과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당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고 저는 그녀를 상관하지 않고 우산을 쓴 채 앞으로 계속 걸어갔습니다. 다음 날 저는 이 노부인과 또 스쳐 지나가게 됐는데, 그녀는 저를 알아보더니 일행인 두 중년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바로 저 사람이야! 저 사람이야!”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이 항상 내 곁에 계시는데 무서울 게 뭔가.’ 저는 뒤돌아서서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제가 왜요?” 결국 그녀는 겁을 먹고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앞으로만 걸어갔습니다. 두 여자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를 다시 만나면 여전히 진상을 알려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달이 지났지만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했습니다.

5. 어떤 환경에서든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큰올케언니는 무척 선량하고 말수가 적으며 올해 80세입니다. 큰오빠는 이미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저는 자주 그녀에게 돈을 줬습니다. 올케언니는 저희 집안 친척들에게, 우리 5남매 중 막내 시누이(저를 지칭)만이 자신을 가장 진심으로 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게는 시누이가 딱 한 명 있는데, 그녀는 전화로 제게 말했습니다. “올케언니, 언니는 제게 너무 잘해줘요!” 남편은 이미 18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들 두 남매뿐이었습니다. 남편의 아버지는 1960년 대기근 때 굶어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후처로 재혼하며 세 살 된 시누이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때 제 남편은 겨우 14살이었습니다. 7년 전, 시누이가 발이 아프다고 해서 저는 1000위안을 부쳐주며 병원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만약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녀와 왕래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법제자는 돈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어느 정도 저축만 있으면 됩니다. 최근 몇 년간 연금이 매년 조금씩 올랐고, 제가 모은 돈으로 두 아들에게 각각 10만 위안씩 나눠줬으며, 손녀와 손자가 각각 대학에 합격했을 때 2만 위안씩 줬습니다. 그들은 지금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한창 돈이 필요합니다. 사돈어른이 병이 나서 제가 문병을 갔더니, 그녀는 제게 도량이 넓다고 했습니다. 두 며느리도 모두 저를 잘 따릅니다. 둘째 며느리는 얼마 전 물건을 좀 사서 저를 보러 와서는 “어머님, 앞으로 저도 어머님을 친어머니처럼 모실게요. 어머님은 너무 너그러우셔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평범한 아파트로 총 7층이고 저는 3층에 삽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이웃들은 이미 20년이나 살았지만 한 번도 계단을 물걸레질한 적이 없었고, 마치 소변 자국이 있는 것처럼 아주 더러웠으며 비가 와서 습기가 차면 악취가 났습니다. 어느 날 비가 내려 나가지 않고 계단을 청소했습니다. 작은 대야에 물을 떠서 계단마다 물을 뿌리고 세제를 좀 뿌린 다음, 솔로 계단마다 박박 문질러 닦았습니다. 다 닦은 후에는 바가지로 물을 조금씩 뿌리며 빗자루로 천천히 쓸어내렸고, 더러운 물이 1층 세대에 흘러 들어갈까 봐 조심조심 청소하다 보니 반나절이 지났습니다. 허리와 등이 뻐근하도록 힘들었지만 마음은 아주 즐거웠고 오직 이웃들이 깨끗하고 쾌적하게 다니기만을 바랐습니다. 저 스스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중에는 빗자루질을 하면서 거미줄까지 치웠고 가끔씩 대걸레질을 해 항상 청결을 유지했습니다. 이웃들은 모두 제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고 젊은이들은 “아주머니가 여기에 사셔서 우리 동 전체가 깨끗해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아파트 단지에 미화원이 있었지만, 그녀는 한 번도 바닥을 닦지 않고 먼지조차 깨끗이 쓸지 않으며 거미줄도 치우지 않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말해주기를, 그들이 저를 얌전하고 깔끔하며 처세가 좋다고 평가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칭찬해 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 말씀을 듣고 저 자신을 잘 수련합니다. 누가 저를 칭찬하든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제가 부족하다고 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저는 수련을 잘하는 수련생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고, 사부님의 요구에 비하면 더더욱 십만팔천 리나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력해 저 자신을 잘 수련하고 시간을 다퉈 사람을 구하려 합니다.

만약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의 고생스러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21/5131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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