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정분(淨芬)
[명혜망] 나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20여 년의 수련 과정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있었기에 제자는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아래에 나의 수련 중의 단편적인 일들을 써내어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1. 휘날리는 ‘파룬따파하오’ 현수막
2004년 중양절(重陽節), 우리 세 명의 수련생은 묘회(廟會, 전통 민속 장터)가 열리는 산에 가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현수막을 걸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기로 약속했다. 그날 묘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리는 사전에 현수막 한 바구니를 준비했고, 오직 사람을 구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몇 리 밖의 묘회까지 걸어갔다.
가는 길에 우리는 풍경을 감상할 마음도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중생들이 하루빨리 ‘파룬따파하오’ 현수막을 보고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이 주입한 대법 모함 유언비어를 씻어내어 대법의 제도를 받게 되기만을 바랐다. 나뭇가지들도 마치 팔을 뻗어 현수막을 걸어달라고 환영하는 듯했다.
길게 뻗은 가로형 나뭇가지만 보이면 우리는 즉시 현수막을 던져 올렸다. 현수막은 나무에 걸리자마자 바로 펼쳐졌고, 황금빛 현수막이 공중에서 휘날리는 모습은 매우 눈부셨다. 사부님의 도움과 보호 아래 우리는 산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현수막 한 바구니를 전부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관광객들에게 파룬따파 진상을 알렸다.
2. 구치소의 우두머리 죄수 “이 공법은 정말 좋아요, 연공만 하면 온몸에서 열이 나요”
한번은 수련에 누락이 생겨 집의 자료점이 사악에게 파괴됐고 나는 구치소로 납치됐다. 구치소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정오라 경찰들이 모두 식사하러 가고 당직 경찰 두 명만 있었다. 그래서 나를 급히 감방으로 보내지 않았기에 나는 당직 경찰과 형기가 거의 끝나가는 죄수 두 명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즐겁게 들었다.
진상을 듣고 물과 밥을 가져다주던 청년이 밥을 주러 왔을 때 나는 그를 향해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쳤다. 한 어린 여죄수가 소리치지 못하게 하며 그(밥 배달 청년)가 듣기 싫어한다고 말했다. 나는 엄숙하게 말했다. “그가 듣기 싫어하는 것은 그의 일이고 당신이 나더러 ‘파룬따파하오’를 외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청년은 나에게만 물 한 대야를 떠다 주고 그 여죄수에게는 주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당신이 나더러 ‘파룬따파하오’를 못 외치게 하니까 그가 물을 안 주지 않습니까. 자, 내가 좀 나눠주겠습니다.” 여죄수는 무안했는지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중에 이 여죄수는 아무런 이유 없이 소장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워졌는데 손과 발이 연결돼 누울 수도 일어날 수도 없었고 화장실도 갈 수 없어 정말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그녀가 매우 가여워 자발적으로 수발을 들며 화장실에 갈 때 바지를 벗겨주고 올려주었다. 그녀는 매우 감동하여 연신 고맙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고마워하려거든 대법 사부님께 고마워하세요!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서든 좋은 사람이 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先他後我)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후로 내가 진상을 알릴 때 그녀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구치소 안에서 사부님께서는 나의 기억을 열어주셔서 이전에 외웠던 법들이 모두 생각나게 해주셨다. 나는 법공부, 연공, 발정념, 진상 알리기라는 세 가지 일을 했다. 밤에는 당직 죄수와 약속하여 시간이 되면 나를 깨워 발정념과 연공을 하게 했다. 당직 경찰은 순찰하며 내가 연공하고 발정념하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체하며 단 한 번도 막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마침 내가 있던 감방의 우두머리 죄수가 당직을 섰는데 그녀가 나를 깨워 연공하게 하더니 본인도 나와 함께 연공을 시작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공은 정말 좋아요. 연공만 하면 온몸에서 열이 나요.”
3. 전직 마을 서기가 본명으로 탈당하다
어느 날 장터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삼륜차에 앉아 사람을 기다리는 한 남성을 보았다. 내가 다가가 물었다. “‘파룬따파하오’라고 들어보셨나요?” 그가 “못 들어봤소”라고 하기에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당신은 공산당원들처럼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구려!”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다릅니다!” 그가 “뭐가 다르오?”라고 묻기에 내가 말했다. “공산당은 당신들 당원에게 생명을 바쳐 그들의 독재 정치 조직을 지키라고 합니다. 당원들이 천하를 치면 그들은 복을 누립니다. 우리 파룬따파 제자들은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당신들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이는 당신들을 구하고 다른 사람이 잘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가 “그렇긴 하구려”라고 말하자 어둡던 얼굴이 펴졌다.
나는 또 그에게 공산 악당이 역대 운동을 통해 8천만 중국인을 해치고 파룬따파 제자의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취한 일 등을 알려주었다. 입당할 때 했던 독한 맹세는 반드시 응험될 것이니 마음으로 탈퇴하여 맹세를 취소하고 평안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늘이 중공을 멸할 때 당신이 그들의 희생양(순장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알아듣고는 “나는 어느 마을 사람인데 몇 년 전까지 마을 서기였소”라며 본명으로 탈당했다.
4. 생사의 큰 재난 속에서 사부님께서 나를 거듭나게 하시다
2019년 6월 어느 날, 나는 삼륜차를 몰고 손녀를 마중하러 갔는데 차에는 손자도 타고 있었다. 마을 서쪽에는 매우 넓은 지방도가 있는데 나는 도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려고 먼저 남쪽에 차가 있는지 살폈다.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중간 분리대까지 운전해 간 뒤 북쪽에 차가 있는지 살폈다. 차가 없기에 막 앞으로 가려는데 어디선가 차 한 대가 나타나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처음에 그 차는 앞머리가 서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운전자가 급히 방향을 틀더니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내 삼륜차를 들이받아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가게 했고 바퀴 하나가 빠졌다. 나는 당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잠시 후 일어나보니 왼쪽 손목 아랫부분이 움직이지 않았고 뼈가 겹쳐져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손자가 삼륜차에 타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손자가 스스로 나에게 달려왔다.
이때 자녀를 마중 나온 사람들이 많아졌고 누군가 120 구급차를 불렀다. 당시 나는 의사가 팔만 맞춰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의사들은 수술해서 철판을 박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필요 없습니다”라고 하자 나중에 의사가 내 혈당이 매우 높다며 수술을 못 하겠다고 했다. 나는 구세력이 나를 박해하기 위해 안배한 일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안으로 찾았다. 아들네 집에 아이가 많아(세 명인데 초등학교 2학년, 유치원생, 그리고 두 살짜리까지 낮밤으로 혼자 돌보느라 법공부가 부족했다) 찐빵을 만들 시간이 없어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가서 찐빵과 간식을 사 먹었고, 발정념을 할 때도 마음을 고요히 하기 어려웠던 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구세력에게 허점을 찔린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자비로 나를 보호해주셨기에 이토록 심각한 교통사고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역사적으로 빚진 목숨의 빚을 갚도록 도와주셨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차주를 곤란하게 하지 않았고 다음 날 바로 남편과 함께 퇴원했다. 나중에 한 전문가를 찾아가 팔을 잡아당겨 뼈를 맞췄다.
나는 차주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당·단·대 조직 탈퇴)를 시켜주었다. 비록 차주의 전적인 과실이었지만 우리는 그에게서 단돈 1위안도 받지 않았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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