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2023년 가을, 저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경찰에 납치됐습니다. 그 이전에 이미 두세 달 동안 감시와 미행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법 위에 있지 못해 수련생들의 일깨움과 당부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주의식(主意識)이 강하지 못했고, 대법서적을 진정으로 아끼지 못했으며, 사부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법을 공경하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이익심, 일을 하려는 마음, 색욕, 이기심 등 각종 사람 마음이 있어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왔습니다. 결국 저는 불법 판결을 받아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 불법 감금됐습니다.
아래에 이 경험과 그 과정에서의 체득을 적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람 마음이 큰 잘못을 빚어내다
불법 판결을 받고 막 입감됐을 때, 저는 먼저 성(省) 여자감옥 집훈대 2조에 배치됐습니다. 그 안에서는 어떤 수련생들이 ‘4서(四書, 네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쓰도록 강요받았고, 쓰지 않으면 맞았습니다. 때로는 한밤중에도 사람을 때리는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어떤 수련생들은 ‘4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제로 ‘마좌(碼坐, 작은 의자에 부동자세로 앉기)’를 당했는데, 엉덩이가 다 짓무를 정도였고 밤에는 아파서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사악의 이런 박해 앞에서 저는,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이 대법을 대표하며 사람들이 파룬궁이 어떤 것인지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4서’를 쓰지 않았고, 그들은 저를 매일 강제로 마좌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앉는 작은 의자는 높이가 약 25cm, 너비가 약 35cm였고, 두 손은 허벅지 위에 올린 채로 허리와 등을 곧게 펴고 앉아야 했으며 눈도 감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전 4시부터 밤 9시까지, 식사와 화장실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마좌를 했고, ‘전향’하지 않으면 계속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새로 입감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키기 위해 감옥에서는 가족이 옷을 보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같은 감방 전체를 연좌시켜 함께 마좌하게 하며 증오를 선동하고, 모두가 함께 파룬궁수련생을 공격해 ‘전향’을 강요하게 했습니다. 동시에 대법을 비방하는 영상물을 강제로 시청하게 했는데, 매일 오전 8시 반부터 11시까지,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사악한 내용을 머릿속에 억지로 주입했습니다. 또 ‘주간 기록’을 쓰게 했는데, 이는 영상을 보고 느낀 점과 인식을 적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상 보고서’도 쓰지 않았고 ‘주간 기록’도 쓰지 않았으며, ‘전향’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감시 인원은 감방 전체가 저와 함께 마좌하도록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 손을 붙잡고 울며 말했습니다. “청산(靑山)만 있으면 땔감 걱정은 없다고 해요(역주: 훗날을 기약하며 우선 목숨을 부지하라는 뜻).” 또 어떤 이는 “이제 그만 버티세요. 제가 내의 하나 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내의는 사치품에 해당했지만 저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제 머릿속에는 법이 없었고 사람 마음이 너무 많았습니다. 두려움, 걱정하는 마음이 매우 무거워 정신적 압박이 컸고, 몸도 거의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생각이 바르다고 여겼지만, 속인의 방식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여러 사람 마음과 인간적인 정(情)에 압박을 받아 정념을 잃고, 본심이 아니게 ‘4서’를 쓰고 말았습니다. 이는 큰 잘못이었고, 대법에 먹칠을 했으며 제 자신에게도 지울 수 없는 오점과 치욕을 남겼습니다.
그 이후로 제 상태는 매우 나빴고, 마음이 억눌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습니다. 저는 깊이 후회했습니다. 사부님께 정말 죄송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가장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2. 감방 두목의 악행을 제지하다
저는 제가 잘못했음을, 법에서 벗어났음을 알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수련했는데, 특히 두려움의 마음을 중점적으로 닦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두려움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때는 경찰이 오기만 해도 무서웠고,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몸이 떨렸습니다. ‘왜 이렇게 두려운가? 질문이 두려운가? 욕을 먹는 게 두려운가? 대법제자는 두려움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운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된 일을 할 수 있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기연을 잃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사람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생사의 고비이다.”[정진요지3-생사의 고비(死關)에서 벗어나라]
그래서 저는 두려움의 마음을 닦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방 안의 방장 겸 감옥 두목은 쑨(孫) 씨라는 사람이었는데, 50대였고 사형유예로 20년 넘게 수감 중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녀를 무서워했습니다. 그녀는 매일 눈을 뜨자마자 욕을 시작했는데, 사부님을 욕하고 대법을 욕하며 수련생들을 욕했습니다. 게다가 감방에서는 매끼 밥이 한 대야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그녀가 먼저 골라 절반을 덜어낸 뒤에야 나머지를 나눠 주었으니 모두가 배불리 먹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이곳에서 마음대로 악행을 계속하게 둘 수 없고, 이곳에서 대법을 욕하게 해서도 안 된다. 이는 대법에 죄를 짓는 것이다.’
어느 날 그녀가 또다시 대법을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념을 발하며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들었다면 나와 관계가 있고, 여기에는 내가 수련해야 할 것이 있다. 그녀를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보고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이 환경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계속 욕하려면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말고, 한 사람만 지정해서 욕하세요. 파룬궁을 욕하지 마세요. 파룬궁이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했나요? 당신이 스스로 파룬궁수련생 감방에 오겠다고 한 것 아닌가요? 이 감방이 싫으면 나가면 됩니다. 신청서를 써서 다른 곳으로 가세요. 여기서 혜택을 누리면서 이렇게 사람들을 대하는 게 말이 됩니까?”
감방의 감시원, 방장, 두목들은 입감되기 전 모두 중공 악당의 부패 관리들이었습니다. 국장, 은행장, 현장, 서기 같은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작업반에 내려가지 않기 위해 최소 20만 위안(약 4천만 원) 이상을 써서 이런 감방으로 왔는데, 파룬궁수련생이 있는 감방만은 작업반에 내려가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제가 이렇게 말하자 더 이상 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은 제게 엄지를 치켜세우며 제가 잘했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했고, 그녀가 대법에 대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제지했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방의 감시원 류(劉) 씨는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한 박해가 매우 심했고, 조금만 스쳐도 욕을 퍼부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우리 방의 방장에게 말했습니다. “류 씨에게 전해 주세요. 다시 대법을 욕하고 수련생을 욕하면, 제가 그녀를 때릴 겁니다.” 방장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저는 말했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어떻게 때리는지 보여주겠습니다. 3개월이면 그녀를 얌전히 만들 겁니다. 매달 한 번씩 때릴 겁니다.” 감옥에는 싸움을 하면 점수를 깎고, 매점 물품도 못 사고, 집에 전화도 못 하고, 감형도 안 되는 규정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것 상관없습니다. 전화도 안 하고,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녀가 다시 대법을 욕하면 저는 때릴 겁니다.” 방장은 저를 한번 보더니 아무 말 없이 가버렸습니다.
다음 날 복도에서 류 씨를 마주쳤는데 그녀는 웃으며 제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다시는 욕을 하지 않았습니다.
3. 법을 외워 기적이 나타나다
2023년, 감옥은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한 신체적·정신적 탄압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마좌는 새벽 4시부터 밤 12시까지 이어졌습니다. 원래는 밤 9시가 되면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9시 이후 감시 카메라에 보일까 봐 사람들을 침대와 침대 사이의 빈 공간에 숨겨 놓고, 자정까지 계속 마좌를 시켰습니다.
한동안 이런 박해를 겪고 나니, 저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말만 겨우 기억할 뿐, ‘논어(論語)’조차 외우지 못하게 됐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악을 이기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감방을 떠나, 법 암기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법을 외우려는 마음을 보시고 도와주셨습니다. 12월에 저는 7조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한 수련생이 ‘홍음(洪吟)’, ‘논어’ 등 사부님의 시와 경문 60~70편을 외우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마좌를 하면서부터 법을 외우기 시작했고, 한 편을 세 번씩 외웠습니다. 온 마음이 법에 집중되니 그 고통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작은 의자는 매우 낮았을 뿐 아니라, 위에 5마오(毛, 중국 화폐 단위)짜리 동전 크기의 돌기들이 가로로 7개, 세로로 5개, 가운데는 비어 있는 상태로 모두 34개가 박혀 있어, 그 위에 앉는 것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어떤 수련생들은 살이 찍혀 상했고, 어떤 이들은 뼈가 아파 발뒤꿈치까지 통증이 이어져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법을 외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손과 다리가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졌고, 이후에는 감각이 사라져 마치 의자도 없는 것처럼, 공기 방석 위에 앉아 있는 듯 매우 편안해졌습니다. 그렇게 열흘 넘게 앉아 있었습니다. 나중에 감방에서 방석을 깔라고 했지만, 저는 깔지 않았고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고, 법을 외우겠다는 신념 또한 한층 더 확고해졌습니다.
4. 누구도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어
2024년, 법원 산하의 감형(減刑) 전담 기관에서 사람이 와서 저를 불러 심문했습니다. 원래는 ‘청문회’라고 불렸습니다. 경찰은 저에게 감형을 신청하라고 하며, 그러면 세 달 반을 앞당겨 집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만약 ‘반성문’을 쓰고 ‘전향’하면 여덟 달이나 앞당겨 집에 갈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또 ‘유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라’며 벌금 납부 등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매일 법을 외우고 정념을 발했습니다.
2024년 10월, 감옥에서 서류 보고를 담당하는 경찰이 저에게 “당신 감형 보고를 올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감형 역시 ‘반성’ 같은 글을 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보고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에게 다시 바른 길로 돌아올 기회를 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가짜로 써낸 ‘4서’를 전부 무효로 하는 ‘엄정성명(嚴正聲明)’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매우 복잡했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중생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집에 가기 위해서인가? 정법에서 떨어질까 두려워서인가? 아니면 사부님께 죄송해서인가?’ 여러 번 깊이 생각한 끝에, 저는 바른 길을 가는 것은 중생을 위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제가 잘못하면, 중생들 또한 모두 파괴될 것입니다. 중생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고되고 어려워도 끝까지 가야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과 저를 기대하는 중생들에게 죄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목표가 분명해지자 저는 매일 법을 외웠습니다.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전법륜)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저는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加持)해 달라고 청하며, 반드시 이 고비를 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법을 외웠습니다. 느끼기에, 법의 한 문장마다 하나의 경지였고, 다시 외우니 글자 하나하나가 하나의 경지였으며, 심지어 문장부호까지도 그랬습니다. 그 며칠 동안 저는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꿈에서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저를 향해 짖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볍게 발을 한 번 구르자, 그 강아지는 몸을 돌려 도망갔습니다. 저는 이제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모든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고, 이 한 생각을 굳게 지켜 흔들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시 공기 방석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몸의 감각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제 심성이 기준에 도달했다고 느꼈고, 이제 ‘엄정성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한 수련생이 저를 재촉하며 말했습니다. “빨리 ‘엄정성명’을 쓰세요. 안 쓰면 곧 서류를 올리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안 됩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의 일깨움이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엄정성명’을 써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서류를 담당하는 경찰이 자료를 내라고 했지만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보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엄정성명’을 작성해, 위심으로 썼던 모든 ‘4서’를 전면 무효로 선언했습니다. 조장이 그것을 보고 몹시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이 감방에서 네가 제일 튀는데, 또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는구나.” 저는 말했습니다. “이건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 가장 바른 일입니다.” 조장은 5~6일 동안 저를 불러 이야기했지만 저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정념을 굳게 지켰습니다.
경찰도 저를 불러 말했습니다. “여기 있는 게 괜찮지 않나요?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왜 이런 걸 쓰는 건가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수련한 지 여러 해가 됐고, 대법 속에서 많은 이로움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못했고 길을 잘못 갔습니다. 사부님께 죄송하고, 대법에 죄송합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누구도 제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제 생명은 우주 대법이 만들어 준 것이니 저는 대법과 사부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모욕을 당했을 때 자식이 된 사람이 한마디 정의로운 말을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여기까지 말하자 저는 목이 메어 눈물이 흘렀습니다. 경찰은 말했습니다. “결정은 당신이 하세요. 당신이 그렇게 굳게 나온다면 우리도 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집에 돌아갈 때 ‘610’에서 당신을 찾을 겁니다.”
저는 웃었습니다. 출옥하기 전에 제 잘못을 씻어낼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뻤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웃다니, 참 담이 크네요. 다시는 여기 오지 마요. 나는 다시는 여기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여기서 저를 다시 보지 못할 겁니다.” 그 순간, 제 몸에 있던 좋지 않은 물질이 ‘싹’ 하고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고, 저는 즉시 몸과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머릿속에는 온통 정념뿐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몸의 어두운 물질을 제거해주셨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제 세계 속의 중생들이 모두 환호하는 것을 느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함을 사부님께 올렸습니다.
5. 반박해 속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다
2025년 7월 말, 파룬궁수련생 30명이 들어왔고, 그중 7명의 수련생이 우리 감방으로 배정됐습니다. 감옥에서 감방을 다시 조정하면서 저는 다른 조로 옮겨졌습니다. 이곳에는 5명의 수련생이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매점 물품을 주문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함께 교류한 끝에, 조장이 경찰을 찾아가 따져 묻도록 했습니다. “왜 안 됩니까? 매점 물품을 주문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며, 개인의 권리는 누구도 박탈할 수 없습니다.”
8월 12일 오후, A 수련생이 옷에 붙어 있던 수형자 명찰을 떼어냈습니다. 조장이 경찰을 찾아가 “A가 앞뒤 명찰을 모두 떼어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 4~5명이 와서 A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지만, A는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매점 물품 주문도 허락하지 않자, A는 “반드시 주문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담당 감시자는 “담당 경찰이 연가 중이라 복귀하면 보고한 뒤에 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권리이므로 사악한 쪽에 숨 돌릴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 됩니다. 교정과를 찾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나가서 모두를 이끌고 ‘파룬따파하오!’를 외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A 수련생이 “파룬따파하오!”, “불법으로 구금된 모든 수련생을 즉각 석방하라!”고 외쳤습니다. 경찰 4~5명이 올라와 A를 복도로 들어 올려 나갔습니다. 저는 수련생이 박해받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뛰쳐나가 큰소리로 “우리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라고 외쳤고, 저 역시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3~4명이 와서 저를 감방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경찰이 “방금 누가 외쳤느냐?”고 묻자, 문 근무자가 “○○입니다”라고 했고, 경찰은 “그 사람이야?”라고만 말하고는 아무 말 없이 떠났습니다.
A는 집훈대 5조로 옮겨졌고, 3명의 감시자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바닥에 앉힌 채 3명이 둘러싸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후 한 수련생이 A에게 위층 침대 판자에 사부님을 모함하는 글이 오래전부터 남아 있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A는 즉시 올라가 물로 그 글자를 닦아냈습니다. 담당 경찰이 이를 보고 “닦아라, 닦아”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B 수련생은 2023년 5월에 수감됐는데, 정념이 매우 강해 ‘4서’ 등 어떤 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바로 장시간 앉혀두는 처벌을 받았고, 대법을 모함하는 영상을 보게 했습니다. B는 “파룬따파하오!”를 외치며 ‘논어’와 ‘홍음’ 등을 큰소리로 외웠습니다. 감시자 4~5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그녀를 눌러 넘어뜨리고 걸레로 입을 막았습니다. B는 걸레를 떼어내고 계속 외쳤고, 감시자는 “또 외치면 화장실 걸레로 막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경찰이 1시간가량 그녀와 면담을 했고, B는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 결과 더 이상 영상을 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다시 영상을 틀었고, 그녀를 밖에 서 있게 했습니다. B는 대법 노래를 부르며 사람을 만날 때마다 진상을 알렸습니다. 다시 장시간 앉혀두려 했으나 다음 날 그녀는 더 이상 앉지 않았고, 감시자들이 어찌할 수 없어 결국 간섭하지 않게 됐습니다.
이후 들은 바로는, 어떤 조의 수련생들은 ‘4서’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달 매점에서 100위안어치만 주문할 수 있게 제한됐고, 빵·장류·소시지·라면 네 가지만 주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매달 650위안까지 주문할 수 있었습니다. 수련생들이 함께 교류하며, 전액 주문은 우리의 권리이고 임의로 박탈할 수 없으며, 비인도적인 규정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뜻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함부로 박해당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권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이러한 반박해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감방 안에서 형성됐습니다.
맺음말
어디에 있든지 대법제자는 마땅히 당당하게 대법을 증명해야 합니다. 감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법제자들이 ‘파룬따파하오!’, ‘천멸중공(天滅中共, 하늘이 중공을 멸한다)!’ 등을 외치는 것입니다. 한 번 외치면 다른 공간의 사악한 것들을 해체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층면에서도 매우 큰 충격을 줍니다.
현재 매일 저녁 7시부터 7시 반까지 뉴스를 보게 합니다. 대법제자들은 6시 50분이면 미리 자리에 앉아 자신을 정리하고, 7시가 되면 발정념을 시작합니다. 어떤 내용이 방송되는지 전혀 들리지 않고, 마음이 고요해진 뒤에는 손발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며, 40~50분의 시간이 막 앉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집에 돌아가기 전, 한 수련생이 저에게 “혹시 아쉬움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쉬움은 없습니다.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당당하게 했고, 대법에 먹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귀가하기 전, 감옥에서는 단체 사진에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감방 안의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고, 제 이름이 불리자 모두가 흥분하며 환호하고 축하했습니다. 그때 저는 단호하게 “서명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떠들썩하던 감방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저는 죄가 없습니다. 저는 수련이 죄라는 것을 영원히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죄수도 아니므로 애초에 서명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장이 “서명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갑니다”라고 하자, 저는 “누구도 제가 집에 가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제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지 그 누구도 결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출옥할 때, 현지 ‘610’ 인원이 왔습니다. 제가 반발했다는 말을 듣고는 “우리는 관여하지 않겠다”라고 하며, 곧바로 감옥을 찾아와 이 ‘반발’의 책임을 감옥에 떠넘겼습니다. 경찰은 “‘610’이 우리에게도 와서 우리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우리도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속에서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정념정행(正念正行)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30/50381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30/50381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