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요구대로 행해 정념으로 고난에서 벗어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7년에 법을 얻은 오래된 대법제자입니다. 제가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수련 과정에서 겪은 두 가지 작은 일을 글로 써서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법의 요구대로 행해 고난에서 벗어나다

1999년 봄, 남편과 결혼한 지 막 14개월이 되었을 때 시댁과의 갈등이 격화됐습니다. 당시 저는 법을 얻은 지 2년이 됐지만 줄곧 혼자 수련하는 상태여서 심성을 닦을 줄 잘 몰랐고, 참음(忍)의 내포에 대해 터득한 것이 아주 적어 억지로 참는 편이었습니다. 억지로 참는 것은 곧 사람의 참음이고 사람의 인내력은 당연히 한계가 있으므로, 결혼 생활을 계속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이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이미 임신 6개월이었고, 남편 집안에서는 장차 재혼에 지장을 줄까 봐 아이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에 직업도 없고 돈을 벌 능력도 없었으며, 마을에서 제게 보상으로 준 6무(畝)의 토지마저 엉뚱하게 남편 집안 명의로 등록돼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며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마을 간부도 시어머니의 억지가 두려워 감히 제게 증언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빈손으로 집을 나와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다행히 친정 오빠와 올케가 비교적 좋은 사람들이라 저를 거두어 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는 것을 보고, 모든 친척과 친구들은 제 앞날을 생각해 아이를 지우라고 권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습니다. 당시의 저에게는 생계 문제가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이 아이를 데리고 살아갈 수 있느냐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법제자로서 저는 수련인이 살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임신한 후 낙태는 바로 살생이다”(미국법회 설법-뉴욕좌담회 설법)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생각했습니다. ‘나는 반드시 사심을 내려놓고 법의 요구대로 해야 해. 이 작은 생명도 법을 위해 온 것이니 내가 그를 죽일 수는 없어. 기껏해야 고생 좀 하는 거지,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상관없어. 장차 죽을 끓여 먹게 되더라도 나는 그를 남겨 키울 거야.’ 이 결정은 언니 수련생 단 한 명만 지지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저를 지지하고 보호해주신 분은 위대하신 사부님이셨습니다!

저는 막노동부터 시작해 손수레로 작은 장사를 했고, 나중에는 화물차와 승용차를 사고 가게를 열어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온갖 고생을 다 겪었지만, 다행히도 그 길에는 대법이 함께 했고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일깨워 주시고 이끌어 주심이 있었습니다. 생활이나 일에서 어떤 골칫거리나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사심을 내려놓고 확고하게 법의 요구대로 행하기만 하면 모두 사존의 일깨움과 보호를 받아 결과는 언제나 밝게 열렸습니다.

아들이 네 살 되던 해, 저는 장터에서 신발을 팔고 있었습니다. 전남편이 갑자기 장터로 찾아와 제게 재결합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당시 그가 재혼한다는 말을 이미 들었고 예물만 4만 위안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그가 왜 내게 이런 걸 물을까? 진심으로 나를 데려가려는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지난 4년간 저와 함께 보낸 날들이 무척 고생스러웠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4년 동안 저는 아이에게 새 옷 한 벌 사주지 못했고 제 것도 사본 적이 없으며, 심지어 양말 한 켤레조차 사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밖에 나가 일하기가 몹시 어려웠고, 막 장터에 나온 몇 달 동안에도 돈을 별로 벌지 못해 간신히 우리 생활을 유지할 정도였습니다. ‘아이에게 아버지가 있다면 생활이 이렇게 고생스럽지는 않겠지. 만약 그가 진심이라면 아마 한 번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저는 전 남편 집안이 돈을 아주 중시하며, 심지어 우리 모자의 목숨보다 더 중히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한마디 물었습니다. “당신 재혼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내게 이런 걸 묻는 거죠?” 그는 “당신이 나와 함께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겠소. 우리는 어쨌든 부부잖소”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자면 저는 그의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를 비교적 잘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그동안 밀린 아이 양육비를 제게 주세요.” 우리가 이혼한 후 법원에서는 그에게 매달 제 아들에게 200위안의 양육비를 주라고 판결했고, 계산해 보면 3~4천 위안은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가 돈을 요구한다는 말을 듣자 홧김에 가버렸습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은 매우 싸늘해졌고, 이 일은 제가 그에게 남겨두었던 마지막 한 줄기 정(情)과 기대를 내려놓게 했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자 오빠와 언니, 그리고 조카며느리들이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그 사람 내일 당장 결혼한대. 4만 위안을 주고 재혼할 여자를 얻으면서 네 땅은 떡하니 차지하고 있고 아이 양육비도 주지 않다니, 너희 모자가 이 몇 년간 어떤 생활을 했는지 봐! 왜 그렇게 그를 편하게 둬? 네가 말만 하면 내일 우리가 가서 받아줄게. 최소한 양육비와 땅은 반드시 돌려받아야 해. 안 그러면 결혼할 생각도 말라고 해.” 다들 한마디씩 거들며 제가 결정하기만을 기다렸고, 제가 내일 가겠다고만 하면 다들 틀림없이 저와 함께 갈 태세였습니다. 저는 당시 마음이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이것은 제가 내려놓아야 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친척들은 모두 저를 위해 그러는 것이었고 제 생활이 너무 고생스러운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법이 바야흐로 박해받고 있어 친척들은 제가 수련하는 것을 이해해주기는 했지만, 연공인이 왜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남에게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도 당시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서 요구해야 할까?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까? 이렇게 많은 친척이 다 나를 위해서인데 어떡하지?

밤에 다들 흩어지면서 제가 다음 날 아침에 결정을 내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다들 돌아간 뒤 저는 ‘전법륜(轉法輪)’을 들고 사부님 법상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수련하고 싶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수련하고 싶지만 제자가 오성이 부족합니다.” ‘내 것을 되찾으러 가는 것은 틀린 게 아니겠지! 친척들도 다 나를 위해서인데.’ 하지만 저는 어딘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정말 모순되어 그저 그곳에 앉아 사부님께 간청하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저는 동창 집에 갔고 동창의 어머니가 ‘전법륜’을 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다가가서 보니 136쪽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저는 서둘러 전법륜을 펼쳤고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일거사득(一舉四得)”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확 트였습니다. 전남편이 제가 제고하도록 돕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일깨움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저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고, 다음 날 계속 장터에 가서 물건을 팔기로 한 후 태연하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또렷한 꿈을 또 하나 꾸었는데, 꿈속에서 저는 언니와 함께 어느 마을에 현수막을 걸러 갔고, 마을 입구에 우리 키만 한 현수막을 하나 걸고는 마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떠오른 채로 마을 전봇대 가장 높은 곳에 현수막을 걸었는데, 아래쪽에서 새까맣게 모인 사람들이 제 발을 끌어당기려 했지만 제게 닿지 않았습니다. 저는 떠다니며 걸었고, 다 건 뒤에 마을을 나와 마을에 들어갈 때 걸었던 그 현수막이 너무 낮게 달린 것을 보고는 그것을 들어 올려 나뭇가지 끝에 걸었습니다. 마을을 빠져나갈 때 경찰차 한 대가 뒤에서 우리를 쫓아왔고 바닥에는 발목이 푹 빠질 정도로 깊은 진흙이 있어 우리 차가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지자, 저는 언니를 끌어당겨 허공으로 떠오르며 그곳을 떠났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옳게 행했다고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신 것이며, 법 속에서 심성이 승화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일은 표면적으로 보면 제가 이익을 잃은 것 같았지만, 이후 제 장사는 갈수록 순조로워졌고 빈털터리에서 차와 집이 생겼으며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됐습니다. 제자는 위대하신 사존께 절을 올립니다!

정념을 지켜 아버지를 구원받게 하다

2001년 가을, 저와 언니는 어머니를 설득해 당시 갓 두 돌이 된 아이를 어머니 곁에 남겨두고 우리는 의연하게 베이징으로 법을 수호하러 갔습니다. 떠날 때 우리는 사존께 세 번 절을 올리고 사존께서 제자들의 정념을 가지(加持)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가는 길 내내 정말로 정념이 충분했고 사람 마음과 사람의 생각이 없어졌으며, 매 걸음마다 뚜렷하게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것임을 느꼈습니다. 신분증을 안 가져가서 여관에 묵을 때, 우리는 침대 두 개만 샀는데 여관 주인은 우리를 가장 안쪽 큰 방에 배정해 주고는 문을 잘 잠그고 누가 불러도 절대 열어주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나중에 몇 사람이 묵으러 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여관 주인은 모두 침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방에는 분명히 침대가 몇 개나 더 있었는데 말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돈을 보고 벌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돕고 계시는 것이며, 우리에게 단독 공간을 마련해주어 발정념(發正念)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천안문 광장에서 순조롭게 “대법은 좋습니다”를 외치고 현수막을 걸었으며 4일 후에 안전하게 돌아왔는데, 과정 중에 놀라기는 했지만 위험한 일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밥을 챙겨 먹을 새도 없이 돌아오는 기차에 올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 어디선가 어떤 여성이 나타나 우리 차창을 향해 도시락이 6위안이라고 외쳤습니다. 이 6위안짜리 도시락에는 네 가지 채소 반찬이 있었는데 모두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제 그 감격스러운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고 속으로 연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집 문을 들어서려는 바로 그 순간, 제 사람 마음과 관념이 모조리 튀어나와 평소 성격이 좋지 않으신 아버지께서 이해하지 못하실까 봐 걱정됐고, 저는 언니에게 아버지께서 틀림없이 크게 화를 내실 거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법리가 맑지 않아 이것이 두려워하는 마음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법에 서서 즉시 부정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아버지께서는 펄펄 뛰며 화를 내셨고 우리 형제자매를 모조리 불러 모으셨으며 심지어 도끼를 들고 우리를 찍어 죽이겠다고까지 하셨습니다. 저더러 생각도 없이 그렇게 어린아이를 자기들에게 내던지고 갔으니, 만약 무슨 불상사라도 생기면 아이는 앞으로 어떡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법을 욕하셨습니다. 제가 말려도 소용없었고 아버지는 오히려 더욱 분노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저를 걱정하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은 무척 괴로웠습니다. 이 분은 제가 사랑하는 아버지이고, 제가 이혼한 이후 그분들 곁에서 생활하면서 이미 두 노인에게 크나큰 고통과 걱정을 안겨드렸으며, 저 때문에 마음을 쓰시고 아이를 돌봐주시는데, 오히려 제가 잘하지 못하고 정념을 지키지 못해 아버지께서 대법에, 사부님께 이토록 큰 죄를 짓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몇 년 동안 아버지는 저를 아주 엄격하게 감시하셨고, 밤마다 제가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돌아오면 늘 저를 한바탕 꾸짖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문화대혁명을 겪으셨기에 공산당의 사악함을 깊이 아셨고 제 안전을 걱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밤에 제가 몰래 수련생 교류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올 때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는 길 내내 저는 집에 돌아간 이후 아버지의 꾸지람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걱정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도 아주 괴로웠는데 아버지는 아주 정직하고 선량한 분이시며 평생 곁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수없이 도와주셨는데, 저로 인해 아버지께서 대법에 이토록 큰 죄업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가 어떻게 해야만 진정으로 아버지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문득 사부님의 법 한 구절이 제 뇌리에 맴돌았습니다.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이 순간 제 마음이 환해지며 비할 바 없는 정념이 솟아올랐습니다. ‘맞아, 내가 사람 마음만 움직이지 않으면 돼!’

이때 집까지는 아직 1km가 남아 있었고 걸어가고 있었으므로, 저는 이 시간을 이용해 마음가짐을 바로잡았고 끊임없이 이 정념을 강화하고 이 정념을 지켰습니다. 제가 방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아직 주무시지 않고 계시다가 저를 보시고는 온화하고 자애롭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아직 밥 안 먹었지? 밥은 솥에 있다.” 순간 저는 목이 메어 말을 할 수 없었고 그저 가볍게 “네”라고만 했습니다. 대법의 힘은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은 제가 수련해 올라갈 수 있도록 연기한 한 편의 연극이었는데, 하마터면 저의 오성이 부족한 탓에 제 아버지를 망칠 뻔했던 것입니다.

이후로 대법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는 180도로 바뀌어, 자주 다른 사람에게 대법이 좋다고 알려주셨고 아는 사람들을 끌고 와서 제게 그들에게 삼퇴를 알려주라고 하셨으며, 또 자주 우리가 소책자를 접는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제자를 일깨워 주시고 제 아버지를 자비롭게 구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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