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목기에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닌가?’를 읽고 한마디

—대법제자가 봐야 할 것은 명혜망과 대법

글/ 위안산(遠山, 중국)

[명혜망] 오늘 명혜망에 실린 글을 읽었다. 한동안 일부 수련자들이 ‘현목기(玄木記)’에 집착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많은 수련자와 함께하지 않아 구체적인 상황은 잘 모르고, 이 소설도 읽지 않았지만 제목만 들어도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내 예전 경험과 생각을 한번 이야기해볼까 한다.

나는 불법적으로 구금돼 박해받기 전에는 그다지 정진하지 않았다. 그때는 법공부에 대한 인식도 깊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법을 실증하는 일도 지금처럼 신성감이나 사명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때는 스스로를 신수련생이라고 여기며, ‘7·20’ 이전에 법을 얻은 제자와 같이 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련에 느슨해지고 세상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래도 대법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혼자 인터넷을 통해 명혜 라디오를 듣곤 했다. 특히 정견망(正見網)과 NTD TV 사이트에 자주 들어갔다. 그 무렵 명혜 라디오에서 방송한 ‘밀레르빠 수련 이야기’ 라디오극을 즐겨 들었는데, 이 이야기가 무척 마음을 끌었다. 영상이 아니었지만 방송 내용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집안일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할 때 자주 들었고, 많이 듣다 보니 대사를 꽤 많이 외울 수 있었다.

그러다 나중에 큰 교란이 생겼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이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거의 10년 전 일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깨달은 것은, 그것이 비록 수련 이야기이긴 해도 불이법문(不二法門) 요소가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다른 종교의 이야기로, 그 종교의 정보가 들어 있어 법공부, 연공,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완전히 삭제하고 그 뒤로는 전혀 듣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야 상태가 서서히 좋아졌다.

이 일에서 깨달은 것은, 우리 수련의 근본은 대법이라는 것이다. 다른 것들이 마음에 들고 받아들이고 싶더라도, 거기에 자신의 관념과 맞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법이 아니다. 우리가 원만히 수련할 수 있는 유일한 보증은 오직 하나, 사부님과 사부님의 법뿐이다.

우리 대법제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사이트나 다른 사이트를 명혜망과 같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실제로 정진하는 많은 대법제자들이 명혜망만 본다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내용은 일반인을 위해 쓴 것으로, 글의 관점과 목적이 다르다. 일반인이 흥미를 갖고 진상을 이해해 구원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 쓴 것이다. 그런 글은 본래 수련 글이 아니며 대법 수련인을 위해 쓴 것도 아니다. 수련인이 관심이 있다면 기껏해야 잠깐 살펴보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그것에 열중한다면 그 역시 집착심이다!

다소 강한 말이지만, 모두 《정진요지》 경문을 한 번 더 읽어보면 이해할 것이다. 나는 방금 《정진요지》를 한 번 필사했는데,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를 열 번 읽으라고 하셨다. 그 안의 법이 아직 생생하게 기억난다. 어떤 기록에 집착하는 것과 예언에 집착하고, 트럼프 재임에 집착하고, 당시 소설에 집착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런 것에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쏟는 것은 수련인에게 교란이다.

보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안의 정보를 많이 받아들여 대법제자들 사이에서 교류하고 이야기하게 된다면, 이는 법을 파괴하는 조짐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인식상으로는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일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대법제자는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신에게 어떤 집착심이 있는지 안으로 찾아야 한다.

수련생 중에 이런 사람이 광범위하게 많아지면 대법 수련생의 수련 정진에 파동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사악한 요소들이 호시탐탐 허점을 노리며 이를 더욱 확대시켜 우리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사부님의 정법과 대법제자의 수련에 직·간접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처음 법을 얻었을 때는 정견망을 자주, 열심히 봤지만 지금은 거의 보지 않는다. 그 안에는 환생과 윤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수련할 인연과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알 수 없다. 나 자신은 얼마나 수련하고 있는가? 그것도 알 수 없다. 우리의 사전(史前) 서약은 얼마나 이행되고 있는가? 역시 알 수 없다.’ 우리는 세 가지 일과 별 관계없는 것들에 시간과 집중력을 낭비할 여유가 전혀 없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무슨 이유인지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아마도 사부님께서 내 곁에 계시기 때문인 것 같다. 수련의 엄숙함에 대해, 1999년 이전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대법제자라면 누구나 알 것이며, 박해를 받은 대법제자라면 깊이 인식할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각지 설법 13-2015년 뉴욕법회 설법)

우리 수련 제고의 유일한 보증은 대법이다. 대법이 아닌 것, 수련생이 수련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어떤 것들, 특히 명혜망에 실리지 않은 것들에 집중력과 시간을 쏟는 것, 특히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쏟는 것은 모두 법에서 벗어나고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정법 수련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상은 나의 작은 소감이다. 진심 어린 말을 담아 수련자들과 교류하고자 썼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자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린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에 감사드리고 수련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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