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을 바꾸고 법에 녹아들어 중생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의 수련 길을 돌이켜보면,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끊임없는 보호와 일깨움이 있었기에 제가 한 걸음씩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최근 저의 짧은 수련 체험입니다.

1. 가정에서 관념을 바꾸고 심성을 높이다

손주가 생긴 뒤로 제가 자주 아이를 돌보지는 않지만, 보모가 없을 때는 아들을 도와 손주를 보곤 합니다. 그런데 아들은 늘 저를 못 미더워하며 아이를 돌볼 때는 위생에 신경 써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마음속으로 반감이 생겼습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키우지 않았니? 좀 지저분하게 커도 너는 아주 건강하게 잘만 자라지 않았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아이가 종일 옷을 입고 있어 피곤할 텐데, 밤에 잘 때는 다 벗기고 편하게 재우면 얼마나 좋니, 왜 굳이 잠옷을 입혀서 아이를 힘들게 하니!’라는 생각에 저는 아이에게 잠옷을 입히지 않았습니다. 제 방에서 아이를 재울 때는 아들이 볼 수 없으니 제 고집대로 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아들은 늘 제 관점을 부정했지만, 저는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자아에 집착했습니다. 올해 4월, 발등이 불편해서 만져보니 흔히 말하는 골질 증식(뼈 돌출)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상이라 생각하며 골질 증식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층의 생명이 구원받아야 하고 제가 심성을 높여야 할 때라고 여겼습니다. 마음속으로 “골질(骨質)… 골질…” 하고 되뇌다 보니 문득 ‘맞아, 나에게 고집스러운 관념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역주: 중국어로 골질(骨質)과 고집(固執)의 발음이 유사함] 그래서 저는 저의 고집스러운 관념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밤, 10개월 된 손주가 저와 함께 잤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잠옷을 입히지 않았는데, 아이가 밤새 굴러다니며 이불을 덮지 못했습니다. 한밤중에 우유를 먹이려는데 아기의 코가 막혀 우유를 먹으면서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즉시 저의 고집스러운 관념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어릴 때 어른들에게 교육받은 사람의 이치를 고수하며 놓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남과 대화할 때 늘 제가 예전에 옳다고 믿었던 이치를 내세워 훈계하곤 했습니다. “내가 예전에는 어땠다”, “네가 어릴 때는 이랬다”,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따지지 않았다”라며 아들이 제 말을 듣게 하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말대꾸하면 원망했습니다. 이것이 다 고집스러운 관념이 아니겠습니까? 동시에 아들에 대한 정, 남을 바꾸려는 마음, 원망심, 이기심, 공산당 당문화, 위생을 따지지 않는 습관(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 세대가 중공 악당 문화의 세뇌를 가장 깊이 당했음) 등 집착이 폭로됐습니다. 이를 인식한 후 저는 즉시 바로잡고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습니다. 손주는 다음 세대이니 아들과 며느리가 하라는 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심성을 닦을 뿐만 아니라 입도 잘 닦아야 했습니다. 더는 남이 바뀌기를 요구하지 않고 과거의 이치를 거론하지 않으며 제 과거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위생을 무시하고 털털한 것이 당문화임을 깨닫자 마음이 활짝 열리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사부님의 일깨움에 감사드립니다! 심성을 높이는 기분은 정말 좋았습니다! 다음 날 아이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발등의 가상도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게 없어졌습니다.

2. 법을 베껴 쓰고 외우는 가운데 승화하다

한동안 법공부를 해도 얻는 것이 없고 정체된 느낌이었습니다. 이제는 제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경문과 『홍음』을 많이 외웠고 『전법륜(轉法輪)』도 계속 외우려 했지만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수련생의 ‘법 외우기 체험’ 교류 글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저도 반드시 『전법륜』을 외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 방법은 한 문장을 베껴 쓰고 한 문장을 외우며, 한 단락을 베껴 쓰고 한 단락을 외우는 식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간이나 분량에 집착하지 않고 결과에도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베끼고 외우며 법에 녹아들려 했습니다. 법을 베끼고 외우는 데 방해가 되는 관념과 장애를 모두 제거했습니다. 매일 꾸준히 지속하자 마치 대법이 뇌에 새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법리가 끊임없이 나타났는데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처럼 새로웠습니다. 정말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법을 외우면서 예전에 법공부할 때 졸거나 발정념할 때 손이 쓰러지던 부정적인 상태를 돌파했습니다. 일을 서두르고 인내심이 부족하며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하던 집착도 닦아냈습니다. 두려움을 돌파하니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해졌고 직접 대면해서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 과거에 수련할 줄 몰라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이 후회될 정도입니다. 비록 아직 제3강을 다 외우지 못했지만 이렇게 많은 수확이 있으니 수련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외울 것입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에 감사드립니다!

3. 사람 마음을 돌파하고 대면하여 사람을 구하다

예전에는 주로 아는 사람에게만 진상을 알리고 낯선 이에게는 거의 말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법공부와 수련생 간의 교류를 통해 사람을 구하는 일이 시급함을 느껴 반드시 두려움을 떨치고 직접 대면해서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잘 닦는 동시에 밖으로 나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중생들은 모두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식사 후 스쿠터를 타고 나갔습니다. 어느 마을 입구에서 땅을 일구고 있는 70세 정도의 남성을 만나 차를 세우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분은 신을 믿었고 중공 조직인 당·단·대에 가입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하자 그는 좋다고 하며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이렇게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전했습니다. 겨우살이덩굴 밭가에 이르니 50대 여성이 꽃을 따고 있었습니다. 길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냥 지나갈까? 밭까지 들어가야 하고 시간도 늦었는데 집에 가서 밥도 해야 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렇게 더운 날 저분이 저곳에 있는 것은 내가 진상을 알려주길 기다리는 게 아닐까? 놓치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다시 돌아가 밭으로 들어가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녀는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순조롭게 공청단에서 탈퇴했습니다. 그리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여러 번 따라 읽었습니다. 제가 떠날 때 그녀가 “잊지 않게 여러 번 읽어야겠네”라고 혼자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구원받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척 기뻤습니다. 진정으로 수련인의 행복을 느꼈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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