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서연(書然)
[명혜망] 최근 일부 글에서 다시 근본 집착을 논하고 있고, 주변 수련생들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박해 초기에 이미 제 근본 집착을 제거했기에 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난관이 비교적 많았는데, 주로 사람들과 지내기가 매우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영문도 모르게 다툼을 당하고, 마음을 자극하는 불친절한 말을 자주 듣고, 이치를 모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사람의 마음이 타락해서 사람 사이의 관심과 우정이 권력과 이익에 침식당했다고 여겼습니다. 제가 이렇게 오래 박해받아 이전의 우월한 직장과 생활환경을 잃고 생활 형편이 급전직하했으니 ‘무시당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결과 원망하게 됐습니다. 불친절한 사람과 일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습니다. 얼마 전 가정에서 겪은 한 고비가 정말 견디기 어려웠을 때, 비로소 근본적으로 다시 제 문제를 찾게 됐습니다.
저는 정이 매우 무거워 가족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 몇 년간 계속 정 관련 고비를 겪었지만 어떤 근본적인 것들은 바꿀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가족을 중시하고 그들을 위해 걱정할수록 오히려 그들에게 더 환영받지 못했고, 나쁜 일은 모두 제가 감당하지만 좋은 일에는 제 몫이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편애할 뿐 아니라 태도도 좋지 않았는데, 저는 여러 해 동안 묵묵히 참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늘 제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매번 정말 참을 수 없을 때 한 번씩 화를 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 눈에 저는 단지 부림을 당하는 도구 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사실 베푸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매우 좋지 않은 느낌이 솟아오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존중받지 못하는 추한 하녀의 형상이 내면에 투영돼 스스로도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데,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오랫동안 ‘억압’을 받아 내면화된 결과임을 알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어나려 노력했고, 자라서는 정말로 사람들 눈에 하늘의 총아이자 우아하고 지적인 모습이 됐습니다. 하지만 종종 가족의 한마디가 저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놓곤 했습니다.
저는 이 추한 형상을 떨쳐버릴 수 없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최근 또다시 강한 충격을 받아 이런 느낌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저는 법공부에 몰두하며 법의 위력으로 가족정을 담담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왜 이런 느낌을 그토록 배척하는가? 만약 정말 이번 생에 이런 평범하고 추한 형상으로 환생했다면, 살지 말아야 하는가? 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가?’
이때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셨고, 저는 이전에 본 글 ‘금부처(金佛)’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부처가 진심으로 수련하는지 시험하는 기름 가마에서, 체면 차리던 두 사람의 마음은 튀김이 됐고, 지저분해 보이던 사람의 마음은 금부처가 돼 도를 얻어 승천했습니다. 제가 경멸하던 이 형상이 그 지저분한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요? 그것을 경멸하는 것은 체면을 유지하려는 것 아닌가요? 이것이야말로 더러운 사람 마음 아닌가요?
한 가지 옛일이 생각났습니다. 의학을 공부한 한 수련생이 양로원에 갔을 때 당뇨병 환자인 노인의 두 발이 곪아 고름이 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대법을 수련하니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 맑은 물을 떠와 노인 발의 고름과 피를 깨끗이 씻어드렸습니다. 이 일은 제게 큰 충격을 줬고, 저는 어떻게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하필 이 일이 제 기억 속에 20여 년간 맴돌았고, 그 20여 년 동안 저는 때때로 자문했습니다. ‘지금의 나는 할 수 있을까?’ 답은 늘 부정적이었습니다. 저는 아름다움을 원하고 우아함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수련인이기에 자신에게 누락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근본 집착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생활환경, 내면의 고결한 품격, 우아한 거동, 탈속(脫俗), 이 모든 것이 아직도 매우 깊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 근본 집착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은 ‘나는 수련하니 당연히 더 나은 자신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니 대법에 들어온 것도 자신이 아름다워지기를 희망했기 때문 아닌가요? 저는 한때 모두가 부러워했고, 이 몇 년간 대법 속에서 점차 지혜가 열려 많은 영역에서 갑자기 깨우쳐 신세계의 문이 눈앞에 열렸습니다. 저는 이것이 고급 영성 지혜의 전당에 들어선 것이라 여기고 더욱 은근히 기뻐하며 증거를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라, 이것이 대법이 내게 준 것이고, 대법이 나를 고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이 인식을 고수했습니다. 자신을 아름다운 이념에 부합시키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여기며, 저와 주변 사람들이 모두 평화롭고 우아하며 도덕이 고상하고 온화한 군자 같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좋지 않은 환경을 피하고, 도덕이 좋지 않은 사람을 피하며, 속된 사람과 제 신분을 낮출 수 있는 사람을 멀리했습니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선량했지만 속으로는 그들을 깔봤고,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차라리 혼자 있기를 택했습니다. 저는 공주처럼 아름다운 정원에만 있을 수 있고 진흙탕에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 치맛자락을 더럽힐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한 가지를 간과했습니다. 모든 아름다움은 수련해서 나오는 것이지 사람의 방법으로 얻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대법을 이용해 사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습니다. 수련은 바로 이 탁한 세상 속에서 고생스럽게 수련하며 불순한 것을 제거해 더 높은 표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제가 추구하고 회피한 것은 바로 자신의 더러운 사상과 더러운 모든 것을 고수한 것이며, 수련 환경을 낭비하고 수련을 도피한 것입니다. 게다가 대법 수련자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는 무조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며, 선해야 하고, 일반인이 참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며, 자신을 가장 낮은 위치에 놓아 원망도 미움도 없이 고생을 즐거움으로 삼는 데 도달해야 합니다.
이것을 의식한 후, 이 깊이 잠복한 근본 집착이 드러났습니다. 저는 명혜망에서 수련생들이 모욕을 참고 중임을 짊어진 글들을 집중적으로 봤고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수련생들의 환경은 저보다 훨씬 열악했지만 원망도 미움도 없이 곳곳에서 남을 위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저는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저는 독선적인 이 좋지 않은 사람 마음을 보고 그것을 제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점차 가족과 친구에 대한 원망심이 사라지고 마음도 부드럽고 넓어졌습니다. 그 허위적인 공주 형상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그 추한 여종 형상도 더는 저를 괴롭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환골탈태한 것처럼 상쾌해졌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마침내 겉과 속이 같은 당당한 대법 수련자가 됐으며, 어떤 환경과 비바람도 두렵지 않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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