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전염병 사태 기간에 남편이 손자를 데리고 코로나 검사를 하러 다녀왔는데, 돌아온 후 손자는 침대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평소 자주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했기에, 나는 손자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라고 외우라고 했다. 2분이 지나자 손자는 다 나아 정상인과 똑같아졌다. 정말이지 너무나 신기했다.
나는 1996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다. 그때 남편은 몸이 좋지 않았는데, 남편 친구 한 명이 몇 번 우리집에 오다가 발길을 끊었다. 남편은 “그 친구만 우리집에 오면 나는 왜 덜 괴로웠을까?”라고 말하고는 그 친구 집으로 찾아갔다. 친구는 어느 도시에서 장사하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배운다고 했다. 남편은 그를 따라 연공을 배웠다. 나는 파룬궁 세 글자를 듣자마자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은 “당신도 같이 배웁시다!”라고 말했다. 그때는 법공부를 별로 하지 않았고 그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한다는 것만 알았다. 남편은 연공을 한 후 딴 사람처럼 변했고 몸도 건강해졌다. 1997년 말이 되어서야 같은 마을에도 수련생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수련생 집에 법공부 팀을 만들었다. 우리는 매일 단체로 법공부를 하고 단체로 연공했으며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았다. 그제야 비로소 대법이 이렇게 소중한 줄 알았다. 나는 집에 돌아올 때마다 시간이 나면 법을 외우고 법공부를 했다. ‘홍음(洪吟)’, ‘정진요지(精進要旨)’, ‘전법륜(轉法輪)’을 외웠으며, 몇 년 전 나는 마침내 ‘전법륜’을 전부 외우고 수련생들과 함께 법을 전하러 다녔다.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다
1999년 7월 사악이 미친 듯이 대법을 박해하자,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이렇게 바르시고 대법이 이렇게 좋은데 사악의 선전은 모두 유언비어다’라고 생각했다. 나와 남편은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했다. 남편은 무사히 집에 돌아갔지만 나는 중간에 가로막혔다. 그날은 비가 내렸고 나와 다른 수련생들은 바오딩의 한 곳으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전국 각지의 대법제자들이 갇혀 있었는데 남녀노소가 다 있었다. 이후 나는 현지 공안국에 인계돼 현지 파출소에 갇혔고, 100위안을 갈취당하고 나서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해 10월 나는 또 한번 베이징에 갔다. 남편은 “집에 아이 둘도 있고 노인도 있으니 당신도 잘 생각해봐요. 나는 집에 있을게요”라고 말했다. 천안문 앞에서 한 사복 경찰이 내게 사부님을 욕하라고 했다. 나는 “당신은 인민 경찰로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선인’을 수련하라고 하셨고 일할 때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나중에 생각하라고 하셨으며 우리에게 건강한 신체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바르신 사부님과 이렇게 바른 대법을 장쩌민은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부에 실제 상황을 알리는 것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들은 나를 차에 억지로 태워 둥청구 구치소로 보냈고, 그곳에서 나를 5일 동안 불법으로 가두고 박해했다. 이후 현지 공안국이 나를 데려가 현지 구치소에 넘겼고 나는 한 달 반 동안 불법 감금됐다. 이후 시아버지 병세가 위독해지자 남편은 “이후 베이징에 가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게 하면 집에 갈 수 있다”라는 공안국의 거짓말에 속았다. 남편은 또 구치소에 450위안을 냈고 공안국에 2000위안을 냈으며 파출소에 3000위안을 냈다고 말했다. 내가 집에 돌아온 날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1년 반 뒤 시어머니도 돌아가셨다. 장쩌민이 일으킨 이 박해가 두 노인을 일찍 돌아가시게 한 것이다. 이후 모 파출소에서 자주 우리집에 와서 괴롭혔다.
2000년 11월 말, 모 파출소는 또 우리 향(鄕)의 대법제자들을 불법적으로 파출소로 잡아갔고 1인당 2500위안씩 갈취하고 나서야 집에 보내주었다. 다른 수련생들은 모두 돈을 내고 집에 돌아갔지만, 마지막에는 나 혼자만 남게 됐다. 음력 12월 15일이 되어서야 나를 집에 보내주었다. 집에 돌아오자 남편은 “돈을 내면 안 돼요. 이번에 돈을 내면 다음에 또 당신을 찾을 거예요. 농민이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데”라고 말했다. 당시 남편은 정념이 아주 강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남편은 두려운 마음에 수련을 그만두었다. 한번은 사악이 남편을 파출소로 잡아가 라디에이터에 수갑을 채워놓았는데, 그 뒤로 남편은 내 수련을 교란했다. 몇 년 전에는 때때로 1년에 여러 번 잡혀갔고 한 번 갇히면 열흘이나 보름씩이었다. 나는 남편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저 박해받을까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파출소 경찰만 오면 그는 정의감이 없어졌다. 그 당시 진상 자료가 없어서 나는 직접 손으로 써서 배포했다. 전봇대에 분필이나 붉은 페인트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파룬따파는 결백하다. 우리 사부님은 결백하시다. 세계는 진선인이 필요하다……’라고 썼다. 당시는 아직 진상 지폐가 없었기에 나는 돈에 진상 문구를 써서 사용했다. 근래 몇 년간 내가 쓴 돈은 기본적으로 모두 진상 지폐였다.
몇 년 전 나는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를 했는데, 돌아오면 남편이 자주 문을 잠그고 나를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나는 지난 몇 년간의 박해가 그에게 가져다준 압박감을 알고 있었다. 나는 화내지 않고 여느 때처럼 그를 선하게 대했으며, 다음 날에도 계속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원망심과 질투심을 닦아버리다
몇 년 전, 나는 수련생의 도움으로 ‘작은 꽃’(진상 자료 제작소) 한 송이를 피웠다. 나는 진상 자료 표지를 인쇄하고 다른 수련생은 내지를 인쇄했다. 겨울만 되면 수련생의 기계가 자주 막혀서 내가 직접 만들었는데, 매일 40~50권씩 만들 수 있었고 때로는 두 대의 기계를 동시에 돌리기도 했다. 나와 같은 마을의 다른 수련생은 자료를 만들어 수련생들이 사람을 구하는 데 공급했다. 우리 소모품은 이웃 마을 수련생 집에 보관돼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수련생이 내게 소모품을 분산시키라고 했고 같은 마을 수련생은 한 상자만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때는 사악의 박해로 인한 압박이 있었지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좋은 사람 구하는 자료를 우리집에 두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나는 삼륜차를 몰고 가 한 차 가득 싣고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우리집에는 빈방이 두 칸 있어서 나는 한 무더기를 내려놓았다. 나는 이 많은 물건을 한곳에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소모품을 여러 곳에 분산시켜 놓았다. 내가 막 진상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남편이 몰랐는데, 나중에 발견하고는 다투면서 내게 치우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좋은 사람 구하는 법기를 우리집에 두고 수련생들이 사람 구하는 것을 돕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 치우지 않고 해야 할 일을 계속했다. 시간이 흐르자 남편도 묵인했다.
이후 수련생이 진상 지폐를 인쇄하는 기계가 한 대 있다고 알려주어 내가 그것을 실어 왔다. 기계는 어떨 때는 아주 잘 작동했지만 어떨 때는 인쇄 용지가 내려가지 않아서 나는 수련생에게 보내 수리하게 했다. 가져온 후에도 여전히 문제가 생겨 용지가 내려가지 않았고 다시 보내 수리했지만 돌아오면 여전히 같은 문제였다. 나는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이상 나는 계속해나가야 하고 남들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안으로 찾아 프린터와 소통했다. ‘우리는 모두 법을 위해 온 생명이다.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법 속에서 바로잡을 테니 중생이 구원받는 것을 교란해서는 안 된다.’ 새 지폐가 적고 대부분 헌 지폐라서 수량도 얼마 없었다. 이후 나는 같은 마을에서 옷을 파는 수련생이 생각나서 그에게 잔돈을 모아두면 내가 가서 바꾸겠다고 말했다. 어떨 때는 1000여 위안을 바꿀 수 있었고 어떨 때는 몇백 위안을 바꿨다. 나는 돈을 평평하게 편 후 잘 인쇄해서 수련생과 교환했다.
지금 남편은 변했다. 예전에는 내가 자료를 만들 때면 늘 내게 일거리를 떠맡겼고 내가 자료를 만드는 것을 보기만 하면 불쾌해하며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네”라고 말했다. 지금 남편은 내게 일을 시키지 않고 어떨 때는 기계를 켜지 않은 것을 보면 내게 “왜 안 해?”라고 묻기도 한다. 변하긴 했지만 아직 진정으로 깨어나 법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기에 나는 법 속에서 제고해 길 잃은 남편을 일깨워야 한다. 남편은 평소 자주 “파룬궁이 나를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더 살게 해줬어”라고 말한다.
몇 년 전 남동생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고 작년에 남동생이 재혼했는데 남편은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다음에 당신 집안 누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도 안 갈 거야’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은 공산당 당문화(黨文化)적인 요소가 아닌가? 나는 그것을 원치 않기에 정념을 발해 제거하고 수련인의 기준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법공부 팀에서 한 수련생이 내가 작은 대련(對聯)을 남겨두지 않았다고 불쾌해했다. 큰 대련은 모두 그녀들에게 갖다주었다. 주간지는 평소 대부분 그녀가 먼저 보고 다 본 뒤 그녀의 어머니(수련생)에게 가져다주었다. 요즘 그녀가 법공부 팀에 오지 않았기에 나는 인쇄를 마친 후 그녀의 어머니에게 가져다주었는데, 그녀는 또 불쾌해하며 “당신은 그렇게 바빠요? 주간지 가져다줄 시간도 없나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좀 기분이 나빴다. 모두를 위해 그렇게 많이 헌신했는데 오히려 나를 질책하다니 말이다. 내가 그 자리에서 두어 마디 해명하자 그녀는 “해명할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은 지적받기 싫어하는 마음이 아닌가? 해명하는 것은 바로 자아에 집착하며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인데 수련생이 내 심성을 제고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내가 헌신하는 것은 마땅한 책임이니 나는 그녀에게 감사해야 했다.
우리 마을에 한 수련생이 있는데 가정환경이 매우 좋다. 그녀는 매일 집에서 법공부만 할 뿐 밖으로 나가 사람을 구하지 않고 밭농사도 그녀가 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녀 남편이 집안일까지 도와주었다. 나는 속으로 ‘나는 이렇게 바쁜데 그녀는 진상을 알리러 가지도 않고 사람 구하는 일도 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것은 질투심이 아닌가! 나는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찾으며 수련생을 선하게 대해야 했다. 사부님께서는 ‘각성하라(驚醒)’라는 글에서 “누구에게든 慈悲(츠뻬이)하게 할 수 있고, 누구에게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이것은 정말로 일반인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특히 무슨 일을 하든 모두 중생에게 慈悲(츠뻬이)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어렵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가끔 그녀를 찾아가 함께 협력해 사람을 구하러 가기도 했다.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제게 이렇게 좋은 수련 환경을 주셔서 제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무릎 꿇고 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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