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5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올해 76세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처님의 존재를 믿었고 인과응보를 믿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중국공산당(중공)이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사람들의 신앙을 탄압하며 무신론이 판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세월 속에서도 신에 대한 저의 공경과 하늘에 대한 경외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통문화 이념은 제 뼛속 깊이 뿌리내려 제 처세관과 사물을 처리하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줬습니다.
생명의 서광
1994년 저는 폐에 병이 생겼습니다.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의(中醫)와 한약, 민간요법도 써봤지만 병세는 차도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전에 앓던 여러 질병이 한꺼번에 겹쳐 저는 더는 버틸 수 없게 됐고, 결국 군 병원에서 일하는 제수씨에게 부탁해 전문가의 회진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폐에 종양이 있어 호흡 곤란을 일으키고 폐가 부어올랐다며 등 뒤쪽에서 많은 고름을 빼냈습니다. 입원할 돈이 없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의사는 안정이 필요하다며(사실은 죽기를 기다리라는 뜻으로 악성 종양임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뜻에 맡기라고 했습니다.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서 저의 가정형편을 알고는 파룬궁을 소개해 줬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라고도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진선인(眞·善·忍)’이라는 세 글자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생각건대 저는 대법과 인연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병을 고치려는 생각도 못 했는데 어느새 몸이 점차 호전됐습니다.
몇 차례 큰 신체 정화 과정을 겪으며 저는 생사를 내려놓았고 숨만 붙어 있다면 반드시 끝까지 배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수많은 굴곡과 풍파의 시련을 거쳐 사부님의 인도와 가르침 하에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시련 속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제가 앓던 병은 친척과 친구들이 다 알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파룬궁을 배우고 나서 목숨을 위협하던 병이 치료도 없이 나은 것을 보고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전해 온 지역에 소문이 퍼졌으며 현지에서 대법을 널리 알리는 효과를 일으켰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때문에 저를 주시했고 저는 어디를 가든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습니다.
1999년 장쩌민이 장악한 중공이 대법을 박해하자 저는 중점 인물이 돼 가장 먼저 탄압받았습니다. 여러 차례 납치돼 감옥에 들어갔고 강제 세뇌와 전향을 강요받으며 수십 가지 고문을 겪었습니다. 그야말로 죽었다 살아나는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시종일관 한마디만 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감옥이라는 검은 소굴에서 뛰쳐나와 비록 유랑 생활을 할지언정 저는 대법 실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며 대법에 대한 사악의 유언비어와 먹칠을 폭로했습니다.
이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저에 대한 괴롭힘과 협박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른바 ‘민감한 날’에는 더욱 심했습니다. 박해를 반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상을 알리는 것입니다. 저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현지 주민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제가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에게 선악에는 응보가 있고 신앙은 무죄이며 대법을 선하게 대하면 복을 받고(자신에게 평안을 줄 수 있으며…), 대법제자의 공동 노력 하에 진상이 유언비어를 파헤치고 사악을 해체하며 세인을 구해 환경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알려줬습니다.
자신을 잘 닦고 타인을 선하게 대하다
저는 1995년에 대법을 수련해 몸이 좋아졌고 생활 환경에 전기가 마련됐습니다. 중공이 대법을 박해하자 저는 납치돼 감옥에 갇혔습니다. 제가 감옥에 있는 동안 집에서는 농사도 짓지 못해 아내가 밭머리에서 통곡했고 수련생들이 압력을 무릅쓰고 농사를 도와줬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생산 도구와 생활 물자가 부족했습니다. 저는 용기를 냈습니다. 가축도 쟁기도 없어 괭이로 땅을 파고 가을 수확 때는 외바퀴 수레로 집까지 날랐으며, 수레가 못 가는 곳은 농작물을 어깨에 메고 날랐습니다. 이때마다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떠올리며 고생이 나쁜 일만은 아님을 이해했습니다. 참기 어려운 일도 참았고 꾸준히 해나가니 환경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속인이 많은 곳에는 심성 마찰이 있기 마련입니다. 대법은 속인 사회에서 전해지고 수련은 사람 마음을 직시합니다. 우리집에 비교적 비옥한 땅이 있었는데 바로 옆집 사람이 제 밭 두 이랑[0.2무(畝)가 넘는 땅, 1무는 약 200평]을 20여 년간 강점했고, 또 한 마을 깡패가 제 땅 반 마지기를 강제로 경작했습니다. 한 사람에게 분배된 땅이 고작 1.6무인데 이 두 집이 제 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해버린 것입니다. 그들과 따질 수도 없었고 마을이나 향(鄕)에서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속인이 보기에 땅은 농민의 목숨과 같지만 저는 수련인이니 참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보가 고약해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여 남과 다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해코지했습니다. 제 밭가에 한 아름 굵기의 큰 포플러나무가 있었는데 누군가 대놓고 톱으로 잘라 가져갔습니다.
제가 감옥에 납치된 후 아들은 집에서 살 수 없어 타지로 일하러 갔습니다. 제가 돌아온 후 아들도 돌아왔습니다. 집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어 남들이 보기에는 골치 아픈 가정형편이었지만, 인물 좋고 학식 있으며 집안도 넉넉하고 대법과 친근한 좋은 며느리를 맞았습니다. 젊은 부부는 예전 공급판매사의 빈방 8칸을 빌려 살았는데 가정 형편이 좀 좋아지자 남의 질투를 받았습니다. 세 들어 살던 방 8칸을 곧 조카네가 샀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돼 우리집은 연달아 손실을 봤습니다. 1만여 위안짜리 당나귀가 독살됐고 동시에 개 한 마리, 양 여섯 마리, 닭 일곱 마리가 죽었으니 참으로 설상가상이었습니다. 수련인은 원수가 없는데 누가 그랬을까요? 박해받는 동안 수련생 외에는 동생 부부를 포함해 아무도 우리집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중공의 파룬궁 비방에 속아 제가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다 박해받는 것은 자업자득이라 여겼지만, 그렇다고 저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당나귀는 농사와 가을 수확에 없어서는 안 되는데 누가 그랬을까요? 관찰해 보니 조카의 시아버지가 사라졌습니다. 가족들은 타지로 일하러 갔다고 했지만 사실 숨은 것이었습니다. 친척이 말하길 그 사돈은 소갈머리가 좁은데 제 아들이 조카네 집(원래 공급판매사 건물로 위치가 좋음)을 빌려 장사하려 한다는 걸 알고 질투심이 생겨, 그 집이 남에게 넘어갈까 봐 이런 하책을 써서 저를 해코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집을 사려면 돈이 필요한데 우리집이 빈털터리가 되면 뭘로 사겠냐는 것이었지요.
사후에 아들은 향 정부 소재지로 이사해 국수 가게를 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사돈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이 일 당신이 한 겁니까?” 그는 대놓고 인정하지도 직접 부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제가 파룬궁을 수련해 집안 형편이 좋아지는 것을 보고 질투심이 생겨 그런 짓을 한 것입니다. 손실은 컸지만 저는 수련인이니 마음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제 것이면 잃지 않을 것이고 잃어버린 건 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니 이 일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남에게 잘못한 게 없다면 남도 제게 이러지 않았을 테니 아마 인과일 것입니다. 수련인은 원수가 없고 적은 더더욱 없으니 이 일은 덮기로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원망과 미움을 내려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와 정상적으로 왕래했습니다. 여전히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줬으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자주 외우면 재난을 넘길 수 있다고 알려줘 대법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복을 받다
아버지는 95세에 돌아가셨는데 아주 편안히 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생산대장을 지냈는데 일 처리가 매우 성실했습니다.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았고 중공 변천사의 증인이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공산당은 똥덩어리를 몇 개 쌌는지까지 훤히 꿴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남을 해치거나 괴롭히지 않았고 부처님을 욕하거나 비방하지 않았으며 늘 근검하고 선량하셨습니다. 제가 중공에 납치돼 박해받자 아버지도 큰 충격과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틈나는 대로 외우시라고 했는데 아주 믿고 집중하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기억하셨어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신장(腎臟)까지 다 들어갔다”고 답하셨습니다.[기억이 견고함을 일컬어 마음에 새기고 신장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심장은 신(神)을 저장하고 신장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간단히 말해 살아생전 잊지 않으셨고 천국의 신이 맞이하는 것을 보거나 꿈꾸셨으며, 비몽사몽간에 사부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셨는데 그 신성하고 현묘한 경치를 오래도록 잊지 못하셨습니다. 여래불과 보살도 보셨으니 대법과 깊은 인연이 있으셨던 게 틀림없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고생하면서도 좋은 분이었고 자상하고 선량하셨습니다. 미혹된 세상에서 혜근(慧根)과 선념(善念)이 천국으로 돌아가는 기연을 성취하게 했습니다.
사존의 널리 제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2/18/5037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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