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했던 가게가 북적거리게 되기까지

글/ 중국 대법제자 한매(寒梅)

[명혜망] 제 남편은 아주 미성숙한 남자입니다. 성격이 매우 비정상적이라서 자주 다른 사람과 다툽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들으면 소리를 지르며 입에 담기 힘든 말을 내뱉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가게를 열어도 손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진선인(眞·善·忍)’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고 점차 주변 환경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자 썰렁했던 제 가게가 점차 북적거리게 됐습니다.

1. 썰렁했던 가게가 북적거리게 되기까지

남편과는 재혼 가정입니다. 남편의 고향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나중에 남편 고향에 식료품 가게를 열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가게는 매우 썰렁했습니다. 물건을 사는 것은 고사하고 제가 먼저 말을 걸어도 사람들은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야 남편이 이웃들과 말도 섞지 않는 원수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대여섯 번씩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고 사람들도 차츰 저에 대한 인식을 바꿨습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고 나중에는 이웃 마을 사람들도 우리 가게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가게는 이제 정말 북적거립니다. 제가 뽑은 국수나 잡곡 가루 등에는 가짜를 섞지 않고 정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제가 누른 국수라야 진짜 국수 맛이 난다고 말합니다. 물건을 팔 때도 무게를 속이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주려 하지 절대 덜 주지 않습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쌀을 사 갔는데 그녀의 남편이 밖에서 0.2근이 모자란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무슨 상황이든 상관없이 반드시 보충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가게에 왔을 때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 남편이 쌀이 0.2근 모자란다고 하던데 제가 고의로 그런 게 아니에요. 아마 저울 문제일 수도 있으니 다시 채워드릴게요.”

2. 집을 짓는 과정에서 세 번이나 양보한 대지

남편 고향에 집을 지으면서 대지를 세 번이나 양보했습니다. 첫 번째는 기초를 다 닦았을 때였습니다. 사촌 형님(남편의 사촌 형수)이 자기네 공간을 너무 적게 남겼다며 트집을 잡았습니다. 우리 두 집 모두 생산대의 집을 산 것이라 경계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편을 설득해 우리 쪽으로 50cm를 옮기자고 했습니다. 기초를 이미 닦았기에 더 많이 옮길 수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건물이 올라가고 지붕을 올릴 때였습니다. 형님이 또 안 된다며 처마를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거푸집 사장님에게 뒤로 물러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장님은 가능은 하지만 철근 끝이 남을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후 형님에게 말했습니다. “화내지 마세요. 우리 처마 안 낼게요.” 그러자 마을 서기가 “작은 처마 정도는 내게 해주자”라고 말하며 마무리됐습니다. 이때 거푸집 사장님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사장님은 “이렇게까지 하시다니 파룬궁수련생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시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고 진상 자료도 많이 받아 갔습니다.

세 번째는 담장을 쌓을 때였습니다. 사람 키만큼 쌓았을 때 형님이 또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좋게 말해도 소용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남편을 설득해 담을 헐고 우리 쪽으로 더 물러나 쌓았습니다. 일하던 사람들은 “당신은 정말 억울함을 잘 참는군요”라고 했고 마을 사람들도 “파룬궁수련생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 말도 섞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형님에게 그만 좀 하라고 말릴 정도였습니다. 제가 형님에게 “화내지 마세요. 이런 일로 화목을 깨뜨릴 순 없잖아요”라고 말하자 형님은 “당신 같은 좋은 사람이 어쩌다 저런 남자에게 시집을 왔어”라고 말했습니다.

3. 남편의 원수인 큰형님을 감동하게 해

남편과 원수처럼 지내는 큰형님(큰동서)이 한번은 기계를 빌려 옥수수를 수확했습니다. 형님은 사람들에게 자기 땅은 2.5무(畝)이고 우리 땅은 0.9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0.8무라고 했습니다. 땅 면적을 적게 말해야 품값을 적게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형님네 땅은 최소 3무는 됐습니다. 당시 제 마음도 조금은 편치 않았습니다. 밀을 심을 때 형님은 우리집이 자기 땅을 침범했다고 우겼습니다. 사실 이 땅은 수년간 농사지어온 곳이었습니다. 저는 수련인이기에 남편을 설득해 1.5척을 양보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형님과 남편은 매년 경계 문제로 다퉜습니다. 저는 비록 관여하지 않았지만 수련인으로서 분명 저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옥수수를 수확할 때 가졌던 편치 않았던 마음이 부른 것은 아닐까 하고 ‘안으로 찾았습니다’. 저는 선한 마음으로 형님께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형님이고 저는 당신을 존중해야 합니다. 전통문화에도 형님을 어머니처럼 모신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형님이 경계라고 하는 곳을 경계로 삼겠습니다.’ 제가 이런 선한 생각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형님이 돌아와 경계를 정리했다고 했습니다.

또 한번은 형님과 남편이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욕을 했습니다. 남편이 형님의 약점을 들춰내자 형님은 저주를 퍼부으며 제 아들에게까지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보다 못해 혀를 찼지만 저는 그녀를 다르게 대하지 않았고 계속 좋게 말해줬습니다.

남편 생일에 다른 형제들을 불러 만두를 먹기로 했는데 형님만은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후에 남은 만두소로 찐빵을 만들어 형님께 넉넉히 가져다줬습니다. 이를 안 남편은 저에게 크게 화를 냈습니다.

형님의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아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숙모님은 정말 좋은 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한번은 외지에서 온 사업가가 저희 가게에 왔는데 형님이 그에게 저를 소개하며 “우리 아이 숙모인데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야.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설 전에 제가 너무 바쁘자 형님이 먼저 나서서 제 빨래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형님이 병이 났을 때 저는 여러 번 병문안을 가고 국수 등을 챙겨줬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9자 진언을 외우게 하고 사부님의 설법도 들려주었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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