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우리 지역에는 7~80대의 노년 수련생들이 비교적 많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법을 얻은 지 2~30년 된 대법제자들입니다. 걸어오는 과정에서 모두 법을 실증한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배울 만한 반짝이는 장점들을 지니고 있으며, 더욱이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信師信法) 소박한 마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라는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정법 수련의 표준이 갈수록 엄격해지고 요구가 갈수록 높아짐에 따라,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노년 수련생들은 착실하게 수련해 온 기초와 개인의 수련 상태 등 여러 방면의 원인으로 인해 수련 과정에서 일부 문제에 대한 이해와 방법에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래에 수련생들과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단지 현 단계에서 개인의 약간의 인식만을 대표할 뿐이며,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즉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1. 개인 수련의 각도에서 가정의 갈등을 대하는 문제
한 노년 수련생의 딸이 언행에서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어, 다른 수련생들이 그 딸을 우연히 만나거나 그 수련생 집에 갈 때마다 딸이 수련생들에게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이 여러 차례 그 노년 수련생에게 딸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 수련생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걔가 우리 심성을 제고시켜 주는 게 아니겠어요?” 여기서 그 노년 수련생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수련생 자신의 각도에서 분석해 보면, 딸의 태도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으며, 수련인으로서 딸과 일반적으로 다투지 않는 그런 높은 자세를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는 과거 개인 수련의 각도에 머문 하나의 인식일 뿐이며, 오히려 우리가 자신을 더 깊이 해부하는 데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도 가끔 수련생들 사이에서 무슨 덕을 잃었다, 내게 덕을 주었다고 하는 화제가 오르내리는데 지금 우리의 수련은 단순히 개인 제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위대한 호칭을 부여하셨고, 그렇다면 우리 역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지닌 중대한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사자인 노년 수련생은 딸이 온종일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바로 자기 자신에게 공을 들이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딸의 어려움을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의 수련은 타인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반드시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잘하지 못했고, 가정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딸이 자신에게 불만을 품게 된 것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심성이나 행동상의 허물로 인해 가족이 수련생들에게 반감을 갖게 하거나, 심지어 대법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점을 인식한 뒤에는 선의로 딸과 소통하고, 진심으로 딸에게 사과하며, 더 중요하게는 앞으로 어떻게 올바른 길로 돌아가고, 어떻게 잘해 나가며,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의 언행과 실제 행동을 통해 대법제자의 풍모를 보여 주어 가족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중생들까지도 대법을 인정하게 하고, 그로 인해 대법의 제도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목표를 바탕으로 실천해 나간다면 기점이 바르고 방향이 분명해져, 많은 일이 자연스럽게 잘 풀릴 것입니다.
2. 몸에 나타난 바르지 않은 상태를 분명히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돌파하지 못하는 문제
일부 노년 수련생들은 몸에 바르지 않은 상태가 나타난 채 이미 오랜 시간이 지속됐습니다. 이로 인해 나가서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수련생은 몹시 어렵게 느끼며 무의식중에 먼저 몸 상태를 앞세워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본래 자신이 맡아야 할 사람을 구하는 일도 일부 중단하게 됩니다. 또 어떤 노년 수련생은 오랫동안 지속된 신체의 바르지 않은 상태를 소업(消業, 업을 소멸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몸이 좋아지면 다시 나가서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소업이라고만 인식하다 보니 수련생 자신이 묵묵히 감내하는 비중은 커지고, 자발적으로 안으로 찾으며 자신이 감당하지 말아야 할 부분을 제거하는 노력은 적어지며, 심지어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몸이 좋지 않은 상태가 이어지는 과정이 길어질 수 있고, 그 속에서 수련이 매우 고되고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15-2019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만약 대법제자가 어떤 마난이나 소업에 부딪힌다면 그는 틀림없이 원인(前因)이 있는데, 자신에게서 좀 찾아보라. 그렇다, 찾은 후에 즉시 잘하면 그 정황은 즉시 좋은 쪽으로 향하고, 바른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단순한 개인 수련, 소업을 위해 소업을 하던 그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구세력과 사람을 두고 다투며 중생을 구하는 관건적인 시점에 있으며, 그것들은 이미 우리가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시선을 자신에게만 고정한 채 중생의 안위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일이든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제때 자신에게서 찾아 바로잡는 동시에, 구세력이 우리에게 가하는 교란하고 박해하는 부분을 타파해야 합니다.
그 밖에도 자신의 몸 상태를 마주할 때 어쩔 수 없다 하지 말고, 중요하게 보지 말며, 순순히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 속에 빠져들수록 이러한 가상은 자신의 마음을 따라 더 크게 진화됩니다. 유일한 가장 좋은 방법은 대법제자의 정념으로 그것을 돌파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체 상태에 비춰 보면서(물론 수련생들 모두 침상에 누워 움직일 수 없는 정도에는 이르지는 않았음), 한 번에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면 오늘은 나가서 소책자 한 권을 배포하고 스티커 한 장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것에 대한 하나의 부정이 되며, 이미 한 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그렇게 내일은 두 권, 세 권을 배포할 수 있고, 많은 수련생의 병업 상태는 바로 나가서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질 것입니다.
3. 사부님 보호에만 치중하고, 모든 일에는 우연이 없다는 점을 간과한 문제
어떤 노년 수련생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을 만나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스쿠터를 타다가 사람과 부딪혀 스쿠터는 망가졌지만 본인은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그때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어떤 노년 수련생은 비 오는 날 스쿠터를 타다가 실수로 넘어져 비탈길로 미끄러졌으나, 다시 기어 올라온 뒤에도 무사했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렸습니다. 또 어떤 노년 수련생은 몸에 예상치 못한 작은 상처를 입었지만,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 결과 수련생의 정념 하에 정말로 아무 일도 없게 된 등등의 사례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대법제자는 수련에 입문한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떠날 수 없으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원한을 결산해주셨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해소해주셨는지를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 공간에서 드러나고 우리가 실제로 마주했으며, 더구나 자신에게서 일어난 일이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는 것이지, 그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감사만 떠올리거나 이 일에서 자신이 고비를 넘겼다고 여기며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겉으로 드러난 일을, 즉 표상을 따라 안으로 찾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왜 이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이 일이 생긴 것이 과연 우연일까? 이것은 나에 대한 하나의 일깨움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은 나에게 무엇을 깨우치라고 보여준 것일까? 그동안 내 수련 상태에 허점이 있는 건 아닐까? 나의 어떤 사람 마음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바로잡고 어떻게 더 잘해야 할까?’ 자신에게 몇 개의 물음표를 더 던져보고, 자신에게 몇 번 더 왜인지 묻고, 생각의 흐름을 따라 차분히 정리해 내려가다 보면, 마침내 수련 문제에 대한 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또한, 주변의 노년 수련생들과 교류할 때 적지 않은 노년 수련생들이 늘 사건 자체만 놓고 말하며, 속인의 이치로 설명하고 대입한다는 점입니다. 일이 닥쳤을 때, 겉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며 안으로 찾으라고 일깨워주면, 수련생은 난처하게 “못 찾겠어요” 혹은 “찾을 줄을 몰라요”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든 노년 대법제자는 수련에 입문한 이래 지금까지 《전법륜(轉法輪)》을 적어도 수백 번, 수천 번은 읽었을 것이고, 각지 설법 수십 권도 매년 최소한 한 번은 체계적으로 다 학습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부님의 간곡한 가르침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각자 서로 다른 층차에서 정진하는 데 충분한 지침이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주변 수련생들에게서 나타난 몇 가지 상태를 직간접으로 보고 들으며 마음이 다소 조급해져 서둘러 글을 적게 됐으며, 수련생들과 함께 토론하여 함께 제고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정법 노정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수련생 모두가 자신의 수련을 중시하고 손을 맞잡아, 이 찰나처럼 지나가는 위대한 역사적 순간을 함께 걸어가며 중생을 이끌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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