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스위스 서양인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교류 기회를 빌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에 대한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올해 저는 힘든 시련을 겪었는데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 시련을 영원히 통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작년 11월 스위스 법회가 끝난 직후 제 몸에 병업(病業)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며칠 동안 깨어날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낮에는 통증이 점차 완화됐습니다. 어떤 날은 깨어날 때 통증이 너무 심해서 부엌까지 걷는 것조차 형벌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온몸의 관절이 지속적으로 염증을 일으켰습니다. 때로는 사지를 이완시키고 통증을 조금 완화하는 데 몇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매일의 일상 동작마다 큰 힘이 들었습니다. 물병을 열고 머리를 묶고 옷을 입고 계단을 오르고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하고 다시 일어나는 것 등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어떤 날은 제가 절뚝거리며 걷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많은 사람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파룬따파 대법제자이니 고통을 견디되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힘든 시련을 겪어 속인이 파룬따파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해야 하는가?’ 이런 걱정이 결국 저로 하여금 제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시도하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연구한 후 제 나이(30세)로는 정상인이라 해도 관절 마모나 관절염을 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곧 다른 설명을 보았습니다. 제 증상은 치유할 수 없는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스성 관절염과 일치했습니다.
이 질병의 증상은 관절이 장기간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변형되고 활동 능력이 저하되며, 심지어 조기 사망에 이릅니다. 환자들의 경험담을 읽었을 때 그들이 묘사한 모든 문장이 제 경험과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손가락의 특히 아픈 관절을 자세히 관찰했는데, 그중 세 개의 관절이 부었고 자연스러운 축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언론사를 위해 비디오를 촬영할 때 제 발목이 매우 심하게 부은 것을 발견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수련인입니다. 남편이 곧 제게 주의하라고 일깨워줬습니다. 그는 제가 인터넷에서 제 통증이 대응할 수 있는 ‘질병’을 검색할 때 제 심성이 이미 떨어졌다고 명확히 지적했습니다. 이는 제게 이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제 근본 집착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사실 바로 이 두려움이 저를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집착을 내려놓고 병원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수련생의 건의
여러 수련생이 제게 준 첫 번째 건의는 연공을 많이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이 완전히 옳았습니다. 저는 매일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곧 연공 시간과 빈도를 늘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대부분의 오랜 수련생들은 제게 이런 증상을 상관하지 말고 인정하지 말며 정념을 유지하라고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은 조금 다르게 말했습니다. 그는 저를 위로하며 어떤 업력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만약 제가 병원에 갈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도 별일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동정심 가득한 말이 제게 자신에게 가하던 압박을 덜어줬습니다.
저는 한 수련생 친구에게 이런 교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녀가 간단한 말로 제게 답했는데 제게 충격을 줬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것은 안으로 찾을 좋은 기회야. 아직 문제를 찾지 못했어?”
그 순간 저는 매우 상처받았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생각했습니다. ‘나는 수련인이고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어! 내가 매일의 고통을 당신에게 털어놓는데 이것이 당신이 나에게 주는 전부 답변인가?’ 저는 불평을 품고 그녀를 떠났고 이 친구가 동정심이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오해받고 상처받고 좌절했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절실히 필요했던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세력에 의해 강제로 박해당하는 것도 당신 자신이 지닌 업력 때문에 조성된 것이다.”
제 친구의 말이 틀렸을까요? 안으로 찾는 것이 바로 그녀가 제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건의가 아니었습니까? 그래야 제가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며칠 후 비슷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제 몸은 통증 때문에 지쳐 있었습니다. 이렇게 허약한 상태에서 저는 남편의 관심을 끌려고 했지만 그는 일에 바빠서 저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깊은 무력감에 휩싸여 결국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후 저는 이런 인정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더 깊이 생각했습니다. 저는 일상생활에서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랑이나 관심을 받지 못할 때 마음속에서 은근히 어떤 원망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원망은 뿌리 깊고 모호한 분노로 비록 폭발한 적은 없지만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염증’을 자양하는 근원이 아닙니까? 제가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전진하는 인상을 줄 때 이런 억압된 분노, 내심의 화가 제 관절에 염증과 통증을 일으킨 원인이 아닙니까?
진정으로 안으로 찾다
어느 날 저녁 제가 현지 법공부 팀과 함께 사부님의 설법을 읽을 때 제게 매우 도움이 되는 한 단락의 법을 발견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13-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일부 수련생은 병업관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당신은 큰 부분에서 생각하지 말라. 당신은 나는 그렇게 큰 잘못이 없으며, 법에 대해 매우 확고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작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라. 사악이 틈을 탈 것인데, 많은 수련생이 작은 일 때문에 심지어 가버렸다.”
그날 밤 저는 명확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작은 일’로 여기는 모든 잘못을 자세히 주의할 것이다.’ 저는 2주간의 국외 휴가 시간을 이용해 전념해서 ‘전법륜(轉法輪)’을 읽었습니다. 매일 저는 혼자 천천히 읽으며 시간을 들여 매 문장을 자신의 수련과 대조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살펴봤습니다.
저는 원망심의 근원을 더 자세히 분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사랑에 대한 갈망과 정(情)에 대한 집착 외에 저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거의 매일 각종 다르고 왕왕 매우 미묘한 형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조금만 비판하거나 제가 보기에 그가 법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하면 이런 원망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화를 내며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일)은 수련인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다.’ ‘왜 나는 항상 그의 행위를 견뎌야 하는가?’ 점차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에 대한 제 대부분의 생각이 불만과 비난과 원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제가 이것을 깨달았을 때 거대한 심성 시험을 만났습니다. 그날 우리는 속인과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남편이 아무런 예고 없이 몇 분 동안 사라졌습니다. 평소와 같이 저는 강렬한 분노를 느꼈고 심지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가 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정념이 일어났습니다. ‘왜 그가 틀리고 내가 옳아야 하는가? 병업과 싸우고 있는 것은 나 아닌가? 이것이 선(善)을 닦을 소중한 기회가 아닌가?’ 그 순간 제 분노가 사라졌습니다. 저는 편안하고 평온함을 느꼈으며 제 몸도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휴가 기간 동안 비슷한 시험이 여러 번 나타났습니다. 매번 저는 더 많은 원망을 내려놨습니다. 이것은 매우 충실한 체험이었습니다. 만약 관절 통증의 괴로움이 없었다면 저는 영원히 이렇게 자세히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지 못했을 것이고, 마음속의 불을 끄는 습관을 기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불은 이미 너무 오래 타올랐습니다.
색욕심을 철저히 제거하다
관절 통증 때문에 저는 가부좌를 할 때 다리의 통증이 수십 배 증가했습니다. 때로는 통증이 너무 극심해서 저는 연공하는 내내 괴로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날 통증을 견딜 수 없을 때 저는 사부님께 약속했습니다. ‘제가 계속 회피해 온 색욕심 문제를 진지하게 대면하겠습니다.’ 결혼한 이후 저는 진정으로 자신의 색욕심을 제거하지 못했고 성욕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더 강해졌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남편과 아이를 원하니 우리가 서로에 대해 일정한 끌림과 정욕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야.’ 하지만 제가 다시 ‘전법륜’ 제6강의 색욕심에 관한 단락을 자세히 읽었을 때 저는 부부 사이의 욕망도 일종의 집착이고 수련인이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강화하기 위해 저는 다시 ‘맨해튼 설법’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는 제가 자신의 책임을 지도록 도와줬습니다.
저는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어디서 잘못했는가?’ 오랫동안 저는 남편이 저보다 정욕에 더 집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수련의 각도에서 이 화제를 제기할 때마다 긴장된 논쟁과 그의 비난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2017년 수련을 시작한 이래 저는 줄곧 색욕심 수련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이 문제가 어느 정도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빠진 곤경이 완전히 그의 책임이라고 생각했고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분노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저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관심과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그를 비난했지 정직하게 안으로 찾아 자신에게도 이런 집착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내가 마음속의 가장 더러운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른 수련생들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맨해튼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전면적인 관점을 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일생만이 아니며, 금생에는 당신과 한가족이지만, 내생에는 그가 다른 사람과 한 가족일 것이며, 그 다음 생에는 어디로 전생할지도 모른다. 단지 일생의 연분에 불과할 뿐인데, 당신이 어찌 그의 생명의 영원한 선택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오직 당신이 정말로 그를 구도하려는 소원을 품고, 그를 하나의 구도할 생명으로 본다면, 당신은 이 일이 같지 않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각지 설법10-맨해튼 설법)
결혼한 이래 저는 정기적으로 이 경문을 공부했는데 색욕 문제를 해결할 명확한 출로를 찾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야 사부님의 말씀이 제 눈에 들어왔고, 수련인의 진정한 자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을 구원해야 할 사람으로 여겼고 그의 운명이 제 결정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망치지 말고 ‘대법제자’라는 칭호를 저버리지 말자.’
제가 이런 자비로운 생각을 갖게 된 직후 예상치 못한 전기가 나타났습니다. 남편이 자발적으로 이 화제를 꺼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오래 생각했어. 구세력이 병업 시험으로 당신을 공격하는데 나도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해. 우리는 반드시 함께 색욕심을 내려놓고 속인이라는 이 층차를 초월해야 해. 우리는 함께 수련해 떳떳하게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 당신이 이 교란을 극복할 수 있게 하겠어.”
제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제 내심의 기쁨과 감사를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게 무겁고 끈적한 업력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셨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 속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가 온 방과 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사부님의 법상(法像) 앞에서 저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맺음말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저는 아직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결론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교란에 대한 제 견해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이런 매우 안 좋은 일조차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저로 하여금 강제로 안으로 찾도록 해 제가 진지하게 근본적인 집착을 제거할 수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정념을 발함으로써 저는 지금 제 내재 세계와 제 몸을 구성하는 우주를 바로 잡고 있으며, 사부님께서 이 과정에서 제 본체(本體)를 전환하시게 하도록 결심했습니다. 수련에서 ‘작은 일’은 없습니다. 어떤 수련인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정진해 매일 ‘전법륜’을 읽고 자주 연공하지만 이것이 그가 이미 인류라는 이 공간을 초월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공간을 떠날 열쇠를 주셨습니다. 관건은 먼저 남을 위해 생각하고 개인과 물질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기계적으로 일할 때 진정으로 안으로 찾는 것을 잊고 자신이 정확한 길을 가고 있다고 여깁니다.
제 관절 통증은 결국 지난 1년간 제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 됐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저는 영원히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하고 노력해 그것을 극복할 충분한 오성(悟性)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무한한 대법을 가져다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수련생들이 소중한 관심을 준 것에도 감사드립니다. 저는 계속해서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안배하신 길을 걸어 제가 세상에 온 목표를 실현하겠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25년 스위스 독일어권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0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27/50180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0/27/50180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