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대법제자가 실업 기간에 수련 초기 상태를 되찾다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청년 대법제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대법 안에서 성장해 눈 깜짝할 사이에 수련한 지 거의 30년이 됐습니다. 가족들은 줄곧 저를 어린 수련생으로 대했고 저 자신도 예비 상태에 머물러 있었으며, 계속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한동안 실직해 집에 있으면서 끊임없이 법에서 자신을 깨끗이 씻어냈고, 깊이 묻혀 있던 미혹 속에서 점차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서둘러 맹렬히 뒤쫓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래에 최근 실업 기간의 경험을 적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실업 후 집에 머물며 한 반성

최근 1년여 동안 두 번 이직했고, 그사이 몇 달 동안 집에서 쉬기도 했습니다. 실직해 집에 있으니 출근할 때보다 시간이 훨씬 여유로워졌습니다. 출근할 때의 생활은 그저 일과 법공부, 연공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예전에 하던 일을 조금도 다시 접하고 싶지 않은데 저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가족 수련생은 제게 거듭 안으로 찾으라며, 도대체 무슨 엄청난 마음의 응어리가 있길래 넘기지 못하고 직장을 구해 정상적인 사람의 생활을 하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가족에게 화를 내며 그냥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법공부를 좀 더 많이 하고 나니 확실히 마음의 응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재의 수련 층차에서 진지하게 반성해 보니 자신에게 수련상 다음 두 가지 큰 누락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직장 문제에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실 직장에 불만이 있다는 문제는 작년에야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제가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겨난 것입니다. 끊임없이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업무 내용에 불만이 있었고, 상사가 저를 중시하지 않는 것이 불만스러웠으며, 받은 급여가 제가 힘들게 쏟은 노력보다 적은 것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당시에는 법에서 깨닫지 못하고 그저 속인의 방법으로 어떻게 하면 자신이 만족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맡은 일을 잘 완수하고, 업계에서 가장 어려운 자격증 시험을 치렀으며, 학력을 높이기 위해 진학했습니다. 거의 10년의 세월을 허비했는데 지금 보니 분명히 방법이 틀렸습니다!

다행히 줄곧 대법이 저를 이끌어 주셨고 가족 수련생이 지켜봐 주었기에 저는 사람 속의 명예와 이익 속에서 삿된 길로 빠지지 않았습니다! 최근 2년간 중국 경제가 점점 더 빠르게 쇠퇴하는 것을 지켜보며 기존의 업무 승진 체계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생활에 환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사람 속에서 발버둥 치며 자신의 안일심, 명리(名利)심을 충족시킬 직장을 찾으려 했으니 지금 보니 정말 어처구니없이 틀렸습니다. 수련인은 매 순간 수련 속에 있습니다! 일은 돈을 벌어 생활하기 위함이며, 또한 갈등 속에서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깊이 뿌리를 파보면 아름다운 생활을 향한 동경이 줄곧 제 수련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집착이었습니다.

둘째, 사부님과 법을 100% 믿지 못했습니다. 대법제자의 일은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것으로, 이전의 업무 과정에서도 많은 집착심을 닦아 없앴습니다. 게다가 지금 돌이켜보면 각 단계의 일은 모두 당시 제게 가장 적합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직장을 찾는 과정을 저는 여전히 사람 마음으로 대했고 모두 사람 마음으로 가늠했습니다. 속인의 사유로 가장 주도면밀하게 고려하려 했고 사부님의 안배를 착실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몇 달간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직장은 돈을 많이 벌거나 명성을 크게 떨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공산당 당문화(黨文化)가 없고, 암투가 없으며,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뼛속까지 쥐어짜는 현재 사회의 팽팽한 긴장감이 없는 곳에서 의미 있는 일들을 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에서는 실현하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저는 늘 해외 법 실증 항목을 하는 대법제자들이 특별히 부러웠는데, 일이 곧 법을 실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현할 수 없다 해도 의기소침해질 수 없으며,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길이 가장 좋은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2. 매일 수련의 기초를 다지다

법공부, 연공, 발정념은 모두 매일 수련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양과 질이 모두 보장돼야만 에너지가 넘치고 정념이 충만해져서 좋은 상태로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습니다.

1) 휴대폰 중독에서 벗어나다

좋은 수련 상태를 유지하려면 먼저 휴대폰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실직 초기에는 휴대폰을 보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경각심을 유지했고, 휴대폰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며 좋지 않은 것들이 주입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끔 휴대폰을 사용하다가 휴대폰 속의 마(魔)에게 끌리곤 했습니다. 이후 저는 휴대폰이 제게 어떤 유용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오히려 엄청난 불안감을 조성하며, 법에 부합하지 않는 억지 논리를 주입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쓸데없는 물건을 사게 했고, 법공부를 교란해 생각이 집중되지 않게 했습니다.

명혜망 교류 글 ‘명혜특간: 휴대폰 중독을 끊고 수련의 초심을 되찾다’를 끝까지 다 읽은 후, 저는 휴대폰 앱을 삭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도, 타오바오, 위챗, 샤오훙수 등 몇 가지 앱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삭제하지 않은 이 몇 가지 앱들이 여전히 갖가지 핑계를 대며 제가 휴대폰을 켜도록 유혹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앱을 사용하지 않을 때 삭제하고 필요할 때 다시 설치하며, 휴대폰을 생활 구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둡니다. 이제는 기본적으로 휴대폰 중독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2) 법공부를 잘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설법과 경문을 통해 대법제자가 법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전에 줄곧 이해하지 못했고 중시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매일 정해진 시간을 들여 법공부를 했고 생각은 자주 딴 데로 샜습니다. 이번에 법공부를 잘하는 것의 위력을 알게 됐습니다. 얼마 전 한동안 몹시 고통스럽고, 막막하며, 무력감을 느꼈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부님의 법이 나를 도울 수 있다’는 한 가지 생각이 솟아올랐습니다. 정말 각지 설법을 펴보니 이전에 어디까지 읽었든 상관없이 이어진 위치나 한두 페이지를 넘긴 곳에 바로 제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법이 있었습니다.

3) 단체 법공부의 중요성을 체험하다

저는 예전에 단체 법공부에 큰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단체 법공부에 몇 번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2~3시간 후면 앉아 있기 어려웠고 생각도 딴 데로 샜습니다. 지금은 그런 어려움을 돌파했습니다. 법공부를 늘린 후 자신의 용량이 커진 것이 느껴졌고, 매번 법공부를 할 때마다 배우면 배울수록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단체 법공부 중 수련생들의 교류도 제 수련을 아주 크게 촉진해 줬습니다. 지금은 저도 ‘전법륜(轉法輪)’을 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니 통독할 때 정신이 팔리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보지 못했던 많은 법리를 배웠습니다. 이번의 법 암기는 법에 대한 이해에 더욱 중점을 둡니다. 대뇌에 법 내용에 대한 의혹이 떠오를 때 법을 몇 번 더 외우고 나면, 사부님께서 제 의혹을 풀어주셔서 머릿속이 단번에 명백해집니다.

4) 수련에서 명혜망의 중요한 작용을 직시하다

예전에 저는 명혜망 교류 글을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시간이 너무 적어 책을 볼 시간조차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스스로 법에서 자신의 문제를 깨달아야만 심성이 제고될 수 있다는 오해도 했습니다. 게다가 제 오성이 나쁘지 않다고 자부하며 명혜망 교류 글의 일깨움이 필요 없다고 여겼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많아져 법공부 외에 어머니 수련생의 권유로 명혜망 방송을 듣기 시작했고, 결국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교류 글에서 수련생들은 제가 미처 관심을 갖지 못했던 많은 수련 문제를 언급해 저를 일깨워 줬습니다. 그처럼 세 가지 일을 잘한 수많은 수련 경험을 보면서 제가 더욱 정진하도록 격려받았습니다. 저와 똑같은 고비를 넘은 수련생의 경험을 들었을 때는 지기를 찾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교류 글뿐만 아니라 중국과 해외 뉴스, 시사 평론, 문화 평론에서도 많은 것을 얻었고 기본적으로 매회를 끝까지 다 듣습니다. 매일의 수련을 잘 완수하고 나면 제 자신이 더욱 정진하는 대법제자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3. 새로운 체험과 변화

1) 마침내 자신이 주인공이 돼야 함을 알게 되다

그동안 저는 늘 말을 잘 듣고, 철이 들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면 제가 어떻게 하는 식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어떻게 하라고 하면, 선생님이 어떻게 하라고 하면, 상사가 어떻게 하라고 하면 저는 그대로 따랐습니다. 속인의 말로 하면 남의 비위를 맞추는 성격이었습니다. 법에서 가늠해 보면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관념이 저를 가로막아 반드시 다른 사람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야 했고, 자신의 마음대로 일을 할 수 없어 자주 마음이 아주 억눌렸습니다. 지금은 법이 제게 지혜를 주어 일에 부딪히면 대법의 요구에 따라 가늠해야 하고, 이성적이고, 선의적인 소통으로 제 생각을 표현해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비로소 자신이 수련하는 것이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것임을 압니다.

비교적 특수한 점은 집에서 아버지는 가장과 수련생이라는 두 가지 신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게 제안한 것이나 제가 하기를 바라시는 일 중에는 법에 부합하는 것도 있었고, 속인의 입장에서 저를 위하시는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련인으로서 스스로 분별하고 가늠해야 했습니다. 이전에는 이 방면의 수련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최근 몇 가지 일에서 아버지와 의견 차이가 컸습니다. 아버지의 요구대로 할 수 없었고 법에서 교류하지도 않았으며 사람의 이치로 논쟁해, 가정 관계를 몹시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최대한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할 수 있게 됐고, 일치하지 않는 의견에 대해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 생각을 밝히며 평화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2) 머릿속의 소리를 경계하다

저는 이 기간에 대뇌 속의 강렬한 소리가 제게 어떤 일을 하도록 시키는데 결코 진정한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그것을 제 마음의 소리로 여겨 반드시 그 소리가 요구하는 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그 소리는 제게 일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서둘러 휴대폰을 집어 들고, 가서 쉬며, 가서 논쟁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 소리는 제게 법공부를 하거나 사람을 구하라고 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끊임없는 법공부 속에서 저는 그것이 사상업력(思想業力)이라는 것을 알았고 또 다른 복잡한 근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저 자신이 아니며 모두 제가 수련 성취하지 못하게 하는 나쁜 물질임을 알았습니다. 특히 사부님의 평어 글 ‘마성을 제거하자’를 보며 어떻게 이 문제를 올바르게 대해야 하는지 더욱 잘 알게 됐습니다.

3) 생활 속 당문화의 해악을 깨닫다

예전에 저는 항상 아주 향상심이 있는 이미지였고 주변 친지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실직하고 나서 저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차별을 당했습니다. 가장 먼저 저를 차별한 사람은 어머니였고 그다음은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체면이 구겨진 것 같았고 사람들 앞에서 남보다 못한 것 같았습니다. 이후 자세히 생각해 보니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나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차별을 당했고 제 자신도 다른 사람의 차별을 인정했을까요? 이후 저는 이 역시 일종의 당문화로서, 사람을 정해진 궤도 안에서만 생활하도록 틀어쥐고 학교에 가고, 취직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일 중 어느 한 고리에서라도 문제가 생기면 차별을 당하게 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중국 대법제자들이 수련한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했고, 전염병 기간에 감염 환자들이 차별을 당한 것, 이 모두가 당문화가 사람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 점을 똑바로 인식한 후, 저는 이런 일들을 승인할 수 없었고 그것의 영향을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수많은 중국식 가정의 ‘다 큰 아기’처럼 옷을 입혀주면 팔을 벌리고, 밥을 주면 입만 벌리며, 집안일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도 그런 방식을 지지하며 아이에게 모든 노력을 학업과 일에 집중하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그 역시 당문화의 변이된 방식이었습니다.

실업한 기간에 저는 이른바 노력할 목표가 없는 사회의 한가한 사람으로서 청소, 밥 짓기, 장보기 등 집안일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집안일이 쉽지 않음을 체험했고 어머니의 노고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런 작은 일들을 잘 해내면 제 마음도 즐거워지며, 이것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기도 합니다.

현재 중국의 우울한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아마 한 번도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가정의 의무를 하지 않으니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도 박탈당한 것입니다. 당문화는 사람을 너무나 크게 해칩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 제게 이 소중한 시간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짙은 안개 속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검은 물결이 굽이치는 인간 세상을 똑바로 보게 해주셨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똑바로 보게 해주신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개인의 체험이니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16/5136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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