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이 내 마음속 얼음을 녹여주다
글/ 중국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 안녕하세요!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60세 된 여성 대법제자이며, 1999년에 법을 얻었습니다. 아래에는 제가 법을 얻은 후의 몇 가지 체험과 수련 이야기, 그리고 중생을 구하며 얻은 일부 수확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내 마음속 깊이 새겨진 증오
1997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마을 당 서기가 마을 몇몇 사람들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그들이 일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서기가 토지를 불공평하게 나눴다느니 재정에 문제가 있다느니 하며 고발했습니다. 우리집과 서기 집은 외지인이었고 또 이웃이어서 평소에도 관계가 좋았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순박하고 겁이 많으며 조용한 분이었습니다. 마을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끼어들지 않고, 시비에 가까이 가지도 않으며, 그저 묵묵히 고생을 참고 부지런히 살아가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런 일이라면 더더욱 관여하지 않았고 멀리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핑계를 대며 서기가 우리집에 땅을 더 나눠줬다 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을 한 명 보내 아버지를 찾게 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만 집에 계셨고 아버지는 거듭 설명하시며 땅을 한 푼도 더 받은 적 없다고 말했지만, 그 사람은 막무가내로 더 받았다며 협박했습니다. “땅을 다시 가져가겠다, 증인을 서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점심에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시자 아버지는 겁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일을 털어놓으셨습니다. 그 후부터 아버지는 그 고발한 몇 사람만 봐도 겁을 먹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셨습니다. 대낮에도 커튼을 치고 방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그들이 왔다, 그들이 파출소에 신고해서 나를 잡으러 왔다”며 중얼거리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데리고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다녔고, 결국 의사는 과도한 정신적 자극으로 인해 정신분열증이 발병했다고 진단했습니다.
다음 해 한겨울 어느 날 밤, 아버지는 물에 빠져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잠든 저를 깨웠고 저는 통곡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안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있는 힘을 다해 ‘쿵쿵쿵’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문을 열지 않았고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없었습니다. 불빛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분노로 눈이 돌다시피 했습니다. 굵고 긴 나무를 들고 울고 소리치고 욕하며 그 집의 문과 창문 유리를 마구 내리쳤습니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제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고요한 밤을 갈라놓았습니다. 그 처절함과 비통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던 아버지를 잃은 저는 마음이 갈갈이 찢어졌습니다.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고 마음 깊은 곳에 씻을 수 없는 원한이 자리 잡았습니다. 가슴속 깊이 새겨진 증오심이었습니다.
대법이 내 마음속 얼음을 녹여주다
1999년에 저는 대법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전하시는 것은 불가 최상의 대법이며, 사람이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하게 하는 고덕(高德)의 대법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착한 사람이 되며 타인을 선하게 대하게 하는 법임을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심성 제고와 업력의 전환에 저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은혜와 원한은 모두 인연이 있으며, 자신이 생생세세 지은 업이 지금의 갈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법리를 깨닫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사부님 말씀을 듣고 나 자신을 바꾸자. 이전의 사고방식과 관념을 바꾸고 수련인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자.’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 됐습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전생·전전생에 그들에게 빚을 졌을 수도 있습니다. 말은 쉬워도 막상 만나면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왔다가도 자꾸 지나갔습니다. 저는 이것이 저의 체면·원망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저는 용기를 냈습니다. 그들을 보면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처음엔 그들도 어색해했지만 여러 차례 마주칠 때마다 따뜻하게 인사하자 그들도 점점 자연스러워졌고 제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그 후 다시 마주치면 저는 자연스럽게 “이모부, 큰아버지, 식사하셨어요?”하고 공손히 인사했고 그들도 예의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제 아들이 결혼한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저녁에 직접 선물을 들고 와 축하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중 몇몇에게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도 권했습니다. 만약 제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배우지 않았다면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박혀 있던 그 원한을 평생 풀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선인(眞·善·忍) 위대한 불법이 제 마음속의 얼음을 녹여 주었고 두 집안의 은원은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사 어지러움 그 얼마이든가 쌓이고 쌓인 은혜와 원한 수없이 거쳐왔구나 마음은 악하고 업은 커 희망이 없으나 대법은 연원을 모조리 풀어 가누나”[홍음 2-대겁(大劫)을 풀다].
시댁 식구들이 나에 대한 원망을 풀다
오빠는 건설 현장의 공사 책임자였고 남편은 그 밑에서 일했습니다. 어느 날 오빠가 병이 나자 남편에게 몇 사람을 데리고 가서 허물어질 집을 철거하라고 했습니다. 철거 과정에서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집이 갑자기 무너졌고, 남편과 다른 한 명의 노동자가 폐허 속에 매몰돼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사고 후 공안국과 파출소에서 조사했을 때 친정 오빠는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채 모든 책임을 제 남편에게 떠넘겼습니다. 그 사실을 나중에서야 저에게 말했지만 저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오빠와 올케는 나에게 “네 아들이 결혼할 때 필요한 건 우리가 다 맡아서 해줄게. 다른 사람들의 자식이 가진 건 우리도 똑같이 챙겨줄게. 아이가 억울한 일 당하지 않도록 돌봐줄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빠가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전가하자 시댁 식구들의 분노는 폭발했습니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 도리어 그 죄를 뒤집어써야 한다고? 사고가 났을 때 한 푼도 안 주더니 손자가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도 안 된다! 반드시 각서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네 오빠를 고소하겠다!” 가족 관계에 얽혀 시부모의 뜻에 따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가까운 친척끼리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각서까지 받을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그 사건 이후 시부모와 시댁 식구들은 저에게 큰 불만을 품고 멀어졌습니다. 그전에는 시댁과 늘 화목했고 서로 잘 지냈습니다.
저는 수련인의 마음가짐으로 시부모를 대했습니다.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부모가 왜 오빠에게 각서를 요구했는지 이해했습니다. 손자 결혼에 쓸 돈을 확보해주려던 것이고, 그것도 저를 위한 배려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흰머리 부모가 검은머리 자식을 잃은 그 마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고통과 그리움을 생각하니 더 이해가 됐습니다. 시부모를 만나면 아무리 차갑게 굴어도, 말이 아무리 모질어도 저는 심성을 지키고 그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맞서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수련인의 큰 인내로 대했습니다. 제가 인사하면 시어머니는 고개도 들지 않고 “응” 하고만 대답했지만 저는 환하게 웃으며 “어머니, 어디 다녀오세요?”, “형님, 언제 오셨어요?”하며 늘 공손히 대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도 아무리 냉정하게 대해도 저는 개의치 않고 선하게 대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제 진심과 선량함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결국 다시 저와 제 아들, 딸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관계로 돌아왔습니다.
정(情)과 이익을 내려놓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두 달 후 저는 42세의 나이에 가정의 모든 무게를 떠안게 됐습니다. 오빠를 따라 공사 현장에서 밥을 하고 먼지를 치우고 벽돌을 나르고 건축 일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면서 녹초가 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월급을 받으러 갔을 때 오빠가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여자 노동자에게 저보다 하루 5위안을 더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여자 노동자와 함께 문으로 나가는데 대문 앞에 도착하자 오빠가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절대 말하지 마. 네가 하루에 85위안 받는다는 걸 절대 그녀(나)에게 말하지 마.” 그리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남편이 공사장에서 사고로 죽었을 때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오히려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떠넘겼던 오빠… 난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일하는데 이제는 나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여자 노동자가 저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벌써 10시예요. 집에 가세요. 여기 사람들은 다 사정을 아는걸요.”
저는 눈물을 닦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살짝 열어 아이들이 제 모습을 보지 않게 조심했습니다. 아들과 딸도 오빠의 행동을 매우 못마땅해했기 때문입니다.
잠자리에 누워 마음을 가라앉히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수련인이야. 법으로 판단해야 해.’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고 우연한 것은 없으며, 일체는 모두 원인이 있다.”(유럽법회 설법)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현세의 친정·시댁 정을 뛰어넘어야 한다. 우주의 이치는 공평하다. 불평하는 마음은 나 스스로가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집착 때문이다. 대법의 기준으로 자신을 측정하고 진선인에 동화해야 한다. 이번 일은 사부님께서 내 심성을 높여 주시고 업력을 전환해 공을 쌓게 하시는 과정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의 슬픔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삽을 들고 평소처럼 출근했습니다. 오빠와 올케를 만나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선하게 대했습니다. 아들이 결혼할 때 오빠와 올케는 당시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신들과 아무 상관 없는 일처럼 모른 척했습니다. 제가 결혼식 차량을 부탁했을 때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단지 어느 날 아침 오빠가 저를 집으로 불러 3500위안을 건넸을 뿐이었습니다. 대법을 배우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알게 됐기에 저는 그들의 태도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요했습니다.
집안일도 모두 제가 나서서 했습니다. 페인트칠하는 사람을 부르고 두 아이와 함께 가구를 사고 커튼을 달고 이불을 만들고 청소도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제가 하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수련생)가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빠와 올케에게 그때 한 약속은 어떻게 된 거냐고 한 번 물어보지 그랬니?” 저는 말했습니다. “엄마, 저는 안 물어요. 보통 사람처럼 그런 걸 따질 수는 없어요. 우리는 수련인이잖아요. 세상에 온 것도 ‘원(怨)’을 갚으러 온 것이고 어떤 불순한 일을 만나도 사람 마음과 관념으로 옳고 그름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요.”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전법륜)
사부님의 법리를 깨달으니 마음이 한없이 밝아졌습니다. 한 점의 원망도 없었고 모든 것이 담담했습니다.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저는 소박하지만 진심을 다해 아들의 결혼을 치러냈습니다. 대법은 저에게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제 삶은 본질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저는 선량하고 남을 위한 마음을 지니고 자신감 있는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법의 위력이자 사부님의 은덕입니다!
수련생과 협력해 중생을 구하다
남편의 사망, 시부모님의 압박, 파출소의 괴롭힘 등 여러 시련을 겪었지만 그 어떤 것도 제가 굳건히 수련을 계속하려는 신심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수련생들의 도움과 교류는 저에게 큰 격려가 됐고 저는 곧바로 단체 법공부에 참여해 심성을 높여 갔습니다. 진상을 밝히고 중생을 구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자 사명이며 더 나아가 우리가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사부님과 맺은 서약임을 알게 됐습니다.
수련생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법공부하며 또 밤 시간 일부를 내어 현수막을 걸고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낮에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직장에서 피곤해도 사부님의 대법 속에서 생활하니 모두가 충실하고 보람됐습니다.
겨울철 일거리가 없을 때 저는 한 수련생과 짝이 돼 달력(벽걸이 달력),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A 수련생은 세심하고 일 처리가 신중했습니다. 저는 지붕이 있는 전동 삼륜차를 몰고 수십 권의 달력(벽걸이와 탁상용)을 싣고 갔습니다. 그녀는 차 안에서 정념을 발하며 삼퇴 명단을 적었습니다. 제가 앞에서 달력을 몇 권씩 주면 다 떨어졌을 때 A가 다시 건네주었습니다.
우리는 작은 삼륜차를 타고 골목골목을 다니며 배포하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농촌 사람들은 대체로 순박하고 선량해 진상을 쉽게 받아들이고 제대로 이해하면 곧바로 삼퇴했습니다. 저는 목소리가 커서 삼퇴를 권할 때의 이름들을 A가 차 안에서도 들을 수 있었고 그녀는 차분히 모두 기록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 안전했습니다. 우리가 배포를 마치고 돌아오면 A는 “나갈 때는 그렇게 어렵더니 일을 하고 나니 너무 가벼워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의 두려움의 물질을 한 층 한 층 제거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0여 명의 삼퇴 명단을 볼 때면 우리는 중생이 구원받은 것에 마음 깊이 기뻐했습니다.
한 번은 달력을 많이 갖고 한 마을 북쪽 입구에 갔습니다. 큰 공장을 짓는 곳에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달력을 들고 다가가자 누군가가 “파룬궁 달력이네!”하고 외쳤습니다. 이 사람이 한 권 달라 하고 저 사람도 한 권 달라 하고 금세 모자라서 제가 다시 가지러 갔습니다. 거의 한 사람당 한 권씩 나누었고 몇몇은 그 자리에서 삼퇴했습니다. 말이 서툰 A는 마침 자기 친정 마을 사람을 만나자 그때를 놓치지 않고 진상을 전해 삼퇴까지 시켰습니다. 저는 A를 바라보며 칭찬의 눈빛을 보냈고 우리는 서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중생구도를 생활 속에 녹여 넣다
진상을 말하고 삼퇴를 권하는 일은 이미 제 생활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습니다. 고물 수거하러 오는 사람, 가스 점검하러 오는 사람, 나무 사러 오는 사람, 옥수수 사러 오는 사람 등 누구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점심을 막 먹고 있는데 고물 수거하러 온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안후이 사람으로 짐을 트럭에 싣고 있었습니다. 저는 “더운 날씨에 물 한 잔 마시고 가세요”하고 그를 안으로 들였습니다.
집에 들어오자 저는 말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아직 치우지 않은 점심이 있으니 빵도 있고 생선도 있으니 조금 드세요.”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사부님께서는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얼마나 힘드세요. 지금은 어느 집에서든 식사 한 끼가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제 진심 어린 태도에 그는 마침내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먹으면서 저는 진상을 말하고 ‘선량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도 읽어주었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시고 중국공산당(중공) 조직을 탈퇴하세요. 중공이 이렇게 악하니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늘이 그를 멸망시킬 때, 대 재앙이 와서 사람을 도태시킬 때 당신은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는 급히 말했습니다. “나 예전에 홍위병이었는데 그것도 해당돼요?” “홍위병도 탈퇴해야 합니다.” “좋아요! 탈퇴하겠습니다!”
마침 밖에서 또 고물 수거하는 사람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제 여동생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여동생까지 집으로 들여 큰 그릇에 라면을 끓이고 달걀 두 개를 넣어 먹게 했습니다. 그녀에게도 진상을 말해 삼퇴시켰고 자료도 들려 보냈습니다.
그들이 떠날 때 저는 제가 안 입는 옷, 신발, 큰 스카프를 여동생에게 주었습니다. 남매는 연신 고맙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저는 마음속 깊이 기뻤습니다.
다른 고물 수거인은 진상을 알고 삼퇴한 후 커다란 호박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나무를 사러 온 사람은 진상 듣고 삼퇴한 후 무 몇 개를 내어주었습니다. 옥수수를 사러 온 사람들에게도 한겨울 점심에 반찬 몇 가지를 해주고 술 한 병까지 내어 식사 시간에 삼퇴를 권했습니다. 갈 때는 대련(對聯)도 주고 호신부(護身符)도 주면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또 어느 날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아무리 말해도 삼퇴를 망설였습니다.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좋은 사람만이 이런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어요. 하늘이 저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하니 아주머니는 좋은 분이에요. 지금 홍수, 지진, 전쟁, 전염병… 어느 하나 무섭지 않은 것이 없어요. 하늘은 악인을 도태시키는 중입니다! 중공에서 탈퇴하면 하늘이 보호해요. 큰 재난이 와도 아주머니와는 상관없습니다. 이런 기회는 한 번뿐이에요. 놓치면 후회해요.”
제 진심이 아주머니를 움직였고 마침내 말했습니다. “탈퇴할게요. 고마워요.” 저는 말했습니다. “저에게 감사할 필요 없어요. 우리 위대한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
몇 년간 가사 일을 하면서도 어디를 가든 진상을 말해 인연 있는 사람들이 대법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수련인임을 잊지 않고 수련인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엄격히 요구했습니다. 더럽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반 도우미가 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해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고객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집을 떠나는 날에도 저는 늘 마지막까지 할 일은 모두 해놓고 나왔습니다. 대법의 아름다움을 세상 사람에게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떠날 때면 고객들은 아쉬워하며 전화를 걸어 “아주머니, 언제 다시 우리집에 오실 수 있어요?”하고 묻곤 했습니다.
맺음말
쓰고 싶은 내용은 아직도 너무 많지만 정진하는 수련생들에 비하면 저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법의 요구와는 더욱 큰 거리가 있습니다. 수련한 지 26년 동안 제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늘 저를 보살펴주시고 보호해주시며 난관을 만날 때마다 일깨워주시는 것을 정말로 깊이 느꼈습니다. 그렇게 사부님의 위대한 정법 노정에 따라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고 법 속에서 승화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지옥에서 건져내어 씻겨 주시고 우주 중의 뭇 신들이 부러워하는 생명인 대법의 한 입자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18/50243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18/50243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