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몇 달 전 반년 넘게 연락이 없던 D 수련생이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답장을 보낼 때 갑자기 백신 프로그램이 경보를 울렸고 화면을 열어보니 빨간색으로 ‘위험’이라는 알림이 떴다. 나는 즉시 경각심을 가졌고 이것이 사부님의 일깨움일 수 있다고 의식했다.
왜냐하면 몇 년 전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겨울 A의 기기가 고장 났다. 이 기기는 자주 수리했고 프린트 헤드도 여러 번 교체했는데 계속 문제가 있어서 같은 법공부 팀의 B 수련생이 정 안 되면 좋은 기기를 새로 사자고 했다. A가 “내 방이 너무 작아서 아예 놓을 곳이 없는데 어떡해요?”라고 하자 B가 말했다. “우리집은 넓으니 기기를 사 오면 우리집에 둬요.” 그래서 다른 수련생에게 기기 구매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중고 HP 기기를 샀는데 나중에 중고는 미덥지 않고 새 기기여야 마음이 놓인다고 생각했다. 부탁받은 사람은 소식을 듣고 즉시 새 엡손 기기를 샀다. 그 낡은 기기는 작은 고장이라 금방 수리됐고 새로 산 두 대는 이미 돈을 지불해 환불할 수 없었다. 이렇게 단숨에 기기 한 대가 세 대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때 B가 다시 마음을 바꿔 말했다. “우리집은 법공부 장소라서 기기를 둘 수 없어요.” A는 그 말을 듣고 즉시 큰 압박감을 느꼈다. 만약 세 대의 기기를 동시에 집에 두면 아예 놓을 공간도 없고 안전상의 위험도 매우 컸기 때문이다. 비록 함께 법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이 일이 갑자기 바뀐 후 두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교류나 소통도 없이 마음속에 억누르며 꽁해 있었다. 설 전에 나는 A를 만났는데 그녀는 이 일을 말하며 반복해서 투덜거렸다. “왜 또 마음을 바꾼 거지!” 분명 그 안에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B와 친하지 않아 무슨 말을 하거나 끼어들기 어려웠고 그녀들 사이의 간격을 묵인했다.
설을 쇠고 난 2월 어느 날, 나는 불길한 꿈을 꾸었다. 사악한 직원들이 A의 거주지에 온 꿈이었다. 나는 뭔가 잘못됐음을 의식하고 바로 A를 찾아가 이 꿈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 두 대의 기기는 일단 포기하고 B와 함께 나가 중생구도를 할 때 반드시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A와 교류하면서 두 달여가 지났음에도 그녀가 여전히 이 일에 대해 마음에 두고 분개하며 불평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당시에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먼저 마음을 가라앉혀 법공부를 하며 자신에게 도대체 어떤 누락이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상태가 올바르지 않으면 응당 조정해야 했다.)
5~6일이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그녀들과 같은 법공부 팀인 C 수련생과 연락했다. 메시지를 쓰는 과정에서 갑자기 백신 프로그램이 경보를 울리며 빨간색으로 ‘위험’이라고 알리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 즉시 C에게 A와 B에게 당분간 진상을 알리러 가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A의 집에 갔는데 그녀의 아들이 어제 A와 B가 진상을 알리다 함께 납치됐다고 알려주었다. (아마 악인들은 이미 2주 동안 모의했을 것이다.) 사악은 먼저 B의 집을 가택수색해 예전 자료를 많이 찾아냈다. B의 가족이 전화로 A의 가족에게 알려주었고 사악이 도착하기 전에 즉시 기기를 옮겼다. 사악과 간발의 차이였기에 사악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A는 한 달 동안 갇혀 있다가 나왔고 B는 반년 정도 갇혀 있다가 병업(病業) 고비 때문에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으로 풀려났다. 일이 발생하고 나서야 그녀들의 간격이 사악이 박해하는 가장 큰 구실이었음을 의식했다. 사실 그녀들 사이에 문제가 생겨 해결할 수 없었다면 다른 수련생들과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무작정 외골수로 빠져 서로 원망하고 오기를 부리는 것은 모두 수련의 큰 금기다. 그 두 대의 기기는 나중에 다른 수련생들의 협의하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당시에 하늘이 무너질 듯이 커 보였던 일도 아주 잘 해결되지 않았는가? 왜 굳이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야 한단 말인가?
앞의 글로 돌아가서, 내가 다시 한번 백신 프로그램에 빨간색으로 ‘위험’이라는 경보가 뜨는 것을 보았을 때 반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D가 컴퓨터를 E 수련생 집에 두고 나에게 시스템을 설치해 달라고 했지만 도저히 설치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일부 시스템 파일을 E의 컴퓨터에 두고 그녀에게 복사해서 직접 설치하게 했다. D가 E의 집에 가서 시스템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보고 왜 안 됐냐며 원망했다. E가 말했다. “직접 설치하는 법을 배워봐요. 젊은 사람이 못 배울 게 뭐 있어요. 왜 설치가 안 됐는지 자신을 안으로 찾아봐야 해요. 특별한 일 없으면 우리 서로 연락하지 말아요.” (말투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안전 문제도 있었다. D와 E의 이웃도 사악의 배치로 감시를 받고 있었다.) 이렇게 반년 넘게 두 사람은 아무런 왕래가 없었다. 나는 답장을 보내 D에게 E를 찾아가 일을 물어보라고 했지만 그녀는 갈 수 없다고 했다. E가 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당시에 시스템을 설치할 수 없었던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 USB가 불안정해서 생긴 일이었다고, 미안하다고 모두 내 문제 때문이었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와는 간격이 없고 E와 간격이 있다고 말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직접 가보기로 했다. D를 만난 후 사부님의 일깨움과 예전에 수련생들에게 나타났던 상황을 쭉 설명하며 수련생들 사이에 갈등을 해소하고 구세력에게 틈을 타 박해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D도 듣고 나서 수긍했다. 하지만 내가 함께 E가 있는 곳으로 가보자고 제안했을 때 D는 물건을 사야 해서 갈 수 없다고 했고 나는 혼자 E를 찾아갔다. 그녀의 셋째 여동생도 있었는데 그녀들은 상황을 이해한 후 아주 제때 잘 왔다며 자신의 문제를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E도 자신에게 원망심이 있었음을 찾아냈고 자매 사이에도 같은 문제가 존재했다. 게다가 자신의 컴퓨터 두 대의 백신 프로그램도 최근 모두 문제가 생겼다는 알림이 떴다고 했다. (백신 프로그램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일종의 일깨움으로서 이전 백신 프로그램의 위험 경고와 상응한 것이었다.) 돌아온 후 나는 D에게 E가 변했으니 당신이 필요한 파일이 그녀에게 있다고, 가서 파일을 복사하며 기회를 타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D는 E가 그다지 제고된 것 같지 않다며 직접 만나보는 이런 형식은 필요하지 않다고 답장했다. 나는 만나지 않고도 간격을 없앨 수 있다면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답장했다. 이 일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문제의 핵심은 이렇게 하는 것이 사부님의 법의 요구대로 하는 것인지 여부다. 나는 간격 해소와 관련된 설법을 그녀에게 보냈다.
이후 D는 E를 찾아갔는지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이렇게 약 3주일이 지난 후 D가 갑자기 내게 메시지를 보내 최근 며칠 사이 주민센터 직원이 경찰 한 명을 데리고 자기 집에 와서 몇 마디 하고 갔다고 했다. E도 그녀를 찾아와 자매 몇 명이 최근 동시에 납치됐다고 알려주었다. E는 당일에 돌아왔고 한 자매는 피를 토하고 몸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며칠 뒤에 풀려났지만 다른 한 자매는 계속 구치소에 갇혀 있으며 사악이 징역형을 선고하겠다고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주위 수련생들은 교류를 통해 누락이 있다고 해서 사악에게 함부로 박해당해서는 안 된다고 느끼고 강도를 높여 맞춤형 정념을 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수련생들도 적시에 인터넷에 사악의 행위를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D와 E도 적잖이 교류하며 존재하는 문제를 지적해주었다. 십여 일 뒤 그 자매도 풀려났고 박해를 가중하려던 사악의 음모도 수포로 돌아갔다.
일이 지난 후 돌아보며 나는 지난번 일의 교훈을 거울삼아 남의 미움을 살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며 문제를 발견하면 즉시 수련생에게 일깨워주어야 함을 깨달았다. 비록 즉시 숨은 위험을 제거해 박해를 피하지는 못했지만 수련생들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자신의 문제를 찾아내 더 큰 손실을 피하게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눈에 거슬리고 귀에 거슬리는 일을 겪으면 바로 화를 내고 원망하며 남을 안 좋게 보고, 갈등에 부딪혔을 때 교류하지 않고 속으로 오기를 부린다. 간격이 오래 지속되면 마치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사악의 눈에 띄게 되어 수련생을 박해하는 구실이 된다. 현실에서도 일부 수련생들은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상대방에게 반감을 품으며 불만이 있고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어 사소한 일만 생겨도 끊임없이 다투고 심지어 무례한 말로 악담을 퍼붓기도 한다. 수련인의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이런 것들은 법의 요구에 근본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매일 법공부를 하지만 일에 부딪히면 속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는데 이는 수련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상태가 아니다. 수련생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는 것은 상관없고 갈등이 있는 것도 상관없다. 관건은 우리가 자아를 내려놓고 상대방을 포용하고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지,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문제를 대하고 처리할 수 있는지에 있다. 이것은 법에서 요구하는 것이자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대로 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9/50945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5/9/50945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