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 대법제자 정련(淨蓮)
[명혜망] 저는 농촌 사람으로 올해 59세이며 2004년에 법을 얻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련한 지 벌써 20여 년이 됐습니다. 이 20년 동안 사부님의 보호와 인도에 감사드리며, 마음을 닦고 고비를 넘으며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고 있습니다.
저는 박해가 가장 심각할 때 대법 수련의 문에 들어설 수 있었다는 것을 몹시 소중하게 느낍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일깨워 주실 때마다 아주 빨리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습니다. 선생님 한 분이 학생 무리를 데리고 작문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작문의 주제는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칠판에 간단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결 곡선으로 물을 나타냈고, 그 위에는 작은 두 손이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학생들 중에서 글을 가장 잘 썼고 84점을 받았습니다. 꿈에서 깬 후 저는 즉시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게 빨리 사람을 구하러 가라고 일깨워 주신 것이 아닐까? 중생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내게 구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구나.’ 그 이후부터 제 수련 과정에서 사람을 구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라고 하신 것은, 바로 대면해서 진상을 명백히 알리고 중생에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해주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아주 기뻤고 난처하거나 두려운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며, 단번에 아주 순조롭고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마치 제 생명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온 것 같았고 마음의 끈을 단단히 조이며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사부님께서 저를 가지(加持)해 주시고 끊임없이 지혜를 주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1. 약국에서 사람을 구하다
제 친구는 약국을 운영합니다. 2007년에 친구는 친정이 있는 마을에 분점을 낼 준비를 했습니다. 마침 제가 일이 없었는데, 저를 믿었던 친구가 저를 찾아와 점원으로 일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이곳에서 자랐기에 이곳 사람들을 아주 잘 압니다. 일찍이 이곳에서 옷 가게를 한 적이 있어 오가는 사람들을 모두 알고 지냈기에,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밤에는 친정에서 잤습니다. 한밤중이 되면 저는 밖으로 나가 진상 표어를 붙이고 집집마다 진상 자료와 CD를 배포했습니다. 정말 하늘이 내린 좋은 기회로 두 가지 일을 모두 할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 담소를 나누며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해주기 좋았습니다. 모두 고향 사람들이라 아주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당시에는 진상 지폐가 없었기에 저는 지폐에 짧은 글귀를 손으로 썼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반년을 일했는데, 이것 역시 사부님께서 저를 단련시키기 위해 특별히 안배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로 인해 법을 얻어 수련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아버지는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셨고 법공부 팀을 만드셨습니다. 친정의 커다란 철문에는 한 줄기 우담바라꽃이 길게 피어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고 40장을 인화해 제가 아는 모든 수련생과 속인에게 나눠주었고, 속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2. 행운의 작은 생명
2009년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일 때, 남편과 저는 1년 동안 뒷바라지를 할 준비를 하며 학교 근처에 집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제가 뜻밖에 임신한 것을 알게 되어 몹시 고뇌했습니다. 당시에는 산아제한이 아주 엄격했고, 남편이 직장이 있는 국가 공무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저는 이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는데, 왜냐하면 저는 수련인이므로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살생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도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남의 눈에 띌까 두려워 고향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리고 스티커를 붙이고 빨래하고 밥을 하며 큰아이를 돌보는 등, 해야 할 일을 계속했습니다. 어차피 낯선 곳이라 저를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임신 6개월이 됐을 때, 모자보건소에 가서 검사(필수 검사)를 받았는데, 아이가 비정상이며 기형일 가능성이 크고 신장과 항문에 모두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후 또 6곳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모두 아이에게 이상이 있고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모두 전문의의 감정을 받으라며 선양 의과대학을 지정해 주어 남편과 함께 갔습니다. 뜻밖에도 한 가지가 더 늘어났는데, 소아 뇌수종, 즉 지적 장애가 있었습니다. 의사는 과학적으로 아직 치료할 수 없다며 선천성 질환이기 때문에 아이를 지울 것을 권했습니다.
이런 충격을 마주하고 남편과 저는 단번에 멍해졌습니다. 남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편이 아들을 몹시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에게는 사부님이 계시지 않은가? 사부님께서 내 아이를 보살펴 주실 것이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못 하시는 일이 없으시다! 내가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저는 아이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을 끌어당기며 말했습니다. “가요, 집에 가요. 우리 다시는 병원에 가서 검사받지 말아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있으니 제 마음은 마치 하늘을 향해 창문이 열린 것 같았고, 하늘을 바라보니 아주 새파랗고 높고 밝았습니다.
임신 기간 내내 저는 엽산도 보충하지 않고 칼슘제도 먹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제게 빈혈이니 철분을 보충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저는 철분도 보충하지 않았고 그저 정상적으로 밥을 먹으며 아무것도 필요 없이 정상적으로 세 가지 일을 했습니다. 출산 예정일이 다 되어 양수 상태를 보러 초음파 검사를 하러 갔을 때, 또 의사에게 호통을 들었습니다. “아이가 온통 문제투성이인데 그래도 낳을 건가요? 바보인가요, 아니면 미친 건가요? 100만 위안이 있어도 치료할 수 없어요! 낳으면 당신은 목을 매달게 될 겁니다! 빨리 지우고 살아서 나오게 하지 마세요!” 저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내 출산 예정일이 되어 저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양수가 먼저 터졌으나 골반이 열리지 않아 제왕절개를 했습니다. 아들이었는데 몸무게가 4.05kg이었고 모든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남편이었습니다. 속담에 좋은 일을 만나면 마음이 밝아진다고 하더니 남편은 단번에 몇 살은 젊어진 것 같았고 얼굴에는 기쁨과 환희가 가득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지 만 한 달이 됐을 때, 딸이 대학 입학시험을 쳤습니다. 남편은 한밤중에 저와 아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집에 계시던 시어머니도 대법제자여서 저희 모자를 돌봐주셨습니다. 저는 3개월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나중에 신고를 당했습니다. 농장장이 제 남편을 불러 심문을 했고 남편은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이후 남편은 10만 위안의 현금 벌금을 물게 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공직에서 해고될 처지가 됐습니다. 온 가족이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딸을 대학에 보내야 하는데 어디에 그렇게 많은 돈이 있겠습니까? 정말 짙은 먹구름이 머리 위를 짓누르는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사부님의 신묘한 안배로 숲을 하나 팔아 10만 위안을 마련해 벌금을 냈고, 남편의 일자리도 지켰으며 아들도 호적에 올렸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아들의 아명(兒名)을 ‘샤오스완(小十萬-작은 10만)’이라고 지었습니다.
막 이 고비를 넘기자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4개월이 됐을 때 갑자기 열이 나더니 소변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랫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고 아이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다급해서 안절부절못하며 몹시 놀랐습니다. 이틀을 버티다 안 되겠다 싶어 병원에 갔더니 검사 후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의사가 아이에게 알레르기 반응 검사 주사를 세 대나 연속으로 놓았는데, 모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약을 쓸 수 없었습니다. 만 분의 일 확률의 체질이라 모든 약물에 알레르기가 일어나서 입원시킬 수도 없고 치료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안고 사부님 법상(法像) 앞으로 갔는데, 당시 제 머릿속에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 저녁에 아들을 따뜻한 물로 씻겼더니 아이가 바로 나았습니다. 다음 날 저희 집에 경사가 있었는데, 딸의 대학 진학과 아들의 백일잔치가 겹친 겹경사였습니다. 제가 아이를 안고 나가 친척과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는데, 아들의 작은 얼굴은 불그스레했고 조금도 여위지 않았습니다. 경사를 원만하게 치렀습니다.
남편이 대학에 진학하는 딸을 데려다주러 간 사이, 저는 집에서 아들을 돌보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아이에게 해독을 해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이가 누는 소변에서 악취가 나고 탁했는데 매번 소변을 보기 전, 굵은 전선 굵기만 하고 길이가 30cm가 넘는 흰 벌레 모양의 하얀 고름 같은 것이 먼저 배출됐습니다. 저는 신장 안의 고름이 배출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석 달을 배출하고 나니 소변도 맑아졌고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음낭이 썩은 감처럼 붉고 커다랗게 부어올라 4개월 동안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는 허벅지 안쪽에 붉은 반점이 돋아나 몹시 가려워했고 소장 탈장도 있었습니다. 총 1년 1개월 동안 배출하더니 전부 나았습니다. 이 기간에 저는 아이를 돌보면서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제 아들을 보살펴 주시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족들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 저는 아이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어주었고, 아이가 말을 할 줄 알게 되자 스스로 외우게 했는데 아이는 무척 순종적이었습니다. 5살 때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아이에게 해독을 해주셨고, 저희는 모두 평온하게 고비를 넘겼습니다.
아이는 무척 총명해서 4살 남짓 됐을 때 ‘논어(論語)’를 외웠고, 7살 때는 ‘홍음(洪吟)’을 외우고 베껴 썼습니다. 가부좌를 한 모습이 아주 귀여워 마치 어린 대법제자 같았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저는 더욱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게 됐습니다.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면 제 아들 이야기를 했는데, 진상을 듣는 사람마다 거의 다 삼퇴를 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진상을 알렸는데, 이야기할수록 더 이야기하고 싶어졌고 더 잘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저는 아들이 제 수련을 돕기 위해 왔고, 또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하고 중생구도를 하기 위해 왔으며, 단지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 산촌에서 사람을 구하다
저희 향(鄕)에는 수십 개의 마을이 깊은 산속에 흩어져 있습니다. 당시 저희 지역에는 수련생이 적었고 제가 가장 젊었는데, 진상을 알릴 때 늘 혼자였고 짝이 없었습니다. 저는 구두닦이 천을 조금 떼어와서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하나하나 돌았습니다. 구두닦이 천을 판다는 명목으로 집집마다 들어갔는데 주된 목적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5위안에 두 봉지를 주고 작은 걸레 하나를 덤으로 주니 보통 사람들은 모두 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매일 한 마을을 돌았습니다. 농촌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선량했고, 저는 젊은 여자라 눈에 띄지도 않았기에 이렇게 다니는 것이 무척 평온했습니다. 비록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가야 해서 무척 힘들었고 매일 오후에 돌아올 때면 거센 맞바람이 불어 페달을 밟기도 힘들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어서 매우 흐뭇하고 기뻤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번은 제가 어느 마을에 가서 한 언니를 만났습니다. 언니는 10위안어치 구두닦이 천을 사고 제게 물었습니다. “동생, 이렇게 싸게 파는데 하루에 얼마나 벌어?” 제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적게 벌어도 마작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이건 정당한 일이니까요.” 제가 언니에게 제 아들 이야기를 해주고 대법 진상을 알려주며 삼퇴하면 평안을 지킨다고 알려주었을 때였습니다. 언니는 단번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했습니다. “나는 동생이 구두닦이 천을 팔러 온 게 아니란 걸 알아. 동생이 뭘 하러 왔는지 알아. 나는 당원이니 내 삼퇴를 좀 해줘!” 얼마나 총명하고 오성이 좋은 중생입니까. 그들은 모두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14년 무렵이 되자, 저는 점차 나이 드신 아주머니 수련생들을 데리고 함께 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동행이 생기자 저는 더욱 물 만난 고기처럼 됐고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추니 사람을 구하는 효과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겨울에 저희 수련생 4명은 수련생의 택시 한 대를 대절했습니다. 매일 아침 수련생이 저희를 데려다주고 저녁에 데리러 왔습니다. 한 마을에 도착하면 두 명씩 한 조가 돼 집집마다 새해 그림과 달력을 나눠주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삼퇴를 권했습니다.
경험이 부족해 제때 장소를 바꾸지 않고 계곡을 따라 마을에서 마을로 계속 다니다 보니 톄링시 경계까지 가게 됐습니다. 이후 악인에게 신고당해 톄링시 구치소로 납치돼 10일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습니다. 당시 아주머니 세 분은 모두 ‘7·20’ 이전에 법을 얻었고 모두 중공에게 박해를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만 나이가 가장 어리고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저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 10일 동안 저희는 연공을 하고 진상을 알리며 구해야 할 사람들을 모두 구했습니다. 동시에 저희는 어떤 집착심이 이 일을 불러왔는지 모두 자신을 안으로 찾았습니다. 사부님의 가지와 함께 정념을 보내준 수련생들의 도움 덕분에 10일 후, 저희 네 명은 동시에 정념으로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4. 대형 장터에서 사람을 구하다
이후 10여 년 동안 저는 여전히 홀로 다니며 인근의 대형 장터에 가서 사람을 구했습니다. 매주 최소 2~3번은 나갔습니다. 대형 장터에는 사람이 많고 인연 있는 사람도 많아서 매번 적지 않은 사람들을 삼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장터를 한 바퀴 돌고 나니 26명이 삼퇴했던 적이 기억납니다. 끝없이 오가는 빽빽한 인파를 바라보며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자가 무능하여 언제쯤에야 이 사람들을 다 구해낼 수 있을까요?’
또 한번은 한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제가 파룬궁을 언급하자마자 아주머니는 흉악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죽어 마땅해, 모두 총살시켜야 해!” 그러더니 손을 치켜들고 제 얼굴을 때리려 했습니다. 제가 팔을 들어 아주머니의 손을 막았는데 힘이 무척 세서 맞은 팔이 이틀 동안 아팠습니다. 저는 발길을 돌려 걸어가며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불쌍한 아주머니가 중공의 거짓말에 속았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이러지 않았을 텐데. 훗날 다른 수련생을 만나 진상을 명백히 알게 되기를 바란다.’
저는 외출할 때 늘 택시를 타는데 진상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택시 기사 10명 중 9명은 삼퇴를 하는데 차를 타는 시간이 길고 일대일이라 명백히 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차에 타자마자 먼저 정념을 내보내 사부님의 가지를 청하고, 배후에서 가로막는 사악한 영체를 제거합니다. 그런 다음 제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기사에게 이야기하면 정말 말하는 족족 삼퇴했습니다. 한때 저는 매일 택시를 타고 수련생의 집에 법공부를 하러 갔는데 오갈 때 모두 택시를 타서, 어떤 기사에게는 이미 여러 번 진상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진상을 알린 후에는 작은 연꽃 차량 장식을 선물로 주며 기사가 걸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또 어느 날,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다 한 줄로 늘어선 택시들이 모두 작은 연꽃 차량 장식을 일제히 달고 있는 것을 보고 저는 정말 무척 기뻤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연 있는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가급적 낯선 기사의 택시를 탔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시내의 작은 진(鎭) 지역으로 가서 아이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해 아들은 이미 15살이었고 키가 176cm나 되는 듬직한 체격으로 중학교 2학년이 됐습니다. 저는 아이를 뒷바라지하면서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길은 가장 좋은 것입니다. 재작년에 A 수련생을 만났는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희 둘은 함께 법공부를 하고 함께 밖으로 나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호흡을 맞추는 힘을 느꼈습니다. A는 비록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고 나서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저를 위해 정념을 내보내 주고 명단을 기록해 주었습니다. 두 사람의 정념의 장(場)이 저 혼자일 때보다 몇 배나 더 강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아파트 단지와 작은 공원, 대형 장터를 돌아다니면 삼퇴하는 사람의 수가 몇 배로 늘어났습니다. 두 시간이면 20~30명을 삼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A와 교류했습니다. “우리가 매번 사람을 구하러 나가는 것은 마치 완전무장한 대장군이 구세력과 사람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법기(法器)는 바로 정념과 자비입니다. 출발 전에 반드시 정념을 잘 내보내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고 인연 있는 사람이 와서 구원받게 안배해 주십사 부탁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매번 많은 사람을 구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는 것 외에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사부님의 가르침입니다. 모든 것은 세 가지 일을 하는 가운데 완수되고 있습니다. 지금 정법은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고 정사(正邪) 대전이 최후의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게 아직 휴대폰 숏폼 시청, 온라인 쇼핑, 공산당 당문화, 환희심, 질투심 등 수련해 버리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 남아 있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진수(眞修) 제자로서 마지막 남은 제한된 시간을 잘 활용해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일체의 집착을 수련해 버릴 것이며,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수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8/5111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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