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중대장 “다시는 들어오지 마세요!”

— 가족 및 수련생과 협력해 검은 소굴의 박해를 해체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감옥에 있던 몇 년 동안, 나는 600여 명에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시켰다. 나는 감옥에서 대법제자가 창작한 노래를 큰 소리로 자주 불렀는데, ‘당신을 위해 왔습니다’, ‘고괴가(古怪歌)’, ‘사은송(師恩頌)’, ‘연화송(蓮花頌)’ 등은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죄수들은 모두 듣기를 원했고 늘 나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문예 공작단 배우 출신인 한 죄수가 이 노래들을 배워 성악 창법으로 죄수들에게 불러주었는데, 소리가 맑고 아름다워 아주 듣기 좋았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 모두 조용히 감상했다. 나중에 그녀가 나에게 “제가 무엇을 불렀는지 아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이어서 그녀는 웃으며 “제가 부른 것은 당신들 대법제자의 노래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1995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하에 비바람과 시련을 겪으며 30년을 걸어왔다.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대법제자에 대한 이 박해는 단지 대법제자를 단련시키고 성숙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 과정은 날로 굳건해지는 과정이자 사악을 해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검은 소굴에서 박해를 반대하는 과정에서 나는 특히 안팎으로 협력하는 것의 중요성을 깊이 체득했다. 가족이 나와 함께 협력해 검은 소굴의 박해를 타파하고 해체한 경험을 돌이켜보며 글을 쓴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길 바란다.

1.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다

어느 날 나는 한 대학생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경찰이 거리에 심어둔 첩자에게 신고를 당했고, 이어서 경찰에게 행정 구류소로 납치됐다. 나는 구류소에서 단식하며 박해에 반대하는 동시에 매일 정념을 내보내고 생각나는 법을 외웠으며,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다. 그리고 인연 있는 사람에게 ‘홍음(洪吟)’을 외우도록 가르쳤다. 보름 후 나는 형사 구치소로 이감됐다. 뜻밖의 상황에 생각이 다소 침울해졌고, 즉시 빈뇨라는 병업 가상이 나타났으며 몸이 쇠약해져 몹시 고통스러웠다. 나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데 문제가 생겼고, 정념이 부족하며 두려움이 나타났다는 것을 즉시 경각했다. 나는 바로 자신을 조정하고 구세력의 박해를 단호히 부정하며 정념을 굳건히 했다.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며, 어디를 가든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매일 내 머릿속에 대법만 있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간구했고, 사부님께서 내 머릿속에 법을 넣어주셔서 내가 외웠던 법이 떠오르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나는 당당하게 환경을 개척해 감방 사람들에게 널리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고, 모두들 나를 아주 잘 받아들였다. 나는 담당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녀는 꽤 잘 받아들였다. 감방을 관리하는 방장에게도 진상을 알리고 악당에서 탈퇴시켜 줬다. 나는 당당하게 방장에게 연공할 장소를 마련해 달라고 했고, 방장은 앞쪽 구석에 연공할 자리를 마련해 줬다. 이후 나는 공개적으로 연공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해외 대법제자들이 퍼레이드를 할 때 공법을 시연하며 걸으면서 연공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두가 산책하는 시간에 나도 걸으면서 공개적으로 연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나는 그들이 산책할 때 벽 쪽에 서서 혼자 연공하기 시작했다.

한 죄수는 심리적 충격을 받아 매일 울었는데, 감방 방장이 그녀를 내 곁에 배정했다. 그녀는 나에게 “다른 곳에서는 자려고 누워도 밤새 잠을 못 잤는데, 당신 옆에 누우면 바로 잠이 들어요. 당신의 장(場)이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내가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당당해지니 환경이 바로 변했다. 세상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대법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내 몸도 아주 빨리 좋아졌고 병업 가상이 모두 사라졌다. 나는 밤 당직에 참여하겠다고 요구해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당직을 섰다. 이렇게 해서 연공 시간을 늘렸고 한밤중에 정념을 내보내는 것도 빠뜨리지 않게 됐다. 밤에 수만 마리의 말이 질주하는 꿈을 꾸었다. 또 내가 하늘을 날고, 대지 위에 크고 튼튼한 선인장들이 무성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는 꿈도 꾸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게 정진하고 굳건해지라고 격려해 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내 곁에서 날 돕고 계심을 다시 한번 진실하게 느꼈다. 내 믿음은 더욱 커졌고 매일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감방 안의 사람들은 모두 내 변화를 보았고 그들은 모두 나에게 아주 우호적으로 대했다.

2. 가족과 외부 수련생의 관심과 격려

가족이 선임한 정의로운 변호사도 구치소로 들어와 나를 접견했다. 접견할 때 나는 50여 명의 삼퇴 명단을 외워 변호사에게 밖으로 가져가 달라고 했는데 모두 실명이었다. 변호사는 매우 놀라워하며 감동했다. 변호사는 또한 가족과 외부 수련생의 관심과 격려를 내게 전해주어 나를 크게 고무시켰고 박해에 반대하는 내 결심을 더욱 굳건하게 했다. 나는 박해가 특히 심한 이 구치소에서 매일 법공부, 정념 내보내기, 다섯 가지 공법 연공을 할 수 있었다. 반년 동안 100여 명을 삼퇴시켰는데,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내가 구치소를 떠날 때 진상을 알게 된 감방 죄수들은 몹시 아쉬워했다. 어떤 이는 나중에 다시 만나기를 희망하며 내게 연락처를 남겨주었고, 어떤 이는 내게 먹을 것을 주며 챙겨가라고 했다. 또 나에게 많은 옷을 주며 4~5벌이나 껴입게 하고서야 그만두었다. 진상을 알게 된 담당 경찰은 구치소 책임자로 승진했다.

3. 감방에서 연공하다

얼마 후 나는 감옥으로 갔다. 감옥에 도착한 첫날 모든 사람이 큰 교실에 모였는데, 나는 앉자마자 손을 세우고 정념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죄수 우두머리가 “그녀를 중간으로 빼서 앉혀. 감시카메라에 안 보이게 해”라고 말했다. 다음 날 집중 훈련대에 새로 입소한 100여 명이 큰 교실에 모였고 우리의 피를 뽑으려 했다. 내가 채혈을 거부하자 감옥경찰이 나를 앞으로 불러 “왜 피를 뽑지 않으려는 거지?”라고 물었다. 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이건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적출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키가 180이고 체격이 매우 건장한 죄수 우두머리가 “이리 와. 경찰이 널 찾는데, 너와 이야기 좀 하재”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를 감시카메라가 없는 경찰 당직실로 데려갔다. 내 발이 막 문을 들어서서 아직 제대로 서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주먹으로 내 머리를 세게 내리쳤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바닥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머리에 큰 혹이 생겼고 꼬리뼈가 바닥에 세게 부딪혀 몹시 아팠다. 그녀가 또 거세게 달려들어 나를 때리려 할 때, 나는 바닥에 누운 채 어디서 그런 큰 힘이 났는지 발로 그녀를 세게 차서 멀리 튕겨냈다. 나를 찾았다던 그 경찰이 시치미를 떼며 “저 사람을 처벌할까?”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그녀가 진상을 몰라 단지 경찰 배후의 사악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니 그녀를 구해야 한다’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필요 없습니다”라고 한마디 했다. 경찰이 “그럼 요구 사항이 있나?”라고 물어 나는 “연공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건 대대에 돌아가서 지시를 받아야 해”라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당신 지시를 받을 필요 없어. 돌아가면 바로 연공할 거야’라고 말했다. 한 젊은 경찰은 내가 다친 모습을 보고 “제발 고발하지 마세요. 난 아직 결혼도 못 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감방으로 돌아와 바로 연공을 시작했다.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큰 교실에 가서 똑바로 앉아 학습하지 않아도 됐다. 나중에 나를 때렸던 그 죄수는 내게 사과했고 그 후로 아주 우호적으로 대했다. 그녀는 내가 매일 새벽 3시에 정공을 연마하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도 방해하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연공하는데 그녀가 제지하지 않았다가 감옥 감시카메라에 발각돼 감옥의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일주일 후 내 상처는 모두 나았다.

보름 후 나는 신입 구역을 떠나 일반 구역으로 배치됐다. 일반 구역 첫날 감방에서 연공하다가 죄수 무리에게 심하게 구타당했고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혔다. 얼마 후 내가 정념을 내보낼 때 7~8명의 죄수가 나를 침대에서 바닥으로 끌어내려 심하게 때렸고 나는 부상을 입었다. 나는 단식하며 항의했다. 하지만 감옥에서는 경찰부터 죄수까지 모두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욱 심하게 나를 박해했다. 수련생이 내가 죄수에게 구타당한 경과를 적어 경찰에게 주었지만, 경찰은 이를 밀어내며 “먼저 너희 조장에게 줘서 단계별로 보고해”라며 트집을 잡았다. 그 후로는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무 소식도 없었다. 나중에 내가 있던 감방도 영문도 모른 채 해산됐다.

나는 감옥에서 ‘완고하게 전향을 거부하는’ 사람으로 지정돼 엄격한 관리를 받는 감방으로 이송되어 박해를 받았다. 1급 엄격한 관리를 받아 집에 편지를 쓰거나 통화하거나 가족과 면회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가족의 송금이나 먹을 것을 주문하는 것도 금지됐다. 감방은 몹시 추웠지만 나는 매일 연공했고, 가끔 너무 추워 잠을 잘 수 없을 때는 밤새도록 연공했다.

4. 각종 박해를 부정하다

감옥에 들어간 때부터 나는 감옥의 여러 박해를 부정하고 협조하지 않았다. 나는 시종일관 번호를 외치지 않았고, 나는 죄수가 아니기에 ‘죄(罪)’ 자가 적힌 옷을 입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하신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라는 말씀을 명심했다. 한번은 내가 감옥의 요구대로 화장실에 가지 않자 대법제자를 몹시 사악하게 박해하는 죄수 우두머리가 나를 저지하며, 사악하게도 우리 감방 사람 전원이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녀는 매일 대법제자를 박해했기에 나는 정념을 내보내 그녀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 그녀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즉시 담낭염이 발작해 허리도 펴지 못할 만큼 아파서 복도 전체가 울리도록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나중에 그녀는 내가 정념을 내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후로 나를 상관하지 않았다.

감옥은 내가 감방에서 연공하고 죄수들에게 연공을 가르친다는 것을 구실로 삼았다. 파룬궁 박해를 주관하는 부대장이 직접 감방으로 와서 감옥 구역에서 내게 형량을 늘릴 것이라고 위협했고, 내 앞에서 경찰에게 특별히 “전향하지 않으면 먹을 것을 주문 못하게 해!”라고 지시했다. 한번은 내가 감방에서 연공하다 파룬궁 박해를 주관하는 경찰 책임자에게 발각됐는데, 그녀는 여러 죄수에게 내 팔을 비틀고 서 있게 하는 체벌을 가하도록 지시했다. 머리가 몹시 어지러웠다. 감옥의 식사가 아주 형편없어 식사하기 매우 힘들었으며 몸은 쇠약해졌다. 당시 내 처지는 매우 어려웠고 계속 기침을 했다. 한번은 밤새도록 심하게 기침을 했는데 기침할 때마다 소변이 나왔다. 숨을 쉴 틈도 없이 기침이 이어져 고통이 한계에 달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것이 모두 가상이고 나를 어쩌지 못하며, 구세력의 교란이고 나에게는 사부님께서 계신다는 일념을 확고히 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연이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고, 이어서 수없이 반복해서 외우고 썼다. 다음 날 갑자기 기침이 멈췄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나를 생사의 갈림길에서 끌어내 주신 것이다.

5. 가족이 단계별로 고발하다

내가 감옥에서 가장 심하게 박해를 받고 있을 때, 석방된 한 수련생이 내 가족을 찾아와 내가 감옥에서 박해받는 상황을 알려주었다. 내가 납치된 날부터 가족과 수련생은 시종 구출과 박해 반대 활동을 해왔고, 가족은 정의로운 변호사도 선임했으며, 명혜망도 지속해서 내가 박해받는 소식을 보도했다. 하지만 감옥은 계속해서 가족에게 내 모든 소식을 제공하기를 거부했다.

수련생인 남편은 내가 감옥에 있는 상황을 알게 된 후, 즉시 감옥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밤낮으로 관련 법률을 찾아보고 많은 고발장 등 자료를 작성했다. 그리고 감옥과 성급 여러 부서에 단계별로 고발했지만, 성 기율검사위원회에서 전화로 한 번 문의해 온 것 외에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성 사법국이 이 일에 개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역시 아무 소식이 없었다. 가족은 면회 권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한 번의 면회와 편지를 쓸 기회도 포기하지 않았고, 많은 수련생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협력했다. 내가 면회 때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후 큰 격려를 받았다. 우리는 안팎으로 협력하며 함께 사악을 떨게 했고, 그 힘은 아주 컸다.

6.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운 후 신기하게 혜택을 받다

내가 사람을 구하는 효과도 더욱 좋아졌고, 많은 죄수가 삼퇴하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운 후 신기하게 혜택을 보는 일들이 나타났다.

당뇨 합병증을 앓는 한 죄수는 70세가 다 되었는데 감옥 구역에서 힘든 육체노동에 참여하게 하자 그녀는 몹시 괴로워하며 매우 수척해졌고 하루 종일 수심에 가득 찼다. 그녀는 내게 “너무 고통스럽고 버티지 못하겠어요. 온몸에 힘이 없고 온몸이 괴로워요”라고 말했다. 내가 그녀를 삼퇴시킨 후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진심으로 외우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외워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내가 몇 번이나 외웠냐고 묻자 20번이라고 해서 나는 “너무 적어요. 최소 100번은 외우고, 시간이 날 때마다 외우세요”라고 말했다. 3일째 되는 날 그녀는 기뻐하며 흥분하며 말했다. “다 나았어요! 고마워요! 이거 정말 너무 신기해요! 시간이 날 때마다 외웠더니 이제 하나도 괴롭지 않아요. 정말 고마워요!”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하려면 사부님께 감사드리라고 알려주었다.

자궁암을 앓는 한 죄수는 매일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고, 자궁에서 매일 피가 흐르고 안색이 창백하며 화장실을 자주 가서 전담 죄수 두 명이 그녀를 돌봤다. 내가 그녀를 삼퇴시킨 후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알려주자, 그녀는 피가 멈추고 안색이 좋아지며 활기를 띠었다. 내가 그녀에게 왜 이 아홉 글자를 외우는 것이 이토록 신기한지 알려주었는데, 파룬따파는 불법(佛法)으로 초월적이고 바른 에너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정말 좋다며 내게 빨리 적어달라고 했고 일반 구역으로 갈 때 몸에 지니겠다고 했다.

간질을 앓는 한 죄수는 병이 발작하면 곧바로 쓰러져 바닥에 뻣뻣하게 누운 채 인사불성이 되어 입에 거품을 물고 고통스럽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가 자주 발작하는 바람에 모두들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감방 담당 경찰이 그녀를 내 곁에 배정했고, 나는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다. 그녀는 아주 잘 받아들였고 매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는데, 발작 횟수가 뚜렷하게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거의 발작하지 않았다. 담당 경찰도 매우 기뻐했다.

우울증을 앓고 뇌를 다친 적이 있는 한 죄수는 종종 좀도둑질을 했는데, 남의 물건을 눈여겨보았다가 재빨리 훔쳐 갔다. 모두가 그녀를 매우 귀찮아했고, 그녀는 죄수들에게 여러 번 맞기도 했으며 그녀의 물건도 다른 사람들이 버렸다. 경찰은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 했다. 그녀는 죽어도 가지 않으려 했고 날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감방 담당 경찰이 그녀를 데려가려 하자 그녀는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으며,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도둑질을 하지 않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게 되었으며 마음이 밝아졌다. 그녀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종종 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나를 칭찬했다. 내가 그곳을 떠나려 할 때 그녀는 나를 꼭 껴안고 목 놓아 울며 “아주머니, 가시면 전 어떡해요?”라고 말했다.

간부를 지낸 적이 있는 한 죄수는 10년 넘는 형을 선고받았는데, 내게 사부님의 법 한 권을 필사해달라고 해서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녀는 일반 구역으로 배치될 때 읽을 것이며, 집에 돌아가면 대법을 수련하겠다고 말했다.

7. 최고검찰원의 회신과 조사

남편은 나를 위해 고발했다는 이유로 경찰의 협박을 받았고, 경찰은 친척들을 수소문해 남편의 거처를 찾았으며 남편의 사회보험금 지급도 중단시켰다. 하지만 가족은 물러서지 않고 상급의 더 많은 사람과 부서에 계속 고발해 중앙급인 최고검찰원, 최고법원,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전국부녀연합회, 국무원, 감찰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등 많은 부서에 고발했다. 가족이 계속 고발하다가 어느 날 최고검찰원으로부터 성 검찰원이 입건 처리해야 한다는 회신을 받았다. 중국에서 가장 사악한 감옥 중 하나인 이곳에서 박해가 시작된 지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검찰원이 대법제자가 박해받은 사건에 대해 형사 입건하고 조사한 것이었다.

그래서 박해를 당했을 때 성급에만 고발해서는 안 되며, 같은 성에서는 서로 비호하므로 지속해서 중앙급에 상황을 알리고 호소하며 고발해야 한다. 또한 폭넓게 여러 부서에 알려야 한다. 동시에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 사건도 법 앞에 평등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많은 부서에서 다르게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되고,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도 법적 추궁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반드시 대법제자가 박해받는다고 말할 필요는 없으며, 동시에 이렇게 하면 민감하다는 이유로 곧바로 접수를 거부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 후 4개월 동안 검찰원은 며칠에 한 번씩 감옥 구역으로 와서 나를 심문 조사했다. 내 환경도 개선돼 엄격한 관리를 받는 감방에서 벗어났다. 감옥에서 전담으로 ‘전향’ 업무를 맡은 부대장이 나를 찾아와 애원하며 “그냥 스스로 다쳤다고 말해줄 수 있어? 네가 죄수에게 맞아서 다쳤다고 하면 내 월급이 깎여”라고 말했다. 나는 “제가 분명히 그녀들에게 맞아서 다쳤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돈을 내어 내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찰들은 말투가 일제히 아주 부드러워지면서 나에게 가족에게 편지를 쓸 수 있고 통화도 할 수 있으며, 가족이 돈을 보낼 수 있고 먹을 것도 주문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내게 남편이 사방에 우리를 고발하고 있으니 빨리 가족에게 더 이상 고발하지 말라고 설득하라고 말했다.

반년 후 검찰원이 감옥으로 와서 내게 말했다. “당신이 알린 상황에 따르면 당신을 때린 사람이 입힌 상해는 이미 형을 선고받기에 충분하지만, 그녀가 지금 도망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없고(얼마 후 그 사람은 무슨 사건인지 모르지만 징역 수 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신을 위해 증인이 되어줄 사람도 없어서(나를 위해 증인이 되어줄 수 있던 그 수련생은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고, 다른 죄수들은 감히 나를 위해 증언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 검찰원이 그들을 기소할 수 없습니다.” 검찰원은 결국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관련 경찰과 폭행한 죄수를 형사 처리하지 않았지만, 가족에게 증인을 찾으면 계속 기소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감옥, 경찰, 그리고 나쁜 짓을 돕는 죄수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가족은 매달 편지를 써서 나를 격려했고, 나는 편지를 읽고 가족을 면회할 때마다 큰 감동을 받아 더욱 용기를 얻고 더욱 굳건해졌다. 감옥 구역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나는 번호를 외치지 않고 죄수복을 입지 않았으며, 대법 내용을 쓴 편지도 우편으로 보낼 수 있었다. 신체검사에 참여하지 않고 감방 수색에 협력하지 않았으며, 감옥에서 감방 수색을 올 때마다 나는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고 그러면 경찰은 떠났다.

그 후 나는 감옥 구역에 이른바 ‘감시인’과 이른바 ‘5인 연대 연좌제’를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대는 내 요구에 동의했다. 철회된 후 감시인은 아주 기뻐하며 “당신이 이렇게 하니 참 좋네요. 우리도 해방됐어요!”라고 말했다. 나와 수련생 주변 환경은 뚜렷하게 개선돼 우리가 있는 복도에 여러 감방 대법제자의 감시인과 5인 연대 연좌제가 모두 취소됐고, 화장실에 갈 때도 감시인이 따라오지 않았다. 일부 경찰과 죄수들은 대법제자의 법공부, 법 필사, 연공에 대해 한쪽 눈을 감아주었고, 감방 수색 때 대법 자료를 봐도 몰수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시간이 나면 수련생을 위해 대법을 필사했다. 한번은 한 경찰이 내가 베껴 쓴 법을 보고 집어 들고 보더니 “글씨를 참 예쁘게 쓰네!”라고 말하고는 내가 쓴 법을 돌려주었다.

내가 출소할 때 당직을 서는 젊은 경찰들이 나를 따라오며 “협조 좀 해주세요, 출소 절차를 밟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내가 “뭘 협조해요? 난 안 나가요!”라고 말하고는 큰 걸음으로 감방으로 돌아갔다. 죄수 조장이 급히 “저 어린 경찰들은 새로 와서 아무것도 몰라. 중대장이 당신과 함께 나갈 거야”라고 말했다. 중대장이 죄수 무리에게 나를 따라가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왜 따라오느냐며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외쳤다. 중대장이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너희들 다 돌아가!”라고 말하자 죄수들은 모두 물러갔다. 중대장이 나에게 “봐요, 내 몸에 아무것도 안 달았어요(법 집행 카메라를 뜻함)”라고 말했다. 중대장은 직접 나를 감옥 정문 밖으로 배웅했고 중문을 나설 때 경비 경찰에게 그녀는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나의 출소 수속이 모두 면제됐는데, 보안 검색을 하지 않고 몸수색도 없었으며 죄수복을 입으라는 요구도 없었고 죄수가 따라오지도 않은 채 곧바로 감옥 정문을 걸어 나갔다.

감옥 정문에 이르러 중대장이 내게 말했다. “다시는 들어오지 마세요! 우리는 당신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감옥 정문을 걸어 나갔다. 나는 다시 남편과 함께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하는 거대한 흐름 속으로 들어섰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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