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의 『전법륜법해(轉法輪法解)』를 공부할 때 한 제자가 물었습니다.
“제자: 이 우주 특성 쩐(真)ㆍ싼(善)ㆍ런(忍) 중의 인(忍) 자를 속인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쉬우나 고층차에서 다툼이 없고 모순이 없는데 역시 인(忍)이 필요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주는 무엇 때문에 인(忍)이 필요합니까?
사부: 이 우주는 당신이 이해하는 그런 것과 같지 않으며 그것은 상당히 복잡하고 거대한 체계이다. 유형적으로 존재하는 이런 인류 외에도 무형적인 이런 인류가 존재한다. 우리가 말하는 이 공간, 고층공간에도 그들 그 층차의 문제가 존재한다고 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아주 아득히 먼 곳에 모두 마치 우리 인류와 같은 이런 신체가 존재한다. 이런 색신(色身)이 상당히 많으며 전체 우주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아울러 부동한 층차에는 또 부동한 각자가 있는데 그들도 역시 서로 간에 사회관계가 존재한다. 또한, 더욱 높은 층차의 이런 형식이 존재한다. 당신이 이해한 인(忍)은 사람의 사상기초에 서서 이해한 인(忍)인데, 인(忍)은 또 더욱 높은 내포가 존재한다. 당신에게 이것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당신이 속인의 이런 각도에서 이 대법을 이해한다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전법륜법해-옌지 설법 문답풀이)
사부님의 이 설법 말씀에 대해 저는 그동안 깊이 깨닫지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사악한 당(중공)의 파룬궁(法輪功) 박해가 시작된 뒤로 오랫동안 저는 박해 속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마치 외줄 타기를 하는 것처럼 언제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성도(省都)로 가서 청소 일을 하게 됐는데, 사악은 제가 일하는 곳까지 박해의 손길을 뻗쳐 생활과 업무에 수많은 어려움을 조성했습니다. 사악에게 매수되고 이용당한 사람들은 제가 일하는 환경에서 훼방을 놓았고 제 면전에서 대놓고 나쁜 짓을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 자리에서 지적하고 박해를 폭로했겠지만, 집착심을 다 닦지 못한 상태에서 그렇게 하면 영향과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저는 꾹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매우 분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런 상태가 올바르지 않다는 걸 알기에 계속 발정념을 해서 화나는 생각을 배제하고 원망심을 없애려 했지만, 수련인의 표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곰곰이 안으로 찾아봤습니다. 무엇 때문에, 어떤 집착 때문에 원망이 생겼을까? 그것은 제 생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람의 관념에서 비롯된 분노였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우등생이었지만 가족에게 학대당하고 이용당하며 자랐습니다. 얌전히 말만 잘 들으면 겉으로나마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기에, 어릴 때부터 속으로 삭이며 참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그것이 스스로 고고하다고 여기는 성격이 돼, 저를 괴롭히는 사람과 다투지 않는 것을 세속을 초월한 모습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이런 사상 관념을 수련까지 끌고 왔으면서도 자각하지 못했고, 오히려 제 심성이 높아서 갈등이 생겨도 남들과 똑같이 굴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일념이 있었습니다.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배웠고 부귀영화도 포기했어. 내가 만약 포기하지 않았다면, 감히 나를 해치려는 너희 같은 사람들은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을 텐데….’ 예전에는 이런 생각이 심성이 높은 표현이고 속인과 일반적인 견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속에서 천불이 났던 것입니다. 수련인의 심성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한 게 아니라 속인의 사고방식을 사용한 셈입니다.
더 깊이 파헤쳐 보니 화가 날 때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며 남들에게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남에게 흠잡힐까 봐 두려워했고, 청소가 깨끗하지 않다는 걸 간부가 알면 해고될까 봐 겁을 먹었습니다. 고생과 손해를 보기 싫어하는 안일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어질러 놓으면 치우는 데 시간과 힘을 훨씬 많이 써야 하고, 원래대로 깨끗해지지도 않으니, 고생해서 노동을 바쳤는데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여긴 것입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관념이었습니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
이를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고층차 공간의 인(忍)은 생명이 자신이 있는 층차에서 개인적인 관념을 형성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자기 관념이 생기면 그 층차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게 됩니다. 이 이치를 깨닫고 나니 출근해서 누군가 인위적으로 훼방 놓은 흔적을 봐도 더는 마음이 괴롭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능력껏 열심히 일을 잘 마무리할 뿐, 남들이 미흡한 부분을 보면 어떡하나, 간부가 알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남을 추측하거나 의심하지 않게 됐습니다.
저를 정념으로 가지(加持)해 주신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을 읽으며 자신의 견해를 명확하고 세밀하게 분석하는 모습에서 큰 계발과 도움을 얻었습니다. 덕분에 저의 결점과 부족함을 보게 됐고, 점차 자신감을 얻어 용기를 내 펜을 들고 저의 작은 깨달음을 적어보았습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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