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수련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청년 대법제자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해 왔다. 27년 동안 부모님을 포함한 많은 수련생의 수련 과정을 지켜보았고, 1999년 ‘7·20’ 이전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이 파룬따파를 배우고 수련하던 성황을 목격했다. 또한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후 수련생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을 알리고 진상 전단지를 배포하며, 천안문으로 달려가 법을 수호하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유하던 사심 없는 장거를 목격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많은 일을 목격하고 심지어 직접 경험하기까지 했던 나는 정작 자신을 수련인의 대열에 진정으로 포함시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대법을 떠난 적은 없었지만 대법 안으로 진정으로 들어간 적도 없었다. 이런 인식 때문에 나는 여러 차례 소극적이고 막막하며 절망적인 기분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련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인간’과 ‘신’ 사이에서 방황하며 거듭 미망과 절망에 빠질 때 생활 속에서 우연처럼 보였던 사람과 일들이 모두 사존의 자비로운 인도와 정성 어린 안배, 그리고 세심한 보살핌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존께서는 늘 내 곁에 계셨다.

1. 어린 시절 법을 얻다

1999년 ‘7·20’ 이전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로 법을 얻어 수련을 시작하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따라 법을 배우고 연공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집에서는 거의 매일 사부님의 설법 영상이나 녹음이 재생됐고 부모님은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함께 《전법륜(轉法輪)》과 다른 대법서적을 읽었다. 나는 수련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어머니가 책을 읽고 병이 나았으며 아버지는 술과 담배를 끊었다는 사실은 알았다. 나는 《전법륜》이라는 책이 참 신기하다고 느꼈다.

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한 후 나는 학교에 다니는 것 외에 부모님을 도와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명혜주간》을 인쇄하며 삼퇴를 권유하는 등 진상을 알리는 일을 많이 했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어머니를 도와드린 것이었기에 나는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부모님을 돕는 것이라 여겼고 ‘돕는 것’이 곧 내가 수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법에 따라 행하는 것이고 진정한 수련이라 여겼으며 심지어 내가 수련을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2. 사부님 법상을 되찾다

2008년 아버지는 우리집을 불법 가택수색하러 온 경찰들과 사부님 법상(法像)을 뺏기지 않으려 다투다가 여러 명의 경찰에게 폭력적으로 납치돼 곧바로 구치소로 이송됐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경찰들의 흉악하고 광적인 강도 행위를 직접 목격했으며 명혜망에 올라오는 박해 진상들이 모두 사실임을 절실히 느꼈다.

어머니는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파출소와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를 찾아가 석방을 요구했다. 몇 번이고 찾아갔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나는 처음의 분노와 비통함에서 점차 소극적이고 무력한 상태로 변해갔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저들은 저렇게 막무가내인데 맨손인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나와 남동생만 파출소에 보내 사람을 찾아오라고 하셨을 때 겉으로는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가봤자 소용없어, 지금은 우리를 만나주지도 않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날 파출소에 가서 소장실로 곧장 가려던 중 2층 첫 번째 방의 문과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바닥은 방금 닦은 듯 깨끗했고 방 안은 환했으며 복도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안을 들여다보니 벽을 따라 크고 작은 사부님의 각종 법상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법상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광경에 넋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련생들에게서 뺏어온 것들이라 생각하니 집으로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큰 것은 들고 가기 힘들고 너무 많이 가져가다 들킬까 봐 걱정됐다. 결국 우리는 작은 법상을 하나씩 옷 안에 넣기로 했다. 소장을 찾으려던 것도 잊은 채 사부님 법상을 품에 안고 집으로 달려왔다.

집에 와서도 한참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겁도 났지만 그보다는 흥분이 더 컸다. 파출소에서 사부님 법상을 되찾아오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이 일은 나에게 큰 확신을 주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사존께서 나를 격려하며 계속해 나가라고 하신 것이었다. 또한 정념을 많이 발해야 하며 인간세상의 이 면은 단지 표상일 뿐 진정으로 작용하는 것은 다른 공간임을 일깨워주신 것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3. 혼자서 각방면의 압박에 맞서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의존심과 정이 매우 깊었다. 어머니가 하라는 일은 하기 싫어도 따랐다. 점차 나는 스스로 일을 처리하거나 문제를 생각하지 않게 됐다. 수련 역시 어머니의 감독과 독촉 아래 습관적으로 해왔을 뿐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 과중한 학업과 성적에 대한 집착, 유행을 쫓는 마음 때문에 법공부를 완전히 소홀히 했다. 그러면서 ‘어차피 어머니가 늘 공부하시니 일이 생기면 물어보면 되지, 굳이 내가 직접 볼 필요가 있나’라며 핑계를 찾았다. 문제에 부딪히면 법으로 가늠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먼저 물었다. 아버지가 납치됐을 때도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어머니가 계시니 의지할 곳과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내 이런 마음이 너무 강했던 탓인지 2009년 아버지가 잡혀간 지 반년 만에 어머니마저 납치됐다. 소식을 듣는 순간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극도의 고통과 절망에 빠졌다.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부모님은 젊을 때 타지에서 이사 오신 터라 현지에 친척이 없었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남동생과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고 우리는 반쪽짜리 고아나 다름없었다. 나이가 더 많은 내가 자신과 동생을 돌보는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 대입 시험을 두 달여 앞둔 시점이라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집착과 미래에 대한 절망감이 뒤섞여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경찰은 학교까지 찾아와 부모님 대신 이른바 보증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 나는 그저 침묵하며 울거나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지르며 부모님을 돌려보내라고 대들었다. 그들을 대할 때면 늘 에라 모르겠다는 식의, 차라리 함께 파멸해버리자는 심정이었다. 하교 시간에는 어른 수련생들이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나를 붙잡고 교류를 하거나, 어머니를 위해 집착심을 찾아보라고 하기도 했고, 이불을 들고 공안국 문 앞에 누워 사람을 찾아오라고 하거나 우리를 외국으로 보내주겠다고도 했다.

동생과 나 자신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경찰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지 막막했다. 수련생마다 하는 말과 방법이 달라 혼란스러웠다. 거대한 심리적 압박과 외부의 소음, 마음의 고독함 때문에 매일 분노와 붕괴 직전의 상태로 살았다. 경찰뿐만 아니라 선의로 도와주려는 수련생들에게도 참을성을 잃기 시작했고 한번은 마성이 폭발해 수련생 아주머니를 집에서 내쫓기까지 했다. 어머니가 안 계시니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사부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지만 자비로우신 사부님은 나를 잊지 않으셨다.

경찰이 다시 학교에 와서 서명을 강요할 때 교장 선생님이 웃으며 경찰에게 말했다. “이제 곧 시험인데 아이를 자꾸 찾아오지 마세요. 볼일이 있으면 시험 끝나고 얘기하세요.” 그러고는 나를 보며 미소 지으셨다. “괜찮아, 시험 잘 봐. 모든 일은 다 지나가게 되어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을 쏟았다.

교장 선생님을 보며 문득 이것은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인생이 이미 안배된 것이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해나가면 될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은 잠시 하지 않으면 되고 맞닥뜨려야 할 일은 언젠가 저절로 찾아오게 되어 있으니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소용없다. 다투는 것 또한 수련인이 할 바가 아니다.

보증서에 관해서도 그들이 내게 대신 서명하라고 하는 것은 부모님이 서명을 거절하고 계신다는 뜻이었다. 본인도 동의하지 않는 일을 내가 무슨 권리로 대신 선택하겠는가? 서명 안 하면 시험 못 보게 하겠다는 협박도 사악의 기만책일 뿐 최종 선택권은 내게 있었다. 그들과 소리 높여 싸울 필요가 없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모든 수련생이 내 입장에서 이해해주기를 강요할 이유가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도와주려 한 것만으로도 대법수련생의 자비와 선의는 충분했다.

당시 나는 수련에서 독립적으로 성숙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못 했고 정법시기 대법제자나 정념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만 부모님이 안 계셔도 혼자가 아니며 사부님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나를 지켜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못난 제자가 걷는 모든 길에 사부님이 함께 계셨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수많은 수련생이 혹독한 고문과 압박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사존께서 늘 곁에 계시고 파룬따파가 이미 마음 깊이 자리 잡았기 때문임을.

4. 타락과 구원

우리집은 두 차례 가택수색을 당해 모든 대법서적과 자료가 사라졌고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없었다. 대학 진학 후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도시의 화려한 유혹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던 것이었기에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왔다. 곁에서 말려줄 부모님도 없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나는 점차 그 속에 빠져들었다. 소식 없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경찰에 대한 원망, 법에서 멀어진 고립감은 나를 자포자기하게 만들었다. 나는 노래방과 술집을 다니고 게임과 드라마에 빠졌으며 남학생들과 무분별하게 어울렸다. 물질적 욕망과 향락, 허영심과 자만심, 정에 대한 집착 등 마성적인 면이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떠들썩한 하루가 가고 밤이 되면 더 큰 공허함과 외로움이 찾아왔다. 내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음을 선명히 느꼈다.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건 내가 원한 삶이 아니야’라고 자문했지만 날이 밝으면 다시 세상 유혹에 미혹됐다. 운명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하며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억울해했다. 다들 하는 일을 한 것뿐인데 왜 나만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싶었다.

어느 날 저녁 캠퍼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던 중 모르는 학생이 별과 하늘에 대해 한마디를 던졌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슴이 찡했던 느낌은 선명하다. 그 말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삼천대천세계를 떠올리게 했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개인의 득실이 무슨 대수겠는가? 나는 내 감정에만 너무 매몰돼 있었다.

하늘을 원망하고 부모님 때문에 대학 입시를 망쳤다고 탓할 때 나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술에 절어 싸움만 하던 아버지와 병을 달고 살던 어머니가 어떻게 나를 키우고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겠는가?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은 곧 사부님과 대법을 원망하는 것이며 스스로 사부님의 보호에서 벗어나는 행위였다. 구세력이 나를 끌어내리려 혈안이 된 것도 당연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당시 사존께서 그 학생의 입을 빌려 나를 일깨워주시고 법의 내용을 기억나게 하셨음을 깨달았다. 사존께서는 온갖 방법으로 나를 신의 길로 이끌어주셨기에 나는 완전히 타락하지 않고 다시 돌아올 기회를 얻었다. 인연이 닿아 그때 그 학생은 내 남편이 됐고 그 역시 파룬따파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5. 감성에서 이성으로, 진심으로 수련에 들어서다

부모님이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고 진상 자료를 만들었다. 나는 내가 어려서부터 법을 배웠으니 당연히 수련하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평탄한 생활이 이어지자 나는 자만심에 빠져들었다. 내가 수련을 잘하고 경지가 높다고 착각하며 남들을 무시했다. 내 생각은 이미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다시 공허함과 소극적인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원하는 것을 다 가졌고 법도 잘 안다고 생각하니 일상이 무의미해 보였다. 결국 나는 다시 인터넷과 휴대폰에 빠져들었다.

매일 법공부를 하는 것이 마치 숙제를 해치우는 것 같았다. 한 단락만 읽으면 얼른 휴대폰을 집어 들어 게임을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어머니 옆에서 억지로 법공부를 할 때도 눈과 입은 따라가지만 마음에는 한 글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성격은 난폭해졌고 누구도 나를 수련인으로 보지 않았다. 나 역시 대법을 수련한다고 말하지 못했고 진상을 알릴 방법도 없었다.

2023년 어머니가 다시 납치됐고 우리집은 또 가택수색을 당했다. 집안은 완전히 뒤집혔고 대법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져갔다. 나는 충격과 두려움에 빠졌다. 수련을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경찰이 “파룬궁을 수련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머뭇거렸다. 경찰은 짜증을 내며 “그냥 한다고 써. 진선인(眞·善·忍)을 닦는다면서 진실한 말 한마디를 못 하네”라며 비웃었다. 그 멸시 섞인 말이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대법에 먹칠했다. 내가 파룬궁 수련생임을 당당히 밝히지 못할 정도로 큰 문제가 생겼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철저히 반성하고 싶었다. 오직 법을 배워야만 문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집에 대법서적이 한 권도 없었다. 그때 남편이 경찰이 보지도 않고 두고 간 USB 하나를 찾아냈다. 그 안에는 사부님의 모든 설법과 영상, 법상이 담겨 있었다. 사건 이틀 전에 내가 정리해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못난 제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 것이었다.

나는 예전과 다른 마음으로 법공부를 시작했다. 사상업을 이겨내며 한 글자씩 읽고 법을 베껴 썼으며 외우기 시작했다. 고통스럽고 긴 과정이었다. 법을 배우며 나는 내가 소극적이었던 근본 원인을 찾았다.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수련해온 탓에 수련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이성적으로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저 엄마 말 잘 듣는 아이였을 뿐 진정한 수련인이 아니었다. 법을 배우면서도 법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의 차이를 몰랐다. 부모님은 나를 대법으로 인도해준 인연일 뿐 나는 그 과정에서 수련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정법의 책임을 짊어지는 이성적 인식에 도달해야 했다. 부모님을 위해 수련하거나 정에 이끌려 하는 것은 감성적 인식이며 이는 인간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 제고할 수 없게 만든다.

진정으로 수련하겠다고 결심하자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변했다. 등 떠밀려 하던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이 이제는 일상의 중심이 됐다. 경찰 앞에서도 당당히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인내심 있게 대화할 수 있게 됐다. 수련의 기쁨과 신기함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고비도 있었다. 오랜 업력과 집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각종 교란도 심각했다. 온갖 좋지 않은 생각을 배제하려 애썼고 발정념을 해도 무력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내가 또 잘못된 인식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수련생 아주머니를 만났다. 교류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내게 말했다. “늦지 않았어요.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아요.”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번뜩 깨달았고 따뜻한 기운이 가슴 속에서 솟아올랐다. 사존께서 아주머니의 입을 빌려 나를 격려해주신 것이었다! 그토록 많은 세월 진정한 수련을 하지 못했다는 깨달음 이후 나는 열심히 정진하려 했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감이 숨어 있었다. 시간을 만회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다시 나태함을 불렀던 것이다.

그 소극적인 마음과 미망은 결코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월 동안 쌓인 사상업이고 집착일 뿐이었다. 그 나는 인간의 논리로 수련을 판단하려 했고 결론을 얻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진정한 나는 ‘진·선·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기서 비롯되지 않는 모든 생각은 자신이 아니다. 진정한 나는 반드시 중생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수련할 것이며 사부님의 요구에 무조건 동화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 답을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고 중생이 기다리는 일이라면 그것이 바로 내가 해나가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맺음말

20여 년 세월 동안 속세에서 방황했지만 다행히 다시 깨달을 기회가 있었다. 나처럼 어려서 법을 얻었지만 진정하고 착실한 수련을 하지 못했던 어린 대법제자들이 모두 대법을 진지하게 대하고 자신의 선택을 고민해보길 바란다.

법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구세력은 수련을 하는 듯 마는 듯 하는 사람들을 절대 그냥 두지 않는다.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끌어내리려 한다. 법 안에서 굳건히 수련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소멸하거나, 우리에게 제3의 길은 없다. 부모님의 모습이 장애가 되게 하지 말고 현대적 변이 관념이 자신을 대법에서 멀어지게 하지 말아야 한다. 나처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눈물이 흐른다. 사존께서는 매 순간 제자의 곁에 계셨고 제자를 미망에서 건져주셨으니 그 은혜는 무엇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 오직 사람의 마음을 버리고 진심으로 선을 향해 수련하는 것만이 사존의 자비로운 제도에 보답하는 길이다.

이상은 현재 층차에서의 깨달음이며 미흡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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