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법을 얻기 전 여러 질병에 시달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루 종일 수심에 잠겨 지냈고 몇 번이나 삶을 포기할 생각을 하는 바람에 가족까지 몸과 마음이 지치게 했습니다.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 없고 온몸이 가벼운 느낌을 체험하게 돼 놀랍고 기뻤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이웃과 친척 친구 여러 명도 저의 변화를 직접 목격하고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진선인(眞·善·忍)’ 고덕대법(高德大法)에 더욱 큰 확신을 갖게 됐고 사부님을 공경하고 법을 공경하며 끝까지 굳건히 수련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과거 중공 악당의 앞잡이
악당 우두머리 장쩌민(江澤民)은 소인배의 질투심으로 1999년 7월 20일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상대로 광기 어린 박해를 일으켰으며 박해의 참혹함과 파급 범위의 광대함은 전례가 없었습니다. 파룬궁수련생의 가족은 대법의 직접적인 수혜자이자 목격자이지만 중국공산당(중공)의 강권과 고압에 짓눌린 데다 각종 연좌 박해 수단이 더해지자 셀 수 없이 많은 가족이 본의 아니게 중공 편에 서서 선량한 대법제자에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법제자는 사회와 직장, 그리고 가정에서 겹겹의 압력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대법을 수련하겠다는 대법제자의 결심과 의지를 흔들지 못했습니다.
중공 악당의 고압적인 박해 속에서 남편은 저의 확고한 의지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뜻밖에도 마성이 크게 발작해 귀신에 홀린 듯 반년 동안 2번이나 저를 정신병원으로 보내 박해를 받게 했습니다. 저는 비분강개하고 가슴이 아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가련하고 슬픈 처지를 생각하고 사부님의 경문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정진요지-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를 떠올리며 점차 마음이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정신병원의 족쇄에서 벗어난 후 저는 동료 수련생 집으로 피신했고 이후 아버지가 병에 걸려 간호하러 간 사이에 남편 일행이 또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제가 여전히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작당해 저를 현 공안국으로 보내려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방심한 틈을 타 자전거를 타고 도망쳤고 풍찬노숙을 하며 시민들이 쓰레기통에 버린 음식을 주워 연명했습니다. 다행히 그 음식 중 일부는 유통기한이 임박했을 뿐 포장이 뜯기지 않은 것이 많았습니다.
2000년 4월 25일 저는 소원대로 천안문 광장에 도착해 마침내 많은 사람 앞에서 큰 소리로 마음속 깊이 품었던 말을 외쳤습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우리 사부님은 결백하십니다!” 저는 납치돼 핑구(平谷) 구치소로 불법 압송됐습니다. 저희는 사악한 세력에 협조하지 않고 이름을 말하지 않아 번호로 불렸는데 당시 그곳에서는 거의 3000번까지 배정됐습니다. 저희는 불법 감금에 항의해 단식했고 악질 경찰은 일부 범죄자를 이용해 대법제자를 구타하고 야만적으로 강제 음식물을 주입하며 굵은 고무관을 콧구멍으로 찔러 넣어 위까지 통하게 했습니다. 당시 한 가지 확연히 기이한 광경이 있었는데 대법제자가 구타를 당하거나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당하기만 하면 원래 맑았던 하늘에서 곧바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졌고 악인들 스스로도 신기하고 이상하다고 말했습니다! 단식 17일째 되던 날 저희는 산골짜기로 끌려가 풀려났습니다.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며 저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 생각을 품었습니다. ‘사악한 세력아, 너는 이제부터 다시는 내게 손댈 수 없다! 나는 이미 너의 이유 없는 박해를 견뎌냈으니 이후 다시는 네가 나를 박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너는 자격이 없다! 나는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굳건히 대법을 수련하겠다!’
저는 지금까지 대법제자의 3가지 일을 잘하는 과정에서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 속에 있었고 이후 구세력의 박해를 더욱 명확히 부정하게 됐습니다. 이후 또 3번 납치됐고 그중 한 번은 시 노동수용소로 보내지기도 했지만 모두 놀라기만 했을 뿐 위험은 없었고 곧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의 변화
베이징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저는 잠시 다른 수련생의 집에 머물며 계속해서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길에 같은 마을 친척을 만났는데 그가 저를 알아봤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가 제 남편에게 알렸고 가족이 저를 찾아와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은 옳고 그름도 분간하지 못하는데 돌아가면 또 나를 해치려고요?”라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안 그럴게. 다시는 양심을 저버리는 짓을 하지 않을 테니 나를 믿어. 새사람이 될게”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엄정성명을 써달라고 하자 그도 그대로 따랐고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왔지만 가족은 제 안전을 걱정했고 저는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지 한 달쯤 됐을 때 꿈속에서 고향의 수많은 대법제자가 사악한 세력에게 감금돼 있는데 저만 이리저리 숨어 다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고향에서 당당하게 법을 실증하라고 일깨워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서 공개적으로(이전에는 경찰의 교란을 피하려 감히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재봉 일도 계속했습니다. 당연히 법공부, 연공, 발정념, 자료 배포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제가 매일 해야 할 필수 과정이었고 사부님의 당부를 받들어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수련생의 도움으로 가정 자료점을 세워 근처 수련생들에게 편리하게 공급해 사람 구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는 수련생 간의 연락과 교류 그리고 전체적인 제고가 더욱 필요했기에 저는 인근 여러 마을의 협조 일을 맡았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은 과연 약속을 지켰고 그의 건장한 체구에 바른 기운이 돌아온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는 환골탈태했습니다.
첫째, 향진(鄕鎭, 면 단위 행정구역에 해당)의 이른바 법 집행 인원이 대법제자를 교란하러 올 때, 특히 저희집에 왔을 때 남편은 앞장서서 그들과 맞섰고 찾아온 사람들은 몹시 창피해하며 떠났습니다. 그로 인해 이후 저희집에 오는 것을 피하게 됐습니다. 남편은 다른 대법제자의 집에서 그런 상황을 만나도 의로운 말을 해서 박해를 제지했습니다. 남편은 과거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중공 악당의 앞잡이로 알려졌기에, 개과천선을 하자 자연스럽게 더욱 발언권과 설득력이 생겼습니다. 악질 경찰은 남편 앞에서 늘 꼬리를 내렸습니다.
둘째, 남편은 평소 대법 자료를 자주 봤고 ‘9평 공산당’(한글판: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 출판된 후 연달아 몇 번이나 읽어 저보다 내용을 더 잘 알았으며 제가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할 때면 언제나 적절하게 거들며 삼퇴를 권했습니다.
셋째, 그는 또 대법 노래를 자주 들었고 사부님의 ‘전법륜(轉法輪)’도 공손히 읽었으며 무슨 일이든 ‘진선인’으로 가늠할 줄 알게 됐고 때로는 저에게 조급해하지 말라고 일깨워주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집 안팎으로 바쁘게 움직여 제가 대법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남편이 이끈 덕분에 두 아들과 며느리들은 모두 각자 자기 집을 잘 돌보았고 제가 아이와 집안일을 최대한 신경 쓰지 않도록 했습니다. 작은며느리도 작년부터 대법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아들의 딸(8세)이 대법 책을 보자마자 날아오르는 느낌을 체험했습니다.
또한 남편은 때때로 차를 운전해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저를 도와주었는데 고생과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불평 없이 묵묵히 일했습니다. 과거 중공 악당의 앞잡이가 어느새 대법제자의 조수가 된 것입니다! 이웃 주민들 중에는 그로 인해 진상을 알고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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